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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5일, 시진핑 주석은 중국공산당과 세계정당 고위급 대화 연설에서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Global Civilization Initiative: GCI)를 주창한다.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의 요점은 각 문명이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의 가치관과 모델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명의 다양성 존중과 문명 간 공존을 바탕으로 국제적 인적교류와 협력의 강화를 촉구한다. 이제 중국은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초강대국에 어울리는 거대 담론을 설파하고 있다.
중국 글로벌 담론의 진화
강대국은 세 가지 통제 형태를 통하여 영향력을 행사한다, 즉 특정 규정을 강요하는 강압적 능력에 의존하거나, 대외원조와 같은 혜택을 제공하면서 합의를 유도하거나, 가치 내지는 정통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히 가치나 정통성은 지배적 국가의 정체성이나 이데올로기의 장점을 가지고 지휘할 수 있는 능력 또는 권위에서 나오며, 중국이 진정한 G2로 인정받으려면 강제력, 혜택의 제공 능력과 함께 글로벌 차원에서 나름의 가치나 정통성을 제시해야 함은 물론이다.
중국의 글로벌 담론은 2021년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Global Development Initiative: GDI), 2022년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Global Security Initiative: GSI), 그리고 올해 제시된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로 진화해 왔다. 76차 유엔총회에서 발표된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는 국제사회가 빈곤감소, 식량안보, 방역과 백신, 발전자금 모금, 기후변화와 녹색발전, 산업화, 디지털 경제, 상호연계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길 호소한다. 중국은 이미 관련 고위급 대담회의를 주재하고 민간의 빈곤 완화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를 주도하고 있다. 2022년 말 기준으로 참여국과 국제기구는 100여 개로 늘었고 유엔 플랫폼에 설립된 GDI의 친구 그룹 회원은 60여 개에 달한다.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는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 존중, 주권 평등과 내정 불간섭을 국제관계의 근본으로 냉전적 사고와 일방주의, 패권주의를 배격함을 골자로 한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국제 사회는 동남아와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에서 안보 관련 합의를 강화하고 전 세계가 참여해 식량, 에너지 안보, 기후 변화, 방역, 우주 안보, 테러 등의 문제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언론은 최근 중국이 사우디와 이란 간의 관계를 중재하고 시진핑 주석이 우크라이나 젤린스키 대통령과의 통화를 통해 전쟁의 중재자 역할을 천명한 사건 등이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의 원칙에 입각한 중국 외교의 성과라고 자화자찬하기도 하였다.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는 발전에서 안보, 문명으로 중국의 글로벌 담론이 지속해서 확대되고 거창해지는 진화 방향을 보여준다. 시 주석의 연설은 “꽃 한 송이가 홀로 핀다면 봄이 아니다. 백 가지 꽃이 함께 피어야 봄이 정원에 가득하다(一花獨放不是春 百花齊放春滿園)”며 세계 문명의 다양성 존중을 설파한다.
하지만 문명의 공존이라는 거대 담론의 골자는 서구의 개입에서 자유로운 국가 주권의 존중이다. 즉, 서구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 수호 개입을 반대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서구의 보편 가치 즉 인권은 개인에 초점을 둔 것으로, 국가를 넘어서는 개념이다. 실패한 국가, 불량 국가 개념은 물론이고 군중에 발포하는 이란이나 미얀마 정권에 대한 비판과 제재도 여기에서 가능한 것이다.
중국이 이런 보편 가치보다 주권을 우선시하는 이유는 이해하기 쉽다. 즉, 대내적으로는 자기 체제를 옹호하고 대외적으로는 서구의 간섭, 개입을 불편하게 여기는 권위주의 국가에 어필하는 것이 주권을 우선하는 이유인 것이다. 여기에 더해 중국식 성장모델의 우월성, 경제적 성과 및 기술 권위주의의 효율성이 인권에 우선하는 중국식 정통성 또는 일종의 보편 가치를 구성한다. 그렇다면, 중국의 진정한 대외정책 철학은 무엇일까?
