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날씨가 아깝다.
일어나 창문을 여니 길이 젖어있고 바보가 챙겨주는 도시락이 든 배낭을 매고 나오니
가는 빗방울이 이어진다.
차를 끌고 원효사로 갈까 하다가 안 가본 이서 영평 도원쪽으로 간다.
영평마을 구비를 돌아 빗속에 도원탐방안내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8시 20분을 지난다.
옆에 까만 승용차 한대도 들어온다.
겉옷을 벗고 비옷을 챙겨 입는다. 승용차에서 내린 젊은이는 어느새 산속으로 들어간다.
통제소에서 규봉암 2km를 보고 오른다.
작은 암반 개울 앞에 국립공원 문이 서 있다.
지그재그 계속 오르막이다. 철도 침목같은 나무 계단이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호흡기를 흡입않은 목은 금방 가래가 끓고 호흡은 거칠어진다.
지난 주 부산의 바닷길을 걸은 것이 약했는지 종아리에도 힘이 빠진 듯하다.
그래도 쉬지 않고 올라 9시가 조금 지나 영평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을 만난다.
시무지기 폭포를 거치며 물없는 암벽을 오르고도 싶었는데 비에 젖은 바위가 무서워 그 길을 포기했다.
앞서가던 젊은이는 스마트폰을 계속 귀에 대더니 어느 순간 저 뒤에서 보이지 않는다.
한 시간이 다 되어서야 규봉암에 닿는다.
저쪽 종무소 마루에 승복을 입은 여성이 모자를 쓰고 날 불러 저쪽에 앉으라 한다.
스님은 안 보이고 안쪽에서 여성이 나오고, 관음전 쪽에서는 관세음보살이 계속 이어진다.
옷을 벗고 따뜻한 헛개차를 마시는데 고양이가 컵에 입을 댄다.
처마끝 낙숫물 안쪽으로 걸어 건물 뒤에서 광석대 바위를 찍어본다.
관음전을 돌아나와 다시 비옷을 걸쳐 입는데 전화하던 여자가 바삐와 배낭을 덮어준다.
마당에서 두번 합장하며 인사를 드리고 나온다.
규봉암을 내려와 다시 석불암쪽으로 올라간다.
보조석굴 지붕 뒷쪽 어디에 소주병을 숨겨두었을지 몰라 올라가려다가 그냥 둔다.
보조석굴 안은 돌을 치웠고 아궁이 위 널찍한 돌에는 작은 부처상이 보이고 그 앞에 천원짜리 지폐
몇 장과 동전이 보인다.
안양산과 낙타봉 봉우리 사이로 화순쪽 벌판은 구름사이로 형상을 보이다가 닫힌다.
별산 풍력발전기 프로펠라 왼쪽으로 이서 벌엔 하얀 구름이 가득이다.
석불암에 들러 문을 열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석불을 보고 나온다. 사나이도 들어온다.
장불재에 이르자 몇 사람이 보인다.
입석대 쪽에서 우산을 받든 사람이 내려온다. 서석대 쪽은 하얗다.
안쪽 대피소를 지나 앉지 않고 바로 올라간다. 10시 반을 지난다.
비는 더 굵어지는 것 같다. 시간 여유가 있어 입석대 전망대에 올라가 혼자 논다.
서석대로 오르는 길은 하얀 구름 속이다. 우산을 들거나 하얀 비닐 비옷을 입은 산꾼들이 내려온다.
더러 무전기를 배낭끈에 맨 걸 보니 산악회에서 온 모양이다.
경상도 말씨를 쓴다.
올라가는 이를 뒤에서 보며 천천히 오른다.
서석대엔 한 사나이가 셀카봉으로 찍고 있다. 난 멀찍이서 정상석을 배경삼아
혼자 찍어본다. 한 부부가 올라 와 스마트폰을 주며 찍어 달랜다.
비에 젖은 손이 시리다. 사진을 찍어주고 돌아 내려온다.
장불재에 오니 11시 반이 지난다.
간식은 헛개물만 마셨으니 배가 고파 오려 한다.
버너를 가져왔으면 따뜻하게 불을 피워 라면이라도 끓이고 싶은데 없다.
물방울 맺힌 찔레열매를 보고는 장불재 쉼터에서 도원마을 3.4km를 보고 내려간다.
백마능선 사이에 낀 골짜기는 완만하다. 맑은 겨울나무 숲을 지나다가 구름 속으로 들어간다.
구름 속 겨울 숲은 운치가 있다.
한시간이 안 걸려 내려오니 도원 마을 뒷쪽은 산골짜기 사이에 구름이 덮여 멋진
산수화처럼 보인다. 김삿갓의 시를 써 놓은 안내판을 지나 주차장에 오니 12시 반이다.
배가 고프다. 외출하겠다던 바보에게 전화하니 비가 와 집에 있다며 얼른 오란다.
온 김에 야사리의 은행나무와 느티를 보자고 이서면소재지로 내려간다.
나무를 보고 이서면센터 앞의 빵집이 보여 소보로빵과 단팥빵 등을 두개씩 사
차 안에서 먹으며 광주로 운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