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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1장 1절 ~ 6절
말씀이 주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였으니, 시드키야 왕이 멜키야의 아들 파술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파냐를 그에게 보내어 말하기를 1)
The word which cam unto Jeremiah from the LORD, when king Zedekiah sent unto him Pashur the son of Melchiah, and Zephaniah the son of Maaseiah the priest, saying. 1)
위 말씀에서 파술과 스파냐는 모두 제사장의 아들로 A(the priest) and B of the priest로 A에는 the priest가 생략된 것입니다. 영문 킹제임스의 and절의 사용방법을 가늠해볼 수 있는 구절입니다.
영문의 생략을 있는 그대로 생략하여 한글로 번역하면 그 의미가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반복생략을 그대로 한글번역에 적용하지 않게 되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제사장 멜키야의 아들 파술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파냐를"
영문의 반복생략의 의미를 한글 번역에서도 드러내기 위해서는 이렇게 번역함이 자연스럽습니다.
제사장들은 예레미야를 불편하게 여기고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두렵게 여겼으나 그 말씀이 결국 진실이고 실현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의 아들들을 보내어 묻고 그 답을 얻으려 하였습니다.
이렇게 아들들을 보내는 것은 자신들이 예레미야에게로 나아가면 그들이 예레미야의 예언에 동조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은밀히 아들을 보낸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들은 바빌론의 침략에 대해서 자신들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레미야선지자가 전하는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내가 네가 간구하노니 우리를 위하여 주께 물으라. 이는 바빌론 왕 느부캇넷살이 우리를 대적하여 전쟁을 일으킴이니 만일 주께서 그의 모든 경이로운 일들에 따라 우리를 다루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 올라가리라." 하였을 때라. 2)
Enquire, I pray thee, of the LORD for us; for Nebuchadrezzar king of Babylon maketh war against us; if so be that the LORD will deal with us according to all his wondrous works, that he may go up from us. 2)
inquire 1.조사하다 2.문의하다
이 말씀에서 핵심은 go up from us입니다. 이를 즉 하나님의 뜻과 자신들의 뜻이 일치하지 않으면 유대는 자신들의 계획에 따라 일을 하고, 하나님은 자신들을 떠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남 유다는 이교도의 우상을 숭배하듯이 여러신들중에 하나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음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에게도 나타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조차 사람의 계획을 의존하고 그 계획과 하나님의 뜻이 일치하지 않으면 잠시 하나님을 멀리하는 현상과도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이 세상의 문제가 사회운동과 정치개혁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세상의 문제는 사람들의 죄로 인하여 발생한 것인데 하나님앞에 회개하여야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지 남 유다가 이집트에 원병을 요청하고 바빌론에 승리를 계획하는 것처럼 부정선거를 밝혀내고, 트럼프가 복귀함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정선거를 밝혀내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국민의 힘이며, 뱀독 백신을 보급하고 접종하도록 구축한 사람은 트럼프입니다.
세상은 사람의 정의구현으로 바로잡힐 수 없습니다. 사람이 말씀에 기록된 예수님의 재림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대로 마지막때가 되면 이 땅은 참혹한 고통의 시기가 올것입니다. 그러나 절망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승리는 한 사람 한 사람안의 마음안에서 일어납니다. 즉 내 마음안의 믿음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육을 죽이고 나면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내가 내 친구들인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난 후 더 이상 아무일도 할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누가복음 12장 4절
그러므로 우리는 진실을 알리면서 전도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나의 승리는 내 마음안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내 이웃의 승리는 그의 마음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사탄 마귀도 건드리지 못하는 영역입니다. 여기에 승리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동성애나 종교통합에 반대하는 운동은 반드시 해야 하며 다만 사람의 힘으로 사탄의 계획을 막아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충돌가운데서 사람들의 마음안에 승리가 쟁취되도록 함이 목적입니다.
O 그때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말하니라. 너희는 시드키야에게 이렇게 말할지니라. 3)
Then said Jeremiah unto them, Thus shall ye say to Zedekiah: 3)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성 밖에서 너희를 포위하고 있는 바빌론의 왕과 칼데아인들을 대항하여 싸우는 데 쓰는 너희 손의 무기들을 내가 돌이킬 것이며 또 이 성읍 가운데로 그들을 모으리라. 4)
Thus saith the LORD God of Israel; Behold, I will turn back the weapons of war that are in your hands, wherewith ye fight against the king of Babylon, and against the Chaldeans, which besiege you without the walls, and I will assemble them into the midst of this city. 4)
제사장들이 시드키야를 대신하여 남 유다에 닥친 재앙에 물어보는 것에 주께서 대답하고 있습니다. 남 유다는 정확하게 세상 반 하나님 반을 따르는 양다리를 걸친 모습이 보입니다. 사실은 그들은 사람이 보기에 옳은 전술을 택하고, 참조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대적하여 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사람의 계획으로 사는 사람들은 믿음을 가졌건 갖지 않았건 간에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는 중이고,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과 대적하시는 것입니다.
위 말씀의 칼데아인들은 아브라함이 떠나온 칼데아 우르지역이 맞습니다. 여기는 광야지역중에서 하천지역으로 비교적 평탄하고 농사가 가능한 지역입니다.
