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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5: 20. 보소서 – 마 25: 24. 한 달란트
마 25: 20. 보소서 –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의 결산보고서다.
1]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자기가 활용하여 두 배의 소득을 올린 그 소유의 출처가 주인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는 그가 자기에게 두터운 신임을 보여준 주인을 항상 의식하며 성실히 일해 왔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지닌 소유의 어느 하나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음을 밝힌 겸손한 고백이기도 하다.
2]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내가'(*, 에고)라는 말이 강조되었으나 자기 능력을 자랑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 단지 주인의 맡긴바 임무를 성실히 감당한 종이 자신의 성실성을 인정해 줄 주인에게 그 이윤을 펼쳐 놓으면서 외친 기쁨의 탄성(歎聲)일 뿐이다.
* 고전 15: 58 -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마 25: 21. 착하고 충성된 -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
결산보고를 받은 주인의 화답이다.
주인의 즐거움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의미한다.
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더 이상의 칭찬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극진한 주인의 칭송이다.
'잘 하였도다'는 뜻의 헬라어 부사 '유'(*)는 종의 지난 노력에 대한 주인의 만족과 인정의 표시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란 26절의 '악하고 게으른 종'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되고 있다.
그 종의 인격이 무흠하거나 완전하다는 뜻이기보다는 그 주인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착하다'(*, 아가도스)는 기능적 측면에서의 올바름을 나타낸다.
'충성되다'(*, 피스티스)는 윤리적 측면에서의 신실성을 강조한 칭찬들이다. 선(善)과 충성은 주인의 시험을 감당할 수 있었던 근원적인 힘이었다(Wycliffe).
2]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이 구절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불림을 받은 이후이다.
작은 일에 충성하였다는 말은 주인의 관심, 즉 회계(會計)의 내용이 투자에 대한 이윤이 얼마나 되는지가 아니다. 오히려 작은 일에도 성실하게 충성하는 자세임을 말해 주고 있다.
주인이 맡긴 5달란트는 상당히 많은 액수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주인의 관점에서는 아주 미미(微微)한 것이었다.
종말적 심판의 때에 성도가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은 얼마나 큰일을 했고, 화려한 삶을 살았는지에 있지 않고, 순간순간 매사에 얼마나 성실했는지에 있어야 한다.
3]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이 구절은 작은 일에 충성한 종에게 돌아가는 보상 내용이다. 이 보상은 주인의 회계 결산 이후에 주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현세적이기보다는 내세적인 것이 분명하다.
또 그 보상이 돈이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더 큰 일을 맡기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많은 것'이 어떤 내용인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다 하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주인과 종 사이의 관계가 더욱 신뢰감으로 깊어졌다는 것이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參與)할지어다'(*, 텐 카란투 퀴리우). - 주인의 '즐거움'(*,카라)은
(1) 열 처녀의 비유에서처럼 주인이 와서 벌이는 천국 잔치로 볼 수 있다.
* 계 19: 9 -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따라서 이 견해를 따르자면 우선 그 종이 천국 또는 영생에 들어가는 것과 그 주인의 초대를 받을 만큼의 영화로운 신분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천국은 잔치와 같은 축제라는 것을 암시해 준다.
(2) '즐거움'은 주의 영광스런 현현(顯現)이 제공하는 넘치는 기쁨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충성된 자로 인정된 사람은 주의 영광에 참예하여 영원한 기쁨을 맛보게 된다는 뜻이다.
* 시 16: 11 -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 시 21: 6 - 그가 영영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의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마 25: 22. 가로되 –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
두 달란트를 받은 종도 다섯달란트를 받았던 종과 같은 보고를 드렸다.
1]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다섯 달란트를 맡은 자와 두 달란트를 맡은 자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겼다고 보고하였다. 주인은 그들에게 잘 하였다고 칭찬하면서, 그들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평가하였다.
그들에게 '내가 네게 많은 것을 맡기겠다',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말하였다. 이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상급이다.
주인이 그들에게 맡길 '많은 것'은 천국 기업의 한 부분을 가리킬 것이다. 그것이 관할할 사람들의 수나 통치 영역의 범위를 가리킬지도 모른다.
'주인의 즐거움'은 미래의 영광의 천국에서 누릴 즐거움일 것이다. 그것은 영생의 복락이다. 그 즐거움은 다함이 없는 즐거움이고, 즐거워한 후에 허전하고 허탈한 세상적 즐거움이 아니다.
2] 하나님께 선한 자와 악한 자
(1) 하나님께 선한 자
달란트 비유 속에는 하나님께 선한 자와 하나님께 악한 자라는 두 부류의 인간이 소개되고 있다. 그중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사용하여 그 이상의 이윤을 남기는 자를 일컫는다.
다시 말하면 받은 것, 곧 재물, 능력 등을 사용하여 이 세상에서 그것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자가 하나님께 선한 자다.
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
* 마 22: 37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②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
* 고전 4: 2 -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2) 하나님께 악한 자
달란트 비유가 보여 주는 하나님께 악한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가지고 이윤을 남기지 않고 묻어 두는 자이다.
곧 하나님께 악한 자란 하나님이 주신 재물과 능력과 권력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 맺는 일을 하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자다.
이러한 자는 하나님을 악한 분으로 만드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한다. 그리하여 영원한 지옥 형벌에 처하게 된다.
