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올해 1분기에만 한국은행 자금 32조원을 끌어다 쓴 가운데 정부 일각과 국민의힘 일부에서 상속세 세율을 현행 40%에서 30%로 낮추자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오스트리아계 독일 상속녀 마를렌 엥겔호른(32)은 상속세를 폐지한 오스트리아 정부를 향해 '부자에게 세금 좀 물려라'고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할머니로부터 물려받는 상속분을 전액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혀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올해 1월에는 시민 대표들의 의견을 들어 2500만 유로(약 371억원)의 상속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을 결정하겠다고 선언해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관심을 끌었는데 지난 3월부터 얼마 전까지 여섯 주의 주말에 50명의 시민 대표들과 잘츠부르크에서 머리를 맞대 77개 사회단체 등에 기부하는 식으로 상속분을 나누기로 결정했다고 영국 BBC가 18일(현지시간) 전했다.
독일 화학제약 기업 BASF의 창업자인 프리드리히 엥겔호른의 상속녀인 그녀는 처음부터 부의 재분배를 강력히 주장했다.
그의 상속분을 나눠갖는 77개 오스트리아 기관은 환경보호, 교육, 사회통합, 건강과 사회보장, 빈곤 해결, 홈리스, 염가 주택을 공급하는 단체 등이 망라돼 있다고 BBC는 전했다. 이들 기관 가운데 가장 적은 몫을 차지하는 곳은 4만 유로의 기후변화 데이터베이스 지원 단체이며, 가장 많은 액수를 챙기는 곳은 오스트리아 자연보전연맹으로 160만 유로다.
100만 유로는 좌파 싱크탱크인 모멘텀 인스티튜트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고삐 풀린 금융시장"에 반대하는 '아탁 오스트리아'(Attac Austria)에 맡겨진다. 가톨릭 사회부조 단체인 카리타스 같은 종교 자선단체들도 상속분을 받는다.
시민대표단은 이번에 결정된 기부금 대부분은 몇 년에 걸쳐 나눠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민대표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빈의 학생 키릴리오스 가달라(17)는 이번에 참여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털어놓았다.
엥겔호른은 성명을 통해 "내가 물려받은 부의 커다란 몫은 출생했다는 것만으로 힘있는 지위로 이끌었다. 이것은 모든 민주적 원칙에 어긋난다. 따라서 이제 민주적인 가치에 조응해 재분배된다”고 밝혔다.
엥겔호른은 2022년 9월 세상을 떠난 할머니 트라우들 엥겔호른베키아토로부터 수백만 유로를 물려받았다. 할머니의 재산은 미국 잡지 포브스에 의해 42억 달러로 추정됐다. 할머니가 세상을 뜨기 전부터 엥겔호른은 상속분의 많은 몫을 기부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렇게 사회에 환원한 뒤 자신의 손에 얼마 만큼이 남는지 공개하지 않았는데 2021년으로 돌아가면, 엥겔호른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출생이란 로또"에 당첨돼 손에 쥔 부의 90%를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과거에도 엥겔호른은 오스트리아에 상속세 재도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스트리아는 2008년 상속세를 폐지했다. 유럽에서도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아 죽음에 따르는 의무를 부여하지 않는 나라는 열 손가락이 되지 않는다고 BBC는 전했다.
한편 한겨레신문의 지난 17일 보도에 따르면 2022년 법정 최고세율이 적용된 피상속인은 955명으로 전체 피상속인의 0.27%에 불과했다. 상속액이 30억원 이상인 이들의 일인당 평균 상속세 과세가액은 420억원에 이른다. 이들이 내는 세금은 전체 상속세액의 90%를 차지한다. 이들의 평균 상속세 과세가액은 마를렌 엥겔호른의 상속분을 웃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지난 16일 언급한 “최고세율 50%에서 30%로 인하”는 1000명이 채 되지 않는 초고액 자산가들의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이야기이고, 전체 상속세액의 90%를 차지하는 세금을 상당 폭 줄여 세수 부족을 심화시킬 것이 뻔하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지난해 56조원의 세수 결손이 있었고 올해도 30조원대 결손이 점쳐지는 가운데 중산층 세 부담 완화를 내세워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앞뒤 다른 주장을 책임있는 정부 여당이 주도하고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덩달아 나서려다 멈칫하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