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박남수
1
하늘에 깔아 논
바람의 여울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이 부리를
서로의 죽지에 파묻고
따스한 체온(體溫)을 나누어 가진다.
2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假飾)하지 않는다.
3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純粹)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신태양』 77호, 1959. 3)
[어휘풀이]
-여울 : 강이나 바다의 물이 세게 흐르는 곳. 여기에서는 바람이 세게 부는 곳.
-서걱이는 : 서걱거리는
-죽지 : 새의 날개가 몸에 붙은 부분
-매양 : 마냥. 언제나
[작품해설]
이 시는 「아침 이미지」와 함께 박남수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이 시는 ‘새’를 존재론적 입장으로 접근하여 비정(非情)한 현대 문명으로 인해 파괴된 자연의 비극을 보여 주는 문명 비판의 주지적 경향의 작품이다. 시인의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채 이미지로만 보여 주고 있는 이 시는 1과 2가 서로 대응하는 관계로, 2는 1에 대한 부연 설명의 단락이 된다. 1에서는 이미지스트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한편, 3에서는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로 지적인 면을 잘 나타내고 있다.
시인은 ‘새’로 표상되는 자연적 생명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인위성 · 파괴성 · 잔인성을 대립시켜 시상을 전개한다. ‘노래인 줄 모르면서’ 노래하고, ‘사랑인 줄 모르면서’ ‘따스한 체온을 나누어 가지는’ 새는 바로 자연의 순수를 이루는 본질이다. 따라서 새는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거나 가식적이지도 위선적이지도 않다. 이에 반해 인간으로 표상된 ‘포수’는 서슴지 않고 무자비한 파괴를 일삼는 존재이다.포수가 총을 쏘기 전까지만 해도 한없이 아름다운 ‘순수’ 그 자체이었던 새가 총탄을 맞는 순간, 원래의 아름다움과 순수의 모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곳에는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만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상한 새’란 인간의 횡포에 의해 파괴된 자연의 비극상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새가 가지고 있는 ‘노래’와 ‘사랑’을, 포수가 가지고 있는 ‘총’과 ‘한 덩이 납’과 대립시키는 방법을 통해 인간의 비정함이 삶의 순수성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 준다.
또한 이 시에는 본질을 도외시하고 현상에만 집착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질책하는 시인의 뜻이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자연스럽지 못하거나 의도된 모든 것은 비순수라는 시인의 생각이 나타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순수를 지향하는 시인의 인생관의 시작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작가소개]
박남수(朴南秀)
1918년 평양 출생
1939년 『문장』에 「마을」,「초롱불」,「밤길」 등이 추언되어 등단
1941년 평양 숭인상업학교를 거쳐 일본 츄우오(中央)대학 법학부 졸업
1954년 『문학예술』 편집위원
1957년 조지훈, 유치환 등과 함께 한국시인협회 창립
1957년 제5회 아시아 자유문학상 수상
1959년 『사상계』 상임 편집위원
1973년 한양대학교 문리대 강사 역임 및 도미(渡美)
1994년 사망
시집 : 『초롱불』(1940), 『갈매기 소묘』(1958), 『신(神)의 쓰레기』(1964), 『새의 암장(暗葬)』 (1970), 『사슴의 관(冠)』(1981), 『서쪽, 그 실은 동쪽』(1992), 『그리고 이후』(1993), 『소로(小路)』(1994), 『박남수전집』(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