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선의 시 명상] 나 이제 내가 되었네 (메이 사튼)
내가 나로 살아가는 삶
내가 나로 살아가는 삶은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삶이다. / 셔터스톡
나 이제 내가 되었네
여러 해, 여러 곳을 방황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네
이리저리 흔들리고 녹아 없어져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
마치 시간이 그곳에 서서 경고를 외치기라도 하듯
미친 듯이 달렸었네
"서둘러, 그 전에 죽게 될지도 몰라."
(무엇을 하기 전에? 아침이 오기 전에?
아니면 이 시를 끝맺기 전에?
혹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안전한 사랑을 나누기도 전에?)
나 이제 고요히 여기에 서 있네
내 존재의 무게와 밀도를 느끼며
종이 위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는 내 손의 그림자
생각이 생각하는 자를 만들 듯이
단어의 그림자가
종이 위에 무겁게 떨어지는 소리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용해되어
소망에서 행동으로, 말에서 침묵으로 자리를 잡고
나의 일, 나의 사랑, 나의 시간, 나의 얼굴은
나무처럼 성장하는 강렬한 몸짓으로 모아졌네
열매가 서서히 익어 떨어지고
언제나 우리의 양식이 되듯
열매는 떨어져도 뿌리까지 시들지는 않듯
그렇게 모든 시가 내 안에서 자라
노래가 된다네
그렇게 사랑으로 만들어지고 사랑으로 뿌리내린 노래가
이제 여기에 시간이 있고 그 시간은 젊다
지금 이 순간
나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아가네
아무 흔들림 없이
무엇엔가 쫓기던 나, 미친 듯이 달리던 나
고요히 서 있네, 고요히 서 있네
태양도 멈추었네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좀머씨 이야기>에 나오는 좀머씨의 삶은 보통의 삶과는 다르다.
그는 아침 일찍 나가 밤중에 들어온다. 그는 하루종일 쉴 새 없이 지팡이를 휘저으며 끊임없이 걷고 또 걷는다. 마치 죽음이 바로 뒤에서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그는 열심히 걷고 또 걷는다.
그러나 그처럼 시간에 쫓기던 그가 죽었을 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를 기억하는 이조차 없았다. 좀머씨의 삶을 읽으면서 가슴이 아렸던 것은 늘 쫓기는 우리 자신이 떠올라서였다. 항상 바쁜 사람들, 그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인터넷, 뉴스, 사회 모든 곳에서 잘난 사람들이 우뚝 서 있다. 그들은 어디엘 가나 있다. 자신의 외모와 부유함과 풍경과 여유를 시간을 자랑하면서.
그런 것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그래야 할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열심히 일을 하면 그들처럼 될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친 듯 달린다.
마치 시간이 그곳에 서서 경고를 외치기라도 하듯/ "서둘러, 그 전에 죽게 될 지도 몰라. / 무엇을 하기 전에?"
우리는 짧은 생에서 이것을 해보고 저것을 해본다. 무언가 좋아보이면 그것을 따라 한다. 그것이 안 되면 또 다른 무언가를 한다.
앎에 끝이 없듯이, 추구에도 끝이 없다. 내 기준이 아닌 타인의 기준과 철학을 따라 사는 삶은 늘 바쁠 수밖에 없다. 그런 삶은 저 앞, 생 전체를 내다보지 못하도록 만든다. 바로 여기에서 보이는 것, 허상만을 보도록 만든다.
내가 나로 살아가는 삶은 느리지 않지만 빠르지도 않다. 그 속도는 알맞고 그 틀은 확고하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일을 하고 내가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란다. 나로서 사는 삶이기에. 누군가를 쫓아가야 하는 삶이 아니므로.
글 | 이강선 교수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