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태왕릉비나 모두루 묘지명을 보면 추모성왕이 나온 것은 분명 북부여입니다.
→ 추모성왕이 있던 곳은 북부여.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동명성왕조에는 (노멀)부여의 왕은 해부루이고 해부루가 동쪽 바다 가섭원으로 옮긴 부여가 동부여이고(해부루의 부여가 있던 곳에는 해모수가 그저 도읍을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동부여에서 대소왕자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껴 탈출한 이가 추모성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 추모성왕이 있던 곳은 동부여.
같은 책인 삼국사기 백제 본기 온조왕조에는 추모성왕이 졸본 부여로 오기 전에 있던 곳이 북부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 추모성왕이 있던 곳은 북부여.
삼국유사 북부여편에서는 북부여를 세운 이가 해모수이며 동부여편에서는 해모수의 태자가 해부루이고 해부루왕 대에 동쯕으로 가서 세운 부여가 동부여입니다. 그리고 동부여에서 탈출한 이는 추모성왕입니다.
→ 추모성왕이 있던 곳은 동부여.
고구려 금석문 두 개와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는 추모성왕의 출자를 북부여라 하고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와 삼국유사 북부여, 동부여편에서는 추모성왕의 출자를 동부여라 했습니다.
기록들이 하나 같이 다르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해석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렇게 되면 당대인이 기록한 금석문을 따르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 되겠지만 서도 마냥 따를 수 없는 이유는 금와왕과 대소왕자들과 추모성왕의 관계가 나름대로 상세해서 입니다.
윤내현 교수님의 한국 열국사연구를 읽어보았지만, 금와왕과 대소왕들과 추모성왕의 관계를 너무 간과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에 관해 좋은 책이라든가 논문 추천 그리고 회원님들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첫댓글 전 북부여라고 생각합니다. 고구려인이 쓴 기록엔 북부여라고 되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완전히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일단은 『삼국유사』에 있는 북부여 동부여는 각각 신화이지요. 그렇다 보니 해모수 해부루 금와 주몽 대소 이렇게 관계가 이리저리 복잡해짐니다. 근대 보니까 북부여의 시조는 해모수 혹은 동명왕으로 동부여의 시조는 해부루로 보는게 옳지 않을까하네요. 그리고 북부여와 동부여의 논란은 아직도 많은 상태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