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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vel. Made in 남자아이
· Since. 2008년 2월 10일.
· Writer. 아리세
· Mail. bibina0@hanmail.net
· Copyrightⓒ 2008 All right reserved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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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e in 남자아이 Take 13:
“안녕하세요, 쌤!”
“으, 응? 아… 안녕…”
“…….”
아이들의 등교 시간에 복도는 물론 본관까지 북적이고 있다. 8반 교실 앞에 서성이며, 반에서 장난을 치는 아이들 속에서
혹시나 다이가 왔을까 싶어, 교실 안을 몰래 살피고 있었다. 기웃거리며, 들어가지 않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인사를 하는
학생들이 어깨를 으쓱이긴 했지만… 뭐, 나는 그냥 탐색을 하는 게 아니라 그가 왔을까 싶어 확인하는 거란다!
누군가 내 어깨를 투욱-! 무거운 손을 올려두고, 무방비 상태에서 깜짝 놀란 나는 얼른 뒤를 돌아본다.-
역시나, 나를 놀래킬 사람은 서 태양 뿐이지, 암. 그렇고말고.
“쌤, 뭐해요? 안 들어가고.”
“아? 아… 아니, 그냥…”
“누구… 찾아요…?”
웃으며 내게 아침 인사를 건네는 태양은 내가 했던 행동들과 같이, 비슷하게 8반 교실 앞에서 서성이며 누군가를 찾는 시늉을 보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뻘쭘하던지- 그냥 들어가서, ‘오늘 아침에 다이 본 사람?’ 이렇게 당당하게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될텐데-
나는 왜 이리 소심하고 또 소심한거야?! 정말… 싫다아!
그런 태양에게 아니라고, 절대 아무것도 아니라며 그냥 교무실로 뛰쳐 올 수 밖에 없었다.
저 녀석에게 다이가 왔냐고 물으면, 또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생각하지 않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보며 아마 이렇게 말할테지.
‘왜요? 그 녀석이 보고 싶어요?’ 라고. 이건 절대 아무런 사심없이 묻는 질문이 아니라구! 절대 사심이 있어. 휴우.
그냥… 오늘 있을 영어 수업이 있나 체크 좀 하고, 얼른 수업이나 들어가자.
“대체 누굴 그렇게 찾아요? 밥이 코로 들어가도 모르겠네.”
“아, 아니야!”
“아니긴 뭘 아니예요! 누나, 오늘 좀 이상해요~”
“그러게. 교무실에서도 안절부절 못하고… 이 선생님, 무슨 일 있어?!”
박 선생님과 태양은 점심을 먹는 그 순간에도 내게 질문을 던져왔다. 어제 분명, 그 녀석이 학교에 나오겠다고 했고
나도 다이의 영어 교습을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왜, 학교에 안나오는 거지?! 이 녀석! 얼렁뚱땅 넘기고, 나한테 얼버무리며
또 안나오려고 수작 부린건가?! 그 생각을 하니, 정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맘이 상했다.
오늘 메뉴는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는데- 절대 밥이 넘어갈 리 없다.
“아, 아니예요! 그럼… 저 먼저 일어날게요…”
“어머, 밥도 한 숟갈 안 뜨고 가요?!”
“네에…”
식당을 빠져나와, 복도를 걷는 와중에도 나는 창 밖만 쳐다보며 걸었다. 복도를 자기 집 안방마냥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심하게 부딪히기도 하고, 뻥진 얼굴로 다른 선생님께 어디 아프냐는 소리나 듣고-.
정말… 내가 그 녀석에게 신경이 다 쏠리기는 했나보다. 어제 은민이랑 밥 먹을 때도, 밥상머리 앞에서 깨작깨작 퍼먹는다고
은민이한테 생욕을 듣질 않나. 휴우- 정말 기운 빠져, 빠져!
“어, 얘 8반에 독고 다이 아냐? 얘 진짜 데뷔하나 보네. 씨엡 괜찮네-”
“와! 지 은이랑 씨엡 찍었나봐!! 대박이네, 이 새끼?!”
귀가 쫑긋! 활짝 열려있는 교실 문. 분명 계단을 내려가려는 그 순간에 들려오는 말마디에 나는 얼른, 소리가 나는 곳으로
직행했다. 우르르 몰려 있어, 이래저래 말을 주고 받는 타 반 학생들 사이를 뛰쳐 들어가 녀석들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을보자,
요즘은 핸드폰 기술도 좋아졌지. 티비도 나오고 그러는가 보다.
양해를 구하고, 잠깐 볼 수 없냐니까 뜻밖의 선생 등장에 어색하게 웃으며 핸드폰을 주더라.
매일 다이를 찾아갈 때마다 촬영하는 모습을 가끔씩 본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에 대한 결과물인 것 같다.
어떤 여자 연예인과도 씨에프를 찍더니- 다이 성공했구나…
씨엡은 15초가 아닌, 풀 버젼. 4분여 정도 되는 것이었다. 그 속의 다이는 내가 뒤에서 보았던 다이와는 사뭇 달랐다.
더 세련되고, 정말 프로 못지 않은 연예인과도 같았으니까. 아, 그런데… 정말 안 올려나… 이 녀석….
다시 교실을 빠져나오자,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과 함께 수업이 시작되는 종이 울렸다.
아무래도- 오늘은 오지 않을 듯 싶다.
“어… 빈 자리가 많네요? 저긴…”
“태양이요. 아프다고 양호실 갔어요. 점심 시간 끝나고부터 안왔어요!”
“아아… 그래.”
점심 시간까지 멀쩡하던 녀석이 갑자기 아파서 양호실에 갔다니- 배탈이라도 났나?
