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山의 마음 가는대로] 4백년만에 진열장 깨고 나온 퇴계선생!
21세기인보다 뛰어났던 휴머니스트
4월11일 아침 프레스센타 20층에서 열린 광화문문화포럼 아침공론마당에서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이 강연하고 있다. /사진=마음건강 길
‘21세기 리더 퇴계에게 묻다’
처음에는 좀 고리타분한 주제로 생각했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모임인 광화문문화포럼(회장 박인자)의 4월 아침 모임 강연 제목이었다.
연사는 기획예산처장관을 지낸 경제관료 출신인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 겸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그러나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박제된 퇴계 이황선생이 진열장을 깨뜨리고 뛰쳐나온 듯 그의 인간미가 수백년을 지난 지금 생생하게 전달돼 왔다.
남존여비, 양반과 상놈, 공리공담, 당파싸움으로 상징되는 조선시대에 살았던 그가 21세기 우리들보다 훨씬 더 깨어난 휴머니스트였다니….
퇴계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내를 평생 극진한 정성으로 보듬어 안았다.
또 맏며느리는 시아버지의 배려에 감읍해 “죽어서도 아버님을 정성껏 모시겠다”며 시아버지 묘소 아래 묻힐 것을 자청했다.
퇴계의 사랑은 하녀에게도 평등했다. 맏손자 부부가 아이를 얻었으나 병이 들어 하녀를 유모로 쓰겠다고 했으나 퇴계가 허락하지 않았다.
“남의 자식을 죽여 내 자식을 살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증손주는 결국 두 돌 지나며 세상을 떴다. 이쯤 되면 맏손자가 원한을 품을 수도 있을텐데 평소 할아버지의 언행에 감복한 터라 평생 할아버지를 모셨다.
퇴계는 늘 가족들에게 “부부간의 관계가 인륜의 시작이요, 만복의 근원이다. 늘 손님 대하듯 진실로 대하며 공경하라”고 강조했다.
그의 제자 존중은 또 어떤가.
퇴계 이황(1502~1571)은 자신보다 26년이나 젊은 고봉 기대승(1527~1572)과 8년에 걸쳐 논쟁(사단칠정논변)을 벌이면서도 다음과 같은 서한을 보냈다.
“제가 말한 것이 더욱 잘못되었음을 알았습니다. …
견문이 좁은 제가 박학한 그대에게 머리 숙여…”
이황은 제자인 기대승을 학우로 대했고 기대승은 이황의 인품에 반해 평생 스승으로 기렸다.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 /마음건강 길
퇴계선생은 생후 7개월만에 아버지를 잃었고 일자무식 어머니에 의해 키워졌으나 뛰어난 학식과 인품을 갖췄으며 평생 검소한 삶, 겸허한 마음, 청렴을 실천하며 살았다.
그의 삶의 기준은 항상 ‘무엇이 이로운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였다.
강연이 끝나자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의 제의로 기립박수를 쳤다. 나를 되돌아보고 많은 것을 생각케 해준 강연이었다.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