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에 와서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농협은 신토불이를 외치면서 우리 농산물을 선전하고 있다. 신토불이라는 한자말을 직역하면 '몸과 흙은 둘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신토불이라고 하는 말에 포함된 '토(土)'는 단순한 흙이 아니라 풍토(風土)를 말한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풍토, 즉 바람과 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바람이 부느냐, 다시 말하면 따뜻한 바람이냐, 차가운 바람이냐, 혹은 습기를 많이 품은 바람이냐, 건조한 바람이냐에 따라 다양한 기후가 나타나게 되고, 대부분의 자연경관은 이 기후에 의해서 좌우된다. 농사 또한 풍토에 의존하고, 사람은 그 농삿물을 먹고 자란다. 그렇다면 신토불이라는 말은 '풍토→농삿물→몸'이라는 연관관계를 풍토=농삿물=몸이라는 등식 논리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풍토=음식물=몸이라는 완전한 등식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몸이 그 먹는 것에 의하여 영향을 받고, 그 먹는 것이 풍토에 따라 좌우된다고 하는 것을 이 보다 더 멋있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겠는가?
민족마다 주식이 다르고, 각 문화지역마다 자연에서 야생적으로 자라는 수많은 식물들 중에서 왜 하필이면 그 작물을 선정하여 재배하게 되었는가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앞 부분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음식문화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전통문화가 선정된 농작물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한 문화권의 전통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 주작물의 생육리듬과 그것을 재배하면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노동과 놀이, 의식 행?潁? 고찰하고, 그 작물을 또 어떻게 다양하게 활용하는지를 고찰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면 이제 우리 한국인의 음식물은 우리나라의 풍토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를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기후특성은 계절풍기후이다. 간단히 말하면 겨울은 춥고 여름에는 덥고 비가 많다. 이러한 계절적 기후의 차이가 크게 나타나는 것은 기단의 배치 양상이 계절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정한 성질의 공기덩어리를 기단이라고 한다. 땅과 바다의 비열 차이로 태양의 복사열에 따라 땅의 기온 변동은 크고 바닷물은 변동 폭이 적다. 태양의 입사각도가 큰 여름에는 바닷물에 비해 땅이 빨리 더워지고 겨울이 되면 바닷물에 비해 땅이 빨리 식는다. 그리하여 겨울이 되면 찬 대륙위에는 찬공기가 가득 차게 되는데 찬 공기는 따뜻한 공기보다 아래로 내려앉기 때문에 고기압을 형성하고 바다위의 비교적 따뜻한 공기는 위로 상승하면서 저기압을 형성하게 된다.
히말라야 산맥으로 둘러싸인 아시아의 큰 대륙은 큰 세숫대야와 비슷하여 땅이 차가워져서 찬공기가 계속 쌓이면 큰 고기압을 형성하게 되고 바람은 태평양 쪽의 저기압을 향하여 불게 된다. 바람의 이름은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이름지워지는데 우리나라에서 보면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북서쪽에서 오는 바람이므로 북서풍이라고 한다. 시베리아의 찬 대륙에서 불어오는 이 바람은 세고 차며, 건조하다. 기후는 상공을 덮고 있는 공기의 성질에 따라 달라지는데 북서쪽에서 불어온 건조하고 찬 바람 때문에 우리나라의 겨울은 차고 건조한 것이다.
삼한 사온이라는 것은 대륙에 찬공기가 쌓여 한번 불어 나간다음에는 그 힘이 약화되고 다시 찬공기가 강력하게 쌓일 때일 때까지 바람이 약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시베리아를 중심으로 한 강한 고기압에서 강한 바람이 약 3일 동안 계속되다가 다시 힘을 충전하는 4일 동안은 바람이 약하여 우리나라는 비교적 따뜻한 날씨가 된다고 하여 3한 4온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정확하게 3일동안은 춥고 4일간은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름이 되면 겨울과는 반대로 넓은 태평양에 고기압이 형성되고 대륙에서는 저기압이 형성되어 바람은 태평양 바다에서 시베리아쪽으로 불게 된다. 그 바람은 남서풍 혹은 남동풍으로 불리는데 바다에서 습기를 많이 품은 더운 바람이 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여름은 무덥고 습한 날씨가 된다.