하긴… 요즘 신경성 스트레스 때문에서라도 잠을 못 잘거야. 은민이의 미친 집착 때문에 되려 태양이만 고생하고 있으니까.
태양이 옆자리가… 누구…… 누구였드라…?
파악ㅡ!
“…….”
“수, 수업…”
“할꺼예요.”
다이는 그렇다쳐도, 나와 결이 사이에서는 태평양 바다가 펼쳐져 있는 것 같다. 이 녀석은 더 대하기 어렵다.
매일이, 뭐가 불만인지 뾰루퉁한 표정을 하고 있고, 무엇이든 신경질적인 포스다.
물론- 태양이와 말이라도 주고 받는 날에는, 이쪽 저쪽에서 거침없이 내뱉어지는 욕설들. 정말 당해낼 수가 없다.
자리에 철푸덕 앉자마자 영어책을 세우는 녀석. 나는 그게 무슨 뜻인 줄 안다.
만화책을 보거나 또 핸드폰으로 문자를 주고받거나 하는- 그런 거겠지.
하지만 내 수업을 들어준다는 것에 대해, 그것만이라도 만족하자.
일단은.
“수업 시작 할게요. 34페이지 피세요. 어제 마저 못했던 진도 나가야 하니까.”
샤르륵- 책 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제는 공허한 교실 안에서 내 목소리만이 존재한다.
칠판에 열심히 적어내려가는 분필은 작아지고, 또 작아진다. 수업 할 때는 절대 딴 생각은 않기로 했다.
그것은 수업을 들어주는 학생들을 위한 내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다. 다짐이기도 하고.
“에, 그러니까 이 부분은 또 누가 해석해볼까…나.”
아이들은 참 귀엽다. 혹시나 눈이라도 마주치면 자신을 지목하지 않을까 하는, 그 불안함에 고개를 푹 숙이고
열심히 수업을 경청하는 척을 한다. 그 모습이… 정말 아이같아. 어쩌다가 문자를 보내고 있는 결과… 지금처럼 눈이라도
마주치면, 결은 나를 노려보고. 나는 결이를 쳐다만 본다. 이 녀석, 아주 당당하구나?
“그래, 결이가 해볼래요?. 35페이지 박스 안에 있는 대화 읽으면서 해석하면 되요.”
“에?”
“응? 어서, 일어나. 하고 싶다고 선생님이랑 눈 마주쳤잖아요.”
“…….”
“어서 일어나요. 시간 다 가겠다.”
물론 해석하고 싶어 나와 눈 마주친게 절대적으로 아니란 것은 알지만, 내가 이럴데 아니면 어디가서
너한테 이렇게 시켜먹겠니. 더욱이 너는 내 말은 지지리도 안 듣잖아. 너희 셋 중에서-
괘씸해, 고 결.
결은 마지못해 일어섰고, 동시에 나를 향해 노려보는 그 눈은 절대로 영어 책으로 향하지 않았다.
무언의 압박인가? 눈을 흘기며, 천천히 자신이 들고 있는 영어 책으로 향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그러게 평소에 수업을 잘 들었으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영어 책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결이의 눈에서 레이져가 나갈 것 같다.
아무런 말도 없이 입은 꾹 다물고. 조금씩 시간이 지나자, 입술을 잘근 깨무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못하겠니?”
“이 걸, 이 걸… 어떻게…”
“수업 시간에 낮잠이나 자고, 문자같은 거 보내니까 방금 한 것도 기억 안나는 거잖아요. 다음부터 영어 시간에 문자보내고 그러면
정말 핸드폰 압수할 거예요! 알았어요?”
“…….”
“알았니? 고 결?”
“……네.”
뭐, 내 눈은 절대로 네- 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지만… 이 정도면 괜찮겠지.
다시 35페이지, 네모 안의 박스를 해석하기 위해 나는 교탁 위로 돌아왔고 조금씩 영어를 조아리며 해석을 하고 있을 때.
서슴없이 뒷, 교실 문을 여는 소리에 일제히 나와 반 아이들은 그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타악ㅡ
하마터면 큰 소리 칠 뻔했다.
수업도 얼마 있으면 끝이고, 대충 한 시간 반만 버티면 학교가 파하고 귀가 길에 들어서는 아이들이 많아진다.
그 중에… 오늘은 너도 있겠구나, …다이.
다이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내게 고개를 까딱이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 들어가 앉았다.
결이도 아마 놀랐던지, 토끼 눈이 되어 다이를 보며 갸우뚱- 쳐다본다. 물론, 반 아이들까지도.
쉬는 시간에 간간히 들려오는 ‘다이’ 라는 말에, 아마 녀석들은 그를 부러움의 대상이라 칭하였던 것 같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린다.
반장의 인사를 받고, 얼른 교무실로 향했다. 그 걸음이… 무척이나 가볍고, 경쾌했다.
“그럼, 먼저 퇴근할게요. 수고해, 이 선생.”
“네, 들어가세요.”
저마다 선생들은 얼른 이 지겨운 학교를 빠져나가, 주차장에 주차된 차를 몰고 바삐 정문을 빠져 나간다.
교무실에 남아 있는 선생도 이제 나 혼자.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을까?
교무실에서 창 밖으로 내려다 본 운동장은 한 없이 한적하기만 하다. 30분 전만 해도 있던 아이들은 모두-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는 모양이다. 아직, 다이에게 영어 교습을 해주겠다는 약속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계단을 밟아 내려가 8반 교실로 향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빛도 들어오지 않게 제대로 막혀버린 커튼. 그리고 잘 정리 되었는 책걸상.
그리고 깨끗한 교실의 향기가 난다. 내일의 수업을 위해, 모두가 깨끗이 정리해둔 것이다.
빈 자리는 서른 여섯자리였고, 다이의 자리도 태양이. 결의 자리도 모두 깨끗이 비어 있었다.
