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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고, 한국과는 다르게 고소득으로 진입하기도 전에 고도의 고령화 단계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되어 더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미주개발은행(IDB, Inter-American Development Bank)은 최근 연금, 의료 및 장기요양의 세 분야를 중심으로 각국별 사회안전망에 대한 지수를 만들어 발표한 바 있다. 연금은 빈곤을 감소시키고, 의료 서비스는 국민 건강을 증진시킴과 동시에 미래 고비용이 발생할 위험을 줄임으로써 빈곤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 장기요양 서비스는 돌봄에 의존하는 노인의 복지증진은 물론 요양보호사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다양한 기능도 한다.
IDB는 본 보고서를 통해 4개의 인사이트를 도출하였다. 먼저 지난 20년 동안 중남미 노인들의 삶의 질이 상당히 향상되었다. 65세 고령자의 경우 2000년에만 해도 비교적 윤택하고 건강하게 7.1년을 더 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2019년에는 이 연한이 40% 증가하여 9.7년이 되었다. 이러한 기대수명 연장은 노인들에 대한 소득 보장이 개선된 덕분이다. 다만, 국가별로는 차이가 있는데, 파나마, 칠레, 우루과이, 브라질에서는 65세의 사람이 건강하게 12년을 더 살 것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과테말라나 온두라스와 같은 나라에서는 5년 미만이다.
둘째, 일부 진전에도 불구하고 노인의 삶의 질 향상을 지원하는 사회보장 정책의 적용 범위, 서비스 품질 보장 및 지속 가능성과 관련된 이슈가 크다. 연금은 일부 국가에서 비교적 높은 수준의 사회 보장을 달성하는 유일한 영역이다. 의료의 경우 대부분의 국가에서 보장 범위가 넓지만, 접근성에 대한 장벽이 있고 서비스의 품질도 전반적으로 낮다. 장기요양시스템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일부 존재한다고 해도 보장범위가 낮고 서비스의 질이 매우 낮다.
셋째, 인구 고령화로 인해 노인 인구에 대한 사회보장 정책이 재정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큰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금, 노인 의료, 장기요양에 대한 총 지출은 2020년 기준 GDP의 7%였는데 2050년에는 14%로 증가할 전망이다. 증가분의 약 절반은 연금 때문이다. 현재의 추세가 지속된다면, 일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인구가 고령화됨에 따라 OECD 지출 수준을 초과하는 수준에 오르지만, 여전히 다소 낮은 품질의 사회보장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는 이 지역이 고령화라는 도전에 대응할 수 있도록 사회보장 정책을 적절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적용 범위를 넓히고 보장서비스의 품질을 제고하는 동시에 비용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사회보장과 타 영역 간의 통합적인 접근(Holistic Approach)을 채택하여 정책 시너지와 보완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이제 각각의 영역에 대한 현황과 구체적인 도전과제 및 국가별 차이에 대해 알아보자.
연금
연금의 경우 IDB 연구는 다음과 같은 특이사항을 발견했다. 1) 지난 10년 동안 라틴아메리카 노인의 주요 수입원은 연금이다. 2) 노인들의 노동 참여가 증가했는데, 이는 여성의 노동 참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3) 금전적 소득이 없는 노인들이 크게 줄었는데, 대부분의 국가에서 비기여적 연금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지역내 연금 수급자 중 기여와 비기여 연금자 비율은 대략 2:1로 추산된다.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연금 혜택이 제한적이다. 평균적으로 볼 때 2019년 기준 65세 이상 성인의 69%가 연금 수혜자로 나타나 20년 전의 46% 대비 대폭 향상되었으나, 국가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볼리비아, 수리남, 브라질, 가이아나, 칠레, 우루과이는 85% 이상의 연금 수급률을 보인 반면,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등은 20% 미만이다(<그림 1> 참조).
<그림 1> 라틴아메리카 국가별 연금 수급률
자료: IDB (2023) p.45
질적인 측면에서 노령인구의 복지에 연금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가를 알 수 있는 더 중요한 지표는 연금을 은퇴 전 평균 급여로 나눈 소득대체율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소득대체율은 42%로 조사되었는데, 이는 2020년 기준 OECD 평균인 42.2%와 유사하며, OECD 최하위인 한국의 31.2%를 상회한다 (한겨레신문 2022). 이 역시 국가별로 다양한데, 엘살바도르, 파라과이, 콜롬비아, 우루과이, 브 라질 등은 50%를 상회하나, 칠레, 페루, 볼리비아는 30%에 못 미쳐 국가별 특수성을 충분하게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비기여성 연금이 대부분인 볼리비아의 경우 소액의 연금이 대부분의 노령층에서 지급되고 있다는 뜻이며, 칠레의 낮은 소득대체율은 - 소득 대비 낮은 연금액으로 파악된다. 연금수급률이 낮으나 소득대체율이 높은 엘살바도르의 경우 국가 복지보다는 고액 소득자의 기여성 연금이 대부분이라 연금 혜택에 상당한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고령화로 인한 연금 지출 주요의 증가는 대부분의 정부에 엄청난 재정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연금 지급액이 큰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등을 중심으로 공적 연금 지출 압박이 커질 전망이다.