기단은 꼭 군대의 사단병력들이 전쟁시 대치하는 것과 비슷한데 겨울에는 대륙으로부터 찬기단이 밀고 내려오고 여름에는 따뜻한 기단의 힘이 세어져 북쪽으로 밀고 올라가게 된다. 양 기단이 서로 만나는 곳은 소위 전선이 형성되는데 이 곳에서는 싸움이 치열하다. 찬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만나면 구름이 생기고 비가 자주 오게 된다.
덥고 비가 많은 여름 기후를 이용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농업이 벼농사이다. 농업은 식물을 기르는 일이고 식물은 마음대로 장소를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기후에 적합하지 못하면 성장하지 못하고 죽고 만다. 그래서 어떤 산업보다도 식물을 재배하는 농업은 기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다시 말하면 어떤 지역에서 재배하게 되는 작물의 종류는 그 지역의 기후의 제약을 받는 것이다.
벼는 원래 열대에서 자라는 식물인데 우리나라의 여름은 거의 열대기후와 유사하기 때문에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재배되었다. 벼를 밭에서 재배하기도 하였지만 그럴 경우에는 생산량이 적었다. 항상 물이 일정하게 고여 있는 논에 벼를 재배하는 기술이 개발되고부터 물을 대어 논을 만들기 좋은 하천 주변에서 벼를 많이 재배하게 되었다. 같은 면적의 밭에서 수수나 조, 감자나 고구마 등을 생산하는 것보다 그 밭을 논으로 만들어 벼를 심는 것이 소득이 높았다. 그래서 농민들은 밭을 논으로 개간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다. 논에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하여 '보'와 같은 작은 댐을 만들고 가능하면 많은 곳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물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하천 주변의 늪지대도 개간하여 논으로 만들어 벼의 생산을 높였다.
벼를 주로 많이 재배함에 따라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는 이 벼재배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마을 사람들의 주요 활동은 이 벼재배와 관련되고 생활리듬은 벼의 성정과정과 그 과정에서 인간이 해야 할 일들에 맞추어 조절되었다. 봄이 오면 볍씨를 틔어서 못자리를 만들고 그 모가 자라면 모를 쪄서 논에 모내기를 해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안되기 때문에 이런 활동은 달력에 맞추어 진행되었다. 모가 어느 정도 자라면 시비도 하고 논매기도 해야 한다. 가을이 되어 벼가 익으면 벼베기를 하여 타작도 한다. 인간의 주요 일은 바로 벼를 기르고 돌보는 일이며 그 틈틈이 휴식과 놀이가 이루어졌다. 축제라는 것도 이 벼재?瓦? 관계된다.
먹는 음식은 바로 벼를 방아찧어 낸 쌀로 밥을 해 먹고, 또 떡이나 과자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술도 쌀로 빚어 마셨는데 그것이 바로 막걸리다. 평상시는 주로 밥을 먹고 축제때에는 그 쌀로 떡이나 과자를 만들어 먹고, 막걸리를 만들어 마셨던 것이다.
벼를 추수하고 남은 볏짚은 초가지붕을 이기도 하고 가마니나 새끼를 꼬았으며 짚신을 만들어 신기도 하였다. 그 뿐만이랴. 볏짚을 땔감으로 이용하였으며 타고 남은 재는 거름으로 사용하였다. 소외양간이나 돼지우리에 그 볏짚을 넣어 소나 돼지가 깨끗하게 잘 수 있도록 하고 그것이 가축의 똥이나 오줌으로 더러워지면 치워내어 퇴비로 이용하였다. 뿐만 아니다. 요즘은 휴지를 사용하지만 그런 휴지가 없는 옛날에는 변소간 앞에 짚단을 한단씩 두어 조금씩 뽑아 내어 그것을 휴지 대용으로 사용하였다.
