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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교체했어요ㅎㅎ)
**지난 3월에 BBC에서 노엘이 한 1시간 짜리 인터뷰에요. 막 전설의 레전드급으로 웃긴 인터뷰도 아니고, 거의 밴드 결성 비화나 성장 과정에 대해서 전에도 여러 번 언급했던 에피소드들이지만, 허세나 거품이 빠지고 훨씬 담백하고 솔직하게 다 드러내는 인터뷰라서 엄청 재밌게 봤네요. 자막은 따로 첨부했고 영상받으실 분은 유투브에서 받으시면 돼요.ㅎㅎ 자막 입힌다고 죽을뻔했어요 ㅠㅠㅠ 아무도 안시켰지만......ㅋㅋ..ㅋㅋ.. 암튼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네요. 실수나 오타, 오역있으면 꼮 ㅠㅠ 알려주세요~
Mark Lawson Talks To Noel Gallagher (FULL INTERVIEW).smi
Mark Lawson Talks To Noel Gallagher
Aired on 2012/03/30, BBC Four
영상출저: http://www.youtube.com/watch?v=LDF9pe_uFoA
인터뷰 전문 ▼
노엘 갤러거는 언제나 비틀즈를 사랑했다. 그리고 비틀즈의 프로듀서 조지 마틴이 그를 그의 세대에서 가장 뛰어난 송라이터로 칭하면서 찬사는 그에게 돌아왔다. 음반 판매량이 말해주는 것처럼 오아시스는 1990년대의 비틀즈였고, 그들의 앨범 Be Here Now는 역사상 가장 빨리 팔린 영국 앨범이다. 노엘은 언제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블러와 싸우고, (토니)블레어와 만났다. 오아시스는 2009년 노엘과 밴드의 싱어인 동생 리엄의 형제간 불화로 해체했다. 형 쪽은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라는 이름으로 솔로 활동과 투어를 시작했다.
Mark Lawson 사람들이 지금 당신의 활동에 대해서 말할 때 '포스트 오아시스', '전 오아시스'라고 하는데, 당신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그런 방향으로 가고있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거기서 떠나고 있다고 여기시나요?
Noel Gallagher 오아시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싫어요. 하지만 오아시스는 너무 훌륭했고, 거대했고,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많은 걸 의미했죠. 그러니까 갑자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라는 식으로 해버리는 건 약간 무례한 것 같아요. 저는 아직 오아시스 때 곡들을 연주하고 있어요. 그건 제가 쓴 저의 곡들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오아시스로 활동한 시간들을 정말 즐겼어요. 제가 (해체하던 날) 대기실을 떠나고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되기 바로 15분 전까지요. 정말 (오아시스는) 대단했었고, 아직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해냈던 일들은.. 중고 기타를 가진 임대주택 출신 애들로 시작해서 이뤄냈던 것들은 믿을 수 없게 굉장했어요. 우리가 그렇게 오래동안 함께 했던 사실도 기적이었어요. 음반들이 아직도 그걸 증명해주고 있잖아요. 아직도 주기적으로 오아시스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들을 만나요. 사람들의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었고, 전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ML 그러면, 지금 솔로 뮤지션으로 오아시스 곡들을 연주하실 때, 물론 애초에 다 당신 곡들이지만, 예전보다 더 '자신의 곡'으로 느껴지시나요?
NG 음... 그런거 같아요.. 일단 저는 리암과는 완전히 다른 싱어니까요. 그리고 제가 그 곡들을 부를 땐, 전 그 가사가 저한테 뭘 의미하는지 알고, 그걸 제대로 전달할 수 있어요. 리암보다 더 낫다는게 아니라, 쓰여진 그대로 전한다는 거죠. 예를 들면 Wonderwall의 내용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게 어떤 종류의 '아무것도 아님'인지 저는 아니까요.
ML 리암은 당신과 곡의 의미에 대해서 상의했었나요?
NG 아뇨.
ML 그럼 그냥 불렀나요?
NG 우린 의미같은걸 상의하지 않았어요. 절대요. 단 한번도 없었어요. 이거 누구 얘기야? 무슨 얘기야? 이런 적은 없어요. 우린 그런 밴드가 아니었어요. 아시잖아요. 무슨 예술학교같이 '여기선 무슨 얘길 하려는 거냐?' 이러지 않았어요. '이게 가사다.'라면서 내놓으면 걘 진짜로 그냥 그대로 그걸 불렀어요. 그러고 나서 언쟁이 시작됐죠. 걔가 '난 이렇게 부를꺼야.'라고 하면 전 '그래.. 하지만 저렇게 해야해'라고 하고, '그치만 난 이렇게 부르고 싶어' '핳하..하지만 저렇게 해야해, 원래 그래' 이랬죠. 그러다가 서로 타협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게 됐죠. 그렇지만 의미라던가 그런걸 리암이 물은 적은 없어요.
ML 곡을 쓰시는 게 쉬우신가요?
NG 곡이랑 멜로디를 쓰는건 저한테 꽤 쉬워요. 그건 제 안에 잠재되어있어요.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쉬워요. 오늘 아침에도 하고 있었어요. 가사는, 가사를 멜로디에 붙이는 건 조금 어려워요. 예전에는 그것때문에 조금 괴로워했어요. 우울해하거나 그런건 아닌데, 꽤 그거 때문에 좌절했죠. 근데 이제는 그런게에 더이상 안달내지 않아요. 가사가 떠오르면 떠오르는거고 아니면 아닌거니까요. 지금 특별히 다른 음반을 빨리 내야하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만약에 제가 오늘부터 더이상 곡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만 뒤돌아 봐도 '난 해냈어'고 할 수 있으니까요.
ML 그런데 당신은 악보를 읽거나 쓰실 수 없죠?
NG 네, 악보는 못읽어요. 쓰지도 못하구요. 그런 걸 하는 사람도 몰라요.
ML 그럼, 작곡하실 때 어떻게 작업하시는 건가요? 과정이라던가...
NG 전 그냥 기타를 연주하면서, 코드 몇개를 3개월 정도 치면서 그 코드들에 사로잡혀있으면, 아무일도 안일어나다가 (그 코드들을) 충분히 반복해서 연습하면, 어느날 갑자기 멜로디가 떠올라요. 그러면 가사가 따라붙고, 그러고 나서 밴드 멤버들한테 연주하게 할 땐, 저 같은 사람들, 오아시스가 몸을 담았던 음악계 사람들은 그냥 그자리에서 '이렇게 하는거야'라며 직접 보여주는 방식이었어요. 전 코드는 몰라요.. 뭐 E같은 코드는 알아요. 이제 몇개는 알죠. 메이져 코드들이랑 마이너들 몇몇도요.. 근데 뭐 걸림음(suspended chord)이나 증화음(augmented chord)이딴 것들은 뭔지 몰라요. 그냥 펑크적인 방식이었어요. '이런식이니까 한번 해봐, 카피해' 이렇게요.
ML 심리적으로 솔로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무대에 혼자 서는게 쉽게 받아들여졌나요?
NG 생각했던 것보다는 쉬워요. 전 사실.. 진짜 제가 성격 드런 노인네처럼 굴꺼라고 생각했거든요. '윽.. 빨리 연주하고 치워버려야지..(관객들이)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고 아님 꺼지라 그래' 이렇게요. 근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굉장히 이게 편안해요. 왜냐면 모든걸 제가 컨트롤할 수 있거든요. 제가 뭘 망친다고 해도 그냥 스스로한테 실망할 뿐이죠. 반대로 오아시스에선 누가 뭘 잘못하면 전체한테 피해를 끼치니까요. 전 아무튼 이상하게도 이걸 즐기고 있어요.
ML 로비 윌리엄스는 솔로활동을 시작할때 그냥 로비 윌리엄스로 나왔는데요, 반대로 당신은 그 중간이잖아요. 당신은 'Noel Gallaghers's High Flying Birds'라는 밴드 이름 같지만 아닌 명칭으로 돌아왔죠. 왜 그냥 Noel Gallagher로 활동하지 않으신거죠?
NG 그냥 쇼비즈니스에 적합한 이름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Ziggy Stardust(데이빗 보위의 가명)처럼 특이한 이름도 아니구요.
ML 로비 윌리엄스도 마찬가지잖아요?
NG 그렇죠.. 그렇긴 한데.. 그냥 맞게 느껴지지가 않았어요. 어느날 밤에 지나가다 간판에 누구 이름이 적혀있는 걸 봤는데, 제 이름이 거기에 있는 게 상상이 안되더라구요. 그냥 별론거 같았어요. 그러곤 몇 달이 지나서, 라디오에서 Peter Green's Fleetwood Mac(밴드이름) 노래가 나오길래, '아 나도 Noel Gallagher의 뭐뭐로 불리면 어떨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또 몇 주 후에 Jefferson Airplane 1집을 듣고 있었는데 거기에 High Flying Birds라는 트랙이 있었죠. 그렇게 된거에요.
