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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스포츠 게시판 스크랩 분단의 시작 이승만의 정읍발언
=^Λ^= 추천 0 조회 1,570 13.05.17 01:12 댓글 18
게시글 본문내용

1945년 12월 27일 체결된 모스크바삼상회의 의정서에 따라, 조선의 임시 민주주의정부 수립 및 신탁통치와 관련한 제반 사항을 논의하기 위한 미소공동위원회가 이듬해인 1946년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1946년 1월 16일 서울 덕수궁 석조전에서 예비회담을 가진 것을 시작으로 3월 20일 제1차 회의가 개막한 이래 1946년 5월 1일 공동성명 제7호까지 발표하였으나 미소공동위원회는 아무런 결실 없이 5월 6일부터 무기휴회에 들어갔고, 이로써 민주적 통일정부 수립의 전망은 한층 어두워졌다. '조선일보가 선정한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은 미소공동위원회가 휴회를 선언한 지 약 한 달 뒤인 1946년 6월 3일 전북 정읍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이라는 자신의 구상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나섰다. 소위 정읍발언이었다.


"무기 휴회된 미소공동위원회가 재개될 기색도 보이지 않으며, 통일 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도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해야 할 것입니다."


이 같은 이승만의 발언이 '영원한 우방' 미국과 충분한 사전교감 끝에 나온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읍발언 이전인 45년 11월부터 46년 5월까지 미국무부와 미군정 간에 오고간 전문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 추진에 관한 사항이 비중있게 다뤄진 것으로 볼 때 이승만이 미국의 한반도분단정책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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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5.17 01:45

    첫댓글 저개인으로는 이승만이 박정희보다 더 싫습니다

  • 13.05.17 09:16

    제가 극단적이거나 한쪽에 치우치는걸 싫어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전 현대사를 보면서 좌파, 진보진영 말대로 과연 미군정이 없었으면 인민위원회 주도하에 파라다이스가 왔을까?
    이승만만 없었으면 통일된 국가를 세울수 있었을까? 전혀 아니라고 봅니다. 이미 북한은 좌파 진영과 팔로군, 소련이 다 장악하고 있는데 뭔수를 통일을 합니까.
    우리나라와 비슷한 케이스였던 그리스내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를 봐도 광복되고 난 그 직후에 진영으로 분리되는거 없이 민족주의 아래 민족지도자들이 통일을 강력하게 밀어붙였으면 그나마 통일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 때를 놓치고,

  • 13.05.17 09:16

    좌파, 중도, 우파 정치세력들끼리 이미 권력싸움으로 가면서 그 타이밍은 놓쳤다고 봅니다.
    제가 우리 민족을 비하하는건 아니지만 미군정 없었으면 더 크게 한판 제대로 붙긴 붙었을 겁니다. 여순 사건처럼 6. 25전에 이미 한나라에서 내전에 비유되는 사건이 있었고,
    미국정의 그 폭압적인 압제 아래서도 끊질기게 살아남은 좌파 진영인데

    하긴 6. 25로 민족의 최대의 비극으로 흘러갔으니 더 크게 붙을것도 없긴 하네요.

  • 그래서 결국 하고싶으신 말이 뭔가요?

  • 13.05.17 10:07

    뭘 그리 삐딱하게 보십니까? 현대사 책 좀 보셨으면 제가 한 얘기의 의미를 아실텐데요. 역사를 볼때 큰 그림을 볼 줄 알아야지 정읍 발언 하나만으로 분단으로 갔을거 같습니까?
    고작 이런 20줄 짜리 인터넷 글 보고 이승만 나쁜놈 이러면 현대사 보는 눈이 생기나요?
    현대사를 이해하려면 유사사례인 이탈리아가 어떻게 통일 국가가 됐는지, 오스트리아는 어떻게 10년만에 통일이 될 수 있었는지, 그리스 내전과 한국 현대사의 유사점도 보면서, 분단의 원인이 미군정에 있는지, 남북 공동의 책임인지, 소련의 잘못인지, 우리 민족의 잘못인지 자기가 여러 관점의 책을 보면서 생각해야지

  • 13.05.17 10:09

    저보고 하고 싶은 말이 뭐라뇨?
    제 발언이 이승만, 미군정 옹호하는 발언처럼 느껴져서 싫으신건가요?
    길게 얘기 안할께요. 저 윗글 관점을 좋아하시면 브루스 커밍스 책 보시고요. 좀 더 중도적인 입장에서 보고 싶으면 박명림의 6. 25 기원과 발발 보시고요. 해방전후부터 6. 25까지 3대 명저 중 하나니 현대사 보는눈을 뜨는데 큰 도움이 되실겁니다.

