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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it] 조선시대에 있었던 지진 쓰나미 (http://www.seoulpost.co.kr/news/15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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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여기서 말하는 해일이 쓰나미 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해일이 발생한 시점이 음력 4월 초라는 점을 고려할 때 계절로 보아 그 원인으로 태풍을 지목하기는 힘들다는 점에서 쓰나미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숙종 7년(1681) 5월11일 강원도 일대를 강타한 지진은 쓰나미를 동반했음이 명백하다. 이 날짜 기록은 다음과 같다.
“강원도에서 지진이 일어났는데 소리가 우레와 같고 담벽이 무너졌으며 기와가 날아가 떨어졌다. 양양에서는 바닷물이 요동쳤는데 마치 소리가 물이 끓는 것 같았고, 설악산의 신흥사와 계조굴(繼祖窟)의 큰 바위가 모두 붕괴했다.
삼척부 서쪽 두타산 층암(層巖)은 예부터 돌이 움직인다고 했는데 모두 붕괴됐는가 하면 부(府) 동쪽 능파대(凌波臺) 물속 10여 장(丈) 되는 돌이 가운데가 부러지고 바닷물이 조수가 밀려가는 모양과 같았는데, 평일에 물이 찼던 곳이 1백여 보(步) 혹은 50~60보 노출됐다.
평창ㆍ정선에도 산악이 크게 흔들려서 암석이 추락하는 변괴가 있었다. 이후 강릉ㆍ양양ㆍ삼척ㆍ울진ㆍ평해ㆍ정선 등지의 고을에서 거의 10여 차례나 땅이 움직였는데 이 때 8도에서 모두 지진이 일어났다.“
이보다 23년 앞선 현종 9년(1668) 6월23일에 일어난 지진 또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볼 때 쓰나미를 동반했다.
“평안도 철산에서 바닷물이 크게 넘치고 지진이 일어나 지붕의 기와가 모두 기울어졌으며 사람이 더러 놀라 엎어지기도 했다. 평양부와 황해도 해주ㆍ안악ㆍ연악ㆍ재령ㆍ장연ㆍ배천ㆍ봉산, 경상도 창원ㆍ웅천ㆍ충청도 홍산, 전라도 김제(金堤)ㆍ강진(康津) 등지에서 같은 날 지진이 있었다. 예조가 중앙에 단(壇)을 설치하고 향과 폐백을 내려보내 해괴제(解怪祭. 사악함을 물리치는 의식)를 지내기를 청하니 임금이 따랐다.”
왕조실록에는 쓰나미일 가능성이 있는 기록도 존재한다. 효종이 즉위한 1649년 11월6일 전라도 일대에서 발생한 해일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이 날짜 실록에서는 “전남도의 부안ㆍ함열ㆍ옥구ㆍ무장ㆍ만경ㆍ고부 등지의 여섯 고을에 해일이 일어나고 여산과 함열에서는 지진이 발생했다”고 적었다.
해일과 더불어 지진이 동시에 발생했고, 계절로 보아도 한겨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여기서 해일은 쓰나미일 가능성이 있다.
영조 20년(1744) 8월9일 관측된 해일도 지진과 연동한다는 점에서 쓰나미일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이 날짜 영조실록에는 “공홍도(公洪道) 연해 고을에서 해일이 있었고, 이산(尼山)과 연산(連山) 등지의 고을에서는 지진이 있었는데, 소리가 은은(隱隱)하게 동쪽 방향에서 일어나 서쪽 방향에서 멈추었다”고 했다.
이 외에도 국사편찬위원회가 원문과 번역문을 제공하는 조선왕조실록에서 '해일'이나 '지진'과 같은 용어를 통해 검색하면, 해일은 시대를 막론하고 빈발하는 모습이 발견되며 그 절대다수는 태풍에 동반된 것으로 파악된다.
지진 또한 발생 기록이 무수히 보인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조사연구실 최범영 박사는 15일 “조선왕조실록에 보이는 해일이나 지진 발생 기사 중에서도 현종 9년(1668) 6월23일과 숙종 7년(1681) 5월11일 기록은 분명히 지진에 동반된 쓰나미 발생을 보여준다”면서 “중국이나 일본 관련 기록도 아울러 검토해야 쓰나미의 전모가 드러날 것이지만, 한반도가 쓰나미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구기차 논설가)
(추가참조)
http://jeongrakin.tistory.com/1643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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