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불은 상극이다.
불이 났을 때 물을 끼얹어 불길을 잡는다.
그런 물과 불이 서로 어울리는 경우가 있으니,
물이 솥에 담겨있을 때가 그렇다.
불은 솥의 물을 끓인다.
불이 셀수록 물의 양을 늘려야 하고,
물이 많다 싶으면 불을 더 지펴야 한다.
바로 상응(相應)이다.
끓는 물은 음식을 익게 하고, 우리는 그 음식을 먹고 산다.
먹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게 있던가.
그래서 솥은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다.
고대 왕은 하늘의 명(天命)을 받아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이었다.
그를 천자(天子)라고도 했다.
글자 '王'이 그러하듯, 그는 하늘과 땅과 인간을 연결한다.
천자는 하늘에 제사라는 걸 지낸다.
희생(犧牲)을 바치고, 술을 따른다.
제사 음식을 만드는 것 역시 솥이다.
고대에는 그걸 '鼎(정)'이라고 했다.
그러기에 '鼎'은 왕권을 상징한다.
하(夏), 상(商), 주(周) 시대 때
왕이 바뀌어도 '鼎'은 대를 이어 보존됐다.
이를 '구정(九鼎)'이라 했다.
‘鼎'은 정권의 정통성을 부여하는 기물이었던 셈이다.
진시황이 스스로 황제에 오른 후 가장 먼저 찾은 게
바로 구정이었다. 그러나 전국시대에 혼란기를 거치면서
소실됐던 鼎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정통성에 흠결이 생긴 것이다.
통일 진나라가 단명에 그친 이유다.
옛날 정통성이 '하늘'에서 왔다면, 지금은 국민의 표에서 나온다.
그 차이일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통성은 통치의 기본이다.
대선이 전쟁처럼 치열하게 전개되는 이유다.
鼎을 확보했다고 치자. 그다음 중요한 게 바로 민생이다.
백성들을 배부르게 먹게 하는 것, 정치에서 그 이상 중요한 건 없다.
정통성과 민생, '鼎'은 정치의 처음이자 끝을 상징하는 기물이다.
* 문화는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며 느낀 만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