이집트가 나일강 삼각주의 비옥한 토양을 바탕으로 강력한 국가가 되었듯이 바빌론도 칼데아라는 페르시아만으로 빠지는 평탄한 지형으로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였습니다.
이는 주의 손으로 이스라엘 주변나라를 강대국으로 키워 이스라엘과 유다를 치신 흔적인 것입니다.
나, 바로 내가 펼쳐진 손과 강한 팔로 성냄과 분노와 큰 진노 속에서 너희를 대적하여 싸우리라. 5)
And I myself will fight against you with an outstreched hand and with a strong arm, even in anger, and in fury, and in great wrath. 5)
주께서 우리를 대적하시는데 화와 분노 그리고 큰 진노하심으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남 유다가 우상을 따른 것에 대한 댓가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화나게 하는 일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상에게 속하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시는 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우상은 곧 사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등됨을 주장하다가 지옥의 형벌로 결정된 사탄에게 속하는 그의 창조물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아프신 것입니다. 사탄이 지옥의 형벌로 그 댓가를 치르는 만큼 사탄의 추종자들은 이 땅에서도 심판의 징계를 받음입니다. 이는 구원을 위한 고난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에 있었던 이 땅에서 나타나는 심판의 모습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우리의 삶이 끝나고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땅에서 천국과 지옥의 삶을 시작 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선택하여 가는 사람들은 이미 이곳에서의 삶에서도 그것이 드러나며 지옥으로 선택하여 가는 사람들은 이곳에서도 그의 삶의 모습이 그렇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회개라는 역전승이 일어나기도하고, 실족이라는 역전패가 일어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땅이 천국이 되는 것은 이 땅의 소망을 모두 내려놓고, 하늘의 소망을 가지면 저절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고난과 고통은 모두 이 땅의 것들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이땅에서 겪는 모든 고난과 고통은 재물과 건강등의 이땅에 부착된 것들의 문제입니다.
이것을 풀어버리면 이 땅에서 살면서도 이 땅에 부착한 것에 휘둘리지 않아 자유롭고 행복한 천국의 예고편으로 이땅을 살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쉬운일이 아니라서 알면서도 그러한 삶을 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방향을 아는 것은 실족하지 않을 수 있는 방향 키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또 내가 이 성읍에 거하는 것들을, 사람과 짐승을 다 치리니 그들이 큰 전염병으로 죽으리라. 6)
And I will smite the inhabitants of this city, both man and beast: they shall die of a great pestilence. 6)
pestilence ① (치명적인) 전염병 ② (사회·도덕적인) 해악 ③ 역병 ④ 독충(毒蟲)
그러자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기르지도 아니하였으면서도 하룻밤에 나와서 하룻밤에 없어진 그 박 넝쿨을 긍휼히 여겼거늘,
자기들의 오른쪽과 왼쪽도 분별할 줄 모르는 십이만 이상 되는 사람들과 가축들이 있는 저 큰 성읍 니느웨를 내가 아껴야 하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요나서 4장 10절 11절
위 예레미야 21장 6절과 요나서 4장 10절 11절을 비교해보면 하나님께서는 그가 아끼시는 것을 분노로 진멸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 유다가 이집트의 도움을 받아 잘 준비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대적하여 견디어 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현대의 사람들은 과학 기술이 만능처럼 여기지만 이 또한 하나님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코로나 사기극에서도 이러한 방식이 쓰였습니다. 코로나 사기라는 기만술에 현대의학과 과학은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만이 통함은 사람들이 믿었던 과학이라는 종교가 허무하게 무너져내린 것입니다. 의사들은 돈벌이에 드러난 진실마져 외면하였습니다. 이것이 의술 의학의 본 모습인 것입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실을 보도하기도 하였던 언론이 돈에 의하여 악한 공중권세의 지배자에게 봉사하고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러난 진실을 감춤으로 당장의 평안과 당장의 유익을 구하는 자들의 모습이 현대 과학의 본 모습인 것입니다.
남 유다가 전염병으로 타격을 받았다면 지금의 우리는 사람의 전염병 사기로 타격을 받았습니다.
코로나라는 감염병은 돈이라는 오염물질로 현대 의학 과학 언론 정치 종교등을 모두 원시시대보다도 더 퇴보를 시킨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고 회복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과거에도 부패했고, 지금도 부패했으며, 앞으로도 부패할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사람의 힘으로 바로잡혀질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 세상은 이런 식으로 속이고 속다가 결국 마지막의 심판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구원은 개인적인 것에 시작하여, 사명이라는 집단으로 확장되었다가 결국 개인적인 상급으로 마무리되는 과정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시작과 끝이 개인적이므로 집단적 사명에 휘둘려서 실족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명은 주어진 것을 하는 것이지 사람의 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른 이의 믿음과 구원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구원은 각자의 공로인 스스로의 믿음으로 자신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 공로를 다른 사람이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이웃에게 전도함은 당연한 사명으로 당신이 다른 사람의 회개에 참여한 공로로 당신을 포함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전도의 공로는 순종했다는 당신 개인의 공로만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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