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말씀/삼하7:1-29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다윗에게 맺은 언약이라고 하여 "다윗 언약"(Davidic Covenant)이라고 부릅니다. 이 언약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축복하시며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다윗을 축복하셨고 또 무엇을 축복하셨을까요? 이 언약은 메시야 왕국의 건설에 대한 약속으로써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습니다(눅1:32,33).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다윗 왕국은 영원한 메시야 왕국을 의미합니다. 추석을 앞둔 우리들도 오늘 말씀을 통하여 다윗이 축복받은 연유를 잘 배우셔서 자손대대로 승승장구의 복이 계승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다윗은 내집보다 하나님의 집을 먼저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2b).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하나님께서 사방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다윗은 궁에 평안히 살게 되었습니다. 오랫만에 평화의 때가 이르렀습니다. 평화의 때가 되면 대개 사람들은 향락을 즐기고 문화사업이나 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평화의 때에 하나님의 집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하여 큰 일을 시도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궤를 모실 수 있는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자기는 백향목 궁에 거하는데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음을 깨닫고 죄송하게 여겼습니다. 다윗은 축복의 때에 축복만 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인가 큰 일을 시도하고자 했습니다. 근대 선교의 문을 연 윌리암 케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또한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평안의 때에 그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전을 생각하였고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였습니다. 자기는 백향목궁에 거처하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 장막가운데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궤를 둘 집을 짓고자 생각하게 되었고 구체적으로 이를 위하여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이 때 다윗은 새로운 기쁨과 사명감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우리도 축복의 때 먼저 하나님의 집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나는 좋은 집에 사는데, 나는 좋은 차를 굴리는데, 좋은 가전제품을 사는데... 하나님의 집은 뭐가 빈약하구나, 하나님의 것은 오래 되었구나, 내가 이 부분을 감당하여야겠다, 우리 교회학교를 지원하여야겠다 등등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기뻐하시고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을 축복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지금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다니셨고, 한번도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7) 하나님은 이 때까지 장막에 사시는 것으로 만족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품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충만하신 분이시요 또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어느 한 곳에 가둘 수 없습니다. 스데반집사님은 사도행전 7장에서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심을 선지자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행7:48-50) 하나님은 어느 한 장소에 고정된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서 언약궤와 모든 기구는 이동할 수 있도록 고리가 달려 있고 이를 덮는 것은 천막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섬김받기 위해 장막에 사시는 것이 아니라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섬기기 위해 장막에 사셨습니다. 이를 위해 거룩하시고 영화로우신 하나님께서 한없이 낮아지셔서 그들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성육신 하셔셔 죄인들을 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중심을 원하십니다. 오히려 크고 화려하고 멋있는 건물을 지으면 건물 자체에 얽매이게 되어 “우리 교회가 우리나라에서 최고 커”하며 심령이 부패하여 타락하게 될 위험성이 많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화려하게 지어졌었으나 나중에는 그 내부의 부패로 말미암아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교회를 늘 먼저 생각하고 교회를 염려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를 드리고 시간과 물질을 드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를 더 위할까 하며 삶을 늘 교회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영감이 성전을 짓는 것이였습니다. 다윗은 이를 위해 마음만 먹었는데도 하나님은 다윗을 기뻐하시고 그를 위하여 더 크고 위대하고 장엄한 영원한 계획을 말씀하셨습니다. 8,9절은 다윗 개인에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비천한 양치는 목자에서 취하여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지 그와 함께 하시며 모든 대적을 멸하여 그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다윗의 이름을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만들어 주겠다고 하십니다. 과연 이 약속대로 다윗의 이름은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윗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여 자식들 이름을 데이비드, 심지어 개에게까지 데이비드라 이름을 짓습니다.