ML 그리고 (High Flying Birds의 멤버는) 가변적인가요? 제 말은, 그 시점에서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나요?
NG 네, 지금까지 고정멤버를 둬야겠다고 생각한적은 없지만 그렇게 한다면 Noel Gallaghers's를 떼 내고 그냥 High Flying Birds가 될 수도 있어요. 사실 꼼수를 쫌 둔거죠. 이거나 저거 둘중에 아무거나 할 수 있으니까요. 제 이름이 있으니까 사람들은 저인걸 알지만, 그 구성원은 유동적으로 보고있어요.
ML 당신 형 폴이 1970년대 맨체스터에서 당신의 어린시절에 대해서 이렇게 썼더군요. '노엘은 호감이가면서도 조용한 아이였고, 다정했지만, 쉽게 자주 침울해했고, 그런 성격은 어른이 돼서도 이어졌다.' 그런거 같나요?
NG 호감형이라니 고맙네요. 호감가는 녀석이라니. 사람들은 제가 꽤 변덕스럽게 침울해진다고 해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사실 전 자주 찡그리긴 해요. 미소짓는걸 별로 안좋아하거든요. 왠지 모르겠지만.. 전 멋진 미소를 갖고있지 않아요. 모르겠네요. 그래요, 전 변덕스러워요. 쌍둥이자리라서 그렇다고 해두죠.
ML 이런 얘기도 있었어요. '노엘은 자기 액션맨(장남감이름)을 완전 사랑해서 어릴 땐 어딜가든 그걸 가지고 다녔다. 담요 끌고다니는 애들처럼말이다. 세살에서 일곱살까지 걔는 완전히 밀리터리덕후여서 장난감 병정, 탱크, 보통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았다.'
NG 제가 쫌 세계 2차대전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있긴 있어요. 그리고 그 액션맨은 70년대에 저한테 진짜 좋은 친구였죠. 눈도 움직일 수 있었구요. 멋진 친구였어요. 지금 어떻게 된지 모르겠네요. 아마 재활원에라도 갔을 거 같네요.
ML 같은 책에서 당신 어머니는 당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네요. '(노엘은) 약간 몽상가 기질이 있었고,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
NG 네. 엄마 고마워요.
ML 정말 그랬나요?
NG 네, 완전히요. 전 지금도 제 아내, 아이들, 그리고 고양이 그런 걸 제외하면, 멍 때리면서 창밖을 보며 시간 떼우는게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투어를 돌땐 전 그냥 창밖을 보면서 몇시간이고 아무생각없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게 너무 좋죠. 그리고 이야기꾼은 부분은.. 보시면 알잖아요.
ML 그러면서 어머니가 해주신 이야기로는 당신이 한 3주 동안 매일 아침 가방을 매고 학교에 가고 저녁에 돌아와서는 그날 있었던 얘기들을 꽤 자세히 했다구요. 그날 급식으로 뭘먹었는지 까지도요. 그런데 갑자기 학교에서 전화가와서 당신이 3주간 학교를 나오지 않고 있다고 알려줬다고 하셨네요.
NG 네. 다른 할일이 있었거든요. 바빴어요. 제 무리들을 이끌고 여기저길 접수하느라구요.
ML 리버풀을 침략하느라요?
NG 이 거리 저 거리를 점령하느라구요. 아무튼 저한테 학교는.. 솔직히 읽고 쓰는 것만 알면.. 프랑스어 같은걸 배워야 하나요?
ML 그냥 학교를 싫어하셨나요?
NG 그렇기 보다는.. 전 그림 그리기, 미술시간은 진짜 좋아했어요. 체육시간이나 축구 이런건 누구나 좋아했구요. 프랑스어? 먹는건가요? 전 프랑스어 따위 배울 필요없어요. 그리고.. 저는.. 제가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무슨 이유인지 학교 측에서 절 우등반에 넣었어요. 실수로요. 그래서 전 첫 학기를 그 반에서 보냈는데, 학기가 끝날때 쯤 누가 '잠깐있어봐, 얜 여기있을 애가 아닌데?'이랬겠죠. 그리고 학교엔 갤러거라는 성을 가진 다른 애가 있었어요. 아마 데이빗 갤러거였을 꺼에요. 그래서 걔가 (아마 제 대신) 열등생들이랑 같이 있었던거죠. 걘 아마 그 이후로 다시 정상으로 못돌아왔을 거에요. 신경쇠약에 걸렸다던가.. 아무튼요. 그래서 제가 열등반으로 옮겨지고 나서, '그래, 얘네들이 나랑 맞는 애들이지, 바로 여기가 내가 있을 데야' 이랬죠. 그리고.. 그냥 다른거에 너무 관심이 많았어요. 학교를 빠지는건 너무 쉬웠어요. 매직머쉬룸(환각버섯)같은게 널려있었다구요. 누군가 그걸 따야지 않겠어요?
ML 그럼 그동안 그냥 거리에 나가 놀고있었던 건가요?
NG 음.. 부모님이 둘다 일하시는 애 집에서 다같이 놀았죠. 저혼자 돌아다닌건 아니었어요. 무슨 거렁뱅이처럼 학교가방을 질질끌면서 군사전략이나 상상하는 밀덕은 아니었어요. 같이 노는 몇명이 있었어요. 일종의...일종의 사교활동이었죠. 모두들 그랬어요. 몇몇이서 놀았는데, 우린 음악에 빠져있었고 집에서 같이 레코드를 듣거나 했죠. 전 엄숙한 중고등학교를 다녔어요. 카톨릭 학교이기도 했구요. 엄마한텐 죄송했어요.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셨거든요. 그래서 전 급식먹으로는 왔어야했죠. 그러고선 아무일도 없는 척하곤,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다시 밖으로 나갔죠. 그러니까 밥은 잘 먹고 다녔죠.
ML 어머니께서는 그 시간에만 학교에 계셨겠네요?
NG 네, 그때만 절 보신거죠. 그 외엔 전혀 모르셨구요. 나중에는 선생님들 몰래 들어오고 빠져나가는게 예술행위수준으로 발전했어요. 그건 즐거웠어요. 다 좋고, 군더더기 없이 순수하게 재밌었죠.
ML 어머니께서 당신에게 화를 내셨나요?
NG 당연하죠. 완전 광분하셨죠. 네, 정신이 나가셨었어요. 저라도 그랬을꺼에요. 제 아이들이 학교에 안 나갔다는 걸 알면 뭔짓을하고 돌아다니는 거냐고 생각하겠죠. 그리고 아무래도 다른것보다 거짓말 부분이 화나셨겠죠. 자식이 자길 속이고 바보로 만들었다는 게요. 전.. 그래요.. 그게 제일 화나셨을거에요. 하지만 전 프랑스어 같은걸 배울 운명이 아니었어요. 아니면 금속공예같은 것도요. 미안하지만, 우리가 자란 동네에서는 빌딩짓는 노동자가 되는게 다 였어요. 무슨 프랑스 금속공예가가 될것도 아니잖아요?
ML 그러고 나서 당신은 꽤 경미한 잘못로 학교에서 짤리셨죠.
NG 마지막 날에요. 마지막 날에 퇴학당했어요. 제가 기억하기론요. 꽤 옹졸한 일이었죠. 그날 2시면 이제 끝인데.
ML 의미없는 일이죠.
NG 무슨 의미냐구요. 뭐 선생님들은 절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어요. 싫어한건 아니지만. 전 언제나 교장실에 끌려가곤 했어요. 언제나요. 그 학교에서 뭔가 잘못된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어디선가 저랑 연관 되어있었죠. 누명을 썼다는 건 아니에요. 보통 진짜로 어디선간 저랑 관련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전 계속 그래왔었어요. 모르겠어요. 누가 선생님한테 밀가루를 뿌렸죠.
ML 밀가루 폭탄 말이죠. 당신이 던진건가요?
NG 제가 한건지는 확실히 모르겠어요. 지금 제 변호사가 옆에 없어서 이렇게 말하는게 아니에요. 제가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건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자리에서 불알이 떨어져나가게 웃고있었다는 것 맞아요. 그래도 학교가 쫌 꼬였었다고 생각해요. 졸업증명서도 못받았거든요. 쓰레기같은 일이죠.
ML 학교에서 당신을 타이르려고는 안했나요? 넌 매우 똑똑한 아이다, 넌 분명 더 잘할 수 있다.같이요. 아님 당신을 그냥 무시했나요?
NG 솔직히 전 학교에서 일말의 가능성도 보여주지 않았어요. 어떤 과목에서도요.
ML 영어도요?
