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연인이 기차역에서 서로의 품으로 뛰어든다. 아이들의 기숙 학교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편부모들이다. 여자가 죽은 남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헤어졌다가 다시 결합하며 뜨거움을 나누는 유명한 장면이다. 아마도 로맨스 영화 중 첫 손에 꼽히는 장면일 것이다. 카메라는 끌어안은 아누크 에메와 장 루이 트린티냥을 둘러싸고 360도로 돌아간다.
국제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프랑스 영화 '남과 여'(Un homme et une femme, 1966)의 3부작 모두에 출연했고,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과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 1960), '8과 2분의 1'(1963)에서도 호흡을 맞췄던 프랑스 여배우 아누크 에메가 18일(현지시간) 92세를 일기로 저세상으로 떠났다고 소속사가 AFP 통신에 밝혔다. 딸 마누엘라 파파타키스는 소셜미디어에 고인의 흑백사진을 올리며 "어머니의 별세를 알리게 돼 커다란 슬픔을 느낀다. 오늘 아침 어머니가 파리 자택에서 세상을 떠나실 때 곁에 있었다"고 밝혔다. 고인은 말년의 10년을 몽마르트르 자택에서 보냈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1932년 파리에서 태어난 에메는 오스카 외국어영화상과 각본상 등을 휩쓴 '남과 여'의 여주인공 안느 역으로 황금종려상,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했다.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후보로도 지명됐으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울렸나'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에 밀려 수상하지 못했는데 프랑스어로 연기해 남녀를 통틀어 주연상 후보로 지명된 것도 그가 처음이었다. 이 작품은 프란시스 레이의 영화음악과 함께 1960년대 고뇌하는 사랑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1932년 파리에서 니콜 프랑수아즈 플로렌스 드레이퓌스로 태어났다. 부친은 유대인이었지만 가톨릭 교육을 받고 자랐다. 나치 독일이 8년 뒤 파리에까지 들어오자 가족은 그녀를 시골로 피신시켰다. 이 때 안전하게 지내게 하려고 이름을 바꿨다고 AFP는 전했다.
열네 살이던 1946년 첫 영화 '바다 밑의 집'(La Maison Sur La Mer)에 출연했는데 이 영화의 배역 이름이 아누크였다. 프랑스 시인이며 극작가 자크 프레베르는 성마저 '사랑받는'이란 뜻의 '에메'(Aimée)로 바꾸자고 설득했다.
80년 가까이 스크린을 누비며 주인공으로 출연한 작품만 70편이 된다. 2002년 프랑스를 대표하는 영화 시상식에서 명예 세자르상을 수상했다. 1999년 칸영화제 레드카펫 위에 섰는데 를루슈 감독의 '남과 여' 3부작 완결편에 나란히 80대가 된 장 루이 트린티냥과 다시 호흡을 맞췄다.
연기 자질도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커다란 키에 이국적인 외모로도 눈길을 모았다. 1995년 미국 잡지 엠파이어가 실시한 설문조사 '영화사에 가장 섹시한 스타 100명'에 뽑혔다.
에메는 네 번 결혼했다. 고명딸 마누엘라는 영화감독 니코 파파타키스와의 사이에 태어났다. 그녀는 누구나 기억할 만한 '남과 여'의 스캣 주제가를 니콜 크루아질과 함께 부른 싱어송라이터 겸 배우 피에르 바루와도 결혼했다. 마지막 남편은 1970년 9월부터 1978년까지 영국 런던에서 결혼 생활을 한 배우 앨버트 피니였는데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개인 취향 때문에" 남편에게 결혼반지도 선물하지 않는 검소한 예식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Francis Lai - Un Homme Et Une Femme (영화 남과 여 ost 1966년)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