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협동조합이라는 '양날의 칼'
협동조합은 시장에서의 사업을 통해 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욕구를 충족하는 경제체다. 사업을 위한 자본은 조합원의 책임에 의해 조달되며, 조직의 운영은 1인 1표 원칙의 민주성을 기반으로 한다. 이것이 결합자본의 다른 형태인 주식회사, 합자회사, 합명회사 등과 다른 점이다.
이러한 협동조합의 '민주성'은 다른 기업 형태에 비해 장점과 단점으로 작동될 수 있다. 과다한 의사결정비용과 조합원의 무책임으로 경쟁력을 잃어버릴 수 있으며, 반대로 조합원들의 강한 참여로 경쟁력이 발현될 수도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조직의 관료주의와 구성원의 무책임을 회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협동조합에서는 조합원의 모임 참석률이 낮고, 때로는 총회를 위한 정족수를 채우는 것조차 어렵다. 민주적 참여에는 참여의 비용이 들며, 많은 경우 구성원 스스로 참여의 의무를 회피하는 경향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구성원의 부화뇌동에 의해 조직이 망가지기도 한다.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협동조합이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치열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이 더해질 때만이 성공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아이쿱의 사례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1997년 8월 경인지역생협연대 준비위원회의 발족으로 시작된 아이쿱은 2019년 기준 99개 회원조합 및 29만 3,812명의 조합원이 참여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소비자생활협동조합으로 성장했다. iCOOP생협은 '나'들이 함께 모여(i)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ideal) 초심을 잃지 않고(innocence) 혁신하는(innovation) 협동조합(Cooperative)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러한 아이쿱의 성장 동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필자는 지극히 협동조합 7원칙을 잘 지켜나간 데 있다고 본다. 협동조합 7원칙의 키워드는 바로 바로 '사람, 협력, 지역'이다. 서로 십시일반으로 사업하고(제1원칙: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 제3원칙: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함께 결정하고(제2원칙: 민주적 운영), 열심히 경쟁력을 쌓고(제5원칙: 교육·훈련의 강조), 공동의 비전을 가진 조직들과 협력하며(제6원칙: 협동조합 간 협동),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제7원칙: 지역사회의 관여) 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 원칙을 지켜나가는 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남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책임하에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제4원칙: 자율과 독립)이 협동조합 성공의 비결이다.
■ 아이쿱 성장의 원인 1 : 경쟁력 확보를 위한 '사업의 집중'
1997년 창설 이래 아이쿱의 운영 전략은 경쟁력 확보를 위한 '사업의 집중', 조합원 자치를 위한 '조직의 분화', 나그네 조합원을 줄이기 위한 '조합원 책임의 확대', 사회적경제의 다양한 조직과의 '연대망 강화'로 정리해볼 수 있다.
아이쿱의 제품 및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한 노력은 '사업의 집중' 과정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이것은 1997년 아이쿱의 전신인 '21세기 생협연대'를 만들 때부터 유지되어온 기본 방침이었다. 이에 대해 김형미와 지민진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아이쿱 사업의 역사 속에 그대로 나타난다. 아이쿱은 각 지역의 물류를 광역 혹은 전국 단위로 통합했으며, 이후 생산자 시설(공방)에 회원 시설(숙박시설 등)까지 포함하여 구례와 괴산에 커다란 클러스터를 만들었다. 수도권 6개 회원생협의 업무 시스템 통일(1999), 호남·영남·제주·중부 물류센터 개소(2004), 전남물류센터 개소(2007), 경남물류센터개소(2010), 구례자연드림파크 그랜드 오픈(2014), 괴산자연드림파크 그랜드 오픈(2017) 등은 경쟁력 확보를 위한 '사업의 집중'을 실현해가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이러한 '사업의 집중' 과정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 또한 많이 있었다. 지역생협 단위로 사업을 해나가는 것이 조합원 자치라는 협동조합의 정신에 부합한다는 명분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쿱이 채택한 방식은 조합원 자치와 사업의 효율성을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업의 집중이 조합원 자치를 저해하지 않았다는 점을 그 이후의 성과로도 잘 보여주었다.
