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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문학산책] 1. 프랑스 샤를 뻬기와 서사시 ‘이브’
낙원서 추락한 인류의 구원신비 결집
원조 ‘이브’로부터 구세사 전 과정 그려
시작통해 비참·타락한 인간구출 시도
뻬기는 주로 9세기에서 14세기까지의 프랑스를 크리스천사상이 가장 꽃핀시기로 보고 그 시대의 정신을 소생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중세사람이 되어 그가 살던 20세기 초기를 어지럽히던 신식사조들을 ‘속화(俗化)’라는 딱지를 붙여 가차 없이 단죄하곤 했다. 뻬기가 다룬 작품 소재나 문학형태는 헤겔의 심미학을 연상케 하는 논리적 설계도에 따라 건축된 대성전과도 같이 웅대하다. 모두가 세련되어 있고, 융통성 및 유머가 풍부하다. 그는 어느 한 가지 문학유형 속에 자신을 가두고 싶지 않다고 자주 말했다.
사실 그는 드라마·역사·연대기·자서전·회고록·우주론·풍자·고백록·철학·신학, 재담과 대담평론 등 어느 하나도 취급하지 않은 것이 없으되 어느 하나 미미한 것이라곤 없다.
대가(大家)들은 그 나름의 작품구상으로써 각 부분들을 전체와 분리시킬 수 없도록 짠다. 뻬기의 전 인격은 그의 전체작품 속에 시공을 초월하여 숨 쉬고 또 절규하고 있다. 그는 1909년에 쓴 글에서 그의 청렴·성실함이 사상과 언사와 행실전면에 나타나야 한다는 그의 좌우명을 피력했다.
14년간의 작가생활동안 그의 이러한 소신은 추호도 흐트러짐이 없는 삶으로 일관되었다고 측근들은 증언한다. 그의 친구 꼬뽀는 “뻬기는 죄인처럼 살면서도 영웅처럼 처신했다. 그가 취급하는 깨끗하고 또 경건하게 힘겹게 대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현상을 단순하게 알아듣고 말했다. 대가들과 상종하면서도 좋은 아버지로서 자녀들의 숙제를 고쳐주고, 벗들에게 다정하고 주님의 계명준수에는 평범했고, 빈궁하게 살면서도 끝까지 정의로 극복해 나가는 고매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비록 그의 전집은 산문과 운문별로 발간되었으나 산문을 쓴 뻬기와 시를 쓴 뻬기가 별도일수는 없다.
뻬기는 인생의 밑바닥에 처한 비참을 살아야했으므로 모든 작품은 이 빈곤 속에서 출발한 체험기였다. 그는 궁한 처지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으나 허사라는 것을 깨닫고 이런 현실을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께 아뢰는 신앙의 말, 즉 착잡하고 쓰디쓴 고백으로 가득 찬 기도로 바꾸게 된다. 사실 그에게는 체험한 인생자체가 가장 값진 재산이었다. 어떤 절망 속에서도 이에 따른 진미를 음미했고 은은히 울리는 음조를 귀담아 들었다. 그의 생애에 있어 가장 비극적이었던 1909년에 그는 ‘나의 벗, 나의 독자들이여’를 자서전으로 집필했다.
허다한 불문학 작품들 속에서 저자 자신의 인생이 직접 살과 피가 된 사례는 그리 흔하지 않다. 뻬기가 쓴 것, 말한 것 기도드린 것 우정 혹은 증오의 표현 등 어느 하나도 허구적 요소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그의 시까지도 내적교감을 통하여 자신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방편이었다. “자네하고 몇 번 함께한 식사들은 삶의 한 즐거움이었네” 하였듯이 그에게는 이런 하찮은 것이 문학의 값진 소재가 되었다.
뻬기는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이고도 문학적인 기법으로 표현한다. 예술은 유일무이한 독창성을 지녀야하므로 글씨·문체·용어·논제·취재하는 세계 등 어디서나 자신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자 했고 어느 누구와 비슷하게 되는 것을 싫어했다.