NG 네, 영어도요. 전혀요. 전 학교에서 관심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음악에는 관심있었지만, 듣는 거였죠. 저는 어떤 거에도 특별히 의욕을 가지지 않았어요. 맞춤법이나 글쓰기, 읽기는 엉망이었고, 오히려 학교를 떠난 이후에.. 전 늦게서야 성장하는 타입이었어요. 신동과는 멀었죠. 기타를 치기 시작한 것도 휠씬 뒤였고, 24살에서야 밴드에 들어갔고, 27살이 되서야 레코드 계약을 했죠. (락스타들은) 보통 다들 27살이면 죽는다구요. 전 그때 겨우 몸을 푸는 단계였죠.
ML 27 클럽말이죠. (지미 핸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커트 코베인 etc)
NG 네. 겨우 준비 단계였어죠. 학교에는 그냥 관심이 없었어요. 무슨 이유에선지 전 학교와 전혀 가까워질 수 없었어요.
ML 여러 책이나 글에서 당신에 대한 기본적인 견해는 당신이 어린시절 받은 상처를 작곡으로 해소한다는 건데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NG 음.. 상처 받았다고 하진 않겠어요. 하지만 누구나 어린시절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내죠.
ML 그렇지만 당신의 어린시절은 꽤 험난했잖아요?
NG 그렇기보다는 그 시대가 험난했죠. 7,80년대, 맨체스터에서 노동계층, 대처 정권이었잖아요. 다들 일자리가 없었구요. 저희 아버지도 때때로 실업자였고, 친구들이나 걔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죠. 암울한 시대였어요. 그렇지만 다른 사람과 별다를게 없었어요. 그리고 음악은 저한테 탈출구였죠. 팝스타가 되겠다거나 그런게 아니였어요. 그런 사람들은 제가 있던 곳에서 나는 사람들이 아니었거든요. 다른 데서 왔죠. BBC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른 데서 온 사람들이었어요. 맨체스터가 아니라요. 음악은 그냥 탈출구였어요. 음악을 듣는 3분동안은 11월의 추운 영국 북부의 고되고 단조로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ML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라고 하셨지만, 당신의 아버지는 꽤 무서운 사람으로 묘사되는데요?
NG 네. 괴물이었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형편없는 아버지였죠.
ML 폭력적이구요?
NG 네. 자주 그랬어요.
ML 당신은 그 폭력에 시달렸구요.
NG 네.
ML 아니라고 하시지만, 그것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지않나요? 정상적인건 아니잖아요?
NG 지금까지 그것때문에 정신과 의사한테 상담을 받은 적은 없었어요. 지금 꼭 상담 받는 거 같지만요. 뭐 잘 모르겠어요. 어린시절에 대한 곡을 쓴적은 없어요. 그리고 그런게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어린시절에 대해서 얘기하는 건 상관없어요. 전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감히 말하지만, 그 시절, 제가 살던 거리에 살던 사람들 모두 성장과정이 비슷했어요. 제가 모범적인 아들도 아니었구요. 맨날 밤에 밖에 싸돌아다녔죠. 본드를 마시거나 환각제를 먹으면서요. 도둑질도 했구요. 전 알래드 존스(CCM가수)가 아니었어요. 노래를 잘한다고(모범적인 아들이라서) 맞는 그런게 아니었어요. 전 다루기 힘든 애였죠. 쫌 건방지기도 했구요. 아무튼 전 그시절을 돌아보면서 '그렇지 않았더라면..' 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게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하는 생각을 가지게 하도록은 했겠죠. 모르겠어요.
ML 그럼 아버지에 관한 생각은 하시나요? 아님 그냥 머리 속에서 지워내셨나요?
NG 아니요. 그런거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아버지에 대한 어떠한 견해도 없구요. 나쁜 기억이나 좋은 기억에 대해서 생각하지도 않고, 한번 찾아볼까?라던가 가서 질책해야겠다던가 하는 생각도 없어요. 모든걸 잃은 건 아버지죠. 제가 아니라.
ML 예전에 'the News of the World'라는 신문사에서 당신과 아버지를 만나게 하려고 그를 당신들이 묵는 호텔로 오도록 사주했다면서요?
NG 네. 힘든 하루였죠. 그래요. 리암은 완전 오버하면서 정신을 놨죠. 저는 그냥 무시하라는 쪽이었구요. 아무 의미없는 거잖아요. 그날도 멋진 파티가 있었고 끝내주는 밤이었는데 갑자기 망쳐진거죠. 모르겠어요. 전 그런 걸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냥 지나간 일이죠.
ML 지금은 아버지가 어디 사시는지 모르시죠?
NG 어디 사는지 정확히 알아요. 엄마가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 그 집에 그대로 살고있죠. 아직 거기 살아요. 어머니가 저희를 데리고 이사 간 집에서 2키로정도 떨어진 곳에서 살아요. 그리고 저희 어머니 언니나 동생들, 우리 모두가 다 같은 지역에서 컸어요. 모두들 아직도 아버질 봐요. 그냥 아무도 더이상 그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아요. 옛날옛적 일이니까요.
ML 하지만 당신은 그를 만나지 않죠?
NG 네. 전 런던에 살잖아요. 안그래요?
ML 그럼 당신이 아이를 가지고 아버지가 되었을 때 힘든 점은 없었나요? 당신은 좋은 아빠의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NG 맞아요. 저는 한번도 어떤 종류의 올바른 아이키우는 법을 본적이 없죠. 사라를 만나기 전까지는요. 그녀는 저희 아이들에게 정말 너무나 좋은 어머니고, 전 그녀에게 너무나 많이 배웠어요. 사라는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그들은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거든요. 지금까지도요. 그래서 사라는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애들을 키우죠. 물론 저는 문제가 있는 가정에서 컸기 때문에, 지금은 애들을 잘 돌보지만, 처음에 첫째 딸을 키울 땐.. 모르겠어요.
ML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모르셨던건가요?
NG 아이들을 다루는 방법을 본능적으로는 알지 못했어요. 아버지들은 그렇잖아요. 그리고 딸이 태었났을 때 걔 엄마와도 헤어진 상태였구요. 아버지들은 본능적으로 그런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잖아요. 여자들은, 어머니들은 (본능적으로) 알지만요. 아님 그래야 하죠. 그래서 뭐 처음에는 쫌 힘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정말 좋아요. 즐기고 있어요.
ML 당신 어머니에 대한 글도 쫌 읽었는데요, 어머니께서는 당신을 위해 해주실 수 있는건 다 해주셨죠. 제 말은, 당신을 보살피셨잖아요.
NG 네. 그렇죠. 저희 어머니는 매우 충실하세요. 늘 저희 곁을 지키셨구요. 그리고 뭘 하라고 강요하신 적도 없구요. 그냥 '뭘하든 너 스스로 이뤄지게 해야한다. 아무도 대신 너한테 뭘 주지 않는다.'라고 하셨어요. 기억나는게 제가 집에서 기타를 치고있어도, 엄마는 나가서 제대로된 직장이나 찾아라는 말같은건 절대 안하셨어요. '그게 널 행복하게 하는 거면,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을 만큼 해라'라고 하셨죠. 그게 다였어요. 특별히 이건 했냐, 저거 해라, 이걸 해야한다는 식으로 뭘 강요한 적이 없으셨어요. 그냥 '행복하게 살아라' 셨죠. 조금 다를게 변하셨을 때도 있었는데, 제 기억으론 제가 21살때 독립하겠다고 했을 때 였어요. 엄마는 '도대체 왜?' '여자친구를 사겼는데 걔가 시내에 방이 있어요.' '그래, 근데 왜 니가 집을 나가야 되니?' '저 벌써 21살이잖아요.' '니네 형은 23살인데 집에서 잘만 산다.' '그렇지만 슬슬 때가 됐잖아요?' '아니' 뭔지 아시겠죠? 아이리쉬 엄마들은 이런거에 쉽게 기분상해하시죠.
ML 그런데 당신은 한번 한밤 중에 이사를 했죠. 어머니께서 그냥 다 데리고 나오신 건가요?
NG 네. 엄마가 아버지를 떠나셨을 때였죠. 한밤중이었죠. 비밀작전 같았어요. 왜냐면 그때 아버지가 돌아왔었다면 무슨일이 일어났을지 모르는 일이죠. 베들레헴(예수가 태어난 곳으로 로마군의 추적을 피하던 상황)같이 됐겠죠. 음..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혼자서 우리들을 키워내신거죠. 아들 셋을, 그것도 그중에 한명이 리암일때 돌보는건 무지 힘들일이였을 거에요. 나머지 둘은 저랑 형인데, 뭐 저희 형 폴은 저랑 리암 만큼 사고를 치진 않았지만 때때로 문제를 일으켰어요.. 엄마는 정말 저희를 위해서 다 포기하셨어요. 그리고 그런 업보때문인지 몰라도 순전히 우연으로 아들 둘이 영국이 낳은 최고의 락스타가 되었지만 엄마가 원한 건 그저 새 정원 문이었어요. 리암은 엄마한테 오들리 에지(지역: Alderley Edge) 어딘가에 있는 성을 사드리겠다고 했지만 엄마가 살던 임대주택에 정원문이 몇년 동안 쫌 삐걱거렸는데 그걸 새거로 바꾸고 앞에 금색으로 '5호'라고 걸어 드린게 다였죠. 아직도 있어요. 지금도 그 임대주택에서 사시거든요.
