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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5: 14. 소유를 맡김 - 마 25: 17. 두 달란트 받은 자
2. 달란트의 비유 ( 25: 14-30. 눅 19: 11-27 )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마 25: 14. 소유를 맡김 -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
타국에 가는 주인은 승천하실 주님 자신을 가리켰고, 종들은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과 성도들을 가리켰다.
주인은 그 종들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그 소유를 맡기셨다.
1] 또(*, 가르)
이 등위 접속사는 새롭게 시작되는 달란트 비유가 열 처녀 비유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암시한다.
종말적 심판에 관한 열 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가 내용이 같은 맥이라는 점을 예측할 수 있다.
2]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이 구절은 막 13: 34의 문장과 같은 형식이다. 막 13: 34은 마가복음의 종말론에 대한 결론으로 달란트 비유의 도입부가 되었다.
* 막 13: 34-35 – 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막 13: 35는 마 25: 13, 열 처녀 비유를 통해 암시한 종말 교훈의 결론이 되는 '깨어 있으라'는 구절이 같은 형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어떤 사람'은 같은 평행 비유인 눅 19: 12-27을 보면 왕위를 받기 위해 다른 나라로 떠나는 귀인(귀인)임을 알 수 있다.
* 눅 19: 12-27 – 은화 열 므나의 비유 - 12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4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15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16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8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26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27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이는 이 땅에 성육신(Incarmation)하셨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할 일을 맡기시고 승천하셨다가 다시 이 땅에 심판의 주로 오실 것을 상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타국에 갈 때'(*, 아포데몬)란 문자적으로 자기가 살던 곳에서 '막 떠나려 할 때' 또는 '해외로 가려 할 시점에'라는 뜻이 있다.
눅 19: 12은 이와 유사하게 '먼 나라로 갈 때에'로 번역되었다.
3] 그 종들을 불러
'종들'(*, 둘로이)은 그 주인의 전적인 소유였다. 여기서는 인격적 친근감을 주는 주인과 동등한 위치로서의 신분을 암시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그 '종들'은 여전히 주인의 권위 아래 놓여 있다.
이 '종들'은 상징적으로 주의 승천 이래로 당신의 교회를 책임질 복음 사역자들과 예수를 주인으로 모신 모든 성도를 가리킨다.
4]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고대 사회에서 종들은 그들이 맡은 일에 대해서는 상당한 권한과 책임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종들에게 자기의 동업자처럼 각각 소유를 나누어 준다. 여기서 '소유'(*, 휘파르콘타)란 '재산', '소유물'이라는 뜻이다.
본문에서는 주로 '돈'을 가리킨다. 이 '돈'은 그들 각자에게 적당하게 '맡겨'질 것이다. 주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그의 소유를 맡기셨다. 특히 그는 우리에게 영혼 구원과 양육의 일을 맡기셨다.
이것은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포도원 품꾼 비유의 진리이기도 하였다. 주인은 품꾼들에게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라.’고 말하였는데, 포도원의 일은 교회의 일들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의 원 소유권은 주인에게 있다. 비록 '종들'의 노력과 지혜로 많은 이윤(利潤)을 남긴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법적 소유권은 여전히 주인에게 있다.
이러한 사실이 성도들이 주님 앞에서 필연적으로 겸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마 25: 15. 달란트 비유 -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모든 조건들, 즉 부모, 가정 환경, 유산(遺産), 지능지수(IQ), 재능, 건강, 학력, 조국, 시대 등은 다 하나님의 소유이며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다.
또 우리가 구원받은 후 하나님께 받은 각양의 은사들과 직분들도 그러하다. (롬 12: 6-8).
그는 우리 모두에게 동일한 구원의 은혜를 주셨지만(눅 19장의 므나 비유), 이 세상에서 각 사람의 재능과 은사를 따라 서로 다른 직업들과 교회의 직분들을 주셨다.
1] 각각 그 재능대로(*, 카타 텐 이디안 뒤나민)
이 말은 '자기 자신의 힘이나 능력에 따라'라는 뜻이다. 여기서 주인은 종들에게, 소유를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적절하게 배분하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은 재능에 의한 공평의 원리를 실현하시는 그분의 지혜를 반영한다.
* 민 7: 4-9 –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5 그것을 그들에게서 받아 레위인에게 주어, 각기 직임대로 회막 봉사에 쓰게 할지니라. 6 모세가 수레와 소를 받아 레위인에게 주었으니 7 곧 게르손 자손들에게는 그들의 직임대로 수레 둘과 소 네 마리를 주었고 8 므라리 자손들에게는 그들의 직임대로 수레 넷과 소 여덟 마리를 주고,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에게 감독하게 하였으나 9 고핫 자손에게는 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의 성소의 직임은 그 어깨로 메는 일을 하는 까닭이었더라.
이러한 재능에 따른 배분이 갖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성도는 맡김을 받은 청지기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모든 소유 곧 물질적 소유 뿐 아니라 성격, 지식, 교육, 의지, 환경 등은 근본적으로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속한 것으로서 최선을 다해 잘 관리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2) 사람마다 능력과 재능에 따라 소유가 맡겨졌다.
이것은 저마다 고유의 인격과 역할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각각 소중하고 존귀한 것임을 말한다.
사람마다의 개성과 능력은 다양하지만 각각 독특하고 소중한 것이다. 따라서 각자의 재능에 따라 적합한 소유가 맡겨졌다는 믿음은 각각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그 일을 맡긴 주인에 대한 충성의 의무와 책임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2]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달란트'(*)라는 말은 구약시대에는 무게의 단위로 쓰였으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무게와 화폐의 단위로 동시에 쓰였다.