설날에 그네를 만들때도 이 볏짚을 이용하였으며 줄다리기를 할 때의 그 줄도 볏짚으로 만들었다. 보름날 달집을 지을 때도 큰 나무를 몇개 엇갈리게 세우고 그 사이사이를 볏짚으로 채워 불을 질러 하늘 높이 치솟게 하였다. 짚을 태운 물은 양잿물이라고 하여 빨래를 삶는데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계절풍 기후지역인 우리나라에서는 참으로 다양한 식물이 자란다. 논으로 개간하기 힘든 땅은 주로 밭으로 이용하였다. 그 밭에는 온갖 작물을 재배하였다. 고구마나 감자를 심기도 하고 조나 수수, 참깨나 들깨를 심기도 하고 상치나 배추, 무우, 시금치 등을 심는다. 콩은 어디서나 잘 자라 집앞의 밭이나 논두렁에도 집마당 한 귀퉁이에도 콩을 심었다.
콩은 우리나라의 농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작은 터를 이용하기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부족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그만이었다. 콩으로 만든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간장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밥상에 간장이 오르지 않으면 어른이 며느리를 꾸짖곤 하였다. 악기를 연주할 때 '도'음을 잘 맞춘 다음 다른 음을 조율하는데 우리나라 음식에서 간장은 그 '도'에 해당한다. '도'음을 잘 맞추지 않고 악기를 연주한다면 형편없는 음악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간장맛을 잘못 맞추고 음식을 조리한다면 그 집의 음식맛은 기대할 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 사람은 그 집의 장맛을 보면 그 집 며느리의 음식솜씨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고 하였다. 모든 음식의 간은 바로 콩으로 빚은 간장으로 맞추었고 보면 콩은 얼마나 중요한 작물인가. 뿐만 아니라 콩으로 만든 것에는 된장도 있고, 두부도 있다. 밥에 콩을 넣어 먹기도 하고, 콩나물을 길러 뭍혀먹기도 하고, 국을 끓이면 또 얼마나 시원한가? 콩잎도 버리지 않고 절여 반찬으로 해 먹었으니 우리 조상들은 콩에서 버리는 것이 거의 없었다.
나는 어릴 때 참으로 콩을 좋아했다. 저녘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삶은 콩을 까먹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특히 콩을 튀겨 만든 콩강정을 아주 좋아했는데, 지금도 어머님이 콩을 볶을 때 나는 고소한 냄새를 잊을 수 없다.
먹을 것이 귀한 시절에 먹는 것이라면 안 좋아 한 것이 뭐 있었겠냐마는 빵도 무척 좋아해서 '빵명'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그런데 요즘은 빵을 잘 안 먹는다. 위염으로 고생한 적이 몇 번 있는데,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약사나 의사선생님까지도 밀가루 음식을 삼가하는 것이 좋다고 하여 잘 먹지 않는다. '이젠 괜찮겠지' 하고 몇 번 시도해 봤으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요즈음은 빵 대신 떡을 즐긴다.
최근에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는 소위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으로 통하는 친구가 중국의 한의사들은 속이 좋지 않은 환자에게 약을 처방할 때 우리와는 반대로 '다른 음식을 삼가하고 밀가루 음식만을 먹어라'고 조언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다. 조상대대로 벼농사를 짓고 쌀밥을 먹으면서 살아온 민족은 밥을 먹어야 속이 편안하고, 밀농사를 지으면서 밀가루 음식을 먹어온 민족은 오랫동안 길들여져 온 밀가루 음식을 먹어야 속이 편안하다니 말이다. 이게 바로 신토불이(身土不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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