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전기
Story No.1
하루살이 인생(1)
"엘레넨! 야 임마!"
"크으.. 젠장 그렇게 흔들지 마라. 그러다 정말 죽겠다..으.."
심한 출혈로 눈 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는 엘레넨을 부축하며 그의 살아 있는 입을 대하자 한시름 놓을 수 있는 카실리안이었다. 레이피어의 가늘고 긴 검신은 보통 이렇게 커다란 상처를 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바티칸의 검은 달랐다. 엄청난 소용돌이의 검기가 뚫고 간 자리는 주먹보다도 큰 검상이 남아 있었다.
"금방 병원에 갈수 있을 거다. 조금만 기다려."
자신도 과도한 마나운용으로 지친 몸이었지만 카실리안의 얼굴에는 그런 기색 하나 보이지 않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 없이 꼭 다문 입과 강한 눈빛으로 엘레넨을 업고는 한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봐, 한스 나와 거래를 하지 않겠나. 너가 원하는 게 무엇이야. 돈? 여자? 아니면.. 권력? 내가 그 모든걸 이루게 해줄 테니 나를 풀어주게."
"닥쳐라. 죽고 싶지 않으면."
달콤하기 그지 없는 백작의 능글 거리는 말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겁에 질린 채 자신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는 병사들에게 희망을 걸 수 없던 그가 선택한 마지막 방법이었지만 상대는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으니 오히려 한스의 화만 더 돋우는 격이 되고 말았다.
"어디를 그렇게 급히 가시나. 한스."
달각. 달각.
두 갈래로 나누어 정렬한 병사들 사이로 한 마리의 말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정확히 한스의 앞으로 다가오던 말은 이내 한명의 사내를 그곳에서 분리시켰다. 건장한 체구에 떡 벌어진 어깨가 힘깨나 쓸 것 같은 사내는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연신 웃음을 멈추지 않으며 말 등에서 작은 소녀를 집어 올렸다.
"이 아이가 너의 딸이 맞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세.. 세실리아! 보.. 보르도 네 놈. 로웰은 어찌 한 거냐!"
상황은 근위 대장 보르도의 출현으로 급박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이대로 성을 나가 준비된 말을 타고 도주 하려던 백작의 계획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버린 것이었다. 로웰과 세실리아가 안전하게 이동했다고 믿고 행동하던 한스는 크게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귀찮게 굴기에 죽여버렸어. 아.. 아.. 그런 표정 짓지 말라구. 네 놈의 딸은 스스로 정신을 잃은 거니까. 봐 버렸거든.. 자신을 지키던 이가 얼마나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는지 말이야."
"이 개자식!"
보지 않았지만 상상할 수는 있었다. 로웰이라면 세실리아를 위해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마치 블루 드래곤의 뇌전마법에 걸린 듯 온몸에 흐르는 경련을 주최할 수 없던 한스는 이성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더욱 백작의 목을 검으로 잡아 당겼다.
"당장 세실리아를 보내라. 아니면 백작은 여기서 죽어."
"크으.. 보르도! 그 년을 어서 풀어 줘라. 이러다 내 목이 떨어 지겠다!"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그 영악한 크로우드 백작도 더 이상의 냉정한 판단을 하기 힘든 것 같았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애처로운 사정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이었다.
"이봐 한스 이 소녀는 교환의 가치보다는 인질로서가 더 뛰어나다는 것을 왜 이해하지 못하나. 백작님이 너의 손에 당하기 전에 너의 딸의 피를 먼저 보게 될 것이야."
보르도 역시 한스의 기세에 지지 않으려는 듯 정신을 잃고 늘어져 있는 세실리아의 심장으로 자신의 검을 가져가고 있었다.
"엘레넨이 죽어갑니다."
엘레넨의 숨이 점차 짧아 지고 있었다. 카실리안은 다급한 마음에 한스에게 선택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백작의 존재는 미미했다. 검은 시장의 내력을 파헤치는 일이나 노예 매매에 대한 죄의 징벌은 그에게 동료의 목숨까지 버리면서 지켜야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그래! 그래. 한스.. 딸이 저렇게 예쁜데 일찍 운명을 달리해서야 되나.. 어서 나를 풀어주게. 어서.."
