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부동산 붐으로부터 시작된 일본의 거품경제가 1990년대 들어 붕괴하면서 일본은 이른 바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잃어버린 20년', '잃어버린 30년'이라고 일컬어지는 초장기 경기 침체를 넘어, 디플레이션(물가와 소득이 동시에 떨어지는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거품경제가 극에 달해 일시적으로 엄청난 현금을 갖게 되었던 일본의 자동차 업계는 이 돈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참가하는데만 해도 어마어마한 비용이 드는 전세계의 모터스포츠 무대에 거침없이 뛰어 들었고, 1960년대 일본 자동차 산업의 중흥기부터 지속적으로 키워오고 있었던 자국 내의 모터스포츠 기반도 한층 단단하게 다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투자 비용 대비 시장성이 지극히 낮은 고성능 스포츠카의 개발에도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부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차들이, 오늘날에도 JDM(일본 내수차량)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일본의 3대 스포츠카들이다. 자동차에 대해 관심이 있으면서도 특히 2000년대 만화 '이니셜D' 시리즈나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초기 시리즈를 보고 자라 왔던 세대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눈에 들어 왔을 법한 그 차들이기도 하다. 이번 연작 기획의 마지막 주인공은 바로 혼다기연공업(이하 혼다)의 걸작 스포츠카, 초대 NSX에 대하여 살펴본다.
혼다, 정통 스포츠카를 꿈꾸다
혼다는 창업 초기부터 스포츠카를 만든 제조사였다. 이륜차 사업을 넘어, 사륜차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한 혼다가 가장 먼저 개발해 시판한 양산차는 1963년 시판한 T360이라는 이름의 경트럭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해에 또 다른 신차를 개발했는데 그것은 바로 S500이라는 이름의 스포츠카였다. 즉, 혼다는 창업 당시부터 스포츠카를 개발할 포부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S500은 경차급의 차체크기와 깃털같이 가벼운 몸무게로 뛰어난 핸들링 성능을 자랑했다.
하지만 혼다의 꿈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창사 초기부터 스포츠카를 만들었던 혼다는 사륜자동차 부문이 성장을 거듭하면서 본격적으로 다시금 스포츠카를 개발하고자 했다. 특히 버블이 절정으로 치달은 1980년대, 일본계 자동차 제조사들은 넘쳐나는 현금을 이용해 그 누구보다도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개발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당시나 지금이나 '돈 먹는 하마'로 통하는 모터스포츠 참가도 활발했다.
하지만 혼다의 양산차는 사실 상 거의 전차종이 FF(전방엔진-전륜구동)였다. 심지어 자사 최초의 대형세단인 초대 레전드(Legend)조차 전륜구동 모델이었을 정도로 혼다는 FF를 고집하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스포츠카를 개발하는 데 있어서 FF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라는 것은 그들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혼다는 1980년대 들어, 새로운 스포츠카의 개발을 위한 탐색 개발활동의 일환으로 'UMR'로 명명된 기초 연구를 시작했다. 이는 'Underfloor Midship-engine Rear-drive'의 약칭으로,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향한 연구였다. 리어 미드십 레이아웃은 그동안 혼다가 전혀 손을 대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이었고, 이는 혼다로서는 창사 이래 실로 큰 도전이었기에 기초부터 차근차근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혼다가 완전히 새로운 영역인 리어미드십 레이아웃의 도전한 이유는 종래의 혼다 FF 양산차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요소이자, 스포츠카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즐거운 핸들링'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선행 연구 개발을 거친 뒤인 1985년 6월, 혼다는 프로젝트명 '혼다 스포츠(Honda Sports)'로 명명된, 새로운 스포츠카 개발에 착수했다.
