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8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제1독서
<너는 이스라엘을 죄짓게 하였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21,17-29
나봇이 죽은 뒤에, 17 주님의 말씀이 티스베 사람 엘리야에게 내렸다.
18 “일어나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 임금 아합을 만나러 내려가거라.
그는 지금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그곳에 내려가 있다.
19 그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주님이 말한다. 살인을 하고 땅마저 차지하려느냐?’
그에게 또 이렇게 전하여라. ‘주님이 말한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던 바로 그 자리에서 개들이 네 피도 핥을 것이다.’”
20 아합 임금이 엘리야에게 말하였다. “이 내 원수! 또 나를 찾아왔소?”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또 찾아왔습니다.
임금님이 자신을 팔면서까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21 ‘나 이제 너에게 재앙을 내리겠다. 나는 네 후손들을 쓸어버리고,
아합에게 딸린 사내는 자유인이든 종이든 이스라엘에서 잘라 버리겠다.
22 나는 너의 집안을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의 집안처럼,
그리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안처럼 만들겠다.
너는 나의 분노를 돋우고 이스라엘을 죄짓게 하였다.’
23 주님께서는 이제벨을 두고도,
‘개들이 이즈르엘 들판에서 이제벨을 뜯어 먹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4 ‘아합에게 딸린 사람으로서 성안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어 치우고,
들에서 죽은 자는 하늘의 새가 쪼아 먹을 것이다.’”
25 아합처럼 아내 이제벨의 충동질에 넘어가 자신을 팔면서까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른 자는 일찍이 없었다.
26 아합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인들이 한 그대로
우상들을 따르며 참으로 역겨운 짓을 저질렀다.
27 아합은 이 말을 듣자,
제 옷을 찢고 맨몸에 자루옷을 걸치고 단식에 들어갔다.
그는 자루옷을 입은 채 자리에 누웠고, 풀이 죽은 채 돌아다녔다.
28 그때에 티스베 사람 엘리야에게 주님의 말씀이 내렸다.
29 “너는 아합이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춘 것을 보았느냐?
그가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으니,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내가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
그러나 그의 아들 대에 가서 그 집안에 재앙을 내리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43-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단신으로 이민을 와서 억척같이 사신 부모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부는 세탁소를 하면서 자식을 교육시켰습니다. 그들은 한 평생을 소독냄새가 지독한
세탁소에서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아들을 결혼시키고 손주 손녀들도 학교에
잘 다녔습니다.
손주 손녀는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을 이쁜 짓만 골라 했습니다.
그러다가 기둥이던 할아버지가 일하다가 디스크로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어서 세탁소는
할머니가 맡아서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마저 풍을 맞아 온전하지 못하자 하는 수 없이 아들에게 그 세탁소를
맡겼습니다.
아들은 맡긴 지 얼마 안되어서 상의도 없이 덜컥 세탁소를 팔았그 그 돈으로 별별일을
해 보았지만 하는 일마다 시원치않았습니다. 일이 잘 안되면서 나중에는 집마저 팔아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 부모는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평생 일터로 살아온 세탁소를 게눈 감추듯이 팔아버린
아들이 야속했습니다. 부모는 부근의 여러 노인 아파트를 찾다가 한곳을 정해 들어갔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노부부는 남은 돈을 자식에게 넘기며 빨리 좋은 직장을 잡으라고
격려를 했습니다.
노 부부는 결국은 세탁소 뿐만 아니라 몇 십년을 잘 살던 집마저 아들에게 넘겨주고
노인 아파트로 간 것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아들에게 담을 쌓을 만도 한데 노 부부는 늘 아들 내외와 손주 손녀가
걱정이 되어 밤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합니다.
그 노부부는 자식에 대해 원망도 나올만도 한데 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며 ‘이것이 부모 마음이구나’하며 마음 한 구석이 저려오는 것입니다.
부모 마음은 밤낮 철없이 굴던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아합 왕 내외는 말썽만 일으킵니다.
하느님을 대항해서 그 부인은 더 못되게 바알 예언자를 두지를 않나, 하느님의 예언자를
박해를 하지를 않나, 심지어는 나봇 포도밭을 차지하기 위해 거짓 증인까지 세워 사람을
죽이지를 않나 하여튼 갈수록 못게 굽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를 보내어 징벌의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그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주님이 말한다. 살인을 하고 땅마저 차지하려느냐?’ 그에게 또 이렇게 전하여라. ‘주님이
말한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던 바로 그 자리에서 개들이 네 피도 핥을 것이다.’”(1열왕 21,19)
그의 부인 이제벨을 향해서도 주님의 예언자는 독한 징벌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합은 이런 주님의 징벌이 예언을 듣자 자루옷을 걸치고 회개의 뜻으로 단식에
들어갑니다. 마음 약하신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아합을 보시고 부모의 마음을 가지시고
엘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아합이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춘 것을 보았느냐? 그가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으니,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내가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29절)
얼핏 보면 주님께서는 줏대가 없으신 분 같으십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자식 이기지 못하는 부모’의 사랑을 지니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강조하십니다.
미워 죽겠는 웬수, 사사건건이 붙들어 늘어지는 꼴 보기 싫은 사람을 주님께서
사랑하라고 하시니 그 짐이 됩니다.
부모의 사랑만이 아들을 완전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아들의 부족한 점을 부모의 사랑이 매우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예로, 길을 낸다고 합시다. 거기에는 부드러운 흙도 있겠지만 어느
구간은 돌맹이와 바위도 있습니다. 기계가 좋아서 어느 정도는 편편하게 할 수는
있지만 자동차가 달리기에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울퉁불퉁하고 튀어 나온 부분을 아스팔트로 몇차례 메우고 다지면 자동차가
부드럽게 달릴 수 있는 완벽한 노면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처럼 완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으로 인간의 한계와 부족한 점을 매우어 주시면 사람도
완전한 사람으로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도우심 없이는 사람은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자비로운,
그리고 완전한 사람으로 나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불완전한 사람을 완전한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