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우리말로 이름을 짓는 것이 유행일 때 토큰이라는 언어가 탄생을 했습니다.
엄격히 따지면 탄생을 한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을 가져온 것이지만.....
종이로 된 버스표를 동전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적당한 우리말을 찾지못해 논란이 되다가 신문과 티브에서 사용하니 고착된 말이었지만 제 운명을 다하고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일본말의 잔재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말을 비하 하고 천시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는 말들은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어본다면 영어의 '누드' 하면 고상하게 들리고
'나체' 하면 점잖은 말, 그런데 '알몸' 그러면 그 말을 쓰는 사람 품위가 훼손이나 되는 것처럼 쓰기를 꺼립니다.
시의 내용이야 외면의 모습과 상반된 내면의 인간모순적인 모습을 드러냈다치고
속에야 어떤 것을 입든 겉만 보는 속물들이 속까지 들여다 볼 줄 알기나 할까요.
그런 의미에서 팬티는 외출하는데 입는 화려한 속옷(난벌)이고
빤쓰는 집에서나 입는 허접한 속옷(든벌)이라는 개념이 잘 맞아 떨어져 보입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 쓰는 말과 시어가 반드시 같아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차이를 알고 쓰느냐 아니냐에 따라 시의 생명력은 달라진다고 봅니다.
어쨌거나 시인은 우리말을 살려서 쓰는 귀한 책무도 가진 전문가이니까 말입니다.
첫댓글 언젠가 이 비슷한 시를 본 적이 있었는데 시인이름이 생각나질 않네요. 그 때 그 시인은 남자분이었거든요. 나는 절대로 쓸 수 없는 과감한 시어들을 만나면 대리만족을 느껴야 할텐데...글쎄요...몸에 뭐가 기어다니는 것 같아서...ㅎㅎㅎ
아무려면 어떤가요? 난벌에 속아사는 우리들 아닙니까요. 한 순간 끄덕일 수 있는 시를 만나다는 게 행운이라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