10,11절은 평안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사 때와 같이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모든 대적으로부터 보호하심으로 평안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12-16절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집을 이루고 그의 자손 가운데서 세워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16절을 보면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나라 왕위가 영원히 보전되고 견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13-16절 사이에 "영원히"라는 단어가 세 번 나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스라엘 나라는 모두 망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B.C. 722년에 망하였고, 유다는 B.C. 587년에 망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 끊임없는 외적의 침입으로 평온할 때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의 진정한 뜻은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13:22,23절은 말합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사도 바울은 바로 이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음을 증거했습니다. 또 누가복음 1:32,33절에서 천사는 마리아에게 장차 태어날 예수님은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아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영원한 메시야 왕국을 이루고자 하신 것입니다. 다윗 왕국은 장차 올 메시야 왕국의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영원한 메시야 왕국에 대해 생각해 봐야 됩니다. 일반적으로 나라는 주권과 국민과 영토가 있어야 이루어집니다. 이 세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주권입니다. 왜냐하면 누가 다스리는가에 따라 그 나라가 특징 지워지고 백성들의 행·불행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세상 나라가 영원할 수 없는 이유는 통치자가 다윗과 같이 아무리 휼륭하다 할지라도 그 권세와 능력의 한계가 있다는 것과 또 결국에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영원하려면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부정과 부패가 없이 공의롭고 정의로워야 되며 또 그런 상태가 변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어야 합니다. 또한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이어야 되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세상 모든 사람을 다 품을 수 있는 보편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이런 나라는 없습니다. 세상 나라는 불의하고 부정, 부패가 난무하고 통치자가 자주 바뀌기 때문에 불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실 한 나라는 영원히 망하지 아니하고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합니다 (단2:44). 이 나라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건설하신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께서 그 왕국의 유일하고도 최고의 통치자가 되셔서 영원토록 진리의 말씀과 사랑과 평화,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받아 이 영원한 나라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둘째, 다윗은 모든 것이 다 은혜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 축복의 말씀을 듣고 너무 황송해 하며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철저히 자기는 낮추었습니다. 나는 비천한 목동이였고 집안도 천한 집안이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높였습니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18) 그는 과거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존재였는지를 알았습니다. 다윗은 이름 없는 이새집안의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나서 평생 목동하다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취하여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모범적인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 후손가운데서 메시야가 탄생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다윗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존재인가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교만해지지 않고 항상 겸손하게 주님의 나라를 섬길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모두 과거에 사단의 종이 되어서 추한 죄나 지으며 자학하고 절망하며 쓸모없는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방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취하여 이 시대에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방황하는 인생들의 선한 목자요, 성경선생이요, 제자양성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 각자에게 임한 주님의 놀라운 은혜요, 말할 수 없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의 무가치한 존재들로서 자신을 발견하시고 겸손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다윗의 고백이 우리들의 고백이 될 수 있길 축원합니다.
다윗은 나단으로부터 이런 축복의 메시지를 듣고 우주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세상역사를 그 뜻대로 주관하시는 주관자 하나님,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구속하시고 주의 백성으로 삼으신 구속자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 후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행하시도록 간구했습니다.
다윗은 고난의 때나 축복의 때나 변함없이 내집보다 하나님의 집을 더 사랑하고 더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애를 썼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보시고 감동받으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을 통해 메시야를 허락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사 영원토록 견고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속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자들을 통해 그의 나라를 건설해 나가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이 나라의 통치자에 의해 다스림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하고 있는 이 나라는 영원하지 못합니다. 부정부패가 난무하고 모든 것이 일시적이고 상대적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나그네 인생이요, 우리가 거하고 있는 이 세상은 잠시 머무는 여인숙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소망 둘 곳이 못됩니다. 우리의 참된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가 장차 가서 거할 하나님의 나라는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습니다.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질병이 없습니다. 그곳은 생명과 평화와 자유와 기쁨이 넘치는 곳입니다. 우리는 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기 위해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젊음과 생명을 드립니다. 다윗처럼 주의 집과 나라를 위하여 우리를 드리심으로 가정이 잘되고 교회가 잘되고 나라가 잘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