■ 아이쿱 성장의 원인 2 : 조합원 자치를 위한 '조직의 분화'
생협이 조합원 자치의 원칙에서 벗어났을 때에는 일반 회원제 슈퍼마켓과 차이가 없어진다. 민주적 자치 과정을 통해 스스로 상품을 기획하고, 생산 과정을 감시하고, 지역 및 세상 문제에 관여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참여 장소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아이쿱은 지역조합을 '적정한 규모'로 분화함으로써 보다 많은 조합원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합원 활동의 기반은 각 지역조합이다. 지역조합의 50% 정도는 조합원 수가 1,000~3,000명 사이의 규모이며, 평균 2,000명 정도를 유지한다. 지역조합은 조합원 자치의 기본 단위로서, 중요 의사를 결정하는 이사를 선발하고, 마을모임, 식생활실천, 물품활동, 공익캠페인 등의 다양한 조합원 모임들이 펼쳐진다. 기본적인 교육 과정으로, 신입 조합원 교육·한걸음 교육·아이쿱협동학교·이사(理事) 코스 입문 등도 각 지역조합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2019년 현재 지역조합은 총 99곳 있으며, 지역 생협의 이사는 771명 재직하고 있다.
각 지역조합들 간에는 크게 3가지 방식으로 의견 수렴이 이루어진다. 먼저 14개 권역에서 열리는 권역별 대표자회의가 있다. 매달 열리며 각 지역조합에서 2명의 대표자가 참여한다. 현재는 각 권역별 대표자회의에서 아이쿱생협사업연합회의 이사와 감사, 아이쿱인증센터의 이사를 추천한다.
그 외에 3개의 광역 단위(서울·수도권·제주, 중부·호남, 영남)로 나누어 광역대표자회의가 열린다. 이사들에 대한 심화교육 등은 광역 단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활동 또한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가령 정부 식품표시제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2015년 열렸던 '아낌없이 표시하자, 아이쿱 카트 축제'는 서울과 광주, 대구에서 같은 날 동시에 개최되었다.
위의 모든 지역조직은 전국 연합조직으로 다시 모인다. 연합조직의 명칭은 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약칭, 아이쿱생협연합회)이며, 이것은 생활협동조합법을 근거로 설립한 비영리법인이다. 대외 관계에 있어서 전체 회원을 대표하며, 조합원이 필요로 하는 물자의 공동구매 및 공동물류, 공제사업 등을 수행한다. 전국 단위의 교육·훈련, 조직 지원, 회원조합의 사회참여 활동 지원도 연합회가 하는 일이다.
■ 아이쿱 성장의 원인 3 : 나그네 조합원을 줄이기 위한 '조합원 책임의 확대'
아이쿱의 특징 중 하나는 조합원으로서의 책임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타 구매생협에 비해 아이쿱 조합원의 출자금 규모, 조합비 납부, 구매액수 등은 압도적으로 높다.
아이쿱생협 조합원의 최초 출자금은 5만 원이다. 그러나 이 자금만으로는 사업체로서 필요한 설비투자 및 운영자금을 감당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아이쿱만의 독특한 '조합비' 제도와 '책임출자' 운동이다.
조합비는 조합 운영자금 충당을 위해 월 1만 원을 납부한다. 조합 운영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물품 판매에 의존하지 않고 조합원들의 멤버십에 의거하여 마련하는 것이다. 2019년 현재 아이쿱생협의 전체 출자 조합원은 29만 3,812명. 그중 26만 648명이 조합비를 납부한다. 이들이 납부한 300억 원 정도의 조합비가 아이쿱생협의 운전자금으로 사용된다.
