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이익의 공리self-interest axiom
각 정당 구성원들 모두가 동의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우리는 모든 개인은 합리적이면서 동시에 이기적이라고 가정한다
칼혼John C. Calhoun
타인을 거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보다 자신에게 직접 미치는 영향을 더 강렬하게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데, 그 때문에 개인들 사이의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그 결과 개인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안전이나 행복보다 자신의 안전과 행복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지며,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안전과 행복에 방해가 될 때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들의 이익을 기꺼이 희생시키려 한다.
우리는 모형 전체에 걸쳐 모든행위자가 인간본성에 대한 이런 관점에 걸맞게 행동한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우리가 합리적 행위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이기적 목적을 지향하는 합리적 행위를 의미한다.
현실 세계에서 인간이 언제나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다. 심지어 정치의 세계에서조차 그렇다. 때때로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합리적이라고 믿기 때문에 개인에게는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일들을 행하곤 한다. 즉 자신에게는 개인적으로 해가 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익이 되는 일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현실 세계에서 정치가들은 때때로 표를 잃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사회 전체에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한다. 어떤 분야에서든 사람들이 보여주는 그런 이타주의를 고려하지 않는다면,인간 행위에 대한 설명은 완전할 수 없다. 사람들이 존경해 마지하는 영웅들도 그런 이타주의의 소유자에 속한다.
그럼에도 사회적 행동에 관한 일반 이론들은 언제나 자기 이익의 공리에 크게 의존한다. 사실상 모든 경제학 이론은 이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다른 사회 구성원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오직 그들의 선의에만 의존해 도움을 기대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업자, 제빵업자의 선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관한 그들의 관심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애humanities가 아니라 그들의 자기애self-love에 호소하며, 우리의 필요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에 대해 말한다.
-국부론, 애덤 스미스-
애덤 스미스의 논리는 정치에도 잘 적용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이익의 공리를 분석의 기초로 받아들인다.
[이 연구에서] 자기 이익의 정확한 의미는 우리 모형에서 다양한 정치적 의사 결정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자세하게 서술할 때 분명해질 것이다.
정당의 행위 동기
자기 이익의 공리로부터, 정당 구성원이 어떤 동기로 정치 행동을 하게 되는가에 대한 우리 견해가 도출된다. 우리는 정당 구성원들이 오직 공직 획득을 통해 얻게 되는 소득 ∙명성∙ 권력을 위해 행동한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우리 모형에서 정치인들은 결코 특정한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직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들의 유일한 목표는 공직 획득이라는, 그 자체의 보상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그들은 정책을, 공직에 선출되어야만 획득할 수 있는 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한다.
이런 추론으로부터 우리 모형이 근거하고 있는 기본 가설이 도출된다. 즉 정당은 정책을 만들기 위해 선거에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선거에 이기기 위해 정책을 만든다.
이 가설은 일견 우리 모형 속의 정부를 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존재로 보게 만든다.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적 노동 분업에서 집권당의 기능은 정책을 만들고 수행하는 것이지 ,그들의 구성원에게 소득 ∙명성∙ 권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모형에서 집권당은 구성원의 사적인 야심을 진작시키는 한에서만 그런 기능을 수행한다. 정당 구성원들의 사적인 야심 그 자체가 집권당의 기능과 무관한 일인데,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의 야심 추구 행위가 집권당으로 하여금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게 하리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이처럼 목적과 수단이 혼란스럽다 보니 우리 모형 안에서 정부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 존재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 비판이 그럴 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현실 세계에서조차 순수하게 노동분업 그 자체를 위해 자신의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런 기능은, 논리적으로는 별 관련이 없는 사적인 동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도록 자극하는 사람들에 의해 수행된다.
따라서 사회적 기능은 대개의 경우 사적인 야심의 추구를 목적으로 삼는 인간 행동의 부산물이다. 이런 상황은 자기 이익의 공리로부터 곧바로 도출되는 것이기도 하다. 슘페터Joseph A. Schumpeter는 다음과 같이 설득력있게 말했다.