“불후의 작품을 쓰는 작가는 인류역사에 기록될만한 그 무엇을 쓰고, 담화에서는 영원히 잊히지 않고 기록될 그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안다. 허나 그렇게 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는 한꺼번에 다 말하지도 않고 또한 모두를 당장에 준비시키려고 서둘지도 않으며 되풀이하여 말하기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이처럼 엄격하고도 직선적인, 고전적 인도주의자들은 자기 자신이 여러 인생이나 제도·언어 계획 등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맹신하지 않는다. 이들은 제각기 하나의 삶의 방식을 꾸준히 밀고나갔다. 그들에게 부여된 소명이 바로 이것이었기 때문이다”(「체계 있는 정신」에서)
뻬기가 띤 양상은 성직자를 등진 사회주의자였다가 때로는 국수주의자, 반정파 또는 크리스천 신비가가 되기도 한다. 데카르트와 칸트파, 베르그송적 직감파, 고전파, 죠완빌과 위고의 팬, 돔·이루, 발레의 벗, 로맹·롤랑의 죽마고우, 왕정시대의 숭상가, 드레퓌스의 옹호자, 플라톤파 등 마치 한인간이 고금의 모든 위대한 인물들을 한 몸에 재현해 나가고 있는듯한 인상을 준다. 그는 정신생활을 높이 평가하는 개방적인 사람답게 놀랄만한 호기심과 우주에 대한 친근감에서 사색하는바가 작품화된다. 로맹·롤랑이 세벨에게 “작품하나 쓰는데 맑은 정신으로 많이 읽고 들어야하고 깊이 사색해야하며 이런 것들을 편집하여 써가려면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면 뻬기가 남긴 방대한 양의 작품들은 오직 타고난 천재적 두뇌에 기인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졸즈·뽕삐두처럼 뻬기는 독서한 것 또는 학교에서 들은 고금의 시구·천문·지리·과학·정치·예술 등 모든 것을 인용서와 함께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뻬기의 작품소재는 성서, 호오머, 위고, 플라톤, 라블레, 발작에 이르기까지 주로 고전적 세계들이다 그리고 그가 의사나 정치가, 경제학자, 수학자, 조각가가 아니면서도 이 방면에도 천재가 지닌 모든 소양을 구사하여 보편적 관점에서 논평했다. 이와 같이 고금의 모든 작품인용을 통한 뻬기식 작품 구상은 실로 놀랄 뿐이다.
그의 이 같은 천재성이 어떻게 발휘되는지를 두 경우만을 살펴보자. 사건의 발단은 뻬기가 1910년 「쟌다끄의 애덕 드라마」를 발표하여 파리가 온통 떠들썩했을 때였다. “탈라마스가 쓴 「쟌느의 역사와 신화」의 이론과 쟌느의 기적들은 한낱 정신환각상태의 산물인 동시에 그 당시 민중들의 착각의 결과이다”라고 쓴 아나똘 프랑스의 설에 의거하여, 한 언론인인 르 그리는 그 당시의 한 유명지에 기고하여 “뻬기의 쟌느는 역사르 무시한 한낱 전설적인 창작인물이다”라는 글을 실었던 것이다. 불의에 대항하는 것을 신의 은종을 건 영예롭고 의로운 결투로 간주한 뻬기는 필전의 명수로서 야유와 유머를 구사하여 적을 놀릴 만큼 여유만만하게 포효하듯 포문을 열고 맹공을 가한다‥ “과연 내 수법이 숲속의 늑대를 나오게 만들었구려! 시인 뷔니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늑대는 귀티가 나는 동물이었지…” “쟌느를 정신착란자라고?‥‥쟌느는 영웅계열에서의 광자이다…예수님은 가장 고상한 의미에서의 공인, 환각자시다”라는 식으로 초자연적, 신비적 입장에 서서 심리적 반증론과 재치를 동원한 재기를 발휘한다. 실로 모든 기능이 기발하게 생동하는 참인간인 뻬기가 그의 작품 속에 그대로 메아리치고 있음을 우리는 본다. 다른 한 예를 보자.
1913년 뻬기가 숭엄한 황홀경에서 ‘대성전에서 동정성모마리아께 올리는 기도’라는 장시를 쓰던 바로 그때 그는 금전만능을 믿고 그 노예가된 사람들을 사정없이 공박하는 ‘돈’과 ‘돈 속편’을 냈으니 기도에 심취한 크리스천 시인과 의분을 토하는 욕설과 뻬기를 동시에 읽게 한다. ‘돈 속편’을 낸지 6개월 후 그의 적수들이 뻬기를 암살하려한 사실로 보아서 그가 어떤 언사로 불의의 축재자들의 부정부패를 백일하에 공개하였는지 알 수 있다.
뻬기가 속했던 우주는 랑송과 죠레스 등을 포함한 고전파의 세계와, 가톨릭신자의 세계, 그리고 그의 조국 프랑스라는 삼계의 제약을 전제로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나 분명한 점은 그의 모든 작품이 ‘문학 형태의 신학’이라는 점이다. 사실 그에게 계시적 언어를 통한 그 같은 비전을 공급한 것이 가톨릭교였다.
이제 뻬기의 생애 마지막 시작품이면서 그의 모든 사상이 결집된 대서사시 ‘이브’를 살펴보자.
