[김연수의 正見] (313) 이미ㆍ절로ㆍ생각없이
깨어남의 3가지 특성
[살아있음] 자체를 자각한다면 이게 바로 깨어남이며 진정한 참 나를 찾는 일대사건입니다 /셔터스톡
아직 이 자리에 깨어나지 못한 분은 [이미, 절로, 생각 없이] 있는 이것의 특성을 밀밀하게 잘 살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법신자리는 이 세 가지의 특성을 동시적으로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건가?]하는 소식이나 체험이 온다면 이세가지에 부합하는지 한번 맞춰보시면 되겠습니다.
첫째로 [이미]란 나에게 이미 전부터 늘 갖춰져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새롭게 생겨난 느낌 감각이라면 아무리 삼빡하다 해도 그건 진리가 아닌 거지요. 법신자리는 전에부터 나란 현상으로서 나와 분리할 수 없이 항상 같이 있었다는 진실을 이번에 다시 재발견하는 것이 깨남입니다.
그래서 [얻었다]란 말보다 자기 존재의 근원에 [깨났다]란 말이 더 정확합니다. 그런 게 뭐가 있을까요? 예를 들면 이렇게 보고 들으며 느끼는 성품입니다. 또 살아있기에 뭔가가 몸을 움직이며 의식 활동으로 마음을 만들지 않습니까? 송장은 더 이상 그렇게 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두 번째론 법신자리는 늘 [저절로] 체험되고 실감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노력해 알거나 얻는 게 아니고 아무 짓 안 해도 소리 나면 들리고 누가 툭 치면 알며 뜨거우면 뱉고 추우면 몸을 저절로 움츠리지 않습니까? 졸리면 하품하고 찬바람에 재채기하는 게 내가 생각해합니까 절로 합니까?
세 번째 삶은 아무 [생각 없이]도 이미 자연히 이루어짐이 체험되고 있습니다. 즉 생각 속에서 내가 어떤 대상을 계속해 보거나 경지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살아있음이 저절로 자연스레 온갖 현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진실을 통째로 그냥 탁 보면 되는 거지 뭘 자꾸 지켜보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생각 없이도 저절로 숨 쉬어지고 뭘 보면 생각 없이도 즉각 알게 됩니다. 누가 부르면 아무 생각 없이도 즉각 알며 피곤하면 잠이 온다는 걸 즉각 압니다. 즉 형체도 없고 생각으로 이해해 알 수도 없는 비3차원적 이 한 물건(?)이 있어서 삶이란 현상은 저절로 오래 전부터 이미 스스로 존재해왔던 것입니다.
따라서 [생각 없이, 이미, 절로]인 이 세 가지 특징을 가진 내 존재성을 살펴보며 그런 형체 없고 모양 색깔도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어 3차원 시공간감각까지도 보고 알며 느끼는 바로 지금 여기 이 [살아있음] 자체를 자각한다면 이게 바로 깨어남이며 진정한 참 나를 찾는 일대사건인 것입니다.
이 자리가 바로 영생불사하시는 하나님이며 부처이며 예수가 말한 [나=생명=진리=길]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보는 눈이 없기에 자꾸 자기 생각으로 진리를 해석, 재단하려하나 그게 바로 아상(나를 고집함)이며 내 견해를 고집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도 못 벗어나는 이가 어떻게 모든 생각을 초월해 있는 진리를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글 | 김연수 한양특허 대표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