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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580)- 이순신 백의종군길 이음 도보 대행군 참가기(13)
1. 꽃길 물길 따라 하동읍성에(흥룡마을회관 – 고전면 주성마을 24km)
9월 3일(일), 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아침 6시, 숙소를 나서 악양면 소재지로 향하였다. 전날 저녁을 든 삼미식당이 아침 장소, 생선구이를 비롯한 반찬이 맛깔스럽고 시래기국이 구수하다. 전날 저녁에 이어 배준태 단장의 가족이 식사대접, 본인은 고향에 민폐 끼치지 않겠다고 강조하더니 동행들에게는 분에 넘치는 환대다. 숙소 출발 때는 배 단장의 누님이 배를 한 상자 보내오기도.
오전 7시, 전날 도착한 흥룡마을회관에 이르니 군청 관계자(문화관광실 김성채 학예연구사)가 안내를 맡는다. 출발에 앞서 스스로 만든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 자료’를 한 부씩 나눠주며 설명, 하동에 머문 동안의 난중일기 내용, 하동지역 백의종군로, 정개산성과 하동읍성 등 관련 자료가 충실하게 정리되어 있다. 관계공무원들이 이처럼 열정과 성의를 가지고 자신의 복무에 성실하면 좋으리라.
흥룡마을 출발에 앞서 김성채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다
자료설명으로 평소보다 20분 늦게 출발, 흥룡 마을 지나 선장과 하심을 거쳐 두곡 마을에 이르는 시골길이 아늑하다. 도로변에 붙은 현수막 표현처럼 ‘꽃길, 물길 아름다운 19번국도’(남원 – 남해구간 2차선 국도)가 주행로다. 가는 길목 곳곳에 이순신 백의종군로 이정표 비석이 있고 어느 쉼터에는 하동현으로 가기 위해 쉬었다가 늦게 출발하였다는 기록도 보인다.
오전 9시 경 두곡 마을 초입에 들어서니 배준태 단장의 친구 부부가 일행을 맞는다. 집에 들러 차 한 잔 들고 가라는 권유에도 일정상 그러지 못하니 못내 아쉬운 표정, 봉지에 싼 배즙을 건네며 건투를 빈다.
오전 9시 반, 하동읍내의 초입 지나 하동나루 쉼터에서 잠시 휴식, 눈에 띄는 문구가 낯익어 살피니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한 구절을 베낀 글이다. ‘아침부터 월선이는 나루터에 나가서 서성거렸다. 나룻배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그는 무더기로 쌓아놓은 방천 가 나뭇단 뒤에 숨었다. 숨어서 용이 영팔이와 함께 장터를 향해 가는 것을 보았다.’ 운치 있는 곳, 아내에게 ‘하동나루 쉼터에서 휴식’이라는 문자와 함께 강변 풍경을 전송하였다. 아내의 회답, ‘장하다. 내 남편, 파이팅×100’(출발 전 갑작스런 늑골 부상과 도중의 기관지염 등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를 감안한 듯)
차제에 응원 메시지 몇 개를 소개한다. ‘어디서 그런 열정이 솟구치나요? 끝까지 파이팅하세요.’ ‘수고하십니다. 다행히 날씨가 시원해져서 걸으시기에 좀 더 수월하시리라 생각됩니다.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무더운 날씨에도 도전하시는 체력과 용기에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보냅니다. 끝까지 완주하시길 빕니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어디선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 힘내세요.’
오전 10시, 배준태 단장의 모교인 하동초등학교에 이르자 누이동생(배준순, 배유순)과 제수(이차엽), 그들의 친구(한광만, 모재오) 등 여러 명이 손을 흔들며 반긴다. 개교 100년이 훌쩍 넘은 교문 앞에서 기념촬영, 군청까지 같이 걷다가 아쉬운 작별을 한다. 흥룡 마을에서부터 함께 걸은 동생 배덕승 씨도 이곳까지.
설립 100년이 넘은 하동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환영나온 배준태 단장 가족과 함께
군청 지나서 교육지원청, 한적한 도로 따라 고전면에 있는 하동읍성 방향으로 한 시간여 걸어 큰 내를 건너니 다시 19번 국도에 접어든다. 오전 11시 반, 신월버스정류소 옆 공터에서 휴식을 취하며 산길 걷기에 대비하여 과일 등으로 기력을 보충하고 이순신 백의종군로 이정표 따라 산길에 들어섰다.
앞서서 안내하던 김성채 학예연구사가 고개를 갸웃, 산길이 예상과 달라 당황하는 기색이다. 집행부에서도 산길의 정확한 행로를 알지 못하는 터, 잘못 들어섰다 낭패를 당할까 선뜻 결정을 못 내린다. 선상규 회장의 결단, 배준태 단장과 강호갑∙고양문 대원이 산길 찾아 오르도록 하고 나머지 일행은 큰 길로 철수하여 다음 이정표가 있는 갈록치로 향하였다.
