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남편과함께 사촌 언니딸 결혼식에 갔다.
큰집과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 껄꺼로운 상황이었지만
해마다 초등학교 총동창회때 봐야할 얼굴이니 그냥 지나치기엔 뒷감당이 더 골치 아픈게다.
큰집은 대궐(어릴적 내생각)같은 집에 머슴을 둘씩이나 두고 사는 대농이었다.
집안엔 언제나 귀한 음식이 풍부한거 같았고.
제사때가 되면 구경 할 수 없엇던 음식들이 잔뜩 차려지는 걸 보면서 침을 많이도 삼켜야만 햇다.
물론 조금씩 나누어 주긴 하지만,,,,그것마져도 우리입엔 들어 올것이 없었다.
아버지,,,그리고 귀한 아들 둘,,,,그들만 입이었던 그 세월이었다.
***큰아버진 지방의 유지들과 기생을 옆에끼고 사는 날이 많았고...
언제나 술에 취한 모습이었다.
결국 그 유지들에게 보증을 잘못 서서 재산을 거의 다 날렸으니.....***
어쩌다가 큰집에 놀러 가면 사촌언니가(이번에 딸 혼사시킨) 지게 작대기를 들고 대문을 지키고 서 있다.
앞집 뒷집으로 나란히 살면서도,,,부자로 사는 과시를 하는게다.
참 서러움을 많이 받았다.
형제간인데도 어찌 그리 큰 차이가 낫는지,,,지금도 이해 할수 없는 부분이다.
큰아버진 곱추엿다,,아마도 어릴적에 허리를 다치셨나 보다.
할아버지가 한의사(침놓고 하시던) 셧는데,,,명의라고 소문 난 분이셨지만...장남의 허리를 고치지 못햇다 한다.
할아버진 말타고 다니시면서 멀리 상주까지 치료를 하러 다니셨다 하니....
그만큼 이름을 날리셨던 분이었나 보다.
그러니 제산도 많이 모우셨을 터...
그 많은 제산을 장애를 가진 큰아버지,,장남 에게만 물려 주셨나 보다.
큰집은 ,,,땅이많아 근동에선 큰집땅 밟지 않고선 길을 갈수가 없을 정도엿다 하니...
그만큼 제산이 많았다는 말일게다.
울아부진,,,마음이 여리고 여리신 분이엇다.
매부리코에다가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큰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큰집일은 도맡아 하셨고...
울집일은 엄마 혼자 거의 다 하셧다 한다.
타고난 재산도 변변찬은데,,,아버진 큰집일만 하시니 재산이 늘어 날리 없고...
자식 다섯씩 먹여 살리느라 ,,,아버지나 엄마나 고생 정말 많이 하셨다.
울아버지는 병약하셔서 맨날 골골하셨는데,,,병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일만 하시다가..
나이 50 겨우 넘기시고 돌아 가셨다.
울아버지 돌아 가시고 정말 힘든 생활이었지만,,
큰집에선 우리집을 도와 주는걸 보지 못햇다.
가려린 몸으로,,, 엄마 혼자 다섯식구를 먹여 살리신 셈이다.
엄마의 고생은 슬하의 자식 키우느라 고생도 하셧지만...
큰집 식구들(사위나 딸) 때문에도 고생을 또 덧붙여 하셨다,
사촌형부가 거의 매일이다시피 술을 마시고 우리집에 와서 주정을 부리면 그주정을 엄마는 다 받아 냈엇다.
큰엄마 역시나 큰아버지 돌아가신 후 술에 쩔어 사셨기 때문이다.
형편이 어려운 사촌 언니에게 농사 지으면 우리 먹을거 조금 남겨주고 퍼 주는걸 보면서
나는 심술을 많이 부렸다.
큰집은 부잔데,,,왜 우리가 사촌 언니를 도와 주느냐고 하면서..
그런 세월속에
큰엄마 살아계실적에,,,큰집 오빠가 산소터마져 다 팔아 먹고...
땅이 없어 산소를 이장 할수가 없으니 조상때부터의 유골들을 다 화장 해버렷다.
그냥 통보만 하고 울아버지 유골 마져도 화장 해버렸으니...
장남앞으로 된 선산을 장손이 팔아 먹기로 무슨 죄가 될까 마는,,,
그래도 조상님들 유골을 죄다 화장 시켰다는 것이 울집(친정)남자들은 못마땅 했던거다.
이래저래....사이가 나빠질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많아서 큰집하고는 등을 지게 되었고...
큰집엄마 돌아 가셨을땐,,,울집에선 아무도 가보지 않았다.
언니들은 소식을 알면서도 나에게 알리지 않아 난 참석을 못한거다.
그만큼 언니들은 큰집에 대한 원망이 많았던가 보다.
시골 초등학교는 선후배가 다 언니 동생이라,,, 총동창회때 참석하는 사람들은 다 만나게 되어...
그때 사촌언니를 만나었다.
사촌언니를 만나는게 편치 않았는데,,,,중간에 동네 오빠가 나서서 인사하라 하니,,겨우 인사를 건냈는데...
사촌언니는 울며 불며,,서러워 한다,,,자기 엄마 장례때 와주지 않앗다고...
해명은 했지만,,,,마음은 내심 불편한거 같앗다.
