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리오르(영어: Gwalior, 힌디어: ग्वालियर, グワーリヤル) 시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Madhya Pradesh) 주(州) 북부에 있는 도시.
빈디아 산맥의 북쪽 구릉지대와 야무나강 유역 평야의 경계지점에 있다. 6세기에 건설된 고도(古都)로, 인도 중·북부에서 서남부의 마르와르·구자라트 지방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인도 마디아프라데시 주에서 4번째로 큰 도시로, 구(舊)괄리오르·라슈카르·모라르를 포함한다. 전국으로 뻗어 있는 주요도로가 지나며 철도 교차점이기도 하다. 1887년 시가 되었다.
괄리오르 구(舊)시가지는 사암(砂岩)으로 된 언덕에 자리하며, 정점에는 주위을 성벽으로 에워싼 성채가 있다. 성곽 요새를 중심으로 발달해 있다.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요새의 하나인 괄리오르 요새는 평지에서 90m나 치솟아 있으며 길이가 거의 3km로, 사방이 벼랑으로 둘러싸인 고원 위에 자리잡고 있다. 이 요새에 대해서는 525년경에 세워진 어느 사원 비문에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그 곳에는 1486~1516년 사이에 축조된 왕궁을 비롯하여 신전과 사원 등 유적이 많다. 또 성벽 밑에 있는 동굴에는 15세기에 새긴 수많은 조상(彫像)이 있다. 이 요새에는 저수지 8개, 궁과 사원이 각각 6개, 이슬람 사원이 1개, 그밖의 건물이 여럿 있다. 요새 안에 있는 텔리카만디르(11세기)·구자리마할(1500경)과 지금도 남아 있는 사스바후 대사원(1093) 중앙건물 같은 것은 뛰어난 힌두 건축물의 예로 손꼽힌다. 성벽 바로 아래에 있는 바위로 만든 자이나상(像)은 그 높이가 18m나 되는 것으로, 15세기에 만들어졌다.
북부 인도에 있는 평야와 통하는 주요 길목을 지킨다는 점에서 전략상 중요성이 컸기 때문에 1232년까지는 힌두 통치자의 지배 아래 있었지만, 1232년 이슬람 세력의 침입을 받아 1559년부터 무굴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고, 그 이후 1751년에 이르는 시기까지 여러 번 이슬람과 힌두 지배자들 사이에 지배권이 오갔다. 1780년 영국군이 침입한 후부터는 마라타족(族)과 괄리오르 왕국의 신디아군 사이에 성채 쟁탈전이 되풀이되었다. 1803년과 1818년 괄리오르 왕국은 많은 영토를 영국에게 빼앗겼고, 1840년대에는 완전히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1857년 세포이반란이 일어났을 때 신디아 가문의 지배층은 영국에 충성을 바쳤다. 이렇게 1780, 1843, 1858년 영국에게 점령당하기도 했으나 계속 마라타족의 거점으로 남아 있었다. 1886년 영국은 잔시 시(市)의 지배권을 얻는 대가로 괄리오르에서 물러났다. 1948년 인도 독립과 함께 괄리오르 왕국은 인도 영토가 되었으며, 상공업 중심지로 변모하였다.
요새에서 남쪽으로 6km 떨어진 곳에 있는 라슈카르 시(市)는 1810년 세워져 군사 야영지로 쓰이다가 뒤에 괄리오르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잔시 여왕의 기념비와 많은 궁전이 있으며, 가까이 있는 안티에는 무굴 시대 학자였던 아부 울 파즐 알라미의 무덤이 있다. 그밖에 동물원·박물관·기술연구소본부·산업연구소 등도 괄리오르에서 볼 만한 곳이다.
괄리오르는 구괄리오르 왕국 중심지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18세기 후반 인도 북서부 대부분을 손에 넣었던 마라타 왕조의 신디아가의 통치영역이었다. 1745년경 라노지 신디아가 괄리오르 왕국의 기초를 세웠고 신디아 마하다지(1761~94 재위)가 다스리는 동안 가장 큰 힘을 떨쳤다. 마하다지는 인도 중부 대부분과 엄밀한 범위의 힌두스탄을 포함하는 넓은 땅을 다스렸으며 자이푸르와 조드푸르를 비롯한 주요 라지푸트 지배자들에게서 공물을 거두어들였다.
마하다지 조카의 아들이었던 다울라트 라오가 다스리는 동안 1803년과 1818년 괄리오르 왕국은 전쟁에서 패배하여 많은 영토를 영국에게 빼앗겼고, 1840년대에는 완전히 영국 지배를 받게 되었다. 1857년 인도 폭동이 일어났을 때 괄리오르 왕국을 다스리고 있던 신디아 가문 지배층은 계속해서 영국에 충성을 바쳤다. 그 군대는 반란군에 가담하여 잠시 괄리오르를 점령하기까지 했으나 나중에 패하였다.
1948년 인도 독립 때 괄리오르 왕국은 인도 영토에 속하게 되었다. 그때 영토는 넓이 6만 8,000㎢ 정도로, 참발 강에서 남쪽으로 빈디아 산맥에까지 이르렀으며 지금의 마디아프라데시 주 북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1956년부터 마디아프라데시(Madhya Pradesh) 주 일부로 들어간 이 지역 대부분은 충적평야지대이다. 하르시·티그라·카케토 댐에서 운하망을 통해 물을 대고 있다. 밀·수수·쌀·콩류가 주요작물이며, 사암이 채석된다.
괄리오르에서 남쪽으로 3km 떨어진 라슈카드는 19세기부터 경공업이 발달된 도시인데, 현재는 괄리오르 공업지구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괄리오르는 중요한 상공업 중심지로 농산물, 옷감, 건축용 석재, 철광석 유통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신발, 도자기제조, 비스킷(쿠키), 담배, 직물, 양탄자, 플라스틱 제품, 인조견, 유리제품, 성냥 제조업을 하며 면방적·제분·제당·종자유 생산과 석재조각도 주요산업으로 꼽힌다. 면방직·농산물가공업·화학섬유·플라스틱 산업이 활발하며, 산업연구소·공업시험장이 있다. 지와지대학교 등이 있고 1964년에 설립된 과학·의학·교육 분야를 비롯한 부속 단과대학이 여럿 있다. 16세기에 지은 인도 가수 탄센의 무덤이 시에서 가까운 곳에 남아 있다. 괄리오르는 지금도 독특한 고유양식과 전통을 보존하고 있는 음악 중심지이다.
괄리오르
인도 중북부의 옛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