특정 유형의 활동이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고 해서, 그 사회적 의미가 반드시 그 행위의 동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의미에 대한 설명이 곧 행위 동기에 대한 설명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사회적 목적 혹은 충족되어야 할 사회적 필요만을 분석하는 이론은 그에 기여하는 활동들에 대한 적절한 설명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예를 들어, 경제활동과 같은 일이 존재하는 이유는 당연히 사람들이 먹을 것과 입을 것 등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을 제공하는 것은 생산의 사회적 목적이자 의미이다. 그럼에도 [필요와 목적 중심] 이런 가정이야말로 상업 사회의 경제활동에 관한 이론의 출발점으로서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것이며, 그보다는 이익에 대한 가정에서 출발하는 것이 훨씬 성과가 좋을 것이라는 데, 우리 모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똑같은 논리를 정치에 적용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마찬가지로 의회의 사회적 의미 내지 기능이 입법과, 부분적으로는 행정적 조치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 정치가 어떻게 이런 사회적 목표에 봉사하는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권력과 공직을 향한 경쟁적인 권력투쟁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나아가 생산이 이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것의 부수적 결과이듯이, 민주주의 정치의 사회적 기능 역시 말 그대로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충족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눈부신 통찰력은 정부 기능에 대한 우리의 접근을 전체적으로 요약해준다. 이는 조직에 대한 사회학자 셀즈닉Philip Selznick의 이원적 분석dual analysis [조직 내에서 공식 체계와는 별도로 비공식 구조가 이원적으로 발전하는 사실에 주목한 분석]과도 비슷하다. 그는 이렇게 썼다.
모든 공식 조직은 합리적으로 조직된 체계 내지 공언된 목표와는 별개로 존재하는 힘들forces에 의해 그 형태가 정해진다. 모든 공식 조직은 …… 그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적 ∙기술적 자원을 동원하려 한다. 그러나 조직 내의 개인들은 수단으로 취급당하는 것에 저항한다. 그들은 전체적으로 상호작용을 하고, 자신들의 특수한 문제와 목적을 갖는다.…… 이는 조직내에서 자신들의 존재 조건을 스스로 통제하려는 개인과 하위집단들의 자연발생적인 노력을 반영하는, 비공식적 구조는 발전으로 이어진다. …… 이 비공식적 구조는 위임과 통제로 구성된 공식 조직에 불가피하면서도 동시에 중요한 존재가 될 것이다.
분명 정당히 내세우는 공식적 목적 - 즉 정책을 기획하고 집권해 이를 실행하는 것 - 이 정부를 분석할 때 고려해야 할 유일한 것은 아니다. 정당의 공식적인 목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비공식적 구조로, 이는 정당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사적인 동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모형은 이 [공식적∙비공식적 측면의] 모든 요소를 정부의 작동에 관한 하나의 일관된 이론 안으로 결합하려한다.
우리의 이론이 자기 이익의 공리에 기초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당 구성원의 욕망이 무한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자기 이익에는 최소한 2가지 제한이 있다.
① 뇌물 수수나 헌법 위반에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불법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② 자신의 정당 팀에 속한 다른 구성원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비록 이 두 제한 모두 비현실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런 제한이 부과되지 않는다면 분석의 범위는 지나치게 확대될 수밖에 없다.
-경제 이론으로 본 민주주의 ,(앤서니 다운스) 발췌-
자기 이익의 공리 - 공리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확신을 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던 것 같다.
누구나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 물론 이타주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없진 않으나 그걸 다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선의에 기반한 정책은 결과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음을 이 글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리'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정말 좋은 의도가 반영된 정책을 시행하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으시는지...
나는 세상의 때가 많이 타서 그런지 이제 그런 걸 믿을 수가 없다.
이것이 이론화 되었다는 것이 약간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알고서 접근하는 것이 냉정하게 따져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첫댓글 독서량이 매우 상당하시군요-! 너무나 감사히 잘읽고갑니다 ^0^
② 자신의 정당 팀에 속한 다른 구성원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이부분이 정말 좋습니다.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