아무래도 칭얼대는 결의 애교에 다이는 마지못해 그들과 오랜만의 재회에 기쁨의 의사를 표하고 있겠지.
아, 어떡하지. 여기까지 들려오는 거 같아… 태양이의 능글맞은 변태 스킨쉽이… 하하.
“허억!!”
“뭘 놀래요?”
“아… 깜짝…이야.”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빈 책상을 보며 혼자 실실 웃어댔다. 나도 퇴근 길에 들어서기 위해, 뒤를 돌았는데
뒤에 바짝 서 있는 다이. 다이의 가슴 팍에서 팅겨져 깜짝 놀라하던 내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쳐다보는 녀석.
“이, 인기척도 없이 네가 오니까…!”
“…….”
“추… 축하해. 아까… 너, 씨엡 찍은 거 봤어… 멋있게, 잘 나왔더라….”
다이는 무척 키가 컸다. 모델을 지망하고 있다고 했다. 힐을 신고 있어도 녀석을 올려다보는 내 고개는
하늘을 우러러 보는 것과 같았다. 다이는 가만히 나를 건조한 시선으로 내려다 보다가도 내 옆으로 빈 틈으로 빠져나가
교실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녀석의 뒷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혼자 무안해서… 그냥 소리없이 미소를 작게 띄웠다.
“……고마워요.”
뜻 밖의… 너의 그런 말에, 나는 기분이 굉장히 이상해진다.
교실로 들어선 너의 그 목소리가… 공허한 교실을 울리고,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
나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그가 보지 않는데도.
입을 꾹 다물고- 혹시나 내 웃는 얼굴이라도 싫어할까봐서, 소리없이 더 활짝 웃어보였다.
..The End of Take 13:
Made in 남자아이 Take 14: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
“…….”
아무 말이 없다. 더 하라는 뜻인지, 아니면 그만 하자는 내 말에 수긍하는 건지- 아무런 말이나 해서 사람 무안하지 않게
해주면 참 좋을텐데 말야…. 다이와 방과 후 교실에 남아, 나머지 공부를 하는 것처럼 둘이 어색한 분위기를 이끌고
영어 과외에 열심이다. 물론… 덩달아 나까지도 말이야.
아무튼 이 녀석은 말 수가 대단히 적다. 그래서 내가 학생한테 은근히 눈치를 볼 때가 있다.
불편한 공기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성격이라 해야하나- 무튼 그런 표현으로 어설프게 녀석에 대해
정의를 내려본다. 물론 이건, 나 혼자만의 중얼거림이기 때문에 절대로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된다.
만약 내 혼잣말이 다이에게 들리기라도 했다가는, 이 녀석…
“이거, 모르겠는데요.”
“아? 어? 어, 어느 거?”
“이거요.”
들고 있던 샤프를 이용해, 정확히도 콕 찝어 주는 녀석.
이 문제는 아까 영어 시간에 내가 침이 마르고 닳도록 설명했던 거다. 분명, 아까 전에 모두에게 다 알아들었냐고
물어봤을 때, 모두들 힘차게 ‘네!’ 라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근데- 수업시간에 물어봤으면 더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나머지 애들은 복습하는 뜻에서 더 가르쳐 줬을텐데- 왜 지금 물어보지?
“아, 이거 아까 했던…”
“그냥 다음에 하죠.”
“아! 아냐, 아냐!! 가르쳐 줄게! 지, 진짜야!”
활짝 펴진 책을 단번에 덮어, 책 가방에 쑤셔넣으려는 걸 간신히 막았다. 분명 속으로 날 저주하고 있을지도 몰라.
모른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부끄러운 건가? 아이들이 널 쳐다보는 그런 시선이 싫어? 다이야-
나는 빤히 쳐다보다 말고, 멈칫하는 녀석의 손에서 영어 교과서를 빼와 다시 책상 위에 펼쳐 놓았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사르륵 내려오는 긴 머리칼을 몇 번이고 쓸어 넘기고, 다이가 모르겠다고 한 문장을 차근차근 다시 재생해 반복해 주었다.
확실히 ‘알았다’ 고 할 때까지.
“그러니까 이건…”
“…거슬려.”
“…에? 뭐… 뭐가?”
“머리. 치렁치렁- 거슬린다고요.”
실컷 설명을 늘어놓았더니 엉뚱한 말을 뱉고 있다. 내 머리 칼이 거추장스러워서 수업을 못 받겠다는 말로 들린다.
그럼 어떡하니? 머리는 자꾸 내려오고, 머리 끈은 없고, 머리를 자를까? 하지만 지금 당장 자를 수도 없잖아.
나는 짧은 머리는 싫단 말야. 상전 떠받들 듯, 네 말에 고분고분 ‘네, 네-’ 하며 이 선생님이 들을 순 없는 거잖니.
그리고 머리가 얼마나 여자한테 중요한 건데. 너희 남자들이 아침에 애국가 없이 아침에 못 일어나는 것과도 같은 거란다, 다이.
쨌든, 수업은 이걸로 끝!
녀석과의 입씨름은 여기서 막을 내리는 듯 싶다. 오늘은 좀 일찍 집에 가서 쉬고 싶다.
요즘들어, 부쩍 일도 많아지고 잔업이 늘고 있다. 이제 곧 1학기 중간고사고, 한 달도 못가 또 기말고사가 다가 와.
대체 선생에게 방학이라는 게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학교를 졸업한게 아니라 입학해서 다시 다니는 기분이라니깐?
“수고했어, 내일은 오늘 했던 거 다시 복습하고 다음 단원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내일 못 오는데요.”
“으응? 왜?”
“스케줄 잡혀서요.”
“아…”
“잘하면 중간고사 보는 시즌에도 못 와요.”
