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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 http://cafe.daum.net/Europa/1AT/22143
동방에서 열심히 구르다 십자군이 뜬금없이 선포되서 유럽을 보니 글쓰기 골때리는 판도가...
이번화부턴 유럽 역사가 게임 진행상 실제와 다르게 진행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헨리 2세가 잉글랜드에서 쫓겨나 아키텐 왕국을 세운다거나, 필리프 2세 대신 소년 루이 8세가 등극했다가 일찍 죽어서 방계가문으로 넘어간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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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년, 성지를 회복한 이래로 서유럽에선 많은 변화가 일어나 있었다.
1183년 잉글랜드에서 일어난 대대적인 반란으로 플랜태저넷 왕가는 잉글랜드에서 방출되었고 헨리 2세는 바다를 건너 왕비 엘레오노르의 영지 아키텐으로 도망쳐야만 했다.
우연히 같은해 프랑스의 소년왕 루이 8세가 의심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면서 카페 왕조가 끊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노르망디와 아키텐의 대영지를 가지고 있던 헨리 2세는 이를 기회로 보고 스스로 아키텐 왕국을 선포, 스스로를 아키텐과 노르망디의 왕 헨리 1세로 선언하며, 노르망디 공작과 프랑스 왕으로 이어진 애매한 봉신관계를 파괴하고 독립하고자 했다.
헨리 2세가 발빠르게 남프랑스에서 세력을 확대하는 동안 파리에선 카페 가문의 방계 가문들이 서로 왕위를 차지하고자 다투느라 대처를 하지 못했다.
그 사이 헨리 2세, 아니 이젠 아키텐의 헨리 1세는 툴루즈를 제외한 남프랑스를 평정하고 북부로 진격, 파리를 함락시키고 위해 진군했다.
파리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프랑스 귀족들은 합의를 통해 루이 6세로부터 이어진 카페의 방계 가문, 발루아 공작 로베르 드 드뤼(드뤼의 로베르)를 왕으로 추대했다.
왕위에 오른 로베르 3세는 헨리 1세의 군대와 맞붙었다.
블루아에서 두 군대는 격돌했고 하루종일 이어진 전투 끝에 로베르 3세는 아키텐군에게 대승을 거뒀다.
헨리 1세는 망명지에서의 야망이 꺽여 아키텐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프랑스를 정복, 프랑스를 거점으로 잉글랜드를 탈환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접고 헨리 1세는 아키텐 왕국의 행정과 관료제를 정비하는데 남은 삶을 보냈다.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해낸 로베르 3세는 귀족들로부터 대왕의 칭호를 받으며 경탄의 대상이 되었지만 왕위에 오른지 5년밖에 되지않은 1188년 3월, 남프랑스 원정을 계획하다 중병에 걸려 사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라이벌 헨리 1세도 같은해 7월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후계자 문제에 있어서는 헨리 1세가 로베르 3세보다 훨씬 운이 좋았다.
드뤼 가문에서 잇달아 어린왕이 올라 일찍 죽거나 왕이 전사, 병사하며 국운이 기우는 동안 아키텐에선 유능한 헨리 2세가 오랫동안 왕위를 유지하며 프랑스를 공격했고 드디어 노르망디까지 영토를 확장하는데 성공했다.
끝을 모르고 추락 중인 프랑스 왕국을 무시하던 헨리 2세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아직도 아키텐에 반항적인 툴루즈 공작 레몽뿐이었다.
잉글랜드에선 버몬트 가문의 찬탈자, 윌리엄 3세가 플랜태저넷 가문을 쫓아내는데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플랜태저넷에 충성하는 영주들을 토벌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강성해진 아키텐 왕국이 플래태저넷파 영주들을 지원하기 시작하자 플랜태저넷파 영주들은 더욱 기세등등했고 심지어 아키텐 왕국의 원정대는 템스강 하부의 미들섹스와 서리를 점령하고 런던을 향한 무력시위를 반복했다.
찬탈 과정에서 버몬트 가문을 적극지지했던 일부 가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영주들은 방관하며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윌리엄 3세는 가문의 영지인 워릭을 중심지로 전투를 계속했다.
