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캐년 길목에서
- 조앙
4월 중순, 아파트 단지 내는 벚꽃이 만발해서 마치 눈이 내린 것처럼 온 천지가 새하얗게 변했다. 바람결에 꽃잎이 흩날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불현 듯 2월 초 그랜드캐년 초입의 숲 속 설경이 떠올랐다. 그곳에도 봄이 왔으려나, 궁금해지기도 했다.
몇 년 전 미국 LA에서 일을 마치고 귀국 날짜가 며칠 남아서 현지 여행사 패키지로 2박3일간 그랜드캐년과 라스베가스 여행을 갔을 때였다. 첫째 날 LA를 떠나 끝없는 사막을 달려서 그랜드캐년 초입에 들어서자 서부의 황량한 벌판이 온통 캄캄한 밤 뿐이었다. 그러나 관광버스가 산길로 접어들면서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차창으로 보이는 설경 때문이었다. 그랜드캐년이 근접해있어서 구불구불한 산길이었는데도 도로변은 마치 흰색 천을 씌워 놓은 듯한 새하얀 설경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이어 아트만(Oat Man)이라는 작은 동네가 나오고.. 그 동네를 지나오는데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반짝이는 네온사인이 실크로 만든 조각보처럼 캄캄한 어둠 속에 수를 놓은 것 같았다. 우리는 피곤함도 잊은 채 너나없이 차창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설경을 바라보며 계속 탄성을 질렀다. 잠시 후 현지 가이드의 안내가 들렸다.
"이 길은 어머니의 길(the Mother road)로 US 66번 도로입니다. 오래 전에는 이 길로 그랜드캐년을 갔었습니다"
거리에는 관광용으로 옛 풍물인 마차가 드문드문 세워져있어서 설경에 비친 작은 도시는 로맨틱 그 자체였다. 우리 일행은 그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데 나는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서 우리가 온 길을 몇 번이나 되돌아보며 사진을 찍었다.
본래 첫째 날은 라플린(Laughlin)에서 숙박을 할 예정이었다. 라플린(Laughlin)은 네바다 주 사막 가운데를 흐르는 콜로라도 강가에 카지노를 갖춘 호텔들이 있는, 작고 아름다운 휴양도시이다. 그런데 여행사에서 일방적으로 시험 삼아 새로운 코스로 지정해서 약간 아쉬움이 있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코스를 변경한 것이 도리어 잘 된 것 같았다.
식사가 끝나자 우리는 다시 관광버스에 올라 어둠 속을 향해 질주했다. 정말 불빛 하나 없는 캄캄한 밤이었다. 더욱이 그랜드캐년 근방이어서 도로 양 옆은 깊은 숲속이었다. 얼마만큼 갔을까. 현지 가이드와 기사가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더니 대형 버스를 길가에 정차 했다. 나는 순간 차가 고장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캄캄한 밤에 버스가 고장이라도 났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그런데 버스가 고장 난 것이 아니고 기사가 오랜 만에 그곳에 왔기 때문에 늦은 밤에 길을 잘 분간할 수 없어 어느 가게 앞에 잠시 정차 한 것이었다.
가이드가 버스에서 내려 위치를 묻고 다시 차에 타서 자초지총 그에 대한 해명을 듣고 서야 마음이 놓였다. 사실 국내도 그렇지만 해외도 여행을 하다 보면 예기치 않던 이런저런 일들이 생겨나서 행선지를 바꿀 때도 더러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인 것은 긴 여정에 피곤에 지쳐있는 우리를 태운 채 대형 버스가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지 않고 버스를 길모퉁이에 안전하게 정차해놓고 귀찮을 텐데도 가이드만 혼자 내려서 길을 묻고 와서 피곤해있는 우리를 배려해준 것 같아 무척 고마웠다. 그리고 또 얼마만큼 갔을까. 까만 휘장에 글씨가 써져 있는 것처럼 저 멀리 네온사인이 마치 밤바다에 등대처럼 환하게 반짝였다. ‘홀리데이인. 익스프레스’ 그날 밤 우리들이 묵을 숙소였다. "우와, 호텔이다!" 우리는 호텔을 보자 환호성을 질렀다. 이른 아침 LA를 출발하여 하루 온종일 사막을 지나왔기 때문인지 오아시스를 만난 것만큼이나 반가웠다.
버스에서 하차하니 밤공기가 살을 에는 듯 추웠다. 그러나 공기는 얼마나 상큼하던지 말 그대로 천정 지역이었다. 호텔 내부도 좋았다. 룸은 말할 것도 없고 부대시설 또한 최고급으로 일류였다. 인터넷도 접속 할 수 있고 인도어 아웃도어 풀장에 스파까지 편의 시설이 골고루 갖춰져 있었다. 실외 수영장은 물 온도가 따뜻했다. 게다가 스파(자쿠지)는 또 어떤가. 한밤 중 풀장 주변은 얼음이 하얗게 얼었는데도 스파에서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솟아올랐다. 깊은 산속에 있는 노천 온천처럼 몸을 푹 담그고 있으니까 피곤함이 한달음에 사라지는 듯했다. 나는 밤이 늦도록 아주 오래오래 수영과 스파를 즐겼다. 그 밤이 밝아지는 게 싫었을 정도였다. 이튿날 아침식사도 간단하지만 맛있었다. 휴식을 취하기에는 정말 더 할 것 없이 좋았던 공간이었다.
오래전 여행 이야기인데도 지금 여행 후기를 쓰고 있다 보니 나는 문득 또 다시 그곳을 경유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그러고 보면 여행은 갖은 지역을 몇 번 씩 간다 해도 언제나 새롭고 또 기분전환이 되는 것 같다. 어딘가를 여행하면서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또 여행후기를 쓰면서 그때를 반추해보며 막연하지만 또 떠남을 기대하니까. 이 봄이 가기 전에 그곳에 다시 갈 수 있을까, 막연하지만 기대해본다.
첫댓글 저도 98년에 하와이 미서부 여행을 했는데요^^
그랜드 캐년 갈 땐 노을이 빨갛게 물들어 환상이었어요^^
노을이 아름다웠군요..
아메리카
크고 웅장하고
대단하죠
캐년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수익을 올릴겁니다
지기님, 제가 많이 부족하지만요,
수필문학으로 소소한 일상을 책으로 12월 말쯤 출간 예정이예요.
배길 도서 이벤트도 당첨되고해서 보답하는 의미로 몇권 드릴려고 하는데요..
신청자 없으면 어떻게 하지요? ㅎㅎ
@조앙 별 말씀을..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카페지기 책 출간되면 연락 드릴께요^^ 12월 말경 이예요
@조앙 네 알겠습니다
전체홍보도 해드릴게요
이벤트로 하세요
@카페지기 네^^
멋진 여행 후기 잘보았습니다.
우연히 다음주 수요일에 그랜드 캐년을 방문하여 하루를 보낼 예정입니다. 여행의 목적지는 세도나입니다.
세도나 가시는군요. 저도 가고 싶은 곳이에요. 잘 다녀오시고요,
멋진 사진 기대할께요
항상 멋진여행후기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