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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7 바른 노력 4가지와 4성제의 완성. 연습문제 66 (위뿔라냐니 식카와띠님)
230817 연습문제 66-바른 노력 4가지와 4성제의 완성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연습 문제 66번
66-4번 : 본질은 사띠 하나인데 왜 사띠빳타나 네 가지라고 합니까?
본질은 사띠 하나이지만 사띠의 대상이 네 가지이죠. 그래서 사띠빳타나 네 가지라고 합니다.
팔정도가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 열반을 보는 길이고, 사성제를 깨닫는 길이면, 이 팔정도의 삼마상깝빠(바른 겨냥)가 네 가지 대상(신,수,심,법)이 되어야 하는 거죠. 그래야 팔정도를 통해서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죠? 사띠빳타나 네 가지 대상, 삼마상깝빠(바른 겨냥)가 네 가지 대상에 대한 겨냥이 되어야 하는 거죠.
삼마상깝빠가 정사유가 아니라 바른 겨냥이죠. 바른 사유가 아니라 삼마상깝빠는 정사유가 아닌 바른 겨냥이어야 되죠. 바른 겨냥이 네 가지 대상을 겨누어야 합니다. ‘낚시하지 말아야지, 사음 하지 말아야지,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약물을 마시지 말아야지, 수행처에 가야지, 법문을 들어야지.’ 이런 게 아니라, 네 가지 겨냥은 이 네 가지(신,수,심,법)를 향해 마음을 계속 보내야 합니다.
내 몸과 내 느낌과 내 생각으로 마음이 계속 보내야 하는 거죠. 밖으로 가는 게 아니라, 딴 데로 가는 게 아니라. 그래야 팔정도가 윤회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되는 거죠.
66-5번 : 무엇을 삼마빠다나라고 합니까?
삼마빠다나[四正勤]는 네 가지 노력입니다. ‘삼마’는 ‘바른’이고 ‘빠다나’는 ‘노력’입니다. 그냥 대충 하는 노력이 아니라 ‘정신적인 치열한 노력’을 말합니다. 노력이라는 말이 여러 가지가 있죠. 우리나라 말도 노력이 있고, 근면한 노력이 있고, 성실한 노력이 있고, 치열한 노력이 있고, 혹독한 노력이 있고, 정진 등 이렇게 여러 가지가 있는데, 빠알리어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위리야도 있고 빠다나도 있고 와야마도 있고 빠요가도 있고, 삼마 와야마, 팔정도의 노력을 삼마 위리야라고 하지 않고 삼마 와야마라고 합니다. 노력인데 다른 단어를 쓰는 거죠. 위리야는 폭넓게 여러 군데 다 쓰입니다.
그중에서 빠다나는 수행할 때만 쓰는 노력을 주로 말합니다. 수행할 때 쓰는 노력이 다른 데 쓰는 노력보다 더 힘을 많이 써야 한다는 거죠. 쉬면서 하는 수행은 수행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차별하기 위해 단어도 다른 단어를 쓰겠죠.
바른 노력은 37보디빡키야(조도품)에 들어가니까 도와 과를 얻는 사람, 깨달음을 얻는 사람, 과를 얻는 데 필요한 노력인 거죠. 팔정도 안에 들어 있는 삼마 와야마(바른 노력)이 삼마 빠다나입니다. 일어난 불선업은 제거하고, 일어나지 않은 불선업은 누르고, 일어나지 않은 선업을 일으키고, 일어난 선업은 더 많이 더 크게 만드는 것. 팔정도를 닦으면 닦을수록 이 네 가지가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4성제가 동시에 자라죠. 동시에 일어납니다. 사성제 4가지가 동시에 자랍니다. (사성제 도표는 12연기 도표. 1~2는 집성제, 3~7은 고성제, 8~10은 집성제, 11~12는 고성제)-첨부 아래
팔정도를 닦으면 닦을수록 고성제가 분명해지죠. 고성제가 분명해집니다. 팔정도를 통해서 지혜가 생기면 생길수록. 팔정도를 통해서 삼마 사띠와 삼마 와야마(위리야)로 수행자에게 지혜가 생기면 생길수록 사성제 중의 고성제가 두드러집니다. 그렇게 고성제가 분명해질수록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더 많이 생깁니다. 고통스럽다는 걸 아니까. 그전에는 모르고 살았는데. 그리고 팔정도에서 사띠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하면 집성제(욕심)을 자르는 것입니다. 욕심을 자르는 겁니다. 욕심을 제거하는 거죠. 그게 사띠죠. 사띠는 욕심을 제거하는 겁니다.