'쾌적한 F1 경주차'
혼다 스포츠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 혼다의 연구진은 새로운 스포츠카의 컨셉트를 결정하는 단계에서부터 골머리를 싸매야 했다. 비롯 선행 연구가 수반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리어미드십 스포츠카는 혼다가 여지껏 경험하지 못한 영역이었기 때문이었다. 혼다가 밝힌 바에 따르면, 혼다의 연구개발진이 새로운 스포츠카의 컨셉트를 잡기 위해 아예 연구소 밖으로 나와 한적한 산 속의 료칸으로 들어가서는, 여러 차례의 검토회를 열었다고 한다. 여기서 개발진은 회사 내부의 답답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저마다 이상으로 그리던 스포츠카의 모습을 허심탄회하게 쏟아냈다.
이 산 속의 토론회는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혼다의 연구진이 "F1 머신과 직계되어 있으면서, 전자장비를 철저히 배제한 퓨어 스포츠카"를 주장하는 '적파(赤派)'와 ''하이테크 이미지를 상징하는 첨단 전자장비로 무장한 스포츠카"를 주장하는 '실버파(シルバー派)'의 두 패로 나뉘어서 연일 난상토론을 벌여댔기 때문이라고 한다. 두 계파의 끊임 없는 충돌 끝에, 새로운 스포츠카의 결과는 "쾌적한 F1(快適F1)"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이 당시 순수 스포츠카의 개발을 관철하려 했던 적파 개발진은 훗날 혼다의 고성능 라인업으로 자리하게 된 '타입-R(Type-R)'을 탄생시키게 된다.
혼다가 새로운 스포츠카의 컨셉트로 잡은 '쾌적한 F1'이라는 것은 당시 F1 무대에서 최전성기를 맞고 있었던 혼다의 자신감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당시(1983~1992년)의 혼다는 F1 터줏대감 윌리엄스와 함께 '윌리엄스-혼다(Williams Honda)' 팀을 꾸리고 있었다. 이 당시 혼다의 엔진을 탑재한 윌리엄스의 머신은 1985년도까지 3연승을 기록하고 있었던 시절이었으며, 1986년도에는 윌리엄스-혼다가 16전 9승이라는 압도적인 기록을 내면서 매뉴팩처러즈 타이틀까지 확보하는 등, 혼다는 F1 무대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새로운 스포츠카의 컨셉트를 잡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더 큰 문제는 이를 어떻게 구현하는가에 있었다. 2020년대인 오늘날의 자동차 시장에서는 스포츠카에게도 일반 승용차량에 버금가는 쾌적함과 실용성, 그리고 안전성능이 요구되기에 오늘날의 스포츠카들은 적어도 일상적인 운행에 상당한 수준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 당시만 해도 스포츠카란 오로지 '달리기 위한 기계' 그 자체였다. 당시에는 GT(GranTurismo)가 아닌 순수 스포츠카에서 쾌적함을 기대하는 것은 상식 밖의 개념에 해당했다. 지면에 찰싹 엎드린 자세와 더불어 '사람이 차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차가 사람을 선택하는' 식의 통념이 만연해 있었던 시절이었다.
이 때문에 혼다의 연구진은 '쾌적한 F1'이라는 전례 없는 컨셉트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혼다는 오히려 스포츠카에 대한 통념을 비틀어버리는 방식의 접근법을 시도했다. '사람이 차에 맞추는' 것이 아닌, '차가 사람에 맞추는' '인간중심의 스포츠카'로 방향성을 잡은 것이다. 스포츠카가 가져야 할, 운전자의 의지에 충실하면서 최상급의 성능을 갖추되, 일상에서는 쾌적한 운행환경을 제공하고, 운전자에게 불필요한 긴장을 유발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스포츠카를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혼다가 창업할 때부터 내세웠던 "기술은 사람을 위해(技術は人のために)"라는 이념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에 혼다는 새로운 스포츠카 NSX를 개발하면서 차량의 동역학과 편의성 및 쾌적함, 그리고 환경 적합성의 세 가지 요소가 동등한 균형을 이루면서 이 세 가지 요소를 종래의 양산차 대비 더욱 고차원적으로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탐색 개발 단계를 넘어 본격적인 개발에 돌입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