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전기
Story No.1
하루살이 인생(完)
"뭘 멀뚱히 보고 있어! 어서 뛰어!"
갑자기 벌어진 돌발적인 상황 변화에 어쩔 줄 모르는 카실리안을 향해 바티칸이 소리쳤다. 그리고 바티칸 그 자신은 세실리아와 정신을 잃은 한스를 들쳐 업고 성문 쪽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 네. 네!"
꼬치에 꿰인 고기 덩어리처럼 통채로 뚫려 버린 백작과 보르도의 마지막을 지켜 보던 카실리안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바티깐의 뒤를 따라 뛰었다.
"영주님이 사망하셨다!"
"이쪽이다! 놈들이 도망간다!"
도주 하는 일행 뒤로 통제되지 않은 병사들의 우왕좌왕하는 소동과 함성이 이어 졌고 갈피를 잡지 못한 근위병들은 바로 앞의 바티칸과 카실리안을 쫓는 척 할 뿐 몸 사리기에만 급급할 뿐이었다.
"좋아. 이대로 성문을 지나 가까운 병원으로 간다."
바티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강압적인 명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시에 특별한 불만을 표하지 않는 카실리안이었다. 상황에 맞는 최적의 행동과 빠른 판단력으로 카알성을 탈출하는 그의 모습에서 일개 용병이라기 보다 한 단체를 책임지고 있는 수장이 어울린다는 것을 카실리안은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콰쾅! 콰쾅!
"크으응.. 누구야 대체 이런 밤 중에!"
평소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던 베르노아 병원의 원장 토르는 침대에 누운 지 불과 2시간 만에 자신의 침실에서 뛰어 나와야 했다. 오늘 따라 유난히 양조차 잘 세지지 않아 눈만 감은 채 시간을 보내던 그는 얼굴 가득 불만과 짜증을 드러내며 빠르게 문을 열어 젖혔다.
"뭐야 당신들! 지금 시간이…"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무슨 놈의 시간이야! 환자나 좀 받으라구."
용병의 거친 삶을 대변하는 듯 무뢰한 인사와 함께 다짜고짜 한스를 병원 안으로 들이 밀은 바티칸은 그제서야 숨을 돌리며 근처 의자에 몸을 앉혔다. 비록 그의 실력이 대단하다고 하지만 엘로우급 두 명을 상대하고 거기다 극 강의 검기까지 쓴 신체로 여기까지 달려오기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황당한 듯 서 있던 카실리안은 곧장 엘레넨을 내려 놓고 토르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부탁했다.
"죄송합니다. 보상은 충분히 할 테니 도와 주십시오. 두 명 모두 생명이 위급합니다."
무뢰한 바티칸과는 대조적인 카실리안의 간절한 부탁에 의사의 본분을 상기한 토르가 못마땅한 심기를 풀며 진료실의 문을 열고 불을 켰다.
"이쪽으로 옮기시게. 그리고 거기 너는 그러고 있을 거야! 환자 죽게 놔둘 거냐고!"
피곤한 몸을 의자에 기대고 있던 바티칸을 향해 토르 원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원장이 한창 때는 대륙전쟁의 군의관으로서 활약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 바티칸에게는 화근이었다.
"이런 젠장! 어쩌다 내가 이렇게 까지 됐지."
토르의 싸늘한 눈초리를 받으며 마지못해 카실리안을 도와 엘레넨과 한스를 진료실로 옮기는 바티칸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젊은 녀석은 다행히 급소와 중요한 장기는 빗겨 나갔구만. 출혈이 많아 걱정이지 생명에 지장은 없네. 하지만.. 이 사람은.. 이미 죽었군. 즉사였으니 고통은 없었을 게야."
"이런…"
엘레넨의 상처가 비록 관통상이었지만 치명상은 아니라는 것을 카실리안 역시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한스의 죽음은 의외 일 수 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한스의 옆으로 뉘어져 있는 세실리아에게 시선이 모아졌다. 하루 아침에 돌아갈 곳을 잃은 저 어린 아이를 앞으로 어떻게 할지 카실리안은 머리 속이 복잡해짐을 느껴야 했다.
"그럼, 난 이만 가보도록 하겠네. 자네도 가능하면 빨리 이곳을 떠나는 게 좋을 거야."