욕심이 뭡니까? 욕심이 뭐죠? 욕심은 의도입니다. 선업 불선을 짓고 싶은 의도. 욕심이 여기 있는 의도 그리고 여기 의도 여기 있는 의도 이게 욕심이죠. (12연기 도표 중의 2. 상카라. 8. 탐욕(딴하))
이 두자리가 집성제입니다. 이 집성제를 자르는 것. 어디에서? 웨다나, 여기에서 자릅니다. (12연기 도표 중의 7. 웨다나와 8. 딴하 사이) 이게 사띠죠. 사띠는 여기에서 이루어집니다. 웨다나에서 딴하로 넘어가기 전에(의도로 넘어가기 전에), 즉 집성제(탐욕)로 넘어가기 전에 자르는 게 사띠입니다. 사띠는 어디서 합니까? 웨다나(느낌)를 알고 웨다나에서 사띠합니다. 좋은 느낌이거나 안 좋은 느낌에서 사띠한다는 것이 또는 무슨 뜻인가 하면 ‘생각’을 사띠하는 겁니다.
여기 위빳사나 대상 네 가지, 색깔 세 가지 있지 않습니까?(표 참조). 루빠 찟따 웨다나 담마 네 가지 대상(색깔 3가지). 네 가지 중에서 이 쩨따시까 네 가지 안에 웨다나와 산냐가 들어가죠. 오온에서 산냐와 웨다나가 여기 있는 거죠. 왜냐하면 웨다나와 산냐는 같이 다닙니다. 대부분의 욕계 중생들에게는 이 두 개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색계 선정 무색계 선정을 얻을 정도의 선정이 있는 존재가 아니면 대부분 느낌과 산냐(생각)는 같이 붙어 있습니다. 우리가 좋은 생각하면 기분 좋죠. 그리고 나쁜 생각하면 기분도 나쁘지 않습니까? 안 좋은 생각하면 기분 나쁘고, 좋은 생각하면 기분 좋아지고 이런 거죠. 그러니까 생각과 느낌은 같이 다닙니다. 산냐와 웨다나는 같이 다니는 거죠. 생각을 사띠한다는 것은 여기 웨다나를 사띠한다는 겁니다. 같은 말입니다. 웨다나를 ‘통증, 통증, 좋아함, 좋아함’이라고 해도 되고 ‘생각, 생각’이라고 해도 됩니다. 이것을 사띠한다는 것은 집성제(탐욕)을 제거한다는 뜻이죠. 여기를(7과 8사이) 사띠하면 점점 부풀어 오르는 커지는 탐욕이 싹둑 잘리는 거죠.
