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휘경여고국어교사류덕균 원문보기 글쓴이: 오토바이
◉ 율리유곡(栗里遺曲) - 김광욱 |
|
▣ 본문 학습 ▣ |
<제1수>
도연명 주근 후에 또 연명(淵明)이 나닷말이,
밤마을 녜 일흠이 마초와 틀시고,
도라와 수졸전원(守拙田園)이야 긔오 내오 다르랴.
[해설] 지은이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 밤마을[栗里]에 은퇴하여 살면서 지은 '율리유곡'의 첫 연이다. 점층법의 표현이 인상적이고, 자신을 '귀거래사'를 지은 도연명을 자처하였다. 옛날 도연명이 살던 마을 이름도 율리였다. 이해타산에 너무나도 얽매인 현대인의 맹성을 위한 타산지석이 될 만도 하지 않은가.
<제2수>
공명(功名)도 잊었노라 부귀(富貴)도 잊었노라
세상 번우(煩憂)한 일 다 주어 잊었노라
내 몸을 내마져 잊으니 남이 아니 잊으랴
[해설] 속세를 잊고 산수 자연 속에서 자연의 섭리대로 무위의 경지와 탈속한 은사의 심경을 노래했다. 점층법과 반복법을 써서 세상과 인연을 끊으려는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어 작가의 고고한 자세를 읽을 수 있다.
<제3수>
뒷집에 술쌀을 꾸니 거친 보리 말 못 찬다
즈는 것 마구 찧어 쥐빚어 괴어내니
여러 날 주렸던 입이니 다나 쓰나 어이리.
---------
뒷집의 술쌀 꾸니 거츤 보리 말 못 차다
즈는 것 마고 띠허 쥐비저 괴아내니
여러 날 주렷든 입이니 다나 쓰나 어이리
<제4수>
강산 한아(閑雅)한 풍경 다 주어 맛다 이셔
내 혼 님자이니 뉘라서 톨소니
남이야 숨꾸지 여긴들 화 볼 줄 이시랴
[해설] 옛 사람들은 자연과 벗하는 생활을 나타낼 때 풍월주인, 서호주인 등으로 표현했다. 곧 지신이 자연의 임자임을 자처하면서 그 속에서 소요자적하는 생활을 하나의 이상으로 여겼던 것이다. 김광욱도 이를 닮아 자기가 자연의 임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제5수>
질가마 조히 씻고 바위 아래 샘물 길어
팟죽 달게 쑤고 저리저이 끄어내니
세상에 이 두 맛이야 남이 알까 하노라
[해설] 대단치 않은 음식인 팥죽과 절이 김치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며 남이 알까봐 걱정하고 있다. 전원생활의 즐거운 식생활과 안빈낙도의 생활을 노래했다. 또한 궁핍할 때 지은 것으로 보여 강인한 작자의 생활욕을 엿볼 수 있다.
<제6수>
어와 저 백구(白鷗)야 무슨 수고 하나슨다
갈숲으로 바장어며 고기 엿기 하는고야
나 같이 군마음 없이 잠만 들면 어떠리
[해설] 당시의 위정자들을 자신의 영달을 위해 권력[고기]를 찾아 혼탁한 정계[갈숲]를 헤매는 정치인[백구]의 모습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산림에서 '군마음' 없이 은거[잠]하는 화자 자신의 모습을 대비시킴으로써 정치 현실을 풍자하고 있는 연이다.
<제7수>
모첨 기나긴 해에 하올 일이 아주 없네
포단에 낮잠 들어 석양이 지나 깨니
문밖에 위 뉘 아함하고 낚시가라 하나니.
--------
모첨 기나긴 해에 하올 일이 아주 없네
포단에 낮잠 들어 석양이 지나 깨니
아희야 날 찾는 벗님이란 요지목산(遙指木山)하여라.
<제8수>
삼공(三公)이 귀타 한들 이 강산과 바꿀소냐
편주(片舟)에 달을 싣고 낚대를 흩던질 제
이 몸이 이 청흥(淸興) 가지고 만호후(萬戶侯)인들 부르랴
[해설] 옛 사람들은 삼공불환차강산(三公不換此江山)이라는 말을 즐겨 썼다. 아무리 삼정승의 부귀영화라도 이 자연과는 바꾸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 작품도 이런 생각을 한 것이다.
<제9수>
추강(秋江)에 밝은 달에 일엽주(一葉舟) 혼자 저어
낚대를 떨쳐 드니 잠든 백구(白鷗)ㅣ 놀란다.
어디서 일성 어적(一聲漁笛)은 좇아 흥을 돕나니
---------
추강(秋江)에 밝은 달에 일엽주(一葉舟) 혼자 저어
낚대를 떨쳐드니 잠든 백구 다 날거다
저희도 사람의 흥을 알아 오락가락 하더라
<제10수>
헛글고 싯근 문서 다 주어 후리치고
필마(匹馬) 추풍에 채를 쳐 돌아오니
아무리 매인 새 놓이다 이대도록 시원하랴.