ML 당신에게 더 바라신건 없으셨나요?
NG 네. 엄마 친정은 식구가 11명이나 되서 자매만 7명이고 다들 2키로 반경 내에 살고 있죠. 엄마는 그냥 자기자신답게 사시고 스스로 자기가 어떤사람인 아시죠. 여기 런던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현혹되시지 않으시죠. 지금도 같은 집에 사시고, 같은 일을 하시면서, 자매들을 만나고 손자 손녀들을 보는 똑같은 일상을 보내시면서 즐겁게 사세요.
ML 그럼 어머니께서는 당신과 리암사이의 싸움에서 편을 드시나요?
NG 아니요. 엄마는 절대로 편을 들지 않으세요. 절대로요.
ML 사실 그게 부모로서는 올바른 행동이죠.
NG 그럼요, 그럼요. 그게 부모잖아요. 중립적인 중재자말이에요. 저도 제 두 아들한테 똑같이 할꺼구요. 편들지 않을 거에요.
ML 보통 어머니들이 가끔 하시는 것처럼 '너네 그냥 쫌 어떻게 화해 하면 안돼니?'이런 말도 하세요?
NG 당연하죠. 지난 크리스마스에 엄마가 오셨을 때 바로 이거랑 똑같은 대화를 했어요. 그게 어떤 결심이나 동기부여가 되지는 않지만요. 엄마는 '리암한테도 말했고 너한테도 말했지만 너네 둘다 왜 잘지낼 수 없니?' 어쩌구저쩌구 이러시죠. 그럼 전 대부분의 북부 출신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엄마, 차 한잔 드실래요?' 이러죠. 북부에선 그게 모든 걸 해결하죠. '차? 그래..'
ML 그리고 당신은 카톨릭 집안에서 컸죠. 당신의 첫 성찬식 사진이 있잖아요.
NG 네. 전 꽤 오랫동안 성당을 다녔어요. 매주 일요일 마다요. 저희 엄마가 그만 다니시기 전까지요. 엄마도 질리신거 같았어요. 우린 '하.. 살았다' 싶었죠. 성당은 쫌 제정신이 아니잖아요.
ML 하지만 당신 곡에는 신(God)이 자주 등장하지 않나요?
NG 왜냐면 좋은 이미지[형상]니까요. 신이나 천사는 훌륭한 이미지죠. 아시잖아요. 제 아내는 천사에요. 제 아이들도 천사에요. 그렇다고 문자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돼요. 그래도 신은 매력적인 개념이죠. 저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신이 구름 위에 살면서 하프를 들고 튜닉 원피스를 입은 수염난 남자라고 여기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신이 무엇이가에 대한 각자의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지 몰라요. 신이란게 그냥 자기자신만의 신이 영혼과 함께 내면에 있는 건지, 다른 건지 모르죠. 하지만 신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긴 해요. 노래에 넣기 좋잖아요.
ML 여러 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가족 내에서 위치가 성격차이를 형성한다고 하고, 당신은 중간 아이죠. 그들은 보통 방치되거나 간과되기 쉬운 반면에 막내는 응석받이가 된다고 하죠.
NG 뭐 첫째는 늘 첫째고 애기는 늘 애기이기 마련이죠. 그리고 가운데에 있는 애는 스스로를 돌보게 된다고들 하죠. 전 몇몇 중간 아이로 자란 사람들을 아는데 우린 다 똑같아요. 매우 자족적이고, 뭐든 스스로 하고, 그냥 무난하게 잘 지내는 것 말고는 별달은 관심이 없죠.
ML 그러면 당신과 리암 사이는 원래부터 어려웠나요?
NG 아니요. 사이가 어려워진건 음.. 95년 94년? 사실 그냥 밴드가 유명해지기 시작할때 부터였어요. 거기서부터 늘 주도권 싸움이 있었죠. 저희가 매니져를 따로 두고, 실제로 레코드 계약을 하기 전엔 사람들이 전부 알고있던 건 제 전화번호였고 그래서 밴드에 관한 모든 일들을 제가 대표로 얘기했죠. 그리고 그게 그냥 이어졌어요. 아마 다른 멤버들은 조금 소외되었다고 느꼈을 수도 있어요. 이해는 해요. 하지만, 뭐 어쩌겠어요.
ML 그럼 어릴 때는 싸우지 않았나요?
NG 아니요. 다섯살 차이는 그때는 컸으니까요. 제가 15살일때 걔는 10살이었죠. 10살이면 어린이 반바지를 입고 다닐 때잖아요. 지금은 나이 차이가 아무것도 아니지만요. 별다른 차이가 없죠. 어릴 땐 안 싸웠어요. 수 년간 걔랑 방을 같이썼어요. 걔가 하는 거라곤 저한테 돈달라고 조른게 다였어요. 걘 끊임없이 5파운드를 빌렸어요. 언제나요. 그리곤 절대 돌려주지 않았죠.
ML 어린 남자애들이 흔히 가지는 두가지 꿈은 프로축구선수랑 락스타가 되는 건데요, 당신도 그랬나요?
NG 네. 락스타는 아니였지만요. 그걸 생각한 건 한참 뒤부터고.. 프로축구선수는, 뭐 맨체스터에서 자란다면 되고싶은 건 오직 그거 하나죠. 그리고 전 맨시티를 위해서 뛸 수 있다면 행복했을 거에요. ♥
ML 잘하셨나요?
NG 아니요. 저는.. 아니요.. 저는 운동선수감이 아니에요. 보면 알잖아요.
ML 당신 형 얘기로는 태클은 잘 거셨다던데.
NG 그래요. 하지만 형이 절을 무슨 밀리터리 천재처럼 말한 걸로 봐선 형 말을 진지하게 받아드리면 안될거 같네요. 그쵸?
ML 당신은 잘못하면 범죄자가 될 수도 있었는데요, 절도 혐의로 보호관찰을 명령받은 적이 있죠?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당신이 한일에 대해서 부끄러웠나요?
NG 뭐 걸리게 되서 좋지는 않았죠. 어쩌겠어요?
ML 아니, 당신이 일을 저질렀고 그걸로 인해서 벌을 받게 된거잖아요. 뭔가 잘못했다는 생각은 들었나요?
NG 네, 네 당연하죠. 뭘 훔치다가 잡히면 벌 받는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그저 소년원에 안들어간게 다행이었죠.
ML 하지만 그 벌을 받은게 당신에게 영향을 주긴 했죠? 더이상 그러지 않으셨잖아요.
NG 전 범죄에 소질이 없었어요. 꽤 초기에 잡혔죠. 저한테 맞는 일이 아니었어요. 유전자에 범죄적 재능이 없었어요. 그냥 좀더 예술적인 일이나 해보자 했죠. 전 진짜 소질이 없어요.
ML 당신의 음악적 야망은 텔레비전에서 The Smith를 보면서부터 시작된다고 하던데, 맞나요?
NG 뭐, 점차적인 과정이었어요. 음악에 관해서는요. 비틀즈는 언제나 거기 있었구요. 얼마전에 인터뷰에서 언제 처음 비틀즈를 들었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걸 누가 알겠어요. 그냥 항상 곁에 있잖아요. TOTP도 저희 세대 사람들한테는 엄청난 영향이었구요. 80년대에 거기에 T-Rex나 데이빗 보위가 나오는 걸 보면서말이에요. 저한테 TOTP는 큰 의미죠. 아니, 의미였죠. Sex Pistols도 좋아했지만 그땐 제 나이가 조금 어렸구요. 처음으로 직접 보고 공감대를 가졌던 건 OGWT(음악프로그램)에 나온 Jam이었어요. 그 다음에 The Smiths나 New Order가 있었고, 그들이 다른데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 맨체스터 출신이란건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가지게 한 건 The Stone Roses였구요.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다 거기서부터 시작됐죠.
ML 그럼 당신이 그 창고나 당신 아버지의 콘트리트 회사, 아무튼 그런 일을 하던 시절에, 그런 삶에서 벗어나서 뭔가 해낼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나요? 아니면 그냥 그게 다라고 생각했나요?
