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9일(수) 예레미야 42:1-6 찬송 266장
1. 이에 모든 군대의 지휘관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와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나아와
2.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탄원을 듣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 주소서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남은 적은 무리이니
3.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4.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말을 들었은즉 너희 말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무릇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너희에게 말하리라
5.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가운데에 진실하고
성실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6.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개역 개정)
- 예레미야를 향한 유다 남은 백성들의 중보 기도 요청 -
오늘 말씀은 예루살렘 함락 이후로부터 유다 남은 백성들이
애굽에 이주하여 정착하기까지의 일정 기간 동안에 있어서의
예레미야의 사역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제40-44장까지 계속되는 일련 기사의 연속 부분으로,
유다 남은 백성들이 애굽 이주 계획을 세운 사실을 보여준
지난 말씀(41:16-18)에 이어 예레미야를 향한
유다 남은 백성들의 중보 기도 요청을 언급하고 있다.
즉 요하난과 유다 남은 백성들은 애굽에 이주하려는 상황에서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요청하였다.
이러한 기도 요청은 일면 매우 신앙적인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요하난과 유다 남은 백성들은 앞서 지난 말씀에서 언급한 바 있거니와
이미 애굽 이주를 내심으로 결정한 상태에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 그들의 기도 요청은 순수한 동기가 아닌
하나님께서 그들의 결정에 동의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모압 왕의 요청을 수락한 후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려고 한 발람의 태도(민22:15-20)와 같이
지극히 불경건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실제로 그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애굽 이주를 단행했으며
그로 인해 애굽이 바벨론의 침공받았을 때 함께 멸절하게 된다.(44:20-30)
이러한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결정해 놓고
하나님의 동의를 구하는 식의 기도를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준다.
이는 하나님을 자신의 뜻을 이루는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지극히 교만한 행위이다.
기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인도를 바라는 겸손한 마음으로 할 때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된다.
6절)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6절은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유다 잔류민들이
어떤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지 그 의지를 피력하는 내용이다.
그들은 ‘그(하나님)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이라 말한다.
이러한 유다 잔류민들의 고백은 겉으로만 보면 참으로 결의에 찬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들의 이같은 고백은 이미 자신들이 애굽으로 내려갈 것을
정해놓은 상태에서 말하는 것으로 거짓되고 위선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말 자체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태도와 관련해 중요한 지침을 제공한다.
곧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다 그대로 순종해야 한다.
설령 그것이 우리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
사람들이 보기에 어리석은 것으로 보여도 그것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따를 올바른 모습이다.
아울러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게 되면
결국에 돌아오는 것은 6절 후반부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 것을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확실한 말씀이라도
자기 생각에 자신에게 손해가 될 것 같으면 그것을 외면하고
결국 자기 생각, 자기 뜻, 자기 방법을 고집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이성, 우리의 계산, 우리의 사고를 초월하는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우리 소견만을 내세운다면 실상 순종할 만한 것들이 별로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은
그 말씀의 내용이 우리의 생각, 이성, 이해에 부합되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며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신실하심, 은혜로우심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그것이 우리에게 손해가 될 것처럼 보이고
사람들 생각에 어리석은 것으로 보일지라도 일단 순종으로 반응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성경에 언급된 믿음의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을 받은 사람들은
이처럼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 되는지를 입증해주는 산증인이다.
실례로 노아를 생각해 보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맑은 날에도
장차 온 세상을 휩쓸 홍수 재앙이 있을 것임을 믿고 방주를 예비하였다.
그의 그러한 순종은 사람들 보기에 비웃음거리,
미치광이와 같은 행동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순종으로 그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파멸의 물살에
휩쓸려가는 비극속에서도 그와 그의 가족은 구원을 얻는 축복을 체험했다.
아브라함의 경우 75세나 된 시점에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
당시 사람들의 관념에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은 외부의 위협에 대하여
생명을 보존하는 유일한 생명의 터전과도 같은 의미이다.
그곳을 떠난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75년이나 가꾸어온
그의 삶의 텃밭을 버리는 것일 뿐 아니라
생명을 담보로 한 미련하고 어리석기 그지 없는 일로 비쳐질 사건이다.
하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이 명령을 그대로 순종하였다.(창12:1-4)
그러한 순종을 시발점으로 하여 그는 오늘날 까지도
믿음의 조상이란 복된 이름을 지닌 자로 기억되고 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선하고 의로우며 축복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생각과 이성적 판단에 부합되지 않을 때가 많고
때로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으로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하다면
하나님의 선하심, 그분의 은혜로우심을 믿고
결코 흔들리거나 주저하지 말고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 이면에 감추어둔
놀랍고도 신령하며 확실한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신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주신 곳으로 가더니」 (창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