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국보 제78호)은 의자 위에 앉아 오른발을 왼쪽다리 위에 올려놓고, 오른쪽 팔꿈치를 무릎 위에 올린 채 손가락을 뺨에 댄 모습의 보살상으로 높이는 80㎝이다. 1912년에 일본인이 입수하여 조선총독부에 기증했던 것을 1916년 총독부박물관으로 옮겨 놓았다.
머리에는 화려한 관(冠)을 쓰고 있으며, 여기에서 나온 2가닥의 장식은 좌우로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네모꼴에 가까운 얼굴은 풍만한 느낌을 주며, 광대뼈를 나오게 하고 입가를 들어가게 하여 미소 띤 얼굴을 만들었다. 상체는 당당하면서도 곧고 늘씬한 모습이며, 하체에서는 우아한 곡선미를 느낄 수 있다. 늘씬한 팔이나 체구에 비해서 손이나 발은 상대적으로 큼직한 편이다. 전체적으로 탄력이 있고 매끄러우며 부드럽고 율동적이어서 보살상의 우아한 모습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목 뒤로 돌아 양 어깨를 감싼 천의(天衣)는 새의 깃털처럼 치켜 올라갔다가 다시 가슴쪽으로 흘려내려 왼쪽 다리에서 교차한 다음, 양 무릎을 지나 두 팔을 감아 내렸다. 하체에 입은 치마는 다소 두툼해 보이는데 U자형 주름이 능숙하게 새겨져 있다. 왼발을 올려놓은 타원형의 대좌(臺座)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머리 뒷부분에 흔적만 있을 뿐 광배(光背)는 없어진 상태이다.
왼쪽 무릎 위에 오른쪽 다리를 걸치고 오른쪽 손가락을 살짝 뺨에 댄 채 깊은 생각에 잠긴 보살상의 모습이다. 반가사유상은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한 것으로, 중국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하나의 도상으로 확립되었다. 중국에서는 초기에 인생의 덧없음을 사유하던 싯다르타 태자상으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점차 미륵보살상으로 자리 잡았으며 한국의 삼국시대 반가사유상도 대부분 미륵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에 쓰고 있는 화려하고 높은 관冠은 해와 초승달 모양이 결합된 특이한 형식으로 일월식보관(日月飾寶冠)이라고도 한다. 입가에는 고졸한 미소를 띠고 있으며, 자연스러운 반가좌의 자세, 몸 앞에서 교차된 천의자락과 허리띠의 율동적인 흐름은 세련된 조각 솜씨를 보여준다. 주조 기법은 내부가 비어있는 중공식(中空式)이며, 금동불로서는 비교적 크기가 큰 편임에도 불구하고 두께가 2~4mm에 지나지 않는 뛰어난 주조 기술을 보여준다.
1963년 방사선 투과법으로 촬영한 결과 내부의 결함이나 고친 흔적이 없으며, 재질이나 만든 기법이 매우 특이함이 밝혀졌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힌 자세, 아름다운 옷주름, 명상에 잠긴 듯한 오묘한 얼굴 등으로 보아 한국적 보살상을 성공적으로 완성시킨 6세기 중엽이나 그 직후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국보 제83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현재 전시 중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제78호)과 함께 국내에서는 가장 큰 금동반가사유상으로 높이가 93.5㎝이다. 1920년대에 경주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하나 근거가 없으며, 머리에 3면이 둥근 산 모양의 관(冠)을 쓰고 있어서 ‘삼산반가사유상(三山半跏思惟像)’으로도 불린다.
얼굴은 거의 원형에 가까울 정도로 풍만하고 눈두덩과 입가에서 미소를 풍기고 있다. 상체에는 옷을 걸치지 않았고, 목에 2줄의 목걸이가 있을 뿐 아무런 장식이 없다. 왼발은 내려서 작은 연꽃무늬 대좌(臺座)를 밟고 있고, 오른발은 왼쪽 무릎 위에 얹어 놓았다. 왼손으로는 오른 발목을 잡고 오른손은 팔꿈치를 무릎에 얹었으며, 손가락으로 턱을 살며시 괴고 있다. 하반신을 덮은 치맛자락은 매우 얇게 표현하여 신체 굴곡이 잘 드러나며, 연꽃무늬 대좌를 덮은 옷자락은 깊고 자연스럽게 조각되었다. 왼쪽으로 옥을 꿴 치마의 띠가 내려가고 있으며, 머리 뒷부분에는 긴촉이 달려 있어 광배(光背)를 꽂았음을 알 수 있다. 단순하면서도 균형이 잡힌 신체 표현과 자연스러우면서도 입체적으로 처리된 옷주름, 분명하게 조각된 눈·코·입의 표현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조각품으로서의 완벽한 주조 기술을 보여준다.
잔잔한 미소에서 느껴지는 반가상의 자비로움은 우수한 종교 조각으로서의 숭고미를 더해준다. 국보 제78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보다 연대가 내려와 삼국시대 후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많은 놀란 끝에 2013년 10월부터 2014년 2월 23일까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리는 '황금의 나라, 신라' 특별전에 해외 나들이를 하고 돌아왔다.
*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란 연화대 위에 걸터앉아 왼쪽 다리는 내리고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포개 얹고 가볍게 숙인 얼굴을 오른 팔은 굽혀 오른쪽 뺨에 손가락을 살짝 댄 채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자세의 보살을 말하고 석가가 출가 이전 태자 신분에 이을 때 인생무상으로 느껴 고뇌하는 명상자세에서 기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생제도를 기다리는 미륵의 모습으로 많이 나타나 삼국시대에 많이 조성되었다. (참고문헌: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일본 광륭사(日本 廣隆寺: 고류유지). 광륭사의 돌 표지석에 백제도래를 파내고 메운 흔적.
광륭사(廣隆寺)의 신영보전(新靈寶殿) 앞의 목조미륵반가사유상(木造彌勒菩薩半跏思惟像) 안내판
-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木造彌勒菩薩半跏思惟像, 일본 국보 제1호), 고류지 소장(廣隆寺 所藏) -
일본 목조미륵반가사유상(日本 木造彌勒菩薩半跏思惟像, 일본 국보 제1호)은 높이 123.5cm로 현재 일본 교토의 광륭사(廣隆寺: 고류유지)의 신영보전(新靈寶殿)에 안치되어 있다. (사진출처: 고류지 안내 책자)
* 우리나라 국보 제83호와 일본 국보 제1호 목조미륵반가상의 비교:
http://news.donga.com/Main/3/all/20150908/73488219/1
*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으로 본 아름다움에 대한 동양과 서양의 가치가 다르다. 본질은 같지만 표현이나 세계관은 차이가 난다. 두 상은 비슷한 자세지만 육체를 예술로 드러내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생각하는 사람의 울통불통한 근육을 보면 서양인들은 인간의 몸을 대상화한다. 육체도 소유의 개념으로 받아들여 감정과 정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여겼다. 반면 반가사유상은 근육이라고 찾아볼 수 없다. 정신의 안식아래 가장 이완되고 느슨한 상태의 곡선으로 이뤄져 있다. 육체는 뭔가를 담는 게 아니라 그걸 넘어서는 자유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았다"고 '미술관에 간 붓다' (나무를심은사람들)란 책에서 서양과 다른 동양의 불교 미학을 서울대에서 미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따고 동국대 겸임교수로 있는 명법 스님은 소개한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미술관을 찾아간 붓다(명법스님)〉 / 이영일.고앵자, 전)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 Hch 이영일/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 chA 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