'책임출자'는 아이쿱 사업을 위한 '자본'을 마련하는 역할을 한다. 아이쿱에서는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00만 원 이상 출자를 목표로 하는 책임출자금운동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2019년 현재 11,173명의 조합원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의 누적 출자금은 304억 원이다. 1인당 272만 원 정도의 출자금을 납부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쿱은 조합원의 출자금 등 적극적 참여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있다. '아이쿱 자연드림 마일리지' 제도로서 1 마일리지는 1원에 해당한다. 조합원 가입 연수(만 1년에 5,000 마일리지, 이후 매년 1,000 마일리지씩 추가 지급), 출자금(10만 원당 5,000 마일리지 추가 지급), 전년도 자연드림 이용액의 0.5%를 합산하여 인센티브로 지급한다. 2018년에도 조합원들에게 지급된 마일리지는 47억 3,700만 원이다. 그러나 이런 인센티브가 출자금과 구매액수 증가의 근본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이쿱협동조합의 활동에 참여하고, 그 운영을 책임지려는 '조합원 의식'의 반영일 것이다.
■ 아이쿱 성장의 원인 4 : 소비자와 생산자 및 관련 사회적경제 조직과의 '협력망 강화'
아이쿱은 소비자와 생산자를 연계하고, 국내외의 다양한 사회적경제 조직과 협력한다. 가령 매년 40억 원 정도 조성되는 '가격안정기금'은, 농산물 가격의 변동에 따른 소비자와 생산자의 이해 충돌을 막는다. 농산물 가격이 폭등할 때에는 이 기금을 사용하여 공급가격을 낮추고, 가격 폭락 시에는 농산물 가격을 안정화시킨다. 아이쿱의 조합원은 매달 조합비에서 300원을 적립하며, 생산자는 출하액의 일정 비율을 적립한다. 2019년 가격 및 재해기금은 50억 7,929만 원 조성되었고, 이 중 26억 5,454만 원이 농산물 수급과 가격 안정을 위해 사용되었다(『2019년 세이프넷 공동연차보고서』).
같은 역할을 하는 것 중 하나가 201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수매선수금' 제도다. 이것은 조합원이 구매 전에 일정 금액을 현금으로 미리 예치한 뒤 그 돈에서 차감하여 장을 보는 제도로, 계약 시 수매선수금을 생산자에게 지급하여 농가의 경영안정에 기여한다. 2019년 7만 8,067명이 수매선수금에 참여했고, 참여금액은 총 1,075억 원에 이른다. 이러한 협력 활동은 공정무역 해외 생산자와의 협력(공정무역기금), (재)한국사회적경제씨앗재단을 통한 사회 공헌,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서의 활동 등 다양한 차원으로 확대되어 갔다.
아이쿱과 파트너조직들은 2018년 자신의 협동조합 생태계 구축 방식을 중앙집권적인 연합회 방식이 아닌 네트워크 방식이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그 협력망을 '세이프넷(SAPENet, sustainable society and people-centered economy network)'이라고 명명했다. 2018년의 『세이프넷 공동연차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 협동조합 7원칙이 의미하는 것
아이쿱의 발전 과정에 큰 역할을 해왔던 신성식(전 iCOOP생협 생산법인 경영대표)은 그의 저서 『협동조합 다시 생각하기』(알마출판, 2014, 제1장)에서, 협동조합이라는 사람 중심 경제가 갖는 특유의 '가치비용'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영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노동인권 보장, 환경 보호, 농업 회생, 복지사회 실현, 빈곤국 민중 지원' 등을 고려해야 하며, 그것이 결국은 상품가격을 높게 만든다. 따라서 협동조합은 치열한 경영혁신이 필요하며, 새로운 상품·시장의 개발과 생산성 향상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쿱이 이러한 '가치비용'을 충분히 지불하면서도 현실경영체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사회적경제의 미래에 커다란 희망을 주는 일이다.
아이쿱 성공의 요인은 지극히 협동조합이 지켜야 할 원칙(7원칙)을 고수한 데 있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조합원들이(1원칙), 경영효율성을 위한 노력과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며(5원칙), 협동조합의 정체성인 의사결정 구조의 민주성을 지키려 노력했다(2원칙). 조합원들은 책임출자 및 조합비 등의 경제적 책임을 기꺼이 부담했으며(3원칙),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관련 사회적경제 조직과의 협력사업 또한 공고히 마련해갔다(6원칙, 7원칙). 그리고 이 모든 사업들을 정부 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제4원칙)에 의해 만들어 갔다. 협동조합 7원칙의 준수가 아이쿱을 한국의 대표적인 생협 조직으로 만든 중요한 요소였다고 필자는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