뻬기가 좋아했던 성 아오스딩(354~430)은 76평생 동안 많은 저서를 냈음에 대해 경탄들 한다. 그런데 뻬기는 40세에 전사했지만 성인보다도 더 많은 작품을 남겼으니 그의 산문집은 방대한 그의 시 전집의 두 배이니 실로 경이롭다. 1913년 그는 시대착오로 보이는 이 서사시를 냈다. 헤겔은 그 시대에 서사시가 부흥할지를 의심했고 빅똘·위고는 ‘여러 세기의 전설’을 펴내면서 감히 서사시라 이름하기를 주저했다. 그런데 귀용(M.B.Guyon)은 “신약과 구약의 대드라마를 투시하는 증인으로서의 뻬기의 ‘이브’는 인류구원신비를 크리스천의 안목으로 풀어낸 대서사시”라 했고 시인 자신은 ‘이브’가 서사시임을 공언하고 있다.
뻬기가 그의 무르익은 시심에 이끌려 읊은 총 1911수(7644시행)의 대작인 ‘이브’는 창세기부터 세말까지의 인류역사를 성서와 고전을 총동원하여 인간을 노래하는 ‘하나의 일리야드’이며 일명 ‘강생신비의 노래’ 혹은 ‘인류구원 애환가’이기도한 이 시는 하느님을 사람이 되게 한 ‘땅의 찬미’에 비친 아름답고 장엄한 송가인 동시에 종교와 고전이 기묘하게 어우러진 ‘새 인간’에게 매료되게 한다. 시인은 이 ‘새 인간’의 원형을 신인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어머니 안에서 본다. 성서를 토대로 한 이같은 비전자체가 아주 신학적이고 또한 고전적이다. “이교사상이란 크리스천사상을 위한 무한한 시적준비와 같은 것”이라고 그가 말했듯이 희랍고전의 유산인 신화적 순수철학만으로는 도저히 터득할 수 없었던 성서의 계시를 기축으로 삼을 때 비로소 우주위에 있는 절대존재가 뚜렷이 나타나고 또한 인간의 본질이 보다 선명해진다. 왜냐하면 “존재의 본질은 신비하여, 신비자체는 신비로운 것이다. 이 신비는 도달할 수 잇는 길이기에 역동적이다. 이 신비는 종교성을 내포하고 있으되 본질을 겨누는 관계로 종교성을 초월하기까지 한다”(「장황」에서)고 말한 뻬기는, 인간의 고귀함을 너무나 깊이 깨닫고 있었으므로 이를 문학소재로 할 때에는 자헌(自獻) 행위로 간주하리만큼 경건했다.
새 인간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차원의 인간이 되려면 길이요, 빛이신 그분을 내존재 자체로써 ‘영과 육’ 그리고 ‘하늘과 땅’이라는 서로 상치되는 이질성을 파스카신비로 조화시키면서 최대한 완성되어야한다는 소신에서 전례와 신학과 역사를 통해 인간의 운명을 파헤치려고 시인 스스로 구원자 예수가 되어 노래한 이 시는 너무나 풍요롭고, 농도가 깊은데다가 양 또한 엄청나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핵이라고 여겨지는 인간구원의 신비를 압축시켜 도식을 만들어 여기에 싣는다. 이 도식에서 확인케 되듯이 끝닿을 데 모르는 신비의 곳집인 크리스천 진리를 마지막까지 파고들려는 의지의 사람 뻬기는 ‘현성’ 등을 너무나 중시하고 ‘절대적인 것’ ‘본질적인 것’ ‘영원한 것’ 한마디로 ‘신비한 것’에 등을 돌리는 자들에게까지 구원의 신비를 풀어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강생의 신비야말로 하느님 계시로 응어리진 역사의 봇불을 타고 말씀을 상생시켰으니 신화가 아닌 이 현실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무염시태의 특은 받은 인간마리아 와의 합작으로 성취된 역사적 산물이다. 이 신비는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자만이 이해 할 수 있는 신비기도하다. 먼저 예수께서 인류라는 거목의 뿌린 이브에게 던지는 첫 인사를 들어보자(숫자는 시 연번호) 오! 태초의 그 동산밖에 묻힌 어미여, 당신은 이 수반, 이 원천, 이 드높은 동산을, 첫 아침에 떠오른 해님을 몰랐나이다(1)
이같이 뻬기는 고전작품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와도같이 아찔한 낭떠러지 절벽에서부터 출발한다‥ 실락원의 추락, 동산 밖에 매장되는 이 가엾은 신비의 이브!
이 서사시의 관건은 추락한 인간을 구하는데 있으므로 개선이나 지상적 보이나, 칭찬과 영예를 쟁취한 영웅의 무훈가(武勳歌)와 는 정반대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참된 추종자들이 이웃과 나라와 인류를 악과 비참에서 구출하려고 헐벗고 버림받아 마침내 무참하게 죽는 숭고한 파파독스를 소재로 삼은 것이다. 예수께서 몸 던져 구출하려는 인간은 어떠한가?