NG 전 별다른 야망을 가져본 적이 없었어요. 왜냐면 그냥 그런 일들은 저같은 사람한테 일어나지 않았거든요.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은 저랑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니까 애초에 어떻게 그런게 가능하겠어요. 제가 자랐던 버니지에서는 그 지역을 통틀어서 저만 유일하게 맨시티 외에 딴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다른 애들이 전부 자동차나 맥주에 심취해있을 때 전 시내에 나가서 밴드 공연같은 걸 보러 갔죠. 다른 사람들은 절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했죠. 그러다가 어느날 밤에 우연한 기회가 왔는데, The Stone Roses 공연에 갔을 때였어요. 발코니 쪽에 워크맨을 든 남자가 있었는데, 워크맨 기억하시죠? 그 매력적인 기계말이에요. 아무튼 그 남자 워크맨에 빨간불이 들어와있었고 부틀랙을 녹음하고 있는 중인거 같길래 다가가서 나도 줄 수 있냐고 물었죠. 아직 The Stone Roses가 앨범을 내기 전이었고, 전 그 음악에 완전 빠져있어서 꼭 들어야만 했어요. 테이프 쫌 달라고 부탁했는데, 알고보니 그 남자는 기타리스트였어요. 그래서 저한테 어떤 밴드 좋아하냐고 묻길래 Insparial Carpets 얘길했는데 또 알고보니까 그 사람이 그 밴드 멤버였더라구요.
ML 그레이엄 램버트죠?
NG 네, 그레이엄 램버트였어요. 전 그를 알아보질 못했죠. 공연을 보러간 적은 많았는데 말이죠. 아무튼 그는 그때 밴드 싱어가 나가서 새로 뽑는다고 했고 저보고 오디션을 보겠냐고 물었어요. 제가 그들의 노래를 알고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전 그러겠다고 했죠. 오디션은 떨어졌어요. 전 한 4년전까지도 제대로 노래부를 줄을 몰랐거든요. 그때가 겨우 21살 땐데, 암튼 그들은 저한테 로드매니져 자리를 권했어요. 그리고 거기서부터 제 (음악인생의) 모든게 시작됐어요. 왜냐면 그전까지 제가 있던 데선 아무도 음악계에 발을 담고있지 않았거든요. 그 누구도 버니지에서 온 사람은 없었어요. 아무도요. 그러다가 (로드매니져가 되면서) 투어 버스에서 마크 코일(DM 프로듀서)을 만났고, 그렇게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는데, 사실 그러면서 다 시작되는 거잖아요. 나중에는 사운드 체크같은 걸하면서 든 생각이, 그게 무슨 희망사항이었다는 건 아니었지만, '이거 나도 쉽게 할 수 있겠는데, 그냥 제대로된 사람들만 찾으면 되겠어'라는 거였어요.
ML 그럼 그때부터 작곡을 시작하신건가요?
NG 아니요. 작곡은 아마도 그전부터 했을꺼에요. 제가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저희 집 문 뒤에 기타가 있었거든요. 그게 어떻게 거기에 있게 된건지 아직도 아무도 모르지만요. 칠 줄 아는 사람도 없었어요. 저희 엄마가 무슨 비밀스런 취미를 가졌던게 아니라면요. 그리고 전 뭐 훔치거나 학교를 빠져서 자주 외출금지를 당했고, 그러다가 집에서 Joy Division의 베이스 라인부터 한줄로 치는 방법을 배웠죠. 그 다음에 두줄로 연주하기 시작했고, 그 다음엔, (코드를 칠 수 있게 된 후엔) 제가 처음 완주했던 곡이 'The House of the Rising Sun'이었어요. 그리고 코드 몇개를 칠 수 있게 되면 그 다음에 하는 일은 보통 곡을 쓰는거죠. 하지만 오아시스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렇게 진지하게 곡을 쓰진 않았어요.
ML Insparial Carpets 로드매니져로 미국 투어를 돌고 온 당신을 밴드에 참여시킨게 리암란 얘기는 사실인가요?
NG 미국이 아니라 유럽 투어였고 전 뮌헨에 있었어요. 매주 하던대로 엄마께 안부전화를 드리면서 '리암은 어때요?'라고 물었어요. 아마 통화 중에 리암은 어떠냐고 물은 유일한 순간이었을 거에요. 엄마는 '걔 나가서 리허설 중이다.'라고 하셨고 '네? 리허설요? 뭘요?' '걔 밴드하고 있어. 싱어야.' 이러시는데 진짜 기가막혔어요. 믿을 수가 없었어요. 걔랑 그 오랜 세월 동안 같은 방을 쓰면서 제가 기타를 치고 있으면 걘 그저 절 빤히 처다보면서 '오파운드만 빌려줘' '오파운드만 빌려줘' '오파운드만 빌려줘' '오파운드만 빌려줘' '꺼져!!' '오파운드만...' 이랬거든요. 우리 둘다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어요. '걔가 싱어라니??? 밴드에서????' 그리고 맨체스터에 돌아왔을 때 리암이 공연을 하고 있었고 제가 보러갔는데 걔네한테 뭔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걔네 자작곡들도 몇개 있었고 꽤 괜찮다고 생각했죠. 무대에 선 동생을 보는게 충격적이었고, 거기다 그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걔넨 저한테 매니져를 해주지 않겠냐고 물었고 전 매니져는 하기 싫다고 했어요. 그리고선 걔넨 한동안 저한테 같이 연습해보자고 졸랐고 어느 일요일에 전 그냥 가서 합류했어요. 그 이후는 역사로 남아있죠.
ML 그 역사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면, 당신이 (들어가서 밴드를) 통제한거죠? 시작부터 누가 결정권을 가질거냐 하는 문제였죠?
NG 아뇨, 거기에 대한 멋진 전설이 있긴하죠. 저희도 초기에는 그게 정설인 것처럼 동조했구요. 하지만 저희의 맨 처음 공연을 들어보시면, 녹음본이 어딘가에 돌아다니고 있는데, 전부 제 곡들이 아니에요. 주로 걔네 곡이었고 제 곡은 아마 두곡정도 였을거에요. 하지만 전 작곡에 빠르게 빠져들었어요. 제가 쓴 곡을 밴드가 다같이 연주하는 걸 들은 순간, 제 안에서 뭔가가 일어났고, 그 이후로 미친듯이 곡을 썼어요. 다음날이면 '이곡도 해보자' 이랬죠. 그리고선 제가 작곡 무슨 미션처럼 여기게 되면서 (역할이) 곧장 누가봐도 분명해졌어요. 전 너무나도 많은 곡들을 썼었고 그냥 그렇게 제가 밴드의 송라이터가 된거죠. 하지만 그런 전설이 있긴하죠. 제가 밴드에 들어가면서 '시작하기 전에 말이지, 분명히 해두겠는데 앞으로 내가 모든 곡을 쓴다.'라고 선언했다는 거요. 그 당시에는 그런 얘기가 멋져보였지만 정확한 사실은 아니에요. 그냥 그때 나머지 멤버들이 모두 저한테 기꺼이 그 자리를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었어요.
ML 하지만 그게 일종의 충돌점이 되지 않았나요? 왜냐면 보통 송라이터랑 나머지 멤버들의 갈등에서 해체가 시작되잖아요. 처음에 송라이터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분명히 돈을 더 버니까요. 밴드를 하면서 그런 문제를 피하기란 어렵지 않나요?
NG 그건 그 사람들한테 물어보셔야 할것 같은데요?
ML 송라이터는 특정 지위가..
NG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제가 할말은, 전 단 한번도 '너넨 작곡하지마. 작곡은 나만 하는거니까'이런적이 없어요.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 신경도 안썼어요. 1999년이나 2000년에 리암이 처음으로 작곡을 시작할 때 까지요. 만약에 다른 멤버들이 B사이드 곡을 몇곡 써줬으면 오히려 전 고마웠겠죠. 그럼 3집 질도 훨씬 나았을꺼니까요.
ML 만약에 오아시스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면 엄청 훌륭한 소재거리가 될 얘기 중에 하나가 당신들의 1993년 공연(계약을 따낸공연)인데요, 크리에이션 사장 앨런맥기 말로는 거의 공연을 못할뻔 했다던데 사실인가요?