[해설] 공무에 매어 복잡한 문서 속에서 살다가 모두 다 집어치우고 자유의 몸이 되어 훌훌 고향으로 돌아온다. 새장 속에 갇혀 있던 새가 자유를 얻은들 이렇게 좋을 수가 있을까? 늘 그리워하던 전원 생활을 눈 앞에 두고 신명이 나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때는 가을이어서 오곡백화가 향기롭게 익어 가고 논밭에서는 풍년가도 들렸을테니 그 모두가 작가를 환영하는 것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제11수>
대막대 너를 보니 유신하고 반갑고야
내 아이 적에 너를 타고 다니더니
이제란 창 뒤에 섰다가 날 뒤세우고 다녀라
[해설] 지은이의 호가 죽소인 것으로 미루어서도 그는 대를 몹시 좋아했나 보다.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는 대, 사철을 한결같이 푸른 대는 옛부터 지사의 절개에 곧잘 비유되었다. 결이 곧아서 쭉쭉 곧게 쪼개져 나가는 것에서 '대쪽 같은 성품'이라는 말도 생긴 것이다. 그 대를 어린 시절에는 대말을 만들어 말놀이를 하고, 늙어서는 지팡이를 만들어 짚고 의지하고 다닌다. 죽장망혜로 산천을 유람할 때도 대는 곁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대는 인생의 반려가 되었다.
<제12수>
세상 사람들이 다 쓸어 어리더라
죽을 줄을 알면서 놀 줄란 모르더라
우리는 그런 줄 알므로 장일취(長日醉)로 노느라
<제13수>
사람이 죽은 후에 다시 산 이 보았는다
왔노라 한 이 없고 돌아완을 본 이 없다
우리는 그런 줄 알므로 살아신 제 노노라
------
사람이 죽어가서 나올지 못 나올지
들어가 본 이 없고 나왔단 말이 없다
들어가 못 나올 인생이 아니 놀고 어이리
<제14수>
황하수 맑다더니 성인이 나시도다
초야 군현이 다 일어나단 말가
어즈버 강산풍월을 누를 주고 이거니
<제15수>
세(細)버들 가지 꺾어 낚은 고기 꿰어들고
주가(酒家)를 찾으려 단교(斷橋)로 건너가니
온 골에 행화(杏花) 져 쌓이니 갈 길 몰라 하노라.
[해설] 낚은 고기를 들고 술집을 찾아가던 화자가 골짜기에서 행화가 지는 모습을 보면서 발길을 옮기지 못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제16수>
동풍이 건 듯 불어 적셜을 다 녹이니
사면 청산이 예 얼굴 나노매라
귀밑에 해묵은 서리는 녹을 줄을 모른다
<제17수>
최행수 쑥달임 하세 조동갑 꽃달임 하세
닭찜 개찜 올여 점심 날 시키소
매일에 이렁성 지내면 무슨 시름 있으리.
♣ 핵심 정리 ♣ |
◉ 지은이 - 김광욱 : 조선 중기의 문신(1580~1656). 자는 회이(晦而). 호는 죽소(竹所). 1606년 증광시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형조 판서, 좌참찬, 우참찬 등을 지냈다. 《청구영언》, 《해동가요》에 시조 22수가 전한다. 저서에 《죽소집》이 있다.
◉ 갈래 : 평시조. 연시조
◉ 주제 : 세속적 가치를 초월한 유유자적한 삶에 대한 지향. 은거지에서 느끼는 삶의 흥취
◉ 특징 :
① 공간의 대비를 통해 현재의 삶에 대해 만족하는 태도를 보임
② 일상의 어휘를 사용하여 사실성을 높임
☺ 감상의 길잡이 ☺ |
인조 때 우참찬(조선 시대 정이품 문관)을 지냈던 글쓴이가 만년에 도연명의 ‘귀거래’를 본받아 율리라는 경치가 빼어난 곳에 은거하면서 지은 14수의 연시조로, 벼슬을 떠나 전원과 자연 속에 살아가는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노래한 작품이다. 작가는 당대의 정치 현실에도 무심하지 않아 나라를 위해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을 칭송하고 있지만 자신은 강산풍월을 두고 갈 수 없다고 하면서 정치 현실보다는 자연에 높은 비중을 두는 면모를 보이고 있다.
♠ 보충 학습 ♠ |
첫댓글 '栗里遺曲'을 보니 학창시절 고문공부를 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琴堤님은 참 잘 찾아 내십니다..ㅎㅎ
정성스레 올려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이 더우시죠?
여기 시원한거 보냅니다..^^*
추강(秋江)에 밝은 달에 일엽주(一葉舟) 혼자 저어
낚대를 떨쳐 드니 잠든 백구(白鷗)ㅣ ? 놀란다.
어디서 일성 어적(一聲漁笛)은 좇아 흥을 돕나니
추강(秋江)에 밝은 달에 일엽주(一葉舟) 혼자 저어
낚대를 떨쳐드니 잠든 백구 다 날거다
저희도 사람의 흥을 알아 오락가락 하더라.
감사합니다.저도 찾다가 올리며 공부합니다.
과일 듬뿍넣은 팥빙수 아주 좋아하는데 감사히 맛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