"잠깐, 물어 볼게 있습니다."
카실리안이 떠나려는 바티칸의 발길을 잡았다.
"무엇인가."
"왜.. 우리를 도왔습니까. 당신은 언제든지 우리를 죽일 수 있었는데요. 엘레넨의 상처는 당신이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면 이렇게 까지 양호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뒤 돌아 서 있던 바티칸이 결국 몸을 돌려 카실리안과 눈을 마주했다.
"눈치가 빠르군. 난 대가 없는 살인은 하지 않는 편이야. 자네들의 피를 묻힌다고 내게 돌아오는 이득이 무엇인가. 이번에 내가 맡은 일은 오늘 죽은 그 두 사람 중 한 명이었지."
토르를 의식한 것인지 굳이 직접적으로 백작을 언급하지 않는 바티칸이었지만 카실리안은 그 안의 사정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인연이 된다면 다시 한번 볼 수 있길…"
"나도 그러길 바라네."
처음 만났을 때는 적이었던 이들이 해어질 때는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니 세상에는 역시 이해하지 못할 상식 밖의 일이 많다는 것을 두 사람의 이별로 알 수 있었다.
바티칸이 떠나고 다음날 아침까지 엘레넨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밤새 일어난 사건은 카알의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침체 시켰고 도시 곳곳 마다 병사들의 순찰이 이어지고 있었다. 간혹 수상한 이들은 성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서야 풀려나기 까지 하였다.
평소 백작에게 과도한 세금을 걷힌 시민들은 그들의 바람이 이루어졌다며 백작의 죽음을 기뻐했지만 아직까지 그것이 겉으로 드러날 수는 없었다. 백작을 지지하고 있던 신흥 귀족들이 이번 기회에 서로 영주가 되려는 욕심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엘레넨의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 병원에서 지내기로 한 카실리안은 그날 정오가 넘어서야 깨어난 한스의 딸 세실리아에 의해 한번 더 놀라야 했다.
깨어나자 마자 울음부터 터트린 그녀는 한참을 눈물만 흘릴 뿐 울음소리 한번 내지 못한 채 울다가 잠이 드는 행동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녀를 진찰한 토르는 어떤 충격에 의해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며 지금 당장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했다. 세실리아에게 아버지 한스의 죽음을 알릴 수 밖에 없는 카실리안은 또 한번 그녀의 끊이지 않는 울음을 위로하여야 했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이틀 후 의식이 돌아온 엘레넨에게 지난 이야기를 설명한 카실리안은 토르의 도움으로 한스의 장례를 치룰 수 있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세상을 상대로한 한 인간의 용기와 정의로움을 그들은 잊을 수 없었다.
비록 하루도 되지 않는 인연이었지만 함께 목숨을 걸고 결의 했다는 것에 그들은 이미 동료였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가 남기고 간 혈육을 거두는 것으로 엘레넨과 카실리안은 한스의 넋을 위로하기로 했다.
"이제 어쩌지."
"글세.. 그렇게 물으니 나도 모르겠는걸."
한스의 무덤을 부여잡고 한사코 떠나지 않으려는 세실리아의 눈물 섞인 반항을 지켜보던 엘레넨과 카실리안은 그렇게 서로를 빤히 쳐 다 볼 뿐 더 이상의 말을 잇지 못하였다.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이미 마음 속에 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해야 할 일을 혼자 생각하지 않아도 된 다는 것을 말이다.
- 하루살이 인생 마침-
지금까지 용병전기를 아껴 주신 애독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라는 식의 이야기를 후기에 적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이런 날도 있군요.
아직 용병전기라는 큰 이야기 속에서 하나의 조각을 맞췄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하루살이 인생편의 외전이 두개정도 남았지만 본편의 완결로 기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군요. 좀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외전을 다 끝내고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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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하.. 후편이라는게 외전이었군요;; 어쨌든 그때 끝나고 후기도 기대하겠습니다~!
비유를 참 잘하시는군요. 외전이라...기대하며 계속 건필하시기를 바래요.
완결을 축하드립니다. 저도 어서 완결을 보고 싶어요 .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가 완결되는 건가요. a 다음 이야기도 볼 수 있도록.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