의료 보장
의료의 경우 라틴아메리카의 의료 접근성은 비교적 높은 편이다. 14개의 의료서비스 지표를 종합한 세계보건기구(WHO)의 필수의료서비스지수(Index of Essential Services Coverage)의 경우 역내 19개 국가가 70점 이상을 기록했고, 우루과이, 파나마, 브라질은 OECD 평균인 80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반면 과테말라와 아이티는 60점 미만을 기록했다.
라틴아메리카의 기대수명은 날로 늘어나고 있지만, 이 사실 자체만으로 최적의 건강 상태에서 노후를 보낸다는 뜻은 아니다. OECD 국가에서 평균적인 65세 노인은 건강하게 15년을 살 것으로 기대되는데, 라틴아메리카 역내 평균은 14년이며 볼리비아, 가이아나, 아이티와 같은 국가들은 최대 11년 정도로 다소 편차가 크다.
라틴 아메리카 역내 의료 부문의 가장 큰 위협요인은 당뇨병, 암, 고혈압과 같은 비전염성 만성질환의 확산이다. 성인병 확진자들은 60% 이상의 비교적 높은 비율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림 2> 참조). 그러나, 특히 만성 질환 관리를 위한 의료 서비스의 질이 낮아서, 전문가들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에서 만성질환으로 사망한 환자의 70%가 의료 접근성 부족 때문이기 보다는 부적격 인력이나 시설 미비, 적절한 관리 부실 등 질적인 요인 탓으로 추정하고 있다. 즉,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노령층은 의료 시설과의 거리, 대기 시간, 문화적 장벽, 의약품 또는 의료인력 부족, 그리고 높은 제반비용 등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적절한 접근에 여전히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림 2> 라틴아메리카 주요국의 성인병 유병자 치료율
자료: IDB (2023) p.58
또한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남성은 심혈관질환, 암 등 사망률이 높은 질병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반면, 여성은 근골격계, 정신적 또는 신경학적 상태와 같이 매우 쇠약해질 수 있지만 사망률이 낮은 질병에 더 잘 걸린다.
따라서 기름진 식단, 운동 부족, 그리고 술과 담배 소비와 같은 위험 요소들을 통제하는 진지한 노력이 없다면, 만성질환 인구의 비율은 증가하게 될 것이며, 이는 불필요한 지출로 이어져 결국 노령인구의 빈곤화를 촉진시킬 가능성이 크다.
장기요양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에는 일상생활 및 기본적인 활동에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이 800만 명에 이르며, 모두 장기적인 돌봄 서비스가 필요하다. 인구통계학적 추세만으로도, 이 수치는 2050년에 이르러 세 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돌봄 서비스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이 지역 국가들은 장기요양을 복지 정책 의제에 포함시키는 추세에 있다. 그러나 현재 라틴아메리카의 공공 장기요양 적용 범위는 좁다. 이 지역에서 장기요양 보장 수준이 높은 국가는 아르헨티나와 코스타리카인데 (IDB 2023, 66), 그럼에도 수혜율은 20%에 못 미칠 정도로 매우 낮다. 코스타리카 정부는 144명의 민간단체에게 보조금을 지급하여 1만 8,000명의 노인들에게 홈 케어, 데이 케어 및 주거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르헨티나는 노령인구의 약 40%인 13만명의 노인들에게 현금 보조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보장률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 공공 장기요양 서비스의 적용 범위는 5% 미만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역내 국가의 장기요양 서비스는 질적인 측면을 논하기 어려울 정도로 낮은 품질을 보이고 있다.
만약, 장기적인 관리 시스템 개발 등 적절한 품질로 50%의 장기요양 보장을 목표로 한다면, 연간 지출은 2050년에 GDP의 1.5%까지 늘어날 수 있다. 물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결언
라틴아메리카의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지구상의 고령화 지역에서 가장 열악한 공적 보장 체계를 갖고 있어 실효적 개혁이 매우 시급하다. 원칙적으로 보자면 그 핵심은 연금의 형평성 제고, 보건 측면에서 만성질환 예방과 관리에 집중, 장기요양의 개념화와 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다. 역내 국가별 출발점과 정책 환경은 다르겠지만, 이와 같은 과제는 지역 전반에서 공통으로 해결해야 할 사항이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적인 주장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현실성이 없다. OECD 국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열악한 재정 구조와 만연한 불평등, 낮은 사회 통합도, 그리고 경쟁력 부족 등에 당면한 라틴아메리카의 상황은 복지를 지탱하기에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지역의 고령화 대책은 기존의 OECD 국가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연금, 보건, 장기요양의 3개 부문 간 통합적 접근을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건 및 장기요양은 통합을 원칙으로 하면 중복과 비효율성이 제거될 수 있다. 둘째, 정치적 결단 및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일부 집단이 받는 고액 연금을 축소하여 소외계층에 대한 혜택을 확대한다. 셋째, 나아가 양적 확대와 더불어 복지 서비스의 질적 제고를 도모하기 위해 디지털 및 정보통신기술(ICT) 등 기술적 접근을 시도한다.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로 상징되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도전과제는 우리만의 이슈가 아니다. 라틴아메리카 역시 우리와 비슷한 인구변동이 밀려올 것이며, 각각의 경험과 해결 노력이 상대방에 큰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공동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그 어느때보다 한국과 중남미가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모두 공유하는 가운데 긴밀하게 협력하여 각자의 해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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