“그만큼 바쁘니?”
“네.”
다이는 영어 과목 외에 별 다른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물론, 영어도 즐거워서 배우는 게 아니라 필수기 때문에 배우는 것 같다.
가끔 이 녀석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으로 가장한 로봇이 아닐까 하는, 의문문이 들 때가 많다. 특히나 이 녀석과 둘이 어색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있을 때는 더욱이 그런 의심이 든다. 사람이 한 치의 흐트럼없이 산다는 게, 정말 힘든데도 다이는 절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아주 강하게 앞으로 나가길 바라고, 확고한 의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더 대하기 힘든 건지도 모르겠어. 절대 자기 고집을 굽힐 거 같지 않거든. 휴우.
“먼저 가볼게요. 그럼.”
“아… 응. 조심해서 가.”
“…….”
저 멀리 본관을 열어 놓은 문을 가로 질러 가는 다이의 뒷 모습을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물론, 첫 만남에서부터 지금까지- 확실히 전보다는 말 수가 대단히 많아진 것이겠지만. 이게 필요한 말만 딱딱 골라 하는
녀석이 참 신기할 뿐이다. 나는 사람을 만나면 이것 저것 궁금한 게 참 많은데, 녀석은 그런 것도 없는지 불 필요한 말은 일찌감치
제거해 버린다. 딱딱해서 재미없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하고 또 그렇게 생활화 한다.
정말 지겹지도 않을까? 피곤한 모습은 매일 얼굴에 달고 살고, 불만도 달고 산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드는 건지 결이처럼 투덜대는 어린 아이마냥 아직도 어린 아이같을 때가 많아.
태양이야 뭐… 벌써 칠순을 넘긴 능글맞은 변태 할아버지 같고 말야.
하아. 맥이 빠져, 천천히 계단을 올라 교무실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참 무겁다. 그리고 더디다.
학교 생활은 내가 평소에 지냈던 것과 별 다를게 없다. 조금은 은민이의 관섭이 시들해지긴 했으나, 아직도 나만 보면
못 잡아 먹어 안달. 아무도 없는 빈 교무실 문을 열고, 정리되지 않은 내 책상 위를 어느 정도 정리해두고 다시 교무실을 빠져 나온다.
가방을 한 쪽 어깨에 짊어지고, 본관을 빠져나와 운동장을 가로 지른다.
저 멀리 하늘을 쳐다보니 붉게 물든 석양빛이 참 아름답다. 마치 이 시간 때의 하늘은 가을같다.
예쁘고, 알록달록해서.
“누나!!!!!”
뜨끔! 정문으로 가는 내 발걸음이 갑자기 멈춰진다. 설마… 집에서 한창 총질을 하고 있어야 할 은민이가
날 또 보호관찰 하기 위해, 우리 학교로 찾아온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에 주위를 소심하게 둘러 본다. 다행히 아무도 없다.
아무래도 환청이 들린 듯 싶다. 요즘들어 화색이 별로 좋지 않아, 망가진 피부를 보며 절로 한 숨이 쉬어질 때가 많다.
나이는 나이대로 먹고, 피부는 있는대로 상해가고.
할 일은 많은데 남자하나 못 만나, 시집은 커녕 정말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보다 노처녀로 굶어 죽을까 두렵다.
“누나!! 누나, 누나. 누나 누나!!!!!”
“아이씨!!!!! 쪽팔리게 하지말고, 입 닥쳐!!”
“어때! 아무도 없는데!”
“개호로 새끼!!”
에… 화, 환청이… 아니었… 던가?!
갑자기 뒤를 돌아본다는 것이 무서워 지는 순간이다. 절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아주 조~금은 붙어 있지만,
설마, 설마 하는 심정으로 뒤를 돌아보면 저- 멀리서 태양이와 마지못해 뒤따라오는 결이가 내 쪽을 향해 열심히 뛰어오고 있다.
아뿔싸! 당장에 초 스피드를 발휘해 도망가고 싶지만… 어찌된 일인지 발이 안 떨어진다.
점점 녀석들의 얼굴에 형체가 들어나고, 태양은 나를 보며 씨익 웃는다.
마찬가지로 결은 나를 보며 못 마땅한 얼굴로 노려본다.
익숙하다, 요 녀석!
“밥 사줘요~ 누나!”
“바, 밥?!”
“아~ 결이랑 격하게 놀았더니, 배가 등에 달라 붙겠어요! 진짜 배고파서 돌아가시기 일보 직전, 일보 직전!”
“…….”
“사주세요~ 네? 오늘 월급 받았잖아요~!”
허억! 맙소사!
어디서 돈 냄새가 흘러 다니나? 내가 월급 받은 건 또 어떻게 알았대?!
정말 다른 놈은 속여도 내가 서 태양은 못 속일 것 같다. 가방을 꼭 쥐고 있는 내 손, 그 아래 내 가방을 빼꼼히 쳐다보는
녀석은 나를 보며 또 능글맞게 웃어댄다. 물론 변태같진 않지만 지금은 절대 귀엽지 않다!
옆에서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결이는 글세…
“……다, 담…배!”
“…쳇.”
“서, 선생님 보는 앞에서 담배를…!”
“뭐, 어때. 꼬우면 담탱이도 피시던가요~?”
이건 뭐지…? 저번 영어 시간에 쪽팔림을 선사한 값에 대한, 복수인가?
담배 끝을 호호- 불고, 라이터를 키기 위해 열심이인 결의 담배를 똑- 하고 부러트려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러자, 옆에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쳐다보는 태양이의 표정. 그리고 결의 분노와 살기 섞인 표정이 그대로 내게 꽂혔다.
글세! 담배는 안된다니까?!
“뭐하는 짓이야!!”
