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마리아 막달레나가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하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믿지 못한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신다(복음).
메뚜기와 개구리가 함께 지내며 놀았습니다.
가을이 되자 개구리는 메뚜기에게,
“얘, 날씨가 추워지니 내년에 다시 만나자.”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메뚜기는, “개구리야, 내년이 뭐니?” 하고 물었습니다.
개구리는 내년이란 추운 겨울이 가면 찾아오는데,
그것이 내년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러나 메뚜기는 개구리가 아무리 겨울을 설명해 주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우화입니다.
메뚜기는 겨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겨울을 지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메뚜기가 겨울을 알지 못한다고 해도 겨울은 있습니다.
보고 만져서 아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그저 아는 것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을 듣고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믿지 못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십니다.
히브리서에서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11,1)라고 믿음을 이야기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의 실상(實相)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마음의 문이 주님께 열려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 부활의 첫 번째 목격자인 마리아 막달레나의 말을 믿지 않았으며,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체험한 예수님 부활 소식도 믿지 않았습니다.
살아 계실 때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미리 예고하신
예수님의 말씀까지 들었던 제자들이 왜 믿지 못했을까요?
바로 죽음이라는 결과만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 죽음에만 머물러 있으니 불신과 완고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으며,
다락방에 숨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음이라는 결과에만 갇혀 있는 제자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라고 말씀하시지요.
이제까지의 모든 과정을 바라봤던 것을 기억하면서
부활의 삶, 기쁨을 세상에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 주님의 말씀을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면서 신나게 따랐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과만을 바라보면서 바쁘고 힘들게 사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피곤하고 힘든 삶을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결과에만 갇혀서 어렵고 힘든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하는 과정 안에서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과정들 안에서 만나는 사람을 바라보고 그를 위해 기도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훨씬 더 재미있고 신나게 살 수 있습니다.
삶이 훨씬 더 재미있고 신납니다.
기계와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온 사람은
팔순을 살았다 하더라도 단명한 사람이다(피천득).
첫댓글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 부활의 첫 번째 목격자인 마리아 막달레나의 말을 믿지 않았으며,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체험한 예수님 부활 소식도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지는 못하였으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결단이 아닐런지..
수고 많으셨습니다!!
공감합니다. 베드로아저씨!
예수님의 말씀까지 들었던 제자들이 왜 믿지 못했을까요?
십자가 죽음 너머에 있는 부활을 보지 못하고
바로 죽음이라는 결과만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의 삶도
어떤 결과에만 갇혀서 어렵고 힘든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하는 과정 안에서 기쁨의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