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놓은 날은 빠르다더니 혼사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아니 정확하게는 한 달이 채 못 남았다.
옛날과 달리 지금이야 다 전문가에게 맡겨 돈으로 해결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여유가 없고 바쁘기만 하다.
우선 결혼식을 알리는 청첩장 보내기가 우리 몫으로 떨어졌다.
우리 두 사람이 보낼 청첩장 숫자에 맞춰 남은 자리만큼만 아들의 친구를 부르겠다고 한다.
요즘 추세가 작은 결혼식을 표방해 우리도 250석 식장을 예약했다.
양가에서 나누면 우리에게는 125석이 돌아온다.
11년 전 큰아들 때에는 개혼이라 넓은 데서 부르고 싶은 친지들을 다 모셔서 참 성대하게 예식을 치렀다.
그러나 이번엔 남편이 퇴직한 지도 너무 오래되었고, 내 친구들도 장성한 손주가 있는 할머니들이라 새삼스럽게 오라고 하기가 좀 멋쩍었다.
장소도 좁고 해서 줄이고 줄여서 딱 좌석수에 맞게 진정으로 축하해줄 분들에게만 청첩장을 보내려고 한다.
아들이 모바일 청첩장이라며 청첩장과 웨딩사진이 있는 것을 스마트폰으로 보내왔다.
남편 쪽은 예의를 갖춰 옛날식으로 청첩장으로 보내고, 내가 보내야 할 친지와 친구들에겐 간편하게 모바일 청첩장으로 보냈다.
참으로 편하게 클릭 몇 번으로 청첩장과 사진을 보내니 얼마나 간편한지, 받는 사람도 바로 잘 받았노라며 답장을 보내주니 서로가 참 편한 세상임을 실감했다.
청첩장을 보낼 곳을 엄선하는 과정에서 가장 고심한 곳이 한 군데 있었다.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바로 옆집에 이사 온 영아네에 청첩장을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루에도 몇 번씩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생각이 오락가락 변하기 일쑤였다.
영아는 우리 아들과 동갑이라 초등학교에 함께 입학했고, 나보다 10년도 더 연하인 영아 엄마는 인정 많고 순박해서 나를 큰언니쯤으로 생각하고 모든 일을 의논해오고 우리는 참 곰살맞게 잘 지냈었다.
이웃사촌이란 말 그대로 멀리 있는 친동생들보다 더 가깝게 지냈다.
그 집과 우리 집은 현관문이 항상 서로 개방되어 있을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는 영아와 우리 아들, 바로 앞 동의 아들과 가장 친한 아이, 셋을 매일 우리 집에 데려다 함께 교자상을 펴놓고 숙제며 예습 복습을 시켰다.
일요일만 쉬고 주 6일을 한결같이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우리 거실은 공부방이 되었다.
중학교에 가면서 공부는 끝이 났지만 참 좋은 인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친했던 영아네에 청첩을 고민하게 된 이유는 우리 아들과 동갑내기인 39세의 영아가 결혼했다는 소식이 없어서였다.
우리에게 알리지도 않고 결혼했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에 아직 미혼인 것은 거의 확실하다.
우리가 다른 아파트로 이사했고, 영아네도 바로 앞의 더 큰 평수로 옮겨가고부터는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구러 서로 연락도 뜸해졌고 얼굴 본 지도 무척 오래되었다.
전화기를 들었다 놓기를 몇 번이나 하다가 드디어 용기를 냈다.
'여보세요'라는 내 한 마디에 바로 나임을 알아보는 영아 엄마의 방방 뛰는 듯 반가워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영아의 근황을 물어보고 나서 청첩에 대한 이야기를 할지 말지를 결정하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영아가 결혼 날을 받아놓았노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의 고민이 한순간에 사라지며 마음 턱 내려놓고 축하한다고 마음껏 덕담을 했다.
정말이지 내일처럼 너무나 기뻤다.
그동안 뜸했던 소식을 전하며 서로가 축하하며 반가움에 목소리까지 떨려 나왔다.
"둘 다 나이 40전에 결혼한다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떨리던 영아 엄마의 음성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