본문의 경우에는 화폐의 단위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무게 단위가 화폐 단위로 발전된 것은 금이나 은을 저울로 달아서 상품값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이 달란트를 화폐 단위로 취급했을 때 1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에 해당하는 엄청난 가치가 된다. 1 데나리온은 노동자 1일 품삯에 해당한다.
이것은 눅 19: 11-29에 언급된 '므나'(1므나 = 약 100 데나리온)와는 큰 차이가 있다. 본문의 비유를 통해 '달란트'는 보통 상징적 의미로 '재능'을 뜻하게 되었다. 실로 각자의 독특한 재능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달란트이다.
3] 떠났더니
주인은 자신의 권위와 지혜로써 분배를 마친 후 더 이상의 염려나 망설임 없이 자기 길을 떠났다. 이것은 주인의 그 종들에 대한 믿음을 반영한 행동인 동시에 그 종들의 자유 의지를 인정하는 행동이다.
주께서는 또,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바로]떠났더니’라고 말씀하셨다.
주인은 그 소유를 그 종들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나누어주었다.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모든 조건들, 즉 부모, 가정환경, 유산(遺産), 지능지수(IQ), 재능, 건강, 학력, 조국, 시대 등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도 여러 가지 은사와 직분을 주셨다.
* 롬 12: 6-8 –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그는 우리 모두에게 동일한 구원의 은혜를 주셨지만(눅 19장의 므나 비유), 그러나 각 사람의 재능과 은사를 따라 서로 다른 일과 직분을 맡기셨다.
마 25: 16. 바로 가서 –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
하나님께서 맡기신 모든 일은 열매를 맺는 일이다.
우리 각 사람은 개인의 성화의 일을 받았고 또 여러 가지 선한 봉사의 일들을 받았다. 우리 모두는 믿음과 순종으로 거룩하고 선한 삶을 살아야 한다.
선한 일 중에 매우 선하고 귀한 일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과 교회를 세우고 구원받은 영혼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며 교회의 사명이다. 우리는 이 선한 일을 위해 일하며 협력하며 충성해야 한다.
1]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헬라어 원문에는 '바로'(유데오스)라는 말이 15절 끝에 붙어 있지만 오히려 개역 성경의 방식대로 16절 초두에 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 말은 종이 소유를 맡고 즉시 또는 재빨리 그 소유를 사용하여 어떤 일에 착수(着手)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과 일에 대해 책임감과 의무감을 느끼고 바로 그 일을 시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선한 청지기로서의 바른 자세이다.
2]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그것으로'란 제한 문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종은 주인이 제공한 재능(달란트)에 근거해, 주인의 분부와 소망에 따라, 주인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받은바 '그것으로' 일한 것이다.
여기서 장사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일을 계획하고 돈을 투자하여 이윤을 남긴다는 뜻이다. 단지 은행에 넣어두고 이자나 취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장사는 확정적인 이윤이 무조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본전마저도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 일이다.
따라서 장사는 위험 부담을 안고 모험을 해야 한다. 이러한 모험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1) 주도면밀(周到綿密)한 계획과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
(2) 장사를 할 종목과 상대에 대해서도
잘 파악하고 신용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일을 해야 할 것이다.
(3) 항상 진취적이고
창조적이며 생산적인 청지기로서의 마음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다섯 달란트 맡은 자와 두 달란트 맡은 자가 이윤을 남기었다는 것은 자기 맡은 바에 최선의 노력을 성실하게 기울였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세 사람의 종 가운데서 두 사람을 성실하고 충성된 종으로, 한 사람을 불성실한 종으로 묘사한 것은 숫자적인 비율로써 선한 종에 대해 강조한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마 25: 17. 두 달란트 받은 자 –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
주께서는 그가 각자에게 주신 재능과 은사만큼 열매를 기대하신다.
다섯 달란트 주신 자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두 달란트 주신 자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달란트 주신 자에게는 한 달란트를 기대하신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너무 비교하지 말고 우리가 받은 만큼,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부지런히, 충성되이 일하며 열매를 맺으면 된다.
1]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나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똑같이 성실하게 장사하였음을 말함으로써
(1) 소유하고 있는 양의 차이에 따라
성실성의 차이가 있을 수 없음을 나타낸다.
(2) 주인의 주 관심사가
이윤을 많이 남기거나 적게 남기는 데에 있지 않고 주어진 여건 안에서 성실히 노력함으로써 주인의 기대에 부응(副應)하는 자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100% 충성과 성실을 통해 100% 결실과 만족을 주인께 돌려 드렸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모든 일은 열매를 맺는 일이다.
주께서는 포도나무 비유에서 우리가 주 안에 거함으로 열매를 많이 맺으라고 교훈하셨다.
* 요 15: 4-5 –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 열매는 우선 믿음과 순종으로 거룩하고 선한 삶을 사는 것을 뜻한다.
* 롬 6: 22 -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디도서 2: 14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 선한 삶 중에 가장 귀한 것은 영혼을 구원하고 양육하는 일, 즉 교회를 세우는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 섭리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 요 6: 39-40 –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그것은 교회에 주신 사명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선한 일을 위해 열심을 다해 일하며 충성해야 한다.
주께서는 그가 각자에게 주신 재능과 은사만큼 열매를 기대하신다. 다섯 달란트 주신 자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두 달란트 주신 자에게는 두 달란트를 기대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우리가 할 수 있는 분량만큼 충성스럽게 일함으로 열매를 맺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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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인은 그 종들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그 소유를 맡기셨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기에 세상에서 얻는 것은 모두"덤"이다
욕심내지 말고 마음 비우는 오늘 이시길 바라며 늘~건강하세요.💖
주인은 그 종들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그 소유를 맡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