갈록치로 가는 도로도 만만치 않은 언덕길, 한 시간여 힘들게 걸어 갈록치에 이르러 산길 오른 일행과 통화하니 길이 막혀 더 이상 못 가고 되돌아오는 중이란다. 산길 내려와 승합차로 하동읍성 방향의 소로에서 합류하였다. 소로를 한참 걸어 아정마을을 지나니 하동읍성으로 가는 큰 길이 나온다. 고전천 지나 고갯길 올라서 홍평 마을을 통과하여 목적지인 고전면 고하리 주성마을회관에 도착하였다. 예정시각보다 2시간 늦은 셈, 24km를 걸었다.
주성마을 회관 앞에 하동읍성이라 새긴 큰 비석이 있고 그 옆에 읍성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하동읍성 국가사적 제453호(2004. 5. 31 지정)
이곳은 통일신라시대 이전부터 조선조 1700년대까지 오랫동안 고을의 읍기(邑基)가 자리했던 유서 깊은 터다.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6년(757년)에 하동군으로 명명된 하동은 군현제 실시와 함께 이곳에 관아를 두고 태수∙감무∙현감∙군수 등 명칭의 수령이 고을을 다스렸는데, 고려말엽부터 자주 출몰하는 왜구의 침범에 대비, 조선조 태종 17년(1417년)에 축성한 것으로 전한다.
특히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때 이틀간 머무르며 고문으로 상한 몸을 추스르는 등 역사적 인물의 발자취가 깃든 곳이다 .왜란 때 진주성을 함락한 왜군들의 침범으로 성은 크게 훼손되고, 1703년 읍기가 오늘의 하동으로 옮겨진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쳐 보존가치를 잃어 더욱 피폐해지고 말았는데, 최근 그 역사성을 인정받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복원을 시작하게 되었다.’ 비석이 세워진 도로에서 200미터 쯤 위쪽에 복원공사를 위한 터 닦기가 한창 진행 중.
읍성 터를 돌아보고 나니 오후 3시가 넘었다. 근처의 고전베다리장터문화관의 식당에서 늦은 점심(메뉴는 두루치기)을 들고 2층의 문학관을 살피니 빛의 영광 시인 정공채, 가요산맥 작사가 정두수 형제 등 하동출신의 대중문화예술인들의 프로필이 적혀 있다.
하동읍의 숙소(칠각장)에 여장을 푸니 오후 4시 반, 선상규 회장 등 집행부는 내일 코스 답사 차 다시 승합차에 오른다. 하동군청 김성채 학예연구사도 동행.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한 백의종군길의 답사를 마치고 저녁 7시 경에 돌아온 일행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 걷기도 힘든데 백의종군길 바른 코스를 개척하느라 노고가 많다.
숙소 옆의 음식점(이화식당)에서 장어탕으로 저녁을 들고 계속 힘찬 행군을 다짐하며 파이팅, 24일 일정 중 20일을 마친 일행 모두 수고하셨다. 남은 일정 잘 마무리하자.
* 하동의 특산은 재첩, 꿀배, 대봉감, 녹차 등인데 걷는 길 곳곳에 밤과 대추나무 열매가 튼실하다. 더러 발밑에 떨어진 생밤을 주워 먹었는데 잦은 기침이 가라앉는 느낌이다. 호암(虎巖)마을을 범바구라 부르는 사투리가 정겹고 하동읍성은 주성마을회관 앞에 있는데 주성마을의 내력은 배다리에서 비롯되어 배가 닿는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주성마을이 형성된 연대는 대가야 때(250년 경)로 추정.
2. 험한 산길, 성대한 만찬(하동읍성 - 옥정 청수 23km)
9월 4일(월), 종일 높은 구름 끼어 걷기 좋은 날씨다. 아침 6시, 숙소 아래의 이화식당에서 조반(전어구이, 제첩국 등 토속적인 식단)을 들고 6시 20분에 주성마을회관으로 출발하였다.
주성마을에 도착하니 6시 40분, 출발시간에 여유가 있어 회관 주변의 여러 자료들을 살피며 마을의 역사, 성터의 흔적 등을 돌아보는 동안 전날 안내를 맡은 김성채 학예연구사가 도착한다. 그의 안내로 주성마을을 출발하여 산길로 접어든다. 곧이어 거친 풀숲 길이 나타나고 이를 벗어나니 소로길 지나 다시 높은 산길로 들어선다. 여학생들도 다녀간 흔적이 있고 손길 닿지 않은 버섯들도 보이는 거친 산길이 꽤 길게 이어진다. 한 시간 반가량 걸어 포장도로로 나오니 구릉 지역으로 토질이 좋다는 양보면에 이른다. 동네길 지나 다시 언덕길을 여럿 거쳐 씨름판고개라는 곳에 이른다. 고개에서 휴식하며 전날 답사 때 절간에서 얻어왔다는 떡과 과일, 김성채 씨가 가져온 야관문 음료 등으로 기력을 보충한다.