“담배는 안돼요. 몸에 해로워요. 그리고 결이는 학생이잖아?”
“지금 내 앞에서 어른 행세 하겠다는 거야?”
“어른 행세가 아니고, 난 어른이잖아. 네 담임이고- 학생이 나쁜 길로 가면 못 가게, 바른 길로…”
“아아- 잔소리 집어치워! 그러니 남자친구가 없지.”
“…….”
궁시렁 궁시렁. 고개를 옆으로 틀어, 삐쭉 내민 입을 마구 조아리는 결은 내 생각대로 내게 복수하는 모양이다.
그런 굴욕을 줬다고, 정말 보기 좋게 내 앞에서 무섭게 달려드는 구나. 너는 앙탈이 심한 사나운 고양이보다 더 무서운 녀석이야!
휴우, 녀석들이 원채 특이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선생님한테 반말을 하지 않나, 누나라면서 능글맞게 스킨쉽을 유도하질 않나. 한 녀석은 로봇이고.
고개가 절레, 절레 저어지는 건… 정말 어쩔 수 없구나.
“아! 바, 밥 사주세요 누나! 저번에 사준다고 했잖아요!”
화제를 돌려 다시 밥 얘기로 넘어가는 태양이. 결이의 살기 어린 눈빛이 내게 향해있다는 걸 저도 아는 모양이다.
뭐… 저번에 은민이 때문에 태양이한테 미안한 마음도 없잖아 있었고, 다이 때문에 은민이 떼어버린 것도 고마우니,
보답은 해야겠지! 선생으로서 약속은 약속이니까.
“좋아. 뭐, 먹고 싶어요?”
“전 아무거나요!”
“병신, 아무거나라고 하면 어떡해? 존나 비싼 거 말해. 이 참에, 이 아줌마 월급 다 뽕팔내서 집에 가게.”
“…….”
“야… 야!”
“아, 왜!! 이 여자가 먼저 시작했어!! 나한테 굴욕을 줬단 말야!! 존나 짜증나!! 너한테 고백 받은 것보다 더 짜…!”
“어이쿠! 이 계집애가!”
“@#ㅛ^*#$%@#$!!!!!!”
뻑- 소리가 나게, 결의 입을 틀어 막는 태양은 나를 보며, 조심스레 웃어 보인다. 미소가 어색하다.
결의 마지막 말이 좀 신경쓰여서, 다시 속으로 되짚어보긴 했는데- 어쩐지 좀 이해가 안간다. 태양이의 웃음에
나도 어색하게 답을 해줬고, 바로 앞에서 보는 태양이와 결의 몸싸움은 정말 치열했다.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가 다투는 모습이 따로 없다.
결이 나를 안좋게 생각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본인을 앞에 세워두고 너는 나를 여러 번 죽이는 구나.
뭐, 네 성격이 원래 그렇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도 여잔데!
“아, 아무튼요! …하하! 아무거나 먹으러 가요!”
“아… 그, 그래… 가면서 뭐가 먹고 싶은지 생각해봐. 가서도 생각하면 좀 그렇잖아.”
“네에! 분부대로 합죠.”
“병신, 마당쇠가 따로 없어. 하여튼.”
“마님, 입이 닳고 닳으셨습니다요.”
“좆까!”
양 옆으로 나와 결이에게 어깨 동무를 하고, 그대로 학교 정문으로 전진하는 태양.
역시 절대 죽지 않는 고 결의 거친 입담은 한 몫을 한다. 어깨 위에 걸쳐있는 태양이의 팔을 거칠게 뿌리친 결은,
아주 도도하고 먼저 앞으로 걸어 나간다. 가만히 서서 결의 뒷 모습을 쳐다보니, 밥을 먹으러 가기 전에 아무래도 약국에 들러야 할 것 같다.
먹다가 체하거나 소화가 안될 게 분명해!
비싼 음식은 시켜주지 못하지만, 분명 나를 갈구며 음식을 먹는 결이 생각만 해도 벌써 속이 거북한 느낌이 든다구!
머리가 지끈, 지끈 쑤셔와. 고개를 살포시 젓고는 태양이의 아부성 멘트에 못 이긴 척 다시 걸어 나갔다.
“아! 맞다!! 은교 쌤, 우리 다이도 부를까요?”
“…어?”
“아… 다이까지 불러서 저녁 먹으면 너무 부담인가…?”
“아… 에이! 그래도 나도 담임인데, 설마 제자 밥 사줄 돈, 없을까봐…?”
“그럼… 불러도 돼요?”
그 녀석이 나오기는 할까? 분명, 귀찮다면서- 아니면 전화를 받지 않던가 할텐데.
아까 남아서 공부할 때도 몹시 안색이 좋지 않았다. 벌써 집에 간 모양인지, 집에서 자고 있는데 전화하면 그게 더 폐가 아닐까?
어쨌든, 태양이는 내 답을 듣기도 전에 핸드폰을 얼른 꺼내 단축 번호를 길게 누른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컬러링 하나 없는 재미없는 신호음이.
달칵- 하고 녀석의 짙은 음성이 낮게 깔리면-
아주 희미하게나마 들려오는 목소리고,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순 없지만 태양이가 열심히 씩씩대며
말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나오기 싫다는 눈치다. 다이가 밥 못 얻어먹은 귀신이 붙은 게 아닌 이상, 귀찮아서라도 나오지 않을 거다.
어차피 안 나온다는 건 뻔한 일인데-
섭섭하다거나 그런 건 없지만, 그냥 기분이 묘하다.
같이 어울리지 않으려는 다이와 그 한 녀석까지 챙기려는 태양. 깍쟁이 결이.
대체 뭐가 문제일까?
“휴우, 진짜 왕고집이네. 이 새끼.”
“……뭐래?”
