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서의 2박3일
-조앙
그동안 해외여행을 하면서 가장 잊혀 지지 않는 건 유명한 관광지보다도 처음으로 혼자서 떠난 오사카에서의 2박3일이다. 다도(茶道)를 배우다보니 차(茶)문화가 발달된 일본을 방문하고 싶던 중 지리적으로 가깝고 시장 형성이 잘 된 오사카를 간 것이었다. 교통편은 평소 선박 여행을 선호하던 터여서 부산과 오사카를 왕래하는 팬스타 드림호를 이용하기로 했다.
팬스타 드림호는 출국 당일 부산 국제 여객 터미널에서 오후 5시 정시에 출항하여 이튿날 아침 정시에 오사카 남항에 접안했다. 하선 한 후 세관을 통과하여 입국장 밖으로 나오니 문득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오사카는 초행으로 일행을 구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무산되곤 했던 일이 떠올라서였다. 나는 짐을 들고 예약해놓은 ‘일 그랑데 우메다’ 호텔로 가기위해 인근 지하철역을 찾아갔다. 아침나절 바닷바람이 약간 차갑기는 해도 공기는 무척 상쾌했다. 길 건너편에 유명한 WTC 코스모타워가 보이고 그 옆으로 아시아 태평양 무역센터ATC도 보였다. 오사카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사카 남항에서부터 5분여 걸었을까, 지하철 코스모스꾸에아(スモスクエア)역에 도착했다. 역 구내로 조심스럽게 들어가자 매표소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고 저만치에 터치 화면 자동 발매기가 보였다. 자동판매기 위 노선도에는 각 지역 명이 표기되어 있었지만 한문인데다 깨알처럼 작은 글씨여서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지인이 “오사카에서 지하철 노선도를 보기위해 1000엔 숍에서 돋보기를 구입했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각 역 간 거리와 요금이 표기되어 있는 점은 지하철을 주로 이용했기에 참 편리했던 것 같다. 나는 다른 승객이 표 사는 것을 몇 번 지켜본 후에 100엔 동전 3개를 꺼내서 자동 발매기 투입구에 넣었다. 승차권 270엔 표가 뽑아지고 거스름 돈 30엔이 나왔다. 승차권을 들고 승차장에 서있는데 왠지 뿌듯한 것이 자신감이 생겼다. 그동안 몇 번이나 혼자라도 올려다가 오지 못하고 망설였던 시간들이 아쉽기조차 했다.
지하철이 출발하고 막 한숨을 돌리려는데 ‘사까이혼마찌역’ 안내방송이 들렸다. 전광판에도 ‘サカイホンマチ’ 역 이름이 나왔다. 그 역에서 환승하기 위해 다음 목적지로 가는 승차장을 찾아가는데 너무도 혼잡했다. 노선은 색깔별로 구분되어서 승차장을 찾는 건 어렵지가 않다 해도 역 안이 미로처럼 복잡해서 노선 방향을 구분하는 게 무척 어려웠던 것 같다. 일본어에 능숙한 후배가 자신도 오사카에 볼일이 있다며 며칠 후에 같이 가자고 하던 것을 못 들은 척하고 혼자 온 것이 후회막심이었다. 나는 갔던 길을 몇 번씩 되돌아 와서야 겨우 승차장을 찾을 수 있었다. 가까스로 환승을 하자 이번에는 몇 정거장을 더 가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미나미모리마찌..미나미모리마찌..낯익은 듯 한 역 안내방송이 들렸다. 전광판에도 역 이름이 나왔다. 안내 방송이 은은한 음악소리처럼 들렸다.