출발에 앞서 고전면 주성마을회관 앞의 하동읍성 비석을 배경으로
잠시 후 군도인 양보로에 접어드니 동촌마을이 나온다. 그곳에 동네의 위기 때 운다는 명암대(鳴岩臺)라는 큰 바위가 있고 동네의 정자 이름도 명암정이다. 잠시 후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경사가 가파르고 꽤 높은 산길이 오르기는 숨차고 내리막길은 잡초 우거진 험로, 몇 차례 산길을 오르내리느라 체력이 부친다. 가까스로 산길 벗어나니 밤나무 무성한 곳에서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밤을 줍고 있다. 그곳을 지나는 중 발 밑으로 밤송이가 툭 떨어진다. 잘 익은 밤 세 톨, 험한 길 걷느라 수고하였다는 선물로 여기고 이를 주워 입에 물었다.
동네로 들어서니 배안골, 그 앞으로 철길 자니고 폐선 된 철로에 레일 바이크를 운행한다는 김성채 씨의 설명, 가까운 북천면에서는 유명한 코스모스 전시가 열리는 등 관광개발지역이란다. 철길 건너 북천면 오성마을에 이르니 12시가 지났다. 또 산길 넘어야 한다니 점심부터 먹기로, 승합차에 올라 10분 거리의 식당(직전꽃천지마을)에서 뷔페 음식으로 점심을 들고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오후 1시 반, 오성마을로 돌아와 동네를 지나 다시 산길에 오른다. 이 지역 사정을 잘 아는 박중권 씨가 합류하여 길 안내, 한 시간 반가량 걸어 산길의 중흥마을 거쳐 화정마을로 내려오니 오후 3시가 지났다. 원래는 이곳까지가 오늘 코스, 내일 걷는 길도 만만치 않다는 집행부의 판단에 따라 5km쯤 더 걷기로 한다.
화정마을을 지나서부터는 꽤 넓은 지방도, 옥단로 따라 완만한 오르막길을 한참 걸어 고개에 이르니 북천면 지나 옥정면에 들어선다. 규모가 큰 하동요양원을 지나서 옥산서원 방향으로 들어서 600미터 쯤 가니 아담한 서원이 나타나고 그 옆의 정자가 청수역과 강정 쉼터, 정자의 설명문에는 이순신 장군이 1597년 6월 1일 합천의 도원수부로 권율 원수를 만나러 가던 길에 몸이 불편한 중 이곳 냇가의 정자에서 휴식하였다는 기록이 적혀 있다.
이곳에서 걷기를 종료, 도착시간은 오후 4시 반 23km를 걸었다. 여러 번 산길을 오르내리느라 모두 피곤한 터, 집행부가 내일 코스를 승합차로 답사하는 동안 옥산서원을 돌아본 후 정자에 올라 30여분 휴식을 취하였다.
답사를 끝낸 일행과 합류하여 점심을 든 북천면 직전꽃천지마을 식당으로 향하였다. 숙소는 그 근처의 팬션, 저녁식사장소는 점심 들었던 꽃천지마을이다. 저녁식사에 진주의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김남경 총장과 여러 교수, 지역의 사업가와 보건소장 등 유지들이 합류하여 분위기가 고조된다. 진주가 고향인 강호갑 대원이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초빙 교수를 역임한 터에 그 동생인 강호철 교수가 그 대학의 중진교수로 재직하는 등 특별한 인연이다.
지역유지들과 함께한 성대한 만찬
지역유지가 직접 담근 매실주를 여러 병 가져오고 수육을 곁들인 한정식이 푸짐하여 성대한 만찬, 지역 거주자들이 식사는 물론 귀한 선물도 안겨주어 감사하다. 식사 후 팬션의 주인이기도 한 문여황 교수가 광대한 수목원으로 일행을 초대하여 전통차를 대접한다. 지역의 명문이자 독립지사의 후손인 문 교수의 어머니(박춘자 여사. 90세)는 토지의 작가 박경리와 진주여고 동창으로 시문을 발표하기도 한 문사이다. 악양의 최참판댁 토지문학관 개관 때 박경리 여사와 자리를 함께 하기도 하였다는 그는 아직도 정정한 편.
숙소에 돌아오니 저녁 8시가 넘었다. 보름 지난 달빛이 교교하고 지역의 명산인 옥산과 주변의 산 그림자가 운치를 더하는데 지친 몸 씻고 잠자리에 들기 바쁘다. 오늘로 21일 째, 주변의 성원에 힘을 얻어 사흘 남은 여정 더욱 파이팅!
첫댓글 박경리 선생님의 친구분을 뵈셨다하니 정말 부럽습니다.
교수님 가시는 곳마다 인맥도 넓고 깊어지시는듯..^^;;
사흘이 지나면 대장정도 끝자락에 이른다하니 시원섭섭하시겠습니다만...끝까지 화이팅하시길 바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