생각을 잠시 접어 두었다. 슬라이드를 내리며, 뒷주머니에 다시 핸드폰을 찔러넣는 태양은 나를 빤히 쳐다본다.
벌써 정문에 도달해 있는 결이가 욕 섞인 말을 내뱉으며, 우리 쪽으로 실컷 으르렁 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저 가만히 내 얼굴을 쳐다보는 태양의 웃음기 없는 얼굴.
하지만 점차 크게 들려오는 결이의 욕에, 결이 쪽을 한 번 쳐다 말고 나를 쳐다보는 태양은…
웃는다.
“제가 누구예요~ 당연히 오라고 지랄 하고 끊었죠.”
“…….”
“하하! 온대요. 열라 짜증부리면서, 뭐라 지껄이긴 했지만. 이 새끼, 온다고 하면 와요.”
내 등을 살포시 감싸는 태양의 행동에 나는 다시 정문을 향해 걸었다.
결을 보며, 크게 무어라 외치는 태양의 모습.
하나도 재미 있는 일은 없는데… 그냥 웃음이 나왔다.
소리도 없이.
..The End of Take 14:
Made in 남자아이 Take 15:
하암.
벌써 만나기로 한 도착지점에 다다른지도 어느 덧 30여분이 흐르고 있었다.
온다고, 온다고 입에 침이 닳도록 말하는 결의 극성에 못 이겨, 못 이긴척 하고 다이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태양이는 기다리다 심심했는지, 내 옆에 앉아 작은 핸드폰을 꺼내 모바일 게임에 한창이다. 옆에서 조용히 태양이의 게임구경,
그리고 서서 저 멀리 다이가 오지나 않을까, 비장한 표정으로 주위를 산만하게 돌아다니는 결이.
아아- 시간 아까워! 이 시간에, 밥 다 먹고 집으로 가는 버스라도 타고 있겠다.
모처럼 만의 짬을 내어, 내 시간을 좀 갖으려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결국 일이 이렇게 되버리고 말았구나, 은교야.
“어!!! 왔다!!”
“엉?!”
“다이 왔다고, 병신아!!!”
“넌, 걔가 뭐가 예쁘다고 그렇게 감싸고 앉았냐, 앉길.”
“뷰웅- 너보단 인간적이거든?!”
“어딜봐서?! 내 어떤 면을 봐서 독고보다 못하단 거야?”
“초 변태성향을 울트라 급으로 지닌 삽살개 새끼보단 인간 적이야.”
그래 그래. 이번에도 결이의 입담이 한몫 하는 구나. 태양아, 너는 결이한텐 절대로 못 이기니까 대들지 않는 게 좋겠어.
그리고 결이, 너무 입이 거칠어. 가끔 선생님 가슴이 밑바닥 하수구에 쿵, 쿵 떨어지는 기분이야. 얼굴도 예쁘장하게 생긴 녀석이
왜 이리, 입이 거칠고 사나울까. 무섭다.-
저 멀리 미안한 마음도 없는지, 뻔뻔한 모습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다이를 보아하니 한 숨이 절로 쉬어진다.
저 녀석에게 따끔한 훈계라도 몇 마디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역시, 되려 당하는 건 내 쪽일테니 그냥 입 꾹 다물고 있자.
“아, 쪼잔하게- 옆, 일식집 가자니까.”
하필이면 이 어마어마한 녀석과 마주보고 앉았다. 못내, 녀석도 고개를 들면 봐야하는 내 얼굴이 앞에 있어
좋지 않은 뉘앙스를 열심히 풍기고 있다. 내 옆에는… 아주 당연하단 듯이 태양이가 앉고, 다이는 결의 옆자리를 맡고 있다.
우리가 온 곳은 그냥,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그런 집이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충분히 비싸.
고기뷔페.
요즘은 가격도 올랐는지, 한 사람당 팔 천원이다. 들어오면서 잠깐 간판을 봤는데 보고 깜짝 놀랄 뻔했다.
이 녀석들이 고기만 먹을 녀석들이 아니잖아. 노래방이다 뭐다 해서, 또 이 오밤중에 열심히 날 잡고 질질 끌고 다닐텐데.
그리고 뷔페에서 음료수는 절대 공짜가 아니고 말야. 휴우, 암튼 지금은 그냥 이 공기가 무섭다.
그들과 함께하는 저녁이.
“좀 투덜대지마, 욕쟁이 할머니야! 선생님도 먹고 사셔야지. 거의 일 인분에 만원인데.”
“저, 저… 초 병신 좀 보게? 지가 만나는 여자들은 단물 쪽쪽 빼고 뭐 사달랄 때만 불러놓고선, 꼰대 앞이라고 신사적인 척은.”
“야… 야! 내가 언제! 언제 그랬어!!”
“치, 너 지금 날 무시하는 거야? 내 기억력을 지금 무시하는 거냐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읊어줘?! 개쪽 좀 당해볼래?!”
“아, 저게 진짜!!! 불여우같은 게!!!!!”
“흥!”
들고 있던 수저. 부들부들 떠는 태양의 손은 분명,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단 증거다.
태양이를 나쁜 녀석으로 모는 건 아니지만, 결의 저 뻔뻔하고도 사실적인 말에 태양은 아마… 당황함을 감추지 못한 듯 싶다.
뭐, 그냥 이 선생님 눈에는 그저 너희들이 하나같이 다 귀엽고 좋은 제자로만 보이니까 뭐.
결이는 음식을 나르기에 바쁘다. 이 녀석, 오늘 뷔페집 음식을 전부 거덜낼 작정인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다.
마찬가지로 룰루랄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바삐 고기를 나르는 태양이. 다이는 그저 가만히 앉아, 결이가 들이미는
음식을 한참이나 쳐다본 후에, 말없이 집어 먹는다.