사성제(도성제, 집성제, 도성제, 멸성제)에서 팔정도(도성제)가 자란다는 뜻은 삼마 사띠, 이 웨다나에서 ‘삼마사띠’가 잘 된다는 거죠. 삼마사띠 하나가 잘 되면 팔정도 전체가 자라는 거죠. 팔정도 전체가 자란다는 것은 웨다나에서 집성제(탐욕)로 넘어가지 않는 것, 즉 탐욕이 계속해서 제거되고 있다는 거죠. 제거하고 있고, 제거하면 할수록 고성제가 더 분명해집니다. 그전에는 고성제인 줄 모르고 살았는데, 예전에는 고통인지 모르고 살았는데, 탐욕을 제거하면 할수록, 집착을 자르면 자를수록 고성제임이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호수 밑에 있는 여러 가지 누적된 것들 무기와 유리병 쓰레기 같은 것들이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데 호수의 물이 마르면 숨어 있던 것들이 다 드러나듯이, 우리는 집착이라는 욕심에 묻혀서 사는데 느낌에서 집착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사띠로 계속 제거하면, 그 밑에 묻혀 있던 쓰레기들이 더 많이 보이는 거죠. 고성제가 점점 더 많이 보이게 됩니다. 고성제를 안다는 것은 지혜가 생긴다는 거죠. ‘나라는 것이 안 좋은 것이구나. 이렇게 ‘나’라는 것이 믿을 게 못 되는구나.‘ ‘나’를 구성하는 조건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 이게 팔정도를 늘리면 늘릴수록, 팔정도에서 생각과 느낌에서 사띠하는 것, 위빳사나의 대상인, 생각과 느낌을, (이 몸도 들어가지만, 오른발, 왼발, 부풂, 꺼짐) 사띠하면 할수록, 탐욕(집성제)이 점점 제거되고, 탐욕이 제거되면 제거될수록, 고성제가 더 분명해지는 거죠. 고성제가 더 분명해진다는 것은 수행자에게 지혜가 생기는 것이고, 지혜가 생기면 생길수록 더 빨리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겠죠. ‘나와 나를 구성하는 조건을 믿고 있다가는 악순환이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지혜가 생기는 게 동시에 일어납니다. 사성제는 동시에 완성됩니다. 그래서 집성제가 완전히 제거되는 순간 열반을 보고, 고성제도 완전히 알게 되고, 집성제는 제거되고, 도성제도 완성되어서 일석사조(一石四鳥)가 되는 거죠. 사악도의 문은 닫히고 내가 처음을 알 수 없는 긴 윤회 동안에 어리석음으로 지은 모든 불선업의 결과들이 나한테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모든 죄에서 면책되는 거죠. 모든 벌에서 면책됩니다. 안 좋은 곳에 절대로 태어나지 않게 되죠.
이 결과를 위한 노력이 삼마 빠다나입니다. 사성제를 위한 노력, 사성제를 깨닫기 위한 노력, 열반을 보는 노력, 4가지.
66-6번. 삼마 빠다나 네 가지를 쓰고 본질을 쓰세요.
삼마 빠다나 네 가지는
1. 일어난 불선업은 제거하고,
2. 일어나지 않은 불선업은 일어나지 않게 하고,
3. 일어나지 않은 선업은 일으키고,
4. 일어난 선업은 더 크게 하는 것.
여기서 웨다나를 사띠한다는 것은, 집성제로 넘어갈 수 있는 순간(7~8)을 자르는 거니까, 일어나려는 불선업을 제거하는 것이 되고, 생각하는 동안 생각이라고 사띠하면 일어난 불선업을 제거해버린 것이 되고, 잠재된 불선업은 명칭을 하는 순간은 발현하지 않게 되죠.
내가 사띠를 하고 있는 그 순간이 선업인 거죠. 내가 생각이라고 명칭하고, ‘오른발 왼발’이라고 명칭하는 그 순간이 선업인 거죠. 이 4가지 선업을 내가 일으키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사띠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네 가지 노력이 더 많아지는 거죠. 사띠가 촘촘할수록, 더 붙어서 할수록 더 많아지는 거죠. 네 가지 노력이 더 많아지는 겁니다. 사띠를 빨리하면 빨리할수록 가속도가 붙어서 힘이 세지죠. 힘도 세지고 지혜도 생기고, 하면 할수록 삼마 딧티(위빳사나 삼마 딧티)가 생기게 되는 거죠. 사띠를 한다는 게 네 가지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거죠. ‘사띠’한다는 것은 삼마 와야마 4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져서, 사성제가 동시에 자라는 거죠.
