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와 무료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은 개인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무기력한 사회 구조속에서 나온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유튜브 광고 가운데에는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공짜 심리를 교묘하게 자극하는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타이틀은 부업이라며 말하는데 한달에 수백만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식의 광고를 보다 보면 이런 광고에 현혹되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집니다.
보통의 경우 제1금융권의 거래가 막힌 이들 가운데에는 자연스럽게 제2 금융권으로, 나아가 법의 보호 밖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 합니다.
이렇게 절박한 이들을 상대로 무담보, 무서류, 무신용을 내세우는 광고들을 보노라면 무섭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놓여 있다.” 러시아 속담이라 합니다. 우리의 생활 가운데 댓가없이 목돈이 얻어지는 경우는 그만큼 함정이 있을 수 있는 것이 현 세태입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카페를 운영하시는 장로님의 카페에서 성민혁이라는 분의 “유료와 무료”라는 짧은 글귀를 접했습니다.
익히 아는 내용이지만 음미할수록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것은 유료이지만 생명에 필요한 것은 무료입니다.”라는 글입니다.
현대인의 삶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물질이라는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 출향했다가 명절에 귀향하는 형님들이 도시에서는 물도 사 먹어야 된다라 하면 대부분의 반응은 구라로 여겼습니다.
주위에 흔하디 흔한 것이 맑은 물인데 그것을 왜 돈주고 사먹어야지 하는 반응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세태는 생활을 이어가려면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입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가장 중요한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는 것에는 우리의 댓가보다 은총으로 얻어지는 것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공기와 우리 몸 안의 피라 하겠지요.
<인간의 혈관을 한줄로 이으면 120,000Km로서 지구를 3바퀴 감을 수 있다.
피가 몸을 완전히 한바퀴 도는 데에는 46초가 걸린다.>합니다.(보금자리 고향 카펭서)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러한 피를 만들어내는데 우리의 의지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수년전 교우 한분이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를 쓰고서 두어달 정도 투병할 때 산소 호흡기 비용을 알면서 들숨날숨을 정상적으로 하는 일상이 얼마나 큰 은총임을 배웠습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유료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시 하지만
생명과 직결된 부분들에 대하여는 깊은 생각이나 감사함 없이 너무나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모습이 우리네 인생임을 절감합니다.
죄성을 지닌 인간은 정작 살펴야 할 것들은 방치하면서도, 때론 지나쳐도 될 부분들에는 민감하지 않나 싶어집니다.
유료인 생활을 위해 지불하는 것은 아깝지 않으면서도 무료인 생명을 위한 일에는 무관심한 인생들을 위하여 생명의 주 되신 예수님은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이렇듯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면서까지 인생들을 사랑하신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우리 주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고 실천하는 교회력이 사순절입니다.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