꼭 둘이 연인 사이 같단 말이지. 그러고 보니, 태양이가 좀 왕따같긴 하다.
결이가 약간 다이를 편애하는 거 같아 보였기도 했어. 마자마자, 후우. 그런 거니 얘들아?
“뭐해? 고기 안 뒤집어요?”
“어?”
“이런 건 여자가 하는 거야!! 쪽팔리게 고깃 집 와서 이런 것도 손수 내가 해야되요?”
“아… 미, 미안!”
“당연히 그래야지.”
대체 말빨을 당해낼 길이 없다니까?! 져주는 게 이기는 거라고 어릴 때, 할아버지가 한 말씀이 무척이나 생각나지만…
할아버지. 그런데요, 이건 이기는 거 같지가 않아요. 꼭 당하는 기분이 들어요- 원래 이런 건가요?!
결이가 내미는 가위와 집게를 얼떨결에 받아들고, 열심히 구워지는 고기를 뒤집고 자르고 또 뒤집었다.
판이 타면, 아줌마 판 좀 갈아주세요~! 라고 한 번 외치고 땀 삐질 흘리며, 열심히 고기를 거덜내는 녀석들을 위해
이 한 몸 다 받쳤다. 그러다보니, 녀석들의 배가 불러올 때까지 나는 고기 한 접시도 못 먹고…
“누나, 이리 줘요. 제가 할게요.”
“아? 아… 아냐…”
“고기 드세요. 결이 자식, 괜히 누나한테 심술 부린 거예요. 계집애 마냥.”
“…….”
결은 고기를 꾸역꾸역 집어 먹으며 여전히 나와 태양이를 노려 본다.
들고 있던 가위와 집게를 뺏어 들어, 자기가 고기를 굽겠다고 나선 태양이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딱 그런 기분이다.
사실 아까부터 배가 고파서, 결이를 힐끔 쳐다보며 녀석이 먹는 고기가 먹고 싶어 죽을 것 같았다.
어린애처럼 나도 먹겠다고 칭얼대는게 28살이 할 짓은 아니라고 여겨, 말없이 고기만 굽고 있었는데…
역시 태양이는 이런 내 마음을 잘 헤아려 준다. 정말 고마운 녀석이라니까!
잘게 잘라진 고기를 전부 내 쪽으로 밀어넣는 태양은, 나를 보며 싱긋 웃어보인다. 덩달아, 나도 태양이의 장단맞춰 웃어보였다.
표정이 일그러지는 결은, 연신 콧방귀를 끼며 우리를 시기했다.
솔~ 솔, 고기 냄새가 내 후각을 자극해 얼른 고기를 꾸역꾸역 씹어 삼켰다.
역시 배고픈 마음에 먹는거라, 더욱이 맛있구나~!
어느 덧, 날이 더 저물어가고 배도 점차 불러갈 즈음 우리는 뷔페를 빠져 나왔다.
가게를 나오면서 종업원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지만, 내가 다시는 저 고깃집 가나봐라~ 흥!
여전히 녀석들은 노래방을 가자고 성화였다. 물론 결은 아무곳이나 돈내는 곳이라면 대찬성이라며 노래를 부르고.
태양이는 노래방 가자고 생떼를 쓰고. 다이는 여전히 침묵일관.
그렇게 날이 더 어두룩해질 때까지, 나는 녀석들에게 끌려 다니며 노래방도 가고, 근처 시내에 있는 큰 오락실까지
뻗어나가며 몸의 피로를 더욱 쌓아만 갔다. 오늘 하루, 제자들에게 쓴 돈이야 즐거운 마음으로 내줄 수는 있지만
아까부터 계속 울리는 전화는 여전히 끈질기게 징징대고 있다.
다름아닌 은민이의 연락.
보나마나 받으면, 또 화를 내며 당장 오라고 성화일 게 뻔해 연락을 슬쩍 피해버렸다.
“아~ 놀거 다 놀고, 먹을 거 다 먹었으니 이제 집에 가야지.”
“정말 배부른 소리한다, 고 결. 내가 은교 쌤이었어도 너 같은 애는 그냥!!!”
“뭐, 뭐!!!!”
“내가 말을 말지, 말을 말아…”
“꼭~ 지같은 말만 골라서 해. 그러니, 네가 변태. 병신 소릴 듣는거야. 서 태양!”
“어우~! 저 개코딱지 만한 게!!”
왜 이리 둘은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일까… 시내 한 복판에 서서, 이제는 지칠대로 지쳐버린 몸둥아리를 안고
그냥저냥 웃어보인다. 옆에서 거리를 둔 채로, 한 마디도 않는 다이를 쳐다보니 어째 아까 영어 수업을 할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
태양이와 결이, 으르렁 거리며 싸울 때… 다이는 조용히 큰 전광판에서 나오는 자신의 씨엡을 보고 있었다.
소리없이 녀석의 눈이 향해있는 촛점에 맞춰, 그 길을 따라가보니 전광판에서는 이미 자신의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이 시각, 길을 가는 사람들은 알고나 있을까?
저 큰 전광판에서 나오는 사람이 바로 내 앞에 있는 이 남자아이고. 또 앞으로는 좋은 모델이 될 남자라는 걸.
예쁜 여배우와 함께 연인으로 등장하는 저 씨엡은 내가 보아도 가히 반할만한 것이다.
너무나 예쁜 커플이 나와서 그런지, 아니면 모델이 다 선남선녀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무튼 예쁘다….
“결이랑 저는 버스타고 갈게요. 이 시간에 차 막히니까, 은민이 형한테 잔소리 안 들으려면 지하철 타고 가세요. 그게 더 빨라요.”
“은민이 형? 그게 누군데?”