이베리아에선 포르투갈, 레온, 아리곤, 나바라, 카스티야의 5대 가톨릭 왕국이 이슬람 알모하드 왕조를 향한 레콩키스타를 계속하며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수십년 동안 전쟁을 치루고 있었다.
신성로마제국에선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위대한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 대제가 죽은 뒤 아들 하인리히가 황제위 계승을 시도했으나 아버지의 경쟁자 하인리히 사자공과 결탁한 룩셈부르크 공작 루트비히에게 패하고 제위를 넘겨줘야만 했다.
1168년 제위에 오른 루트비히 1세는 아들 루트비히 2세에게 황제위를 계승시키는데 성공하며 룩셈부르크 왕조를 열었지만 호엔슈타우펜 가문은 그동안 인내하며 힘을 길렀다.
하인리히 사자공이 죽고 독선적인 성격으로 인기가 없던 루트비히 2세도 병사하자 드디어 바르바로사의 삼촌이자 호엔슈타우펜 왕조의 기틀을 닦은 독일왕 콘라트 3세의 아들, 프리드리히가 제위에 도전한 것이다.
프리드리히는 젊은 시절 음유시인을 하며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는, 독일 귀족치고 독특한 성장기를 보냈다.
시인 일을 하며 정직하고 근면하다는, 직업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좋은 평을 받으며 평민들에게 인기가 좋았고 귀족들에겐 게임의 달인으로 명성이 높았다.
이런 상충대는 호평을 받으면서 프리드리히는 야망을 숨기며 인내했고 마침내 55세의 나이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선거에 참가했다.
루트비히의 아들 아델하르트 역시 비범한 인물이었으나 프리드리히에게 패했고 룩셈부르크까지 빼았겼고 가문은 몰락했다.
1200년, 55세의 나이에 황제가 된 프리드리히 2세는 심복 고트프리트 드 나무르(나무르의 고트프리트)에게 룩셈부르크 공작위를 하사했고 반대파를 하나하나씩 제거해나갔다.
언제나 그렇듯 강력한 황권을 원하는 황제가 나타나자 교황이 이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결국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황제과 교황이 오래된 경쟁이 다시 시작하는 중이었다.
1208년, 동방의 사신단을 만난 우르바누스가 클레르몽에서 기독교 군주들을 소집하자 왕들은 교황이 이번엔 무슨 잔소리를 하려고하나 싶으면서도 대충 예상은 하고 직접 오거나 대리인을 보내는 형식으로 하나둘씩 클레르몽에 나타났다.
가까운 곳에 있던 아키텐의 헨리 2세는 느긋하게 오면서도 가장 먼저 도착했고 헨리 2세를 경계한 프랑스 왕 베르나르는 교황이 클레르몽을 비무장지대로 선포하고 헨리 2세가 비무장 맹세를 하고나서야 나타났다.
이미 이교도와 싸우고 있는지라 교황의 허락을 받은 이베리아와 폴란드, 북유럽의 군주들은 각기 심복을 대리인으로 보냈는데 특이하게도 덴마크 왕 발데마르 2세는 전사들을 이끌고 나타나 다른이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게 했다. 교황이 신앙심 깊다고 덴마크 왕을 칭찬한 것은 덤이었다.
잉글랜드 왕 윌리엄 3세는 병에 걸린 상태라 원래라면 왕자 기 드 버몬트를 보내야했지만 자신이 죽은 뒤 귀족들이 마음대로 새로운 왕을 세울까 두려워 시간을 끌다가 교황이 공개적으로 잉글랜드 왕의 불성실함을 토로하자 어쩔 수 없이 왕자를 보냈다.
프리드리히 2세는 가장 큰 규모의 호위대와 함께 어슬렁거리며 가장 마지막에 나타나 교황의 화를 돋구었지만, 사실 프리드리히 2세 역시 이탈리아의 첩자들로부터 정보를 듣고 우르바누스 3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소집을 외친지 3달 가까이 지나 유럽의 군주들이 클레르몽에 대강 모이자 우르바누스 3세는 왕과 귀족들, 그리고 수많은 민중 앞에 서 설교의 색을 띤 연설을 했다.