그 역은 인근에 호텔이 있어서 저녁이면 지친 몸으로 찾아가던 곳이어선지 잊혀 지지가 않는다. 지금도 해질녘이 되면 불현 듯 서둘러서 미나미 모리마찌역으로 가야 할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나는 호텔로 들어가 체크인을 한 후 방에 짐만 내려놓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도착 첫 날이지만 일정을 소화 하려면 급히 서둘러야 해서였다. 다시 지하철역으로 들어왔다. 미나미모리마찌(南森町)역에서 시내 쇼핑몰이 근접해있는 난바로 가기위해 노선도를 바라보니 니폰바시 역에서 환승하고 난바 역까지는 230엔(¥)이었다. 이번엔 좀 더 익숙하게 지하철 티켓을 구입하여 승차할 수 있었다.
난바 역에 도착하자 아직 점심시간 전이건만 문득 허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잠시 거리를 걷기로 했다. 간판만 봐도 특색이 있는 거리를 여기저기 기웃대며 사진을 찍다가 골목길에 있는 작은 음식점에서 가케 우동을 한 그릇 사먹었다. 가케 우동은 200엔이지만 입맛에 맞아서 오사카에 머물던 3일 간 점심 메뉴로 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근처 빅구 카메라 상가와 신사이바시 아케이드를 둘러보았다. 그 곳은 주로 전자 제품과 의류, 화장품, 악세서리 등의 고급매장이 즐비했다.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하루 해가 저물었다. 휴식을 취할 겸 저녁식사는 인근 롯데리아 패스트 푸드점에서 햄버거와 커피를 마시면서 근처 도톰보리에 가는 길을 체크했다.
도톰보리는 혼잡한 도로로 찾아가기 보다는 안내 책자에 나와 있는 대로 난바역 지하철입구로 들어가서 14번 출구로 나왔다. 출구를 나와서 반대방향으로 가다가 ‘금륭라면’ 안쪽 길로 들어갔더니 도톰보리 거리가 나왔다. 그 가운데로 도톰보리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파리의 세느강을 연상하게 하는 네온사인이 비치는 강물이 더 없이 아름다웠다. 4월 초순으로 밤바람이 차가웠지만 나는 다리 난간에 기대어 선 채 불빛아래 유유히 강물을 바라보았다. 젊은 연인들이 팔을 끼거나 어깨동무를 한 채 수없이 많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얼마나 서있었을까, 갑자기 피곤함이 밀려왔다. 나는 더 이상 서있을 수가 없어 도톰보리의 화려한 밤거리도 걷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인근 동키호테에 들러 다기 몇 점만을 구입하여 가져왔다.
이튿날은 호텔 조식을 먹고 바로 나왔다. 메모장에 일정표대로 도코핸즈, 다이마루, 한신백화점 등을 찾아다녔다. 난바 역 근처에 초대형 멀티 상업시설로 유명한 '난바 파크스'는 좀 더 시간 여유를 갖고 돌아보기로 했다. 사실 처음 오사카 자유여행을 계획 했을 때는 오직 차(茶)에 관계되는 것만을 생각했는데 막상 현지에 도착해서 보니까 우리와 다른 것이 많았다. 작고 예쁜 것은 볼 때는 오래 전에 감동 깊게 읽었던 저자 이어령의 ‘축소 지향의 일본인’ 책이 떠오르기도 했다. 오후에는 그곳에서 조금 멀리에 있는 브론섬을 찾아갔다. 브론섬에는 스포츠 용품 매장이 많았다. 마침 헌 운동화를 신고 갔던 터여서 운동화를 한 켤레 사서 신었다. 물건 값을 계산하고 지하철을 몇 번 환승해서 호텔로 돌아오기까지 이번에는 아주 거침없이 지하철을 승차할 수 있었다.
첫날 오사카 남항에 도착하여 지하철역을 찾아갈 때의 두려움은 어느새 까맣게 잊혀졌다. 역 마다 노선도에 적힌 깨알 같던 작은 글씨도 금방 눈에 띄는 것이 현지에 익숙해졌음을 실감했다. 그때의 경험으로 그 후에도 자주 혼자서 오사카를 여행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처음 혼자서 떠난 오사카 여행은 오직 두려움뿐이었지만 차츰 익숙해져서 차(茶)문화는 물론이고 미술 전시장이나 박물관 등..우리와 다른 문화와 예술을 접해보면서 내 나름의 사고를 넓히는 큰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다.