NG 네, 사실대로 얘기하자면, 저희는 그 당시에 맨체스터에 있는 보드워크라는 클럽의 연습실을 'Sister Lover'라는 멤버가 다 여자인 밴드랑 나눠쓰고 있었어요. 거기 멤버중에 한 사람이, 이름이 데비 터너였는데 앨런맥기의 전여친인지 여친인지였는데, 그녀가 그때 막 앨런맥기랑 계약한 '18Wheeler'라는 밴드를 서포트하러 저 멀리 글래스고에서 공연을 한다는거에요. 왜 저희가 그때 글래스고까지가서 공연을 하는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그녀가 '와서 같이 공연하자~'라고 하더라구요. 걔네 공연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아무튼 거기에 도착하니까, 클럽측에서 하는 말이 3밴드나 공연 못한다고, 2밴드만 공연허가가 나있다고 하더라구요. 여기서 '전설'에 따르면, 저희가 기획자 사무실로 처들어가서 문을 닫고 '우리 공연하게 안해주면 이 건물을 뒤집어 놓겠다'고 했다고 하죠. 그렇지만 누구라도 글래스고에 가봤다면 그게 택도없는 거란걸 알꺼에요. 사실 저흰 이랬죠. '쫌 봐줘요, 여기까지 왔잖아요.ㅜㅜ' 그러니까 그 기획자가 그럼 클럽 오픈하자마자 20분정도 공연하라고 해줬죠. 그리고 운좋게도 앨런 맥기가 그날 일찍 도착했고 저흰 20분 동안 공연을 했어요. 지금 기억나는게 밴드가 아직도 비틀즈의 'I am a Warlus' 커버를 길게끌면서 연주하는 동안, 제가 스테이지에서 내려와서 앨런맥기와 그냥 마주쳤는데 그가 '너네 밴드 이름 뭐냐?'라길래 제가 '오아시스요'했고, '레코드 계약 벌써 했냐?' '아뇨' '할래?' '좋죠' 그리고 그게 다였어요.
ML 레코드 회사나 매니지먼트를 못미더워한 적이 있나요?
NG 아뇨. 전 언제나 제일 큰 대형 레이블이랑 계약해서 그들이 누구던 간에 돈이나 왕창 버는게 목표였어요. 저는 저희 밴드나 제가 쓴 곡들에 대해서 꽤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레코드 레이블 자체나 그들이 지원해 줄 수 있는 것들은 사실 별 소용없다고 여겼어요. 왜냐면 (저희 밴드가) 세상에 한번 알려지기만 하면 그 이후로 저희를 막을 수 있는 건 없을 테니까요. 전 그걸 믿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말로만 그렇다고 했지만 전 실제로 그걸 믿었어요. 93년이나 94년도에 저희가 '세상에서 제일 큰 밴드'가 되겠다고 했을 때 다들 웃었지만 저는 완전히 100% 그렇게 될꺼라는 데에 확신했어요.
ML 노래를 부르는 건 (당신과 리암) 둘 중에 누구라도 할 수 있게 같이 맡은 일이었나요?
NG 아뇨. 그때 저는 노래를 부를 줄 몰랐어요. 관심도 없었구요. 제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건 부를 사람이 없을때(by default) 그 자릴 대신하기 위해서였어요. 리암은 시간을 잘 지키지 않았고, 좋게 말해서 그렇다는 거에요. 무슨말인지 아시죠? B-side 곡들을 제가 부르기도 했구요. 그렇게 서서히 노래를 부르게 됬고, 점점 빠지게 된거죠. 그러다 오아시스의 거의 끝에가서, 한 2005년 부턴 꽤 잘하게 됐어요. 오래걸렸지만 제 목소리를 찾았어요. 처음부터 저절로 있었던 재능도 아니고, 얻어 낼려고 집착했던 게 아니라, 그냥 리암이 공연 중에 휴식이 필요해서 였어요. 뭔 이윤진 모르겠지만. 중간 쯤 가서 '목소리 쫌 쉬게해야겠어'이랬죠. 걘 파바로티가 아니였으니까요. 그렇다고 구석에가서 목관리하러 허니레몬으로 가글을 한건 아니고 시가 한대나 파이프를 피웠던 거지만요. 노래 부르는 건 저한텐 모르는 사이에 다가왔고 어느새 그걸 좋아하게 됐어요.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는건 정말 멋진 일이거든요.
ML 당신의 일대기에서 또 다른 엄청난 단계가 예의 '블러 대 오아시스' 구도인데요. 그건 만들어진 거였나요? 기자나 홍보담당자들에 의해서 말이에요. 아니면 당신에게는 진짜였나요?
NG 솔직히 말하자면 이게 진실이에요. 그건 NME랑 블러 쪽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거였어요. 그들이 블러의 싱글 발매일을 우리 발매일에 맞춰 미뤘거든요. 그 당시에 정말 열받았던 건 모두들 우리 탓을 했다는 거에요. 왜냐면 그때 우리가 무슨 미디어를 조정하는 사람들 처럼 비춰졌거든요. 전 그게 거슬렸어요. 지금 되돌아보면 아주 멋졌죠. 그런 일들은 이제 더 이상 일어나질 않거든요. 10시 뉴스에 보도될 정도였잖아요. 좋았어요. 밴드들 끼리 서로 헐뜯은건 사실 소모적인 일이었죠. 왜냐면 서로에 대해서 어느정도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때 우린 (헐뜯는 거 말고)달리 말하기엔 너무 술취해있거나, 마약에 취했있었죠. 사실 거기에 대해서 전 더 숨길 것도 없죠. 전 다른 밴드를 헐뜯는 걸 완전 즐겼으니까요.
ML 사람들에 의해서 블러 대 오아시스 구도가 중산층과 노동계층 간의 계층적 대립으로 이해되기도 했는데요. 심지어 어느 밴드를 좋아하는 지가 개인이 어떤 계층에 속하는 지를 나타낸다는 기사도 있었죠. 당신도 그런 흐름에 동조했나요?
NG 계급 전쟁이요? 제가 실직상태였을 때가 오히려 전투적이었을 거에요. 실제론 아니었어요. 블러 대 오아시스 구도는 그냥 언론의 자위적인 꿈이었어요. 맨체스터에서 온 젊은 애들이랑 콜채스터에서 온 청년들은 대립시키기 완벽하잖아요. 얘네는 예술학교를 다녔고 얘네는 도둑질이나 하다왔다. 둘 다 싱글을 낸다. 뭐 어찌됐던 우리모두 레코드를 엄청나게 팔고 다 부유해졌으니까 지금와서 불평하진 않지만요. 근데 얼마전에 데이먼을 만났어요. 몇달전에요. 수 년간 그를 본적이 없었거든요. 아마 거의 15년을요. 그러다가 어느 나이트클럽에서 마주쳤는데, 그래서 맥주한잔 하면서 그때일들을 생각하며 웃어넘겼죠. '그때 진짜 멋지지 않았어?'이러면서요. 나중에가서는 이제 10시뉴스에 그런 사건들이 더이상 안나오는 요즘 음악계의 상황에 대해서 한탄했죠.
ML 당신은 이 문제에 대해서 꽤 공개적이었는데요, 아까 이 인터뷰에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90년대에 대부분을 마약에 취해있었다구요. 그건 피할 수 없는 일이였나요? 왜냐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빠졌잖아요.
NG 다 게임(연예활동)의 일부죠. 다 게임의 일부에요. 그걸 미화시킬 생각은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러다가 인생을 망쳤거든요. 그냥 다 게임의 일부였어요. 그리고 제가 더없이 속하고 싶어했던 게임이기도 했구요. 공짜 마약이라구요. 공짜요! 돈을 낼 필요도 없었어요.
ML 그 당시를 후회하시나요?
NG 아뇨. 왜냐면 전 거기서 빠져 나왔으니까요. 전 '이제 다 해봤으니까 그만 됐어. 이거 다 쓰레기야'라는 걸 깨닫고 거기서 벗어날 만큼은 현명했죠. 마약을 해본것도 좋았고 이제는 더이상 안하는 것도 좋아요.
ML 당신이 맡은 일 중에 하나가 히트할만한 곡들을 예상해서 고르는 거였죠. 곡들이 있고, 앨범이 있으면 거기서 싱글로 낼 곡들을 정하셨잖아요. 그건 그냥 저절로 알 수 있는 거였나요? 본능적인 감인가요?
NG 한동안 그 감각을 잃었어요. 지금은 잘 할 수 있지만요.
ML 그럼 'Wonderwall'나 'Don't Look Back in Anger' 때 그노래들이 히트를 칠 껄 근본적으로 아셨던 거죠?
NG 네, 전 (그곡들이 훌륭하다는 걸 알만큼) 음악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있었고, 음반도 충분히 있었고, 음악관련 잡지들도 충분히 읽었고, 13살인지 언젠지 부터 음악에 충분히 사로잡혀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Live Forever'라는 곡을 썼을 때 전 수많은 작품 목록들 중에서, 제 곡들만이 아니라 모든 곡들 중에서, 그게 명곡이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전 그걸 당당하게 말할만큼 기고만장 할 수 있어요. 왜냐면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Wonderwall'나 'Don't Look Back in Anger' 그리고 다른 1위 싱글들 모두 그랬어요. 한동안은 거기에 흥미를 잃긴 했어요. 3집 BHN나 4집 SOTSOG 사이 시기에는 정신이 딴데 가있었죠. 음악에 대한 저의 열정이 어디론가 사라졌고, 전 정신은 딴데가서 그냥 애써 하고 싶어 하지 않았죠. 그냥 하니까 하는거였죠. 하지만 활동 초기랑 지금은 알아요.