가장 신심깊은 모습을 보여야하는 군주들과 귀족들이 세속의 욕망에만 취해있으며 숭고한 선행은 팽개쳤다는 등의 과격한 연설을 하며 민중들이 충격을 받고 귀족들과 군주들이 반성하고 있는 동안 몇몇 이들은 심드렁한 상태였다.
딱히 누가 전자고 누가 후자라고 찝을 순 없었지만 아키텐의 왕은 명백히 후자의 행태를 보여주었다.
그에 반해 발데마르 2세나 느지막이 나타난 모습과 달리 프리드리히 2세는 교황의 연설에 열성적으로 반응했다.
교황이 연설하면서 흥분할 때마다 발데마르와 전사들은 교황의 의견에 찬성하는 외침을 하거나 대답했다.
프리드리히 2세는 -믿기 힘든 기록이지만- 교황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눈을 반짝였고 군주들의 도덕적 타락을 비판하는 부분에선 고통스런 얼굴을 하며 깊이 반성했다.
연설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 교황은 드디어 십자군 얘기를 꺼냈다.
죄를 씻고자 했던 명예롭고 숭고한 이들이 모여 고난 끝에 기적처럼 해낸 제1차 십자군.
타성에 젖어 허술한 마음으로 일으켰다가 하나님에게 버림받고-사실 십자군 스스로 자멸한 것에 가깝지만- 실패한 제2차 십자군.
그리고 지금, 전유럽에 수많은 정신의 죄인들이 넘쳐나는 지금, 포악하고 색욕과 식욕에 빠져사는 교활한 이슬람 이교도들에게 고통을 겪고 있는 지금.
다시 제1차 십자군의 정신을 되살려 구원의 땅, 예루살렘을 회복할 제3차 십자군이 필요하다는 말로 교황이 연설을 끝낼 때, 흥분한 민중들과 귀족들, 왕들은 그에 열광했다.
자신의 연설 솜씨에 감탄하는 교황과 무대 아래에서 안심하는 동방의 기독교 사신단은 흡족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물론 스테파노스 공작의 동생, 알렉스 예르반드 역시 그 감격스런 현장을 보았다.
덴마크 왕 발데마르 2세는 당장에라도 십자군에 참가해 동방으로 출발하겠다고 외쳤지만 허술하게 계획을 짰다가 모든 것이 망가진 제2차 십자군의 실패를 걱정했던 교황은 그를 진정시키고 원정대의 조직을 시작했다.
이 때 프리드리히 2세가 십자군의 총사령관으로 군대를 이끌겠다고 주장해 교황의 의심을 샀지만 위신으로 보나 군대의 규모로 보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총사령관을 맡겠다는 걸 함부로 반대하긴 어렸웠다.
발데마르는 그해가 지나가기 전까지 군대를 조직해 이탈리아로 오겠다고 맹세했지만 베르나르와 헨리는 직접 가진 못하겠지만 예산과 군대를 지원하겠다고 하며 한발짝 거리를 두려고 했다.
원정 준비가 비교적 원활할, 가까운 아키텐과 프랑스가 빠지자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선봉대의 최고자가 될 것이 예상됬고 이를 부담스럽게 여긴 교황은 잉글랜드에게 기대를 걸었다.
이미 교황의 눈초리를 받고 있던 잉글랜드의 기는 교황에겐 다행스럽게도 본인이 직접 군대를 이끌겠다고 맹세했지만 일단 잉글랜드로 돌아가 왕께 허락을 받겠다고 했다.
베네치아인들과 제노바인들은 교황의 연설에 감복해 '적절한' 금액을 할인해 배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온전히 교황의 마음대로 된 것은 아니었지만 십자군 원정대 계획은 대략 완성되었다.
제1군은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 2세와 교황의 특사, 독일과 이탈리아 영주들의 군대.
제2군은 발데마르 2세가 이끄는 덴마크와 프랑스, 아키텐의 기사들.
제3군은 잉글랜드 왕의 군대와 교황이 직접 소집하고 또다른 특사가 이끌 군대와 극소수의 성기사, 그리고 수많은 민중 순례자들.
어느덧 62세였지만 여전히 팔팔한 프리드리히 2세와 교황의 특사 추기경 굴시는 아키텐과 프랑스가 보태준 지원금에 돈을 더해 베네치아에서 배를 타고 가기로 했다.
