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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의 신앙
(창5:21-24 )
에녹은 아담의 7세손입니다. 아담부터 노아까지 13대로서 1656년간인데 이 기간 동안에 유일하게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휴거된 인물이 바로 에녹입니다. 노아는 홍수를 통해서 구원을 받았지만 에녹은 홍수가 나기 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하늘로 휴거된 인물입니다. 다소 비판이 있기는 합니다만 노아는 앞으로 있을 대 환난을 통해서 구원받는 사람을 예표하고, 에녹은 환난 전에 휴거되는 성도를 예표하기도 합니다. 과연 어떻게 해서 에녹은 환난 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휴거됨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에 올라 갈 수 있었습니까? 에녹은 본문에 보니까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동행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과 함께 살다' 혹은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다' 라고 하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함께 길을 걸어갔고 300년 동안 하나님과 함께 살았던 인물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6:8)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공의를 실천하고 또 자비히 여기며 또 겸손히 행하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또 아모스서 3장 3절을 보면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느뇨" 이렇게 반문하고 있습니다. 의합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과 뜻이 맞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녹은 하나님과 뜻이 맞았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믿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300년 동안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인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동행한다라고 할 때 이 동행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편에서 우리와 동행하는 경우가 있고, 우리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두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는 경우에는 저희들의 신앙이 내려갈 때 이고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는 우리의 신앙이 올라갈 때 입니다. 내려간다 라고 하는 것은 내 뜻을 좇는 것을 말하고 겸손한 대신 교만한 것을 말하고 또 감사하는 대신에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을 말하고 또 자행 자제하는 때에 내려가는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눅24장을 보게 되면 로마 병정들이 예수님을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 위에 처형을 하게 되었을 때에 모든 제자들은 낙심하고 흩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중에 글로바와 다른 형제가 예루살렘을 등지고 수심에 가득찬 모습으로 낙담 천만 하여서 이제 엠마오로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낯선 나그네와 길을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그네가 예수님에 대해서 구약의 선지자의 글을 통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그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한 주막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낯선 나그네가 글로바와 다른 형제에게 떡을 축사하여 떼어 주었을 때에 그 앞에 계신 분이 다른 분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 이라는 것이 눈이 열려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예수님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글로바와 주님의 다른 제자가 예루살렘을 등지고 수심에 가득찬 모습으로 낙심하여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을 때에 사실상 주님은 그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 제자들과 더불어 동행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동행은 제자들이 주님의 뜻을 즐거워하여 주님을 동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제자들을 버리실 수가 없었기 때문에 엠마오로 근심 중에 가고 있는 제자들과 주님이 동행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낙심한 것을 말하고 신앙적으로 내려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주님과 더불어 동행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내 뜻으로 삼아서 그 아버지의 뜻을 ?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이 어디로 나를 이끌든지간에 그곳에 가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이 즐거워하시는 것을 나를 통하여 이루시도록 적극적으로 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근 300년 동안 에녹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이 이끄시는 곳에 자기도 그곳에 갔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자기 자신을 들어서 적극적으로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행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다고 본문은 기록을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실 때 하나님과 동행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가신 곳에 가고 주님이 있는 곳에 나도 있기를 원해서 주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자리에 계십니까? 본문에 기록된 이 에녹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과 더불어 동행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를 가졌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 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히11:5)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에녹이 세상에 살았을 동안에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에녹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가졌을까요?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21)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미루어 보면 에녹은 65세 이전에는 은혜를 받지 못했고 평범한 신앙생활을 살았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신앙적인 견지에서 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도 못했고 하나님 보시기에 죄악된 생활을 산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므두셀라를 낳고 난 65세 이후에 그것이 어떤 연고가 되었는지는 확실히 성경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은혜를 받고 그가 마음의 변화를 받아서 그 이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고 성경이 오늘 말을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고 하는 이 말씀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고 자녀를 낳았다 하는 말씀과 대조를 해보게 되면 말씀 중심으로 그 가정을 세워 나갔다 라고 하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가정은 하나님 중심의 가정과 세상 중심의 가정이 있습니다. 나 중심의 가정이 있고, 예수 중심의 가정이 있습니다. 인본주의 중심의 가정이 있고, 신본주의 중심의 가정이 있습니다. 인본주의 중심의 가정은 가인의 후예입니다. 사단의 족속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멸망에 이를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신본주의 중심의 가정은 아벨의 후예요, 예수 족속이요,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가정과 삶은 인본주의 중심의 가정입니까? 아니면 신본주의 중심의 가정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의 가정과 믿지 않는 불신자의 가정과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만약에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의 가정에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제단이 없다고 한다면 불신자의 가정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 하나님께서 최초의 신랑과 최초의 신부를 만드시고 최초의 가정을 설계하시고 난 다음 가장 이상적인 가정을 아담과 하와에게 주었습니다. 그 에덴 동산에 최초에 만들어진 가정의 주인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의 주인은 우리만 모이는 그런 가정이 아니라 그 가정을 만들고 설계하고 축복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던 그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의 이름을 부르는 제단이 있을 때 그것이 바로 불신자의 가정과 차이를 가져다줍니다.
에녹이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고 땅위에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가졌다고 하는 것은 그의 가정을 말씀 중심에 세워서 하나님을 그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고 온 식구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점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를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의 가정은 하나님을 그 가정의 중심에 모시는 가정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의 가정에서 작은 천국이 경험되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저 천국과 연결되어질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가 있겠습니까? 모든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제단을 만들고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높이게 될 때 그 가정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바로 에녹은 300년 동안 동행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가진 사람이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두번째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증거의 생활을 살았습니다.