“넌 몰라도 돼. 나 쌤이랑 말할 때는 제발, 넌 끼어들지마.”
“재수없어, 재수없는 돌 대가리!!”
“아오~ 진짜 이건 입만 열면 병신이네! 입병이 따로 없어! 하여튼, 은교 쌤. 다이도 같은 방향이니까 다이가 잘 데려다 줄거예요.”
“…에?”
“설마, 여자를 혼자 이 늦은 밤에 내팽게치진 않겠지? 독고.”
“…….”
태양과 아주 잠깐 눈을 마주하던 다이는 여전히 말이 없다. 한 마디 대꾸도 없이… 우리는 그렇게 그 자리서 헤어졌다.
티격태격하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태양과 결의 뒷 모습을 쳐다보고. 말없이 이미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다이를 쳐다보던 나는
어쩔까, 어떻게 해야할까 싶다가도 태양의 말이 생각나 일단 오늘은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마음 먹었다.
다이가 우리 집과 같은 방면인가…?
그렇다는 건… 오늘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일까…?
선뜻 물어보질 못하겠다. 또 무안을 사는 게 무섭기도 하고, 다이에게 말거는 건… 여전히 어려우니까.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열차와 승강장 사이가 넓습니다…”
“…….”
마치… 다이와 같이 있으면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가 되버리는 것 같다.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지하철 안은 사람으로 북적인다. 숨막힐 듯 스며드는 사람 냄새와 발걸음 소리.
지하철 안을 가득 메우는 사람이 우르르 빠져나오면, 텅 빈 그 안은 다시 사람으로 가득 채워진다. 그 속에는 다이와 나도 있다.
조금 동 떨어진 곳에 서로가 서 있다.
다이는 여전히 나를 거들떠도 안보고, 숨쉬기도 불편할 만큼 사람으로 꽉꽉 메워 싼 지하철 안.
다음 역, 그 다음 역으로 갈 때마다 조금씩 다이와 거리가 더 벌어져, 이제는 사람들 속에 파묻혀 버린 나.
쓸려 내리지 않기 위해, 발에 힘을 꾹 주고 있지만 역시나. 여자 힘으로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상대하겠어…
다음 역에 도착해, 여전히 내리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틈에 껴버린 나는 정말로 원치 않던 이번 역에 내려야 할 기세였다.
“으으…!”
아아, 이런! 안돼는데- 안돼는데…! 나 여기서 안 내리는데…!
월급이 든 가방을 부둥켜 안고, 어디하나 잡을 수 있는 손잡이, 기둥도 없어 그렇게 질질- 끌려 내릴 뻔한 나.
-!!
하마터면 한쪽 발이 이미 내려버린 상태에서, 내 팔을 꽉 잡아 내 대신 나를 지탱하는 다이.
키가 커서 그런지, 팔도 무지 길다. 힘껏 사람들을 뚫고 나를 녀석 가까이로 데려오는 다이는, 사람들에게
‘죄송해요, 길 좀 비켜주세요.’ 라며 스스로 조심스레 양해를 구한다. 못 본척, 모른 척 하고 날 거들떠도 안보는 녀석일 줄 알았는데…
다음 역, 그 다음 역을 지나 칠 때마다 다이가 내 팔목을 잡은 손 위로 많은 사람들의 옷가지가 스쳐 간다.
물론 그 이상, 나를 더 배려하는 마음 따윈 없었지만 그저 지금 이 상태로도 나는 그에게 무척이나 고마웠다.
눈도 마주칠 일이 없다. 반대편 지하철 문에 기대어 있는 다아의 모습을 말없이 비춰 보는 나는,
도둑처럼 녀석을 힐끔- 몰래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피부에 맞닿는 다이의 손. 그리고 뜨겁게 느껴지는 내 손목을 덮은 녀석의 손.
지하철은 여전히, 다음 역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The End of Take 15:
Editorial Story
늦어서 죄송, 매일은 어렵고.. 폭탄으로 찾아뵙도록 하죠
학교는 재밌나요.
첫댓글 잘 읽었어요.....다이 멋져요.....은근히 은교를 보호해 주는것이.....다음편도.....은교 아무래도 다이한데.....
아 아직 섣부른 판단이세요`-'
정말 섣부른 판단일까.....???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폭탄 넌 매일 보잖아.. 폭탄은 아니지만, 매일도 아니네- ㅠ
전왜이렇게다이가멋잇는거죠..ㅠㅠ오멋잇어요
다이 ..감사합니다ㅠㅠ
고결이 좋네요 ㅋㅋ
와아 결이가 여기서 좀 먹히네요- ㅠ
어떡해!!!!>_< 정말이지 다좋아요. !!!!>_< 흐흐흐흐흫흫 넘 재밌어용~~작까님>_< 채고~
헉 감사합니다 ㅠ_
다이는정말이지............................후우후우후우후우후후우후우후우 상상할수없는아이여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식-..-
멋져멋져멋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헉 감쟈해영 ㅋㅋㅋㅋㅋㅋㅋ
다이 멋져요~ㅎㅎ 재미있어요~
꺄하하하 오렌지님*_*
새침한 결이가 제일 조아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앙큼힌것!!!
결이가 좀 그렇져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어머어떻해어떻해! 다이진짜좋아 ㅋㅋㅋ
어머어머머 목덜미 잡으세요 넘어가시겠어여
으아;; 저도 독고좋아요 !!!!!ㅋㅋㅋ
감사해여!!*_*ㅋㅋ
독고와의 스킨쉽쉽쉽~~ 꺄으~~ ㅋㅋㅋ
다이 왠지 고양이같은 느낌 ;도도함 ?막 이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미써요^^
재밌어요~ ^^
독고..... 완전멋있다 짜슥아 ...ㅜ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