ML 대규모 공연들말이에요, 넵워쓰나 당신한텐 특별한 의미였을 당시 맨시티 홈구장이었던 메인로드에서의 공연처럼요. 그런 느낌, 당신이 가졌던 그 엄청난 관중을 휘두르는 힘이나, 어마어마한 군중들 자체 때문에 겁먹은 적은 없나요? 아니면 그냥 당신을 더 가속화시키는 거였나요?
NG 모르겠어요. 저는 한번도 무대공포증을 느껴본적을 없어요. 흥분되기는 하는데 그건 다른거잖아요.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긴장해서 토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읽어본 적이 있는데. 그게 다 뭐하자는거에요? 사람들은 당신을 보러 오는 거잖아요. 당신이 멋지게 해내길 바라구요. 게다가 어차피 반은 이미 정신이 나가있다구요. 당신이 음정을 틀리거나 박자를 못맞춰도 모른다구요. 나중에 녹화된거 봐도 몰라요. 우린 해 낼 수 있었어요. 할 능력이 됐어요. 그리고 한번 할 수 있다는 걸 알면 다 괜찮아 지죠. 오아시스에서 누구도 수줍음을 타는 사람은 없었어요. 리암은 소심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걘 자기가 슬라이스 치즈 이래로 가장 위대한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전 제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냉동 건국수 이래로 가장 위대한 존재라고 생각했구요. 우린 우리가 잘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그 대규모 공연들에서 무대로 걸어나가는건 '바로 이거다' '끝까지 왔다'라는 느낌이었죠. 여기서 더 좋아 질 수 없었죠. 그리고 스테디움 공연들이랑 그런 것들은, 전 작은 공연보다 스테디움 공연을 더 선호해요. 스테디움 공연은 정말 엄청난 장관이에요. 제가 무대위에서 보는 건 7만명이 놀러 나와서 즐기는 모습이잖아요. 이것만 말해두죠. 그 관중이 다 같이 당신이 십수년 전에 쓴 곡을 들으며 뛰는 걸 보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에요. 정말 엄청난 일이에요.
ML 다우닝 10번가(수상관저)에서 토니블레어 전 수상을 만나셨죠. 그걸 후회하시나요?
NG 아뇨, 그게 1997년 이었을 거에요. 제가 알기론. 제가 계약을 따낸게 고작 4년 전이었어요. 그리곤 이젠 롤스로이스를 타고 다우닝가에 도착하게 된거죠. 전 그 모든 여정을 즐기면서 이렇게 생각했어요. '얼마나 멋진 여행인가!''얼마나 완벽한 여행인가!'라구요. 당시 노동당은 예술계 인사들과 손을 잡으려고 했고..
ML 하지만 그들은 당신을 이용하려는 거였잖아요.
NG 뭘 위해서 절 이용하려구요? 권력을 잡을려구요? 좋네요. 최저 임금제를 도입하려구요? 환영하는 바에요. 그리고 노동당은 예술계에 손을 내밀었고 앨런맥기가 거기에 연관되기 시작했죠. 그러더니 '그들이 널 만나고 싶어해.'라고 하길래 전 '왜 안그러겠어. 당연히 날 만나고 싶어하겠지.'이랬죠. 그리고 무슨 행사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전 거길 가면 어느정도 비난 받을 걸 예상했었요. 거길 가면서 제가 다른 사람보다 잘나서라고 생각한게 아니에요. 그냥 제가 제 자신이기 때문에 그자리에 있었던 거죠. 어쩌겠어요?
ML 당신이 오아시스에 대해서 한 말 중에 매우 흥미로운게 있어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오아시스가 항상 해체의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고 처음부터 그런 긴장감이 감돌았다고 한 반면에 당신은 그렇지 않다고 하셨잖아요. 문제가 심각해진건 끝에 가서라구요.
NG 네. 하지만 언제라도 R.E.M처럼 평화롭게 끝날리는 없었어요.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원만하게 '그래 우리 그만두자(*call it a day: R.E.M이 해체하면서 공식적으로 남긴말)' 이런 식으로는 아니죠. 어떻게 해서든 싸움으로 끝날 꺼였어요. 모두들 알고있는 사실이었어요. 우리 모두 오아시스가 영원하길 바랬지만, 저는 확실히 바랬어요. 하지만 전 만약에 끝이 온다면 누군가 한명이 결국 'F*** u & u & u!(다꺼져!)' 라고 끝이 날껄 알고있었어요. 그냥 그걸 실행한 사람이 제가 된거죠. 리암일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후회하면서 인생을 살 수 없잖아요. 우린 멋진 여행을 해온거니까요. 제가 밴드에서 나오게 된건 피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전 오랫동안 상당히 참을성과 인내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더이상 이건 아니다라는 순간이 왔어요. '여기서 나가야겠다'라고요.
ML 그럼 하나하나 다 들춰 내는 건 그만두고, 결정적으로 2009년 그 마지막 싸움에서 당신을 한계까지 내몬 것은 무엇이었나요?
NG 음.. 뭐 그 투어 기간 내내 서서히 커진 갈등이 있었어요. 그냥 많은 인신공격이 있었어요. 제 면전에 대고는 아니지만요. 아시겠죠? 그리고 거기에 제 부인도 끌어들여졌구요. 그녀가 잘못한게 없는데 말이죠. 그냥 아무튼 다 쓸데없고 소모적인 거라고 느껴졌고, 모두를 위해 밴드를 나가서 끝내야겠다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최후의 결정타는 대기실에서 기타를 휘두는 거같은 폭력적인 행동이었어요. 위험하잖아요. 마지막에 가서는 아무도 이걸(밴드를) 즐기고 있지 않는다는게 느껴졌어요. 투어를 마저 끝내지 못한건 후회하고 있어요. 두어차례만 남아있었거든요. 그냥 공연들을 마저 하고 휴식기를 가지고 흥분을 쫌 가라앉힐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저흰 맨체스터인이잖아요. 그리고 떠나는 데에는 뭔가 특별한게 있구요.
ML 분명히 떠나는 건 꽤 감정을 자극하는 일이었죠?
NG 음, 네. 큰 결정이었으니까요. 리암은 정말 정말 흥분해 있었고 화가난 상태였죠. 반대로 저는 대기실에서 꽤 침착했구요. 그게 리암을 더 화나게 만들었죠. 당신이 누군가에게 분노하고있을 때 상대방이 침착하면 더 화가 나잖아요. 제 부인도 그렇더라구요. 아무튼 대기실에서 나와서 전 차안에서 5분동안 앉아있었어요. 제가 운전수에게 가자고 하면 그게 밴드의 끝이란걸 알고 있었죠. 긴 5분이었어요. 제 보디가드랑 운전수가 앞에 앉아있었고 전 뒤에 앉아있는데 그가 뒤돌아보면서 '이제 어쩌실 거에요? 갈까요 말까요?'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그냥 '알게뭐야, 가자.' 라고 했고 그게 끝이었어요. 그 이후의 여파에 대해서 생각하지도 않았구요. 그냥 그 순간 떠나면서 끝이었어요. 그 다음엔 좀 쉬면서 앞으로 뭘 하고싶은지 알아보는 거였죠. 다른 사람들이나, 우릴 기다리던 관객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고, 공연시작 바로 5분 전이었거든요, 아니면 스텝들이나, 이게 사람들한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나, 이후의 법적인 후폭풍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관둔다'하고 떠난게 다였죠.
ML 우셨나요?
NG 아뇨. 전 축구경기 때 빼곤 안울어요. 맨시티가 맨유를 FA컵 준결승에서 이겼을때 눈물 쫌 흘려줬죠. 그리고 제 자식들이 태어났을 때도요. 그치만 그외에는 울다니요. 여자애들이나 그러죠.
ML 리암에 대한 마지막 질문이에요. 쫌 마음이 놓이시죠? 크리스마스 카드나 문자 같은건 주고받으시나요? 아니면 아예 서로 냉전 중인가요?
NG 아뇨. 전에도 그런적이 없어요. 우린 그런 가족이 아니에요. 밴드에선 주기적으로 서로 만났지만, 밴드 활동을 안할 땐 주로 각자 가족들이랑만 지내니까요.
ML 그럼 전혀 서로 연락이 없나요?
NG 없어요. 제가 아는 한은요. 없어요. 저희 엄마는 거기에 넌더리를 내시지만 저흰 다컸잖아요. 언제까지나 엄마가 저희한테 뭘 하라고 하실 순 없죠.