유1:14,16절을 보면 "아담의 7세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에녹이 당시에 살았을 때에 그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예언을 하고 그 재림에 대해서 설교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어떻게 얻었을까요?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이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주의 오심을 예언하고, 전도하는 전도자로서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에녹을 기뻐하셨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에 귀를 기울여 보아야 합니다.
"그대가 아직 예수를 믿지 않고 살아 있는가?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예수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자 당신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것이다. 그대가 예수를 믿는가? 그런데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한다면 그대를 통해서 꼭 구원받을 사람이 있기 때문에 전도하라고 당신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것이다"
전도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아갈 때 성취해야 할 사명인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심부름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원래 사명이라는 말은 심부름을 받은 목숨이라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이 어디서 왔다가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도대체 가는 것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이 3대 질문을 분명히 알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보냄을 받을 때 그냥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심부름을 주어서 이 세상에 보낸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것을 사명감이라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갑니까? 이 사명을 완수하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또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저와 형의 인생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로부터 이땅에 와서 아버지의 일을 하다가 아버지가 부르면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인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보냄을 받았을 때에 이유 없이, 뜻없이 우리가 이 땅위에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것을 깨닫는 것을 사명감이라고 합니다. 나는 심부름을 받은 목숨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사명감을 깨달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위에 보낼 때 어떠한 심부름을 주셨습니까? "야! 세상에 가서 돈 많이 벌어서 재벌이 되어라. 돈 많이 벌어서 이 세상의 쾌락을 즐기고 행복하게 살아라" 그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심부름일까요? "자식 잘 키워라. 돈 많이 벌어라"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심부름일까요?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신 심부름은 제가 성경에 보니 3가지 있어요.
첫째는 네 자신이 예수 믿어 먼저 구원 받는 것
두번째는 예수 믿고 난 다음 네 속 사람이 예수처럼 되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예수의 모습을 닮아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화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세번째 가장 중요한 것은 네가 은혜 받고 구원받았으니 네 자신이 스스로 만족하지 말고 예수 믿지 않는 네 남편, 네 아내, 네자식, 가까운 일가와 친지, 그리고 네 모든 주위의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증거 해서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라는 것이 하나님이 저와 형에게 맡겨 주신 심부름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결코 이 세상에서 돈 벌라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재벌이 되고 이 세상에서 성공하라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돈도 벌고, 성공도 해야 됩니다. 자식도 키워야 합니다. 직장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삶에 궁극적인 목적은 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삶의 수단인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인생의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3가지의 탄생을 경험하게 되는데 첫째는 육신 적인 탄생, 두번째는 지성적인 탄생, 세번째는 사명적인 자아로써 탄생을 경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어머니 모태에서 육신적인 탄생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배우지 아니하면 아마 그 사람은 정말 금수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많은 학문과 훌륭한 공부를 해서 지식과 교양을 갖추었다 도 그 사람이 훌륭하고 고상할는지는 몰라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은 결코 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인생이 왜 사는지를 모르고 무엇 때문에 내가 여기에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사명적 자아로써 탄생을 경험하지 아니하면 결코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행20:24절에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하였습니다. 자기의 사명은 이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본분이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으로서 본분이 있고, 자식으로서 본분이 있고, 또 농업이나 상업이나 공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각기 그 직장에서 자기의 본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분은 다 다르다라고 하더라도 사명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본분은 달라도 아버지 어머니의 사명은 단 하나입니다. 자식의 본분이 달라도 자식의 사명은 하나입니다. 모든 나무가 그 뿌리는 지구의 중심을 향해서 뻗어 나가고 또 하늘을 향하여 태양을 향하여 솟아 나오듯이 우리는 본분은 다 달라도 모든 사람들의 사명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내 속사람이 예수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 하는 것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임을 우리가 자각하지 아니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돈 벌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에요. 자식 키우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라고 자식도 키우지 말고, 돈도 벌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타락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주객이 전도되는 것을 타락이라고 말합니다. 목적과 수단이 혼동된 상태를 타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왜 하나님을 슬프게 하며 진정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할까요? 목적과 수단이 혼동된 삶을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의 목표지 수단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으므로 내가 내 가정이 좀더 행복하고 내가 좀 더 잘 살고 성공하기 위해서 하나님 믿는게 아닙니다. 성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기의 삶의 수단으로 화하기 때문에 그게 바로 샤머니즘이고 그게 바로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그게 바로 정욕인 것입니다.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이유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그의 삶 전체가 복음을 증거하는 삶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세상도 정욕도 다 지나가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토록 거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을 ?아서 살아가게 되면 언젠가는 실망하지 아니할 수 없게 되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위해 사는 자들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아니한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다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딤후4:1)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 증거는 성도의 사명임을 깨달아 알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해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리워 올라 갈 수가 있었을까요?
그는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의를 실천하고 자비히 여기며 겸손했습니다. 결코 자기의 뜻을 앞세우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아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말씀 중심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경건한 생활을 살았습니다. 그는 인생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복음을 증거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어떻게 하면 에녹과 같은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아 공의를 실천하고 자비히 여기며 겸손하며 주의 뜻을 따라 살아가면 하나님과 동행하게 될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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