그러면서 딸래미 결혼을 봄에 할거 같다고 해서,,전번을 주면서 연락 하라 했는데...
기여코 사촌언니 한테서는 연락을 받지 못하고,,친구한테서 연락을 받아 결혼식 참여를 하게 된거다.
언니는 반가워 하면서 어찌 알고 왔느냐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내심,,서운한 마음은 어쩔수가 없었다.전화번호 알면서도 연락하지 않는 그 행동이 말이다,
이제 훌훌 털고 가벼이,,마음 가벼이 살면 않되나,,,,이런 마음인데...
아직도 마음 한구석,,,,웅크린 옹이가 박혓나 보다,
어느 일요일의 순간들이 내기억의 저편을 파헤쳐낸 일기였다.
첫댓글 그래도 다행이닷~
분이언냐 기죽지 않고 사람도리하면서 자기발로 결혼식에도 갔으니.
오늘이 좋으면 다 좋은 거~!
내복으로 사는 거라 여기면서 나 역시 여기까지 왔더라오.
얄미운 우리 큰오라버니~~~~~~~~~흥~!!!
ㅎㅎㅎ,,,,집집마다 다 삐졌다가 풀리고,...그러고 사는게 인생인가 봐요.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두엇던 지난 세월을 들처내며 때론 화도,슬품도 삭혀 보지요.
예전에는 장남에게몰아주던 상속이 참 불공평 했었던거 같아요.
우리 시댁도 장남에게만 재산 물려 주었네요,,,그런데 시댁일은 아랫동서들만 할수밖에 없네요,
큰동서가 일을 할 줄 모르니,,에혀~
엣날에 어려웠던 시절엔 마음의 갈등이 참 많았지요 다 지나간 일들 이잰 잊으시고 잘 지내는데 좋습니다 ...
다 제각각 살게 되니까 앙금만 남아서 큰일 치뤄도 서로 왕래가 없는것이 마음 아픕니다,,,
집집마다 한가씩의 사연은 다 있는듯 합니다
남이라면 한번 삐치면 끝이지만
집안이나 형제자매는 서운하면서도 생각하게되고
한두번 풀어보려 시도는 하게 됩디다
분이님 잘 하셨어요
대사가 잇을때 잘 하면 서로 풀 기회가 되죠,,,감사합니다,
과거사 놀부 이야기같네요
부모님은 대부분 맞아들을 챙기는 경향이 많았죠 어느가정이나 큰아들 큰아들 ...
부모님은 그렇다고 치고라도 어느부모나 넘욕심 많고 덕을 쌓지않은 부모들의 자식들이 죄값을 연좌인지 몰라도 잘되지 안지요
3대 부자없고 3대 거지없다는 말처럼 대다수 재산 날리던가 자녀 혼인도 늦고도 한가지 문제 예로점이 있다고 하답니다
분이님은 마음 착합니다 늘 해피하세요
전 우리 부모 닮으면 더 착할거 같은데,,우리부모님 같이 착하진 않아요,,
그래도 나이드니 배운게 착한거라고 부모님 닮아 가려고 합니다,,아니 저절로 되더라고요,,,그렇게 사는것이 인생의 정답인듯 해서요,
현재의 상속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장남이 재산을 독차지하던 시대에 아픔이군요~
종가집 장손이 올바르게 살아야 집안들이 단합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 지는데~
뭔 욕심이 그리 많아 조상이 물려준 종산까지 팔아먹고 조상님들 흔적을 몽땅 저버리게 만들었을까?
그런일 발생하면 집안간에 다툼이 나고 미워하고 심하면 송사 사건 까지 일러나는 것이 현실이지요~
조상이 물려준 재산이 인연에 재산이 아니 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종종 재산만은 보존해야지요~
서럽고 아픈 과거 훌훌 털고 사촌 혼사에 다녀오신
분이님이 잘 하셨내요~
그렇게 사는게 올바른 자에 행복같아요~
이렇게 하면 응어리진 마음 서로 풀며 살수 있겟죠,,,지는것이 이기는 것이다,,,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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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낮은음자리님,,,지고 살면 편안해지는거 같아요,,,
분이님 마음을 헤아릴수 가 있어요, 집집마다 다 사연이 있듯이 분이님 사춘언니네 간것 아주 잘하셔어요, 마음을 먼져 열어서 내보인것은 아주고마운일 (별셋개드려유!) 시골에서는 한집건네 친척이고 동창 동생 되고 얼희고 설키고 그래서 동창에서 거짓말을 하면 금방들통이 나지요, 분이님 좋은글 감사하게 잘읽었어요,탱큐!~~~
이번에 갔더니,,아주 동네사람들 다 만난거 잇죠...고향에 사는 사람들 덕분에 잔치 한번 가면 다 만나니 그것도 괜찮은 해후더라고요,,,ㅎㅎ
마음결이 고우신 우리 분이님...
어우르 시는 넓은 마음을 배워 갑니다...평안 하소서_()_
감사합니다,,누구나 이렇게 살수 잇는일이죠,,,마음 한번 비워 내면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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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제 계산 따지며 살고 싶진 않아요,,,설사 못 받을 값이라도 지금 나와 관계가 잇는 사람이라면 길흉사 참석은 원칙으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