액면 가치와 실제 의도의 괴리
중국의 대외정책은 지금까지 소개된 거대 담론과는 별개로, 여러 경로를 통해 실제 의도를 드러내 왔다. 2013년 6월 오바마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언급한 ‘신형대국관계’는 기존 패권 국가인 미국과 신흥 패권 국가인 중국이 상대방의 핵심이익을 존중하면서 강대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추구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즉 미‧중 간 협상을 통하여 기존 국제질서를 변경하고 점증하는 중국의 위상에 어울리는 몫을 인정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가 중국의 속국이었음을 언급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국력에 걸맞게 중국의 소위 전통적인 세력권을 강대국 간 이해관계 조정을 통하여 인정받아야 함을 은근히 강조한 것이다. 이처럼 현실주의적이고 시니컬한, 가치나 이상을 배격하고 힘의 균형만을 철저히 반영한 거래적(transactional) 국제질서는 이미 중국 대중들에게도 체화된 듯하다. 푸틴의 침략 전쟁에 대하여 찬성이 압도적인 중국의 여론이 그 증거이다.
결국, 글로벌 문명의 평화로운 공존이라는 액면가치는 중국몽이라는, 강대국으로서의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추구하는 대외정책의 실제 의도와 모순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내적으로 자국민도 통제하는 강대국이 과연 약소국을 진정으로 존중해 줄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하지만 서구식 인권보다 우선하는 중국식 성장모델과 대외원조가 적지 않은 개도국에 어필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다니엘 매팅니(Daniel Mattingly) 등의 실증연구에 따르면(2023. 1) 중국 미디어가 선전하는, 서구보다 우월한 중국 모델 담론의 설득력이 개도국에서 대단히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서구중심의 ‘규칙기반 질서’(Rules-based Order)는 위기에 봉착한 것일까?
규칙기반 국제질서와 우리
글로벌 문명 이니셔티브가 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직전에 발표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중국이 서방 주도 국제질서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의도하는 국제질서,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가 우선시되는 접근방식이 보편화되는 것이 세계에 바람직할까? 국가 주권을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가 부정된다면 글로벌 질서는 철저히 강대국 간 이해관계에 따르는 균형에 다름이 아닌 것이 되고 특정 국가가 인권을 탄압하더라도 타국이 간섭할 여지는 없게 된다. 서구가 주도하는 국제질서의 근간은 국가보다 개인의 자유가 우선한다는 철학을 근저에 깔고 있다.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가 우선한다면 국제무대에서 국가의 비도덕적 행위가 정당화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예를 들면 전쟁 범죄도 전쟁 당사국의 안보 이익이라는 명목하에 정당화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2차대전 이후 규칙기반 질서가 거둔 성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중국의 도전과 트럼프식 포퓰리즘은 규칙기반 질서에 균열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지난 5월의 G7 히로시마 지도자 코뮤니케는 규칙기반 질서를 재건하고자 하는 의지를 새삼 표명하였다. 반면에, 중국이 그저 ‘주권의 보호’에만 호소할 경우 글로벌 공공재의 제시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한한령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유무역 규범이라는 글로벌 공공재에 대한 중국의 접근방식은 지극히 선택적, 정치적이며 일대일로나 글로벌 발전 이니셔티브와 같은 대외협력 전략도 개도국들이 중국의 담론에 대한 진정한 신뢰보다는 현실적 보상을 기대하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다.
서구도 위선적인 모습을 보인 경우가 없지 않지만, 항행의 자유, 인권, 자유무역 체제와 같은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해온 규칙기반 질서는 우리가 이만큼 발전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해 왔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공공재는 무임승차 문제 때문에 부족하게 공급되게 마련이고 약소국들은 공공재를 창출할 동기와 능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G7에의 참여가 거론되는 수준까지 발전한 우리는 글로벌 공공재의 단순 수혜자에서 벗어나 적극적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능력이 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익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Joseph Nye)는 말한다. “국익은 민주주의와 같은 가치를 포함할 수 있으며 국민들이 그런 가치들을 그들의 정체성으로 중요시할수록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권력의 미래, 2021) 즉, 민주주의, 인권과 같은 가치에의 투자는 무형의 국익이 될 수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융성하는 세계야말로 우리가 융성하고 안보도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최계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본 기고는 중앙일보 2023년 6월 13일자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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