ML 그럼 그게 끝이라고 받아들이고 계신건가요?
NG 아뇨, 당연히 아니죠. 걔랑 다시는 말하지 않겠다는게 아니니까요. 당연히 언젠가는 얘기를 하겠죠. 그냥 전 지금 바쁘다구요. 전 제 일을 하고 있고 걘 걔 일을 하고 있잖아요. 지금 이 순간엔 서로 엮일 필요가 전혀 없으니까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ML 앞으로 당신이 뭘하든 오아시스만큼 더 커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계신가요?
NG 완전히요. 누구도 오아시스만큼 커질 수 없어요. 콜드플레이도 못하고, 카사비안도 못하고, 악틱몽키즈도 못하고, 적어도 영국에선 U2도 불가능하죠. 아무도요. 간단한 문제에요. 저만 오아시스가 남긴 유산을 쫒는게 아니에요. 모두들 거기에 다가서려고 애써야하는 거라구요. 우리는 가장 마지막의, 가장 위대한 밴드였어요. 더 말이 필요없죠.
ML 재밌는게, 당신이 오아시스를 만들며 쌓아온 커리어를 뒤돌아보면 당신은 상당히 야망있고, 의욕이 넘쳤고, 그걸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왔는데요, 그럼 지금도 아직 그런 야망이 있나요? 아니면 지금에 만족하나요?
NG 오아시스 초기에 저는 세계에서 제일 큰 밴드가 되려는 야망이 있었어요. 그리고 짧은 기간동안 우린 정말 그렇게 됐죠. 우린 가장 많은 티켓을 팔았고 가장 많은 음반을 팔았어요. 말그대로 세상에서 제일 큰 밴드였죠. 그걸 이뤄내고 나선 그 다음부턴 그냥 즐기는 거였죠. 하지만 특히 초기에 저는 그냥 일단 해보고 어떻게 되는지 보자는 주의는 아니었어요. 저는 오아시스를 최고로 만들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있었죠. 왜냐면 그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무슨 리버틴즈처럼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것보다 최악은 없다고 느꼈으니까요. 최고가 될 잠재력이 있었지만, 술, 마약, 말할 수 없는 것들로 다 날려버리는 거 말이에요. 저는 우리가 그렇게 기회를 날려버리지 않을 꺼라는 단호한 결심을 갖고 있었어요. 그리고 밴드를 해체하게 만든 이유 중에 제가 모든 걸 컨트롤하려는 통제광(control freak)이였다는 평판이 있는데요, 사실이었어요. 그리고 전 모두를 넵워쓰까지 컨트롤해나갔죠. 웸블리, 차트의 최상위까지도요. 그러니까 웰컴이다. (*고마워해도된다는 말)
ML 노엘 갤러거씨, 감사합니다.
NG 감사합니다.
The End
첫댓글 와.....진짜...정말....엄청나네요....감사합니다ㅠㅠㅠ아껴볼께요....나도 열심히 해서 능력자되야지....하
으아 정말 잘봤습니다ㅠㅠ !!!
와 정말 감사합니다ㅠㅠㅠㅠ 잘봤어요!
감사합니다 진짜 잘봤습니다. HFB 시작 이후, 해체로부터 좀 시간이 지난 뒤에 한 인터뷰들은 대부분이 차분하고, 감정이 정리 돼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근데 이건 좀 다른식으로 차분한 느낌 ㅎㅎ 그냥 대답을 자세하게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ㅎㅎ 단지 제가 몰랐던 '전설'과 실제의 차이나 ㅋㅋ밀덕이었다는 것도 ㅋㅋ 해체 이후에 리암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은 아무리 차분하게 ,'잘' 말해도 슬펐는데 지금은 단지 좀 씁쓸할 뿐 슬프진 않네요 .. ㅎㅎ 그리고 같은 내용의 말이라도 이 인터뷰, 저 인터뷰 다르게 느껴지고 포개지지(?)가 않았는데, 이제부터는 노엘이라는 사람이 말하는 뉘앙스를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
각이 드네요 ㅎㅎㅎ실제로는 그럴 리 없겠지만. ㅎㅎ 언제 어떤 인터뷰를 봐도 노엘은 참 말을 잘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걸 매번 느낍니다 좋은 인터뷰 네요 자막 감사드려요~~
무슨 말인지 알꺼같아요~ 저도 이 인터뷰 보면서 느낀게, 노엘이 다른데서 했던 짧은 인터뷰들은 거의 단편적이라서 쫌 따로따로 노는 거 같았는데, 이건 그 조각들이 다 모여서 하나의 큰 이야기로 정리된 인상이었어요ㅎㅎ 저만 재밌다고 느낄까봐 해석하면서 걱정했는데ㅋㅋ 공감해 주시니까 너무 기쁘네요!! ㅎㅎ
오파운드만빌려줘 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네요 ㅋㅋ 감사합니다 !
선리플 후감상! 엄청난 정성이네요.. 감사의 마음으로 소중히보겠습니당.
마지막에 아이컨택하면서 웰컴 할때 왜 설렐까요 하핳하.. 그나저나 사라는 얼굴만큼이나 정말 맘씨도곱나봅니다.. 또르르
정말 잘봤어요~~
영상/자막 모두 정말 감사해요. 잘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ㅠ 진짜 잘봤어요ㅜ 리암 오파운드만도 자꾸 상상되고 노엘 어릴때도 상상되고 그와중에 말하는건 멋지고 전설의 진실도 알고 뭐 등등.. 좋네요ㅠ
아 노엘은진짜노엘 진짜 너무잘봤어요 ㅠㅠ 이렇게 긴 인터뷰진짜오랫만에 보는거같음요 50분이라니 !!! 완전빠져서봤네요 ! 너무감사드려요
잘봤습니다. 오파운드는 리암의 또다른 전설로 남을듯ㅋㅋㅋㅋㅋ 노엘한테서 뭐랄까... 정상에 올라갔던 사람의 여유가 느껴지네요ㅎㅎ 저도 오아시스의 시작과 끝에대해 정리할수있었던 좋은인터뷰였습니당..ㅠㅠ
아 왠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은혜로와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잘 보겠습니다ㅠㅠㅠㅠㅠㅠ자막이라니 자막이라니 한시간짜리 인터뷰!!!
잘봤어요@
영상 잘봤습니다 ㅎㅎ
ㅠㅠㅠㅠ진짜 너무 감사해요ㅠ 번역해보려다 포기했었는데..너무 감사합니다 이런 인터뷰 너무 좋아요 이렇게 멋진 문체로...ㅠ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뮤지션의 자세.. bb
너무 재미있게 잘봤어요ㅠㅠㅠㅠㅠㅠㅠ
우왘ㅋㅋㅋㅋㅋㅋㅋ우와 진짜 열심히 하셨네요 와;;ㅋㅋㅋ땀난다....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닼큐ㅠㅠㅠ
아 감사합니다ㅜㅋㄱㅋ은혜로운 영상이네요ㅋㅋ이제 이 잔망스런 부엉이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것같아요!!
개막식 기다리면서 봤는데 잘봤단 생각이 드네요 님 감사해요ㅠㅠㅠㅠ
잘 봤습니다 자막 감사해요 ㅎㅎ 솔직담백하고 차분해서 정말 좋은 인터뷰네요
감사합니다 ㅠㅠ
정말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ㅎㅎㅎㅎㅎ지금껏 본 인터뷰 영상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네요 ㅎㅎ
감사합니다.ㅇ
감사합니다 ㅠㅠㅠㅠㅠ 잘봤어요!!!
정말잘봤습니다..감사합니다!!
정말잘봤습니다^^
정말 뒤늦게 이제서야 봤네요. 감사합니다. 정말 번역 잘하시고 싱크도 깔끔하게 잘 맞추셨네요^^ 요즘 인터뷰들 보면서 궁금한 건 나중에 나올 오아시스 영화는 전설을 기초로 할까 진실을 기초로 할까 라는 점입니다. 아마도 그 둘 사이의 중간 지점을 찾겠지요. 전설이 영화로서는 더 재미있을 텐데 말입니다 ㅎㅎ
와우 엄청 늦었지만 좋은 자료 정말 감사드려요!!!!! 고생 많으셨어요 ㅎㅎ
잘봤습니다..!
우와~! 고맙습니다~!! 잘보았어요^^ 다시한번더 감사~!!
덕분에 잘봤어요 감사합니다 ㅎ
블로그에 담아가겠습니다!
이제서야 풀버전을 보게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와싯 영화 촬영을 진행할때 실제인물들을 캐스팅했을시에 벌어질 재미진 사건들에 대한 가상 미디어를 접해보고 싶네요ㅋㅋㅋ
잘봤어요ㅠㅠ올려주셔서감사합니다. 노엘진짜존경스럽다..
잘봤어요 ~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