  • 13.05.17 10:19

    제목이 오해의 소지가 있네요 분단이 정읍 발언때문에 시작된게 아니죠...광복 이후부터 1차 미소 공동 위원회에 열리는 시점까지 이미 북쪽 지역은 소련을 배후로 김일성을 위시한 공산 세력이 선점해갔던 시점이고 애초에 소련과 김일성은 한반도를 전 공산화시킬 의도로 우익쪽을 배제해가던 시기였습니다. 이미 미군정쪽의 남한과 북한의 분단은 예정되어 있었죠 그 과정에서 나온게 정읍 발언이구요...;;물론 정읍 발언 자체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고 개인적으로도 이승만은 정말 싫어하지만 역사적 팩트도 아닌 사실을 부각시켜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친 제목으로 왜곡하는 건 지양해야될꺼 같군요

  • 13.05.17 10:18

    역사가 바로 서려면 이승만이를 국립묘지에서 파내야죠.

  • 작성자 13.05.17 10:29

    정읍발언뿐만 아니라 남북협상에 참여안하고 5.10총선거에 적극참여한것도 사실이죠. 김구선생님과 김일성은 이미 통일정부 수립하자고 합의했었습니다. 보름도채 안지나 남한만의 총선이 열렸죠. 이승만이 권력에 눈멀어 남북통일정부에 반대한것이 팩트가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 13.05.17 10:52

    인과 관계를 분명히 해야 할꺼 같은데요 이승만이 남북통일정부를 찬성한다고 해서 남북통일정부가 형성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남북연석회의 진행 시점에 이미 김일성은 겉으론 김규식과 김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듯 하면서 소련과 중공을 배후로 남침을 계획하고 있었죠 남북협상 이후 불과 2년만에 한국전쟁이 일어났습니다..말 그대로 남북협상은 한쪽 당사자는 전혀 의도하지도 바라지도 않는 상황에서 열린 협상이었기 때문에 통일 정부 수립에 전혀 영향을 줄 수 없었죠 그전에 이미 유엔에서 남북 연합 투표를 제의했지만 소련과 김일성이 거절해서 유엔 임시위원단이 발도 못 붙혔습니다.

  • 13.05.17 10:57

    쉽게 말하자면 쌍방합의란게 한쪽 당사자만 찬성한다고 되는게 아니라 말그대로 양자가 합의하는 상황에서 성립되는건데 남북통일을 위한 민족주의자들의 열망은 우리쪽에서만 바란 일이었죠..그만큼 북측은 공산 이데올로기가 강했고 이미 트루먼 독트린이후 냉전상황에 돌입해가면서 소련과 미국등 강대국의 이권이 결부된 상황에서 분단은 예정된 상황이었는데 이걸 마치 이승만의 정읍 발언 하나가 남북 분단을 일으킨 것처럼 호도하는 건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는거죠. 이승만이 남북통일 열망의 이념에 찬물을 끼얹은건 맞지만 어찌됐건 우리 입장에선 남한 단독 정부를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 13.05.17 10:49

    이승만의 정읍발언이 아니었어도 이미 분단의 분위기는 짙게 드리워져있었죠. 돈을 가진 친일파들에 기생한 정치권력이 생길때부터 잘못됬다고 봅니다.

  • 작성자 13.05.17 11:03

    네 제가 오해한 부분이 있었군요. 답변주신분들 감사합니다. 이승만에 대해 좀 더 찾아봐야겠네요.

  • 13.05.17 11:07

    쓰레기라는 거엔 변함이 없죠.

  • 13.05.17 11:52

    분단에 원인이 이게 아니더라도 쓰레기라는거는 변하멊습니더 222

  • 13.05.17 11:39

    동아일보의 신탁통치 오보사건 이게 더 큰거죠. 정읍발언읕 그저 데코일뿐.

  • 13.05.17 12:35

    정읍발언은 그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 13.05.17 16:55

    이승만이 단정운동을 할때도 그리 영향력이 없었죠. 이 후에 합작운동이 일어났으니 말이죠. 그냥 병맛짓중 한가지죠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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