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양이, 플루토
김상미
한때 나는 네게 빠졌었지
외눈박이 검은 고양이, 플루토
처음 본 아저씨네 집에서 너를 보았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새파랗게 얼어붙었었지
태어나 처음 본 독이 든 공포
나는 밤새 내가 가진 모든 은유를 총동원해
포 아저씨네 집에서 너를 훔쳐왔었지
그리곤 이 세상 모든 어둠 앞에 웅크려 앉아
몰래몰래 너를 녹여먹었었지
수많은 고통, 끝없는 구역질에도
나는 네 명성, 네 복수의 취향대로
억울하게 도려진 네 한쪽 눈알로 목걸이를 하고
피 묻은 네 검은 털로 만든 장갑을 끼고
네 집요한 분노로 짠 망토를 걸치고
네가 퍼뜨린 공포라는 질병
영혼의 소리처럼 맑고 부드러운 오르골에 담아
이 세상 모든 병든 꽃들에게 들려주고 또 들려주었었지
가짜 행복이 진짜 행복으로 달아오를 때까지
플루토, 플루토, 검은 고양이, 플루토
그때의 우리 모습은
수백 수천 권의 아름다운 책들에서 쏟아지는 별빛보다 더 아름다웠었지
이제 막 태어난 아이들의 마음처럼 즐겁고 행복했었지
그러나 해가 가고 달이 가고
목숨이 아홉 개인 너는 아주 커다란 어른 고양이가 되어
다시 포 아저씨네 집, 그 지하실 벽이 그리워
혹독하게 뜨거웠던 내 어린 날의 백일몽,
그 그리운 책을 내 책장에서 가져가 버렸었지
떠나는 네 뒷모습 위로 솟아오르던 거대한 비구름
아직도 나는 그 빗속에서 너를 기다리네
소름끼치게 아름답던 한 송이 꽃
끝없는 네 전율을!
—《서정시학》 200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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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 / 1957년 부산 출생. 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모자는 인간을 만든다』『검은, 소나기떼』『잡히지 않는 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