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선교사들, 섬김과 나눔의 공동체를 세우다
사도 13,13-25; 요한 13, 16-20 / 부활 제4주간 목요일; 2023.5.4.; 이기우 신부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을 드시기에 앞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성체성사의 정신이 파스카 해방을 위한 섬김에 있음을 각인시켜 주시려던 뜻이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있던 유다인 회당에서 그때까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모르던 동족들에게,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시기까지의 간략한 이스라엘 역사를 간추려 소개하였습니다.
이후 사도 바오로는 두 차례 더 선교여행을 하면서 가난한 이방인 신자들을 섬기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1코린 1,26 참조). 이 과정에서 유다인 회당에서 만났던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직 활동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로마 16장 참조). 바오로는 이방인들이 사는 곳으로 찾아가서 선교함은 기본이요 세례를 강요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생활을 하도록 가르쳤으며, 이를 그저 말로 한 것이 아니라 생활로 감화를 주어 스스로 본을 받도록 배려했습니다. 또 그네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몸소 천막 만드는 거친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공동체를 형성해 놓고 지도자를 세운 다음에는 그들 가운데 눌러 살지 않고 홀연히 다음 선교지로 떠나갔습니다. 그래 놓고도 그 공동체들의 사정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며 살다가 어려움이 닥치거나 인편으로 질문이 오면 만사를 제쳐놓고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이 땅에 평신도 지식인들의 노력에 의해 자발적이고 자생적으로 교회를 세운 우리 교회의 역사에서도 예수님과 사도 바오로를 본받아서 섬김의 자세로 신자들과 가난했던 조선의 백성을 찾아와서 섬겼던 외국인 선교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한말에 일반 백성들도 가난했지만 박해가 종식된 후에도 천민 취급을 받았던 천주교 신자들은 더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에 선교하러 온 선교사들은 이 땅의 가난이 사라지도록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돕는 일에 열정을 바쳤습니다.
식물학자이기도 했던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프랑스인 에밀 타케(Emile Joseph Taquet, 1873~1952) 신부는 1911년 일본에서 선교하던 식물학자 포리 신부에게 왕벚나무를 보내고 답례로 받은 온주밀감나무 14그루를 가난한 주민들에게 재배토록 해서 오늘날 제주 감귤산업의 토대를 마련한 제주 감귤의 아버지입니다.
또 1954년에 제주에 파견된 골롬반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아일랜드인 맥그린치(P. J. Mcglinchey, 1928~2018) 신부는 돼지, 양 등을 키우는 축산 협동조합으로 지금의 이시돌 목장을 키워 남제주 한림을 한국 최대의 경제적 공동체 지역으로 만들었고, 이시돌 목장의 수익금으로 양로원, 요양원, 병원, 호스피스 복지원과 어린이집, 유치원을 세워 가난한 이들을 도움으로써 신축교난(1901) 이후 매우 열악했던 제주 선교의 전환점을 이룩했습니다.
1958년에 벨기에 출신으로 한국에 와서 전주 교구 소속으로 활동한 선교사 지정환(Didier t'Serstevens, 1931~2019) 신부는 전북 임실에서 치즈를 만들어 주민들로 이루어진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오늘날 대한민국에 치즈가 있게 하였습니다.
6.25 전쟁 직후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궁핍해 미국의 구호물자에 의존하는 사회적 혼란기였습니다. 따라서 저축을 하거나 누구에게 돈을 빌려주기가 어려운 실정이었고, 아무리 도와주어도 가난한 이들이 빈곤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환경을 극복하고자 메리놀 수녀회 소속 선교사인 미국인 메리 가브리엘라(Mary Gabriella, 1900~1993) 수녀는 카나다에 가서 신협 연수를 받고 돌아와서 1960년 5월 1일, 부산에서 메리놀 병원 직원과 천주교 교우 27명을 조합원으로 한국 신협의 시초인 성가신협을 설립했습니다.
이 외국인 선교사들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예수님처럼 가난한 신자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협동조합 방식을 통하여 직접 섬김의 삶을 살아간 그분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선교사들 중에는 방인 수도회를 설립함으로써 경제적인 도움을 넘어 영적인 도움을 주고, 한국인들이 스스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헌신한 인물들도 있습니다.
1923년에 한국에 파견된 미국 메리놀 외방선교회 소속 선교사 목이세(Morris, John Edward, 1889~1987) 신부는 1930년에 평양 지목구장으로 임명된 후 평안도 각지에 본당들을 설립하고 교육사업과 사회사업을 통해 평양 교구의 기틀을 확립하는 한편, 방인 사제 양성과 평신도 지도자 육성에 힘쓰면서 영유 본당 유치원을 맡아 운영하러 와 있던 메리놀 수녀회에 방인 수녀회 설립을 위촉함으로써 한국 최초의 방인 수녀회로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가 창설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1935년에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인 프랑스인 남대영(Deslandes, Louis, 1895~1972) 신부는 예수성심시녀회의 모체인 삼덕당(三德黨)을 설립하였습니다.
또한 1943년에는 역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인 프랑스인 ᅠ성재덕(Singer, Pierre, 1910~1992) 신부가 ᅠ성가소비녀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따라서 가난한 이들을 섬겼던 사도들인 동시에 빵과 말씀을 아울러 나누어 준 선교사들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이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그 발자취를 따라야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