발데마르 2세 역시 제노바에서 선박을 대여하기로 했다.
제3군은 순례자들을 보호하며 육로로 행진해 비잔티움을 지나 성지로 가기로 했다.
알렉스를 비롯한 사신단은 신성로마황제와 행동을 같이하기로 했다.
잉글랜드의 윌리엄 3세는 그사이에 건강이 호전됬는데 왕국의 후계자가 머나먼 성전을 떠나느니 차라리 자기가 가겠다고 지원하고 아들 기를 사실상의 잉글랜드 왕의 지위에 임명한 뒤 자신이 직접 십자군에 참가했다.
1208년.
이들은 원정을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만 성공하리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바라신다면.
Deus Vult.
프리드리히 2세 폰 호엔슈타우펜 Friedrich von Hohenstaufen '압제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슈바벤 공작
개인특성 : 현란한 책사, 시인, 게임의 달인, 야망, 정직, 인내, 근면, 겁쟁이, 피해망상 등
능력치 : 20 15 15 15 12 (정상)
헨리 2세 플랜태저넷 Henry Plantagenet
아키텐 왕국의 왕, 아키텐과 포이투의 공작
개인특성 : 위대한 신학자, 매력, 만족, 박식, 태만, 냉소, 겁쟁이, 인내, 그외 온갖 어마무시한 병들(아직 안 죽은게 신기)
능력치 : 3 1 6 2 18 (1215년 기준, 온갖 병 걸려서 능력치 대폭하락한 상태, 평소엔 훨씬 높음.)
베르나르 드 드뤼 Bernard de Dreux
프랑스 왕국의 왕, 발루아와 오를레앙의 공작
개인특성 : 마이다스의 손, 영재, 사교적, 친절, 겁쟁이, 흉통 등
능력치 : 12 7 18 5 8 (정상)
발데마르 2세 에스트리드 Valdemar Estrid
덴마크 왕국의 왕, 셸란 섬의 공작
개인특성 : 뒷거래사기꾼, 예민, 흉터, 인내, 완고, 겁쟁이 등(겁쟁이 특성 왜 이렇게 쉽게 붙지?)
능력치 : 11 9 11 8 10 (정상)
윌리엄 3세 드 버몬트 William de Beaumont
잉글랜드의 왕, 워릭 공작
개인특성 : 흑막의 거물, 흉터, 신뢰, 만족, 친절, 인내, 청빈, 독실 등
능력치 : 15 8 4 2 11 (정상?)
기 드 버몬트 Guy de Beaumont
잉글랜드 왕자
개인특성 : 환영의 그림자, 근면, 자비, 친절, 정직, 독실 등
능력치 : 10 11 2 7 9 (정상)
우르바누스 3세 디 살루쪼 Urbanus di Saluzzo
교황
개인특성 : 전쟁성직자, 내성적, 독단, 탐욕, 순결, 근면, 겁쟁이, 술고래 등
능력치 : 0 1 5 3 14 (1215년 기준, 온갖 병 걸려서 능력치 대폭하락한 상태, 평소엔 그럭저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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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건 분량이 좀 짧네요..ㅈㅅ;;
서유럽쪽이 가상역사가 진행된지라 전쟁기록과 트레잇, 인물관계 등으로 어떻게든 스토리를 짜맞췄네요.
스샷은 1215년건데 신롬에서 반란뜬 거 빼곤 차이도 없어서 올렸습니다.
물론 다음편을 위해 일부러 중동쪽은 가렸습니다.
이번건 아르메니아처럼 완전 가상이 아니라서 위키백과 뒤져가면서 써갔네요.
지금 보니 서유럽 군주들 중에 십자군 트레잇 붙은 얘들도 많고 카페 왕조가 끊겨서 방계로 이어진 건 정말 의외.
쓰다가 메리수를 만들거나 오버하지 않도록 조심했는데 왠지 내일 보면 굉장히 창피해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려.
혹시 오타 있으면 지적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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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밌네요 굿 연재 새로운거 등장...
감사합니다. 땡큐.
사실 트레잇 보고 이런 저런 상상은 해도 이렇게 글로 쓰긴 어려울 것 같은데 필력이 있으시네요. 다음 편 기대할게요!!
소재거리가 떨어질 때까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