‘인간은 허풍쟁이라 믿을 수가 없다. 계산착오, 경거망동, 자기과대평가, 인색 등’(437)
‘인간은 두 가지 놀음(영원과 현세)을 일삼는다. 둘을 다 벌려고 하느님께는 인색하다. 인간은 속이 보일까봐 밝을 때엔 겁쟁이다’(437 ?511)
‘그들이 배은망덕에서, 타락에서 구원되도록’(820)
‘그들이 영원한 생명의 책에 기록되도록’(821)
‘말인가? 내 신성 (神性)을 버리고 살을 일은 나는’(807)
‘수없이 매를 맞고, 가시와 못에 찔려’(803)
‘그들이 가여워서 흘린 내 눈물, 내 피…’(808)
‘내 자비심에서 내가 뿌린 말씀의 씨들은 대죄인들을 위해 지불할 나의 피다’(810)
‘약속의 그날, 제대위에서 흘릴 이 피, 미사 때 제단에서 봉헌될 때, 끝없이 메마름 없이 솟아날 성사의 피’(809)
‘가엾은 유다에게 입맞춤당한 그 이튿날, 새 사제로서 새 사랑으로 흘린 이 피’(812)
‘내가 다시 나게 한 죄인들을 위해 흘린 이 피’(813)
‘내가 로마군인의 창에 찔려 그들을 위해 흘린 피는 흙에서 나온 그들 자신의 혈관에서, 그들 자신의 심장에서 흐르는 피였다. 같은 백성, 같은 히브리 사람들의 피였다’(800)
이 시는 기쁜 성탄의 분위기, 부활의 환희, 전례신비 속에 빨려는 황홀경, 흙인 인간의 추악상, 탕자들을 품에 안는 아버지, 이브가 물려준 짐을 한 몸에 지고 구원하는 아들의 아픔에 젖어든 삶으로 갈 수 없는 구구절절을 여기다 싣지 못하여 심히 안타깝다. 그러나 강생하시어 수난 끝에 십자가위에서 처참히 숨지신 예수의 ‘현세적 완전패배’ ‘그 불명예의 충만(充滿)’ 이야말로 그리스도교의 본질인 사랑에 원천을 둔 ‘참된 충만의 절정인 완전 무호(無化)를 현현하는 순수성’이요, 시공간을 초월한 ‘인간의 위대성이 가져온 불멸의 승리’요 ‘참된 아름다움’이 아니고 무엇이랴!
도스토예프스키는 썼다‥ “이 세상은 아름다움을 통하여 구원되리라”고. 그러므로 동서고금의 예술인들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없는 이 미(美)의 원천을 찾으려 애썼고 이것을 형체로 색채로 음(音)으로 문장으로 표현하려고 몸부림쳤다. 시인 렝보는 “미는 다른 한 타자(他者)이다. 붙잡으려는 순간 사라지고, 다시 만났다 싶으면 도망친다” 했다.
사실 많은 작가들은 미(美)의 궁극적 유일한 기원이며 모든 존재들의 존재자체이며 그 생원(生源)쪽에 시선을 돌리지 않았기에 허탕을 치곤했다.
그런데 참 예인(藝人)뻬기는 “말씀이 살을 입어 사람이 되신 그 신비” “빛으로부터 나신 빛”이 인간의 얼굴을 비추는 빛 자체시라는 것을, 최상의미(美)인 하느님의 영광은 삼위일체적 사랑과 하나가된다는 것을, 그러나 이 사랑이 그 어떤 날 땀과피, 뺨침과 침뱉음을 당한 얼굴로 사람들의 조롱감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마침내 그는 승천이후부터 이사랑은 성사적(聖事的)어떤 징표들의 단순성과 진흙그릇처럼 아주 평범한 증인들의 가난 속에서 사랑의 순교자들 안에서 특별히 잘 현현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참된 가톨릭예술인들은 세상의 모든 소음, 모든 목소리, 모든 절규를 통하여 진복(眞福)의 음률을 듣고 노래한다. 루브리에프의 성화(聖畵), 앙젤리꼬나 고또의 벽화, 살트르 대성전의 그림 유리창과 세바스띠앙 바하의 마태오수난곡 그리고 뻬기의시 기타 걸작들이 이틀 입증한다.
참된 예술인은 사랑이신 그분처럼 “벌거숭이만이 진미(眞美)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기에 그들은 언제나 가난한 영혼을 가진다. 그들은 주님이 천국을 약속한 어린이의 무구성을 안다. 그래서 참된 예술인의 기쁨은 성모님의 기쁨이다. 마니피캇!“주님은 당신 비천한 여종을 돌아보셨으니 내 영혼은 기버 용약하나이다! 그 이름은 거룩도 하시어라!” 아멘! 알렐루야!!
샤를 뻬기가 서사시 ‘이브’에서 노래한 인간구원의 신비를 압축해서 표현한 도식.
조정옥 수녀ㆍ효성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