팔정도를 닦으면 사성제가 동시에 같이 자라서 올라가는 거죠. 4성제가 따로따로 되지 않습니다. 사성제는 8정도의 완성이라는 게 신기하지 않습니까? 부처님이 이 진리를 여러 가지 말로 설하신 거죠. 참으로 다양한 어휘로, 주제로 설했습니다. 이렇게 사띠빳타나로도 말하고, 삼마 빠다나라고도 말하고, 인드리야라고도 말하고, 봇장가라고도 하고, 팔정도라고도 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근기에 맞게 이해하기 쉽게, 먹기 좋게 여러 가지 메뉴로 똑같은 핵심을 것을 보여주신 거죠. 이 중에서 무엇이든지 한 가지만 하면 사성제가 완성됩니다.
66-7번 : 본질은 하나인데 왜 삼마 빠다나 네 가지라고 합니까?
본질은 위리야 하나죠. 여기의 이 초록색이 위리야입니다.(37 보디빡키야 담마 표)
팔정도의 바른 정진(삼마와야마) 하나만 하면 여러분이 네 가지 이익을 동시에 얻는 겁니다. 1석4조 네 가지 위리야를 동시에 얻는 것이고 또 사성제를 동시에 채우는 겁니다.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근심에서 벗어나게 되고, 늙고, 병들고, 죽음에서도 벗어나게 되고, 내가 지었던 모든 죄의 면죄부를 받게 되고, 안 늙어도 되고, 아프지 않아도 되고, 죽지 않아도 되고, 좋은 건 다 되는데 하지 못하는 이유는 집착이 강해서죠. 집착이 강한 이유는 어리석어서죠. 여기(12연기 표의 1.2) 있지 않습니까? 여기 집착이 강한 이유는 어리석음(무명)이 두터워서 무명의 힘으로 집착까지 떠밀려 가는 거죠. 이게 강해서 안 되는 거죠. 바른새김이 있으면 언젠가는 되겠죠.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범부의 특징이죠. 제가 번역한 책 ‘행복을 찾아서’에 나옵니다. 범부들은 ‘오늘 왕위에 올라서 왕의 부귀영화를 누린 대가로 내일 죽는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물으면, 오늘 왕의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대답한답니다. 내일 죽더라도 오욕락의 유혹이 그렇게 강한 거죠. 내일 죽는 건 겁나지 않습니다. 오늘 일단 오욕락을 누리고 싶은 거죠. 내생이나 십년 뒤, 내일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게 중요한 거죠.
모든 존재가 팔정도를 닦는다고 해서 모두 윤회에서 벗어나는 건 아닙니다. 타고난 지혜도 있어야 하고, 흔히 말하는 바라밀도 있어야 하고, 하지만 지금 이번 생에 노력하고 실천한 기초 위에 다음 생에 이어서 하겠죠. 이번 생애 한 만큼부터 시작해서 다음 생에 이어서 합니다. 이것이 쌓이는 바라밀입니다.
66-8번 문제번호 : 일어난 불선업이란 어떤 담마들입니까?
삼마 빠다나 여기에서의 불선업은 이번 생애에 일어난 불선업을 말합니다. 일어난 불선업은 전생이든 이번 생이든 실제로 일어난 불선업, 살생이든 훔치는 것이든 일어난 것을 일어난 불선업이라고 합니다. 불선업을 전혀 짓지 않고 살지는 않죠. 지었으면 그게 더 커지지 않게 빨리 더 번지지 않게, 점점 더 타들어거고 넘쳐나지 않게 빨리 꺼야 합니다.
1. 일어난 불선업은 과거생과 이번 생에 지은 불선업들을 다 합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번 생에서 일어난 불선업만 제거할 수 있습니다. 과거생에 일어난 불선업의 결과로 오는 것들이 있겠죠. 우리가 살면서 과거에 지었던 불선업의 결과로 이번 생에 내가 피할 수 없이 받아야 되는 악조건들이 있죠. 이런 악조건들에 의해 일어나는 불선한 마음을 빨리 사띠하고, 이번 생에 내가 새로 짓고 있는 불선한 마음은 빨리 멈추면 됩니다. 잘못했다고 알면 즉시 멈추면 됩니다.
[첨부1]
[첨부2]
회향하겠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공덕이 우리를 번뇌의 소멸로 이끌기를.
이러한 우리의 공덕을 모든 존재들에게 회향합니다.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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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용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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