한스의 속은 급속도로 타 들어갔다. 몇 년 동안 이날 만을 기다렸다. 만약 이 번에 백작을 놓친다면 언제 또 다시 이런 기회가 돌아 올 지 몰랐다. 마음 한 구석에서 부녀 지간의 정이 그의 결정을 기울이고 있었지만 그것 조차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제 조금만, 단 몇 발자국만 움직이면 성을 벗어 날 수 있을 것이었다. 자신과 함께한 카실리안과 엘레넨에게 너무도 미안했기에 그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런 젠장.. 저것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한스 만큼이나 현재 속이 뒤집어 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보르도와 한스가 하는 짓을 그저 지켜보며 미동조차 하지 않는 사내. 바로 바티칸이었다.
마음으로는 수 십번 수 백번 머리를 죄다 뜯어 내고 이곳 저곳을 발버둥치며 미친 듯 소리라도 치고 싶은 바티칸의 심정을 이곳에 있는 이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그 의뢰를 받아 들이는 게 아니었어.'
바티칸 그가 이곳에 온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나고 있었다. 사적인 일로 잠시 카알에 들렸던 그는 자신의 유명세로 인해 여러 개의 의뢰를 받았지만 오랜 만의 휴가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카알의 이름 모를 장사치가 엄청난 거액을 들고 자신을 찾아 왔다.
순간, 눈앞에 들여 놓아진 어마, 어마한 금액에 덥석 의뢰를 물어 버리고 보니 이것이 뜨거운 쇳물이었을 줄이야. 의뢰 내용이 카알의 영주를 살해에 달라는 청부였지만 말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어찌나 그의 호위가 단단하고 견고한지 도저히 틈이 나지 않아 결국 그의 경호원으로 고용되어 일주일째 되는 밤에서야 기회를 갖을 수 있었다.
평소 결코 영주 주변을 떠나지 않던 근위 대장 보르도가 병사들을 이끌고 사라지자 나머지 성안의 병사들을 영주에게 접근하기 쉽게 배치한 바티칸 이었다. 그것 조차 지난 7일간 크라우드 백작에게 얻은 신뢰에 의해 어렵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계획했던 시간이 다가오면서 그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한스 일행이 성안에 잠입하여 내성까지 침입한 것이었다. 자신이 마련해 놓은 자리를 날로 먹으려는 그들의 행태를 지켜보던 바티칸은 결국 일행을 막아 서게 되었고 지금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손 하나 쓸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자, 한스 어떻게 할 생각이냐. 딸을 죽이는 아비가 될 작정인 게냐."
으득.
"먼저 그 아이를 보내라."
질끈 깨문 그의 입술 사이로 번져 나오는 피 만큼이나 그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의 앞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기세등등해진 백작을 똑 바로 볼 수 없었는지 그는 백작을 자신의 앞으로 세웠다.
"그렇지. 역시 현명한 아버지야 한스."
순간, 보르도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고 그는 급히 백작의 팔을 잡아 자신쪽으로 끌었다.
이에 질세라 한스 역시 보르도에게서 세실리아를 잡아 끌며 완벽한 인질의 교환이 이루어졌음을 알리는 듯 싶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백작의 손에 하나의 단검이 들려 있다는 것을 파악하는 기에는 한스의 신경이 딸의 안전에만 쏠려 있었다. 무사히 자신의 품으로 돌아온 딸을 바라보려던 찰나 폐부를 엄습하는 날카로운 고통이 그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백작의 손에서 떠난 단검이 그대로 날라가 한스의 가슴에 박힌 것은 정말 눈 깜박 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카실리안 역시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할 말을 잃고 그 자리에서 움직일 줄 몰랐다.
"하하! 한스.. 내가 언제까지 너에게 당하고만 있을 거라 생각한… 으음? 바티칸.. 어.. 어째서!"
"흐아아! 허리케인.. 쇼크.. 맥스(Max)!!"
슈아아. 콰콰쾅.
지축을 울리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바티칸의 검기가 한스와 백작의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 모두가 예상하지도, 인식하지도 못한 범위에서 날라온 엄청난 위력의 검압이 갑작스러운 바티칸의 행동에 당황한 백작과 그런 백작의 곁에서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근위 대장 보르도까지 집어 삼키고 있었다.
음... 나름대로 반전이라고 넣었는데 어설프기 그지 없네요.
어쨌든 이제 마지막 한 편만이 남았습니다. 이 이야기의 끝맺음을 정리해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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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바티칸의 '나도 튀어보고싶어!!'인가요;(농담) 하하.. 마지막 한편까지 건필!!
흐음, 이른바 프로 의식이라는 건가. 백작은 결국 목숨을 잃게 되어있다……는 건가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