① 악한 종
* 마 18: 32-33 –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② 둘째 사망
* 계 21: 8 -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3) 달란트 비유의 교훈
열 처녀 비유가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교훈해 준다면, 달란트 비유는 주인의 뜻을 올바로 깨달아 주인의 것을 가지고 주인에게 유익을 끼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교훈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주인 되신 창조주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돌리며 그것으로 그분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이 의무를 다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열납되는 선한 자로 여김 받을 수 있다.
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 고전 10: 31 -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②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함
* 롬 12: 2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마 25: 23. 주인의 즐거움 -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을 믿고 존중하였고 그 명령에 순종하며 충성했다. 그들은 게으름을 피우거나 주인의 뜻을 거역하지 않았다. 그들은 상당한 이익을 남겼다.
교만한 자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오직 겸손한 자만 그렇게 할 수 있다. 주인은 그들을 칭찬했고 그들에게,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말했다.
주께서는 우리의 순종과 선행과 충성에 대해 보상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천국은 희락이 있는 행복한 곳이며, 충성된 종들은 거기에서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할 것이다.
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셈어의 특징인 반복 기법을 사용하여 20, 21절의 내용과 거의 흡사한 칭찬과 약속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동일 내용의 보상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심판주의 회계 결산기준은 은사와 능력의 크기에 있지 않고 그 맡은 바에 대한 성실성과 충성도에 있다는 점이다.
한편 주인은 두 종에게 모두 '많은 것'을 맡길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두 종이 똑같은 양의 '많은 것'을 맡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천국은 획일적인 평등주의(equalitarian)의 실현장(實現場)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과 능력과 충성이 모두 인정되는 곳이다.
마 25: 24. 한 달란트 –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이 엄하고 까다로운 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주인에 대해 불평하고 불만했다. 그러나 주인은 엄하고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주인이 자기 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주면서 장사하라고 부탁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었다. 종들은 주인의 뜻에 순종해야 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 주인의 뜻에 순종치 않고 그를 두려워하며 그 한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다.
1]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 주관하는 회계의 현장에는 충성된 자이든 불충분한 자이든 모두가 나아와 주인의 판결에 응해야 한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 호토 엔 탄란톤 에이레포스)의 시재가 완료능동태 분사로서 아직 그에게 '한 달란트'만이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 고후 5: 10 -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2]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굳은'(*, 스크레로스 σκληρός)라는 말은 '박정하고 포악하며 거칠다'는 뜻으로 공동 번역과 새 번역에서는 '무서운 분'이라고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같은 평행 비유 눅 19: 21에서 나오는 '엄한 사람'(*, 아우스테로스)이라는 단어보다 더 강경한 뜻으로 쓰인다.
* 눅 19: 21 -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 요 6: 60 -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 행 26: 14 -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 약 3: 4 -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 유 1: 15 -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종은 주인을 악한 인격자로 몰아세워 결국 자신의 불성실과 직무 유기(遺棄)에 대한 변명의 여지를 찾으려 한 것이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이 엄하고 까다로운 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주인의 인격을 매도하는 더 큰 죄를 주인 앞에서 범하였다.
3]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주인을 매우 질이 나쁜 구두쇠나 돈만 모으는 광적이면서 투자하는 데는 인색하며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해 불로 소득을 얻는 파렴치한 인물로 그리고 있다.
아마도 이 비난 속에는 자신이 다른 두 종들보다 훨씬 적은 양을 받은 것에 대해 주인에게 은근한 화를 분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Derrett).
4]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호덴 우디에스코르피사스)
이는 추수한 곡식을 마당에 늘어놓고 말린 후, 키질을 하여 겨를 헤쳐서 곡식을 모으는 장면을 나타내고 있다.
즉 주인을 키질하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고 알곡(재산)을 모으려고 하는 불로 소득자로 비난한 것이다.
이처럼 좋은 주인을, '굳은 사람', '심지도 않고 거두는 사람', '헤치지 않고 모으는 사람' 등으로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는 그 비난이 한 달란트를 받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주인 앞에 나온 게으른 종, 자신에 대한 묘사이다.
이 본문은 자기변명을 통하여 자기 모습을 묘사하는 우화적(寓話的)인 문학적 표현 방법이다. 그러므로 종의 주인에 대한 비난은 모두 게으른 종 자신의 완악한 심성의 고백적 표현으로 보면 된다(26절).
* 눅 19: 22 -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5] 내가 알았으므로(*, 에그논 세)
이는 제 2부정과거 능동태 직설법으로 경험을 통해 익히 알아오고 있었다는 뜻이다.
실로 그는 자신의 왜곡된 판단을 근거로 주인의 품격을 극도로 모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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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종말적 심판의 때에 성도가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은 얼마나 큰일을 했고,
화려한 삶을 살았는지에 있지 않고,
순간순간 매사에 얼마나 성실했는지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기에 세상에서 얻는 것은 모두"덤"이다
욕심내지 말고 마음 비우는 오늘 이시길 바라며 늘~건강하세요.💖
종말적 심판의 때에 성도가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은 얼마나 큰일을 했고,
화려한 삶을 살았는지에 있지 않고,
순간순간 매사에 얼마나 성실했는지에 있어야 한다.
설교 감사합니다.
종말적 심판의 때에 성도가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은 얼마나 큰일을 했고,
화려한 삶을 살았는지에 있지 않고,
순간순간 매사에 얼마나 성실했는지에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