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채 기행
사월 첫째 일요일은 친구와 함께 걸음을 나섰다. 전날 초등교장으로 재직하는 대학 동기가 내일 일정이 어떻게 되느냐 물어왔다. 나는 외감 들녘을 둘러 승산마을 산기슭 지인 농장을 찾아가고 싶다고 전했다. 친구는 나와 함께 산행을 가고 싶은 눈치였다. 김해 어느 산으로 오를 생각이었다. 나는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인적 드문 산골을 찾아 청정지역 쑥을 캐자고 수정 제안했다.
우리는 마산역 광장 구산과 진동으로 떠나는 농어촌버스 출발지에서 만났다. 배차 간격이 뜸해 하루 서너 차례 다니는 진전 둔덕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어시장을 지날 즈음 새벽 첫차로 푸성귀를 마련해 시장에 내다 팔고 귀가하는 할머니들이 다수 탔다. 나도 중늙은이는 된다만 시골버스에서는 청년이었다. 옆자리 친구에게 허리를 찔러 같이 일어나 할머니들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댓거리를 지나 밤밭고개를 넘어갔다. 진동 환승장을 둘러 진전 면소재지와 양촌 온천을 지났다. 적석산 산행 기점 일암마을을 둘러 산행 후 점심자리로 알려진 대정마을 식당거리를 지났다. 산골 마을 논에는 작년 가을 심은 양파가 잎줄기 세력이 좋게 자랐다. 두어 달 지나 초여름이면 토실한 알뿌리를 드러내지 싶었다. 양파가 심겨지지 않은 논밭은 푸르른 보리가 무성히 자랐다.
마산역 광장에서 한 시간 반 걸려 둔덕 종점까지 간 승객은 넷이었다. 우리 말고 둘은 여항산을 오르는 등산객이었다. 우리도 산행 차림이었지만 산으로 향하지 않고 아스팔트 포장길 따라 걸었다. 창원 진전 둔덕 산간에서 함안 군북 오곡으로 향하는 오곡재를 넘는 자동찻길이었다. 워낙 산골 오지라 고개를 넘나드는 차량이 아주 드물었다. 우리처럼 걸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둔덕에 딸린 들담마을을 지나다가 암자로 가는 갈림길에서 친구가 배낭에 담아온 곡차를 비웠다. 친구는 배낭이 훨씬 가벼워졌다고 좋아했다. 우리는 크게 굽어진 산모롱이를 돌다가 볕바른 자리 웃자란 쑥이 보여 몇 줌 뜯었다. 쑥을 따라가니 산에서 흘러내린 계곡이 있었다. 그 계곡에도 볕이 바른 곳이었다. 머위가 군락을 이루어 무성했다. 머위가 곰취처럼 둥글게 잎을 펼쳐 자랐다.
우리는 쑥을 캐던 일을 그만 두고 계곡으로 내려가 머위를 뜯었다. 나는 전날에도 주남저수지 건너편으로 가 머위를 제법 뜯어 이웃과 나누었다. 인적 드문 산중에서 머위를 발견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묵정밭이라고 남의 사유지에 들어가 머위를 캐서는 안 될 일이었다. 우리가 머위를 뜯은 곳은 산간 계곡이라 지번을 부여받은 소유자가 있을 리 없었다. 마음 놓고 머위를 뜯었다.
머위가 지천으로 자라 우리가 상당히 뜯었음에도 못다 뜯고 남겨둔 머위가 더 많았다. 배낭에 머위를 담으니 묵직했다. 산중에 포장된 길을 따라 걸으니 오가는 차량은 없어 공기가 맑았다. 미산령으로 향하는 임도가 나타났다. 우리는 오곡재로 향했다. 지리산 삼신봉에서 갈라진 낙남정맥이 남쪽으로 하동을 거쳐 진주로 뻗어와 오봉산에서 여항산으로 건너가는 고갯마루가 오곡재였다.
오곡재를 넘어간 산모롱이에서 남겨둔 곡차와 김밥으로 점심 요기를 했다. 우리가 내려갈 군북 오곡 골짜기가 드러났다. 점심 식후엔 아까 못 캔 쑥을 캐 모았다. 길섶에는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아 쑥이 가득했다. 노루가 겅중겅중 뛰어가면서 풀을 뜯어 먹듯 한 자리에서 머물지 않고 포장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쑥을 캤다. 오곡마을에서 돌아나가는 군내버스를 놓쳐 군북역까지 걸었다.
그 버스를 타야 창원으로 가는 무궁화열차를 탈 수 있는데 다음 열차를 기약했다. 우리는 오곡에서 군북까지 시오리 길을 뚜벅뚜벅 걸었다. 산골을 빠져나가면서 쑥을 캐다가 달래 군락지를 만났다. 알뿌리가 동글동글한 달래도 제법 캤다. 군북역에 닿아도 열차 출발 시각이 한참 남아 면소재지까지 나가 친구와 마주 앉아 맑은 술을 몇 잔 기울이고 창원중앙역에 닿으니 날이 어둑했다. 17.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