첫댓글 철저하게 정리되어 있고
깨끗한 거리
친절한 그들속에서
이국의 추억을 잘 만들어 오셨군요
배울점도 많은 사람들
그래도 뇌리는 일본이라는게
항상 왜그런건지..
내년에는 오사카 벚꽃 구경갈까 생각해봅니다ㅎㅎ
카페지기님 오사카 벚꽃 구경가실 때 동행 할까요? ㅎㅎ
얼마나 멋진 분인지, 얼마나 로맨틱한 분이신지 밀착 취재해보고 싶어요 ㅎㅎ
멋진 여행 이야기에 일본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거리 풍경에 많은 차이가있을까 궁금합니다.
조앙님은 아직 카페지기님을 만나지 못하셨나봅니다.
난 오래동안 그분이 남자분이라 생각했었습니다. ㅎㅎ
여자분이 맞겠지요...
카페지기님은 남자분 같은데요? 왼쪽 메뉴 위에 프로필 사진에 보면 자전거 타는 사진이
카페지기님 같아요.
일본은 한국에서 거리가 먼 곳도 있지만 오사카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국제 여객선도 있어서
부산에서는 1박도 가능하다고 들었어요. 지리적으로 먼곳은 항공편으로만 가능하고요.
일본이 역사적으로는 우리에게 아픈 기억이 있지만 여행하기에는 재미있어요.
@조앙 카페지기님이 남자분이신가요.
ㅎㅎ 잘알았습니다.
@에스핀 저도 카페지기님을 뵌적이 없어서요, 남자분일거라는 추측일뿐이에요 ㅎ
버킷리스트에 혼자 해외여행해보기인데,
위글을 차분하게 읽어내려오면서,
도전에 용기를 얻어갑니다.
솔직히 큰자신이 없는 관계로,
일단 대마도부터 시작해보려고,
마음속으로 계획하고 있거든요.
기행문 공유 고맙습니다.
국내도 어디든 처음 가는 곳은 지리도 모르고 사람도 낯설잖아요. 해외도 마찬가지일거에요.
여행지에 대한 숙박,교통,관광정보를 충분히 알고 가면 더 재미있으실거에요.
제 생각은 혼자 첫 여행은 오사카가 좋을거 같아요. 왜냐하면 워낙 유명한 곳이어서 정보가 많거든요.
치안도 안전하고요. 지하철이나 시내버스 등 교통편도 잘 되어있어서 여행 다니기에는 정말 좋아요.
볼거리도 풍부하고요.
오사카는 항구가 있어서 국제여객선도 여러 등급으로 있는데요, 시간이 넉넉하시다면 선박여행도 권해드리고 싶어요. 선상 낭만도 여행의 즐거움을 배로 하니까요. 항공편으로 가셔도 좋고요. 선상이든 항공편이든 숙소도 같이 예약하셔서 가면 좋을거 같아요. 저는 선편과 호텔을 묶어서 구입했던 기억이 나요
@조앙 우와. 친절하신 답글 고맙습니다.
용기내보려합니다.
즐건 저녁? 되세요.
제가 이제 막 집에 들어온
관계로. 이제부터 집안일
시작인지라.♡@@♡
참고로, 해외여행이 첨인분은요, 첫여행은 여행사 패키지로 가는 것이 도움 될거에요. 저는 항공요금과 호텔 비용 아끼려고 대개 에어텔, 혹은 교통편과 호텔만 단체예약으로 많이 이용했거든요. 물론 패키지도 많이 다니고요. 그래서 혼자 갔어도 별로 당황하지않고 잘 다녔던거 같아요. 항공과 숙소만 단체 예약으로가도 서로 정보도 교환하고 타지에서 서로 도움도 받고 좋은거 같아요. 막무가내로 혼자 오시는 분도 많긴 한데요, 그럴려면 사전에 충분히 준비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