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한의사
한번은 피트니스 센터에서 다리 근력을 강화하는 기구로 운동을 하다가 다쳤다. 하롯밤 자고 일어나면 나아지겠거니 했는데 오히려 아예 걷기 조차 힘들었다. 하는 수 없이 출근하는 남편 차를 타고 송 원장에게 갔다 아킬레스건이 손상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엑스레이를 찍어봐야겠다고 했다. 그는 남편에게 결과 나오면 입원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을 전하면서 혹시 입원하게 되면 필요한 절차는 자신이 해줄 테니까 출근해야 하면 가셔도 된다고 했다. 남편은 그날 꼭 참석해야 하는 미팅 스케줄이 있어서 좀 있다가 회사로 갔다. 그날 송 원장의 도움으로 입원 절차를 모두 잘 마치고 병실에 편안히 누울 수 있었다. 너무 고마웠다.
제법 먼 거리로 이사를 하게 되어 그동안 마음 편하게 다녔던 그 병원에 가지 않게 되었다. 새로 이사온 동네의 한의원을 몇 군데 가보니 송원장이 얼마나 남다른 사람인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환자에게 그 사람 처럼 환부의 치료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헤아려주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증상을 애기하려면 한두 마디 들고 말을 자른다. 다음번에 가도 침을 맞고 좀 어땠는지 크게 관심이 없다. 데면데면하고 기계적으로 침을 놓고, 낮고 안 낫고는 내 소관이 아니라는 듯 사무적으로 환자를 대하는 의사들을 만나게 되니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면서 한의원을 잘 안 가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어쩌면 대다수가 몇십 년씩 직업인으로 매일 환자들을 대하고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마도 송원장이 특별한 한의사일 것이다.
이사 간 동네에서 딱 2년을 살다가 다시 원래 살던 곳으로온 지 얼마 안 되어 공진단을 사느라 송 원장을 만나게 되었다. 그를 본 순간 나는 깜작 놀랐다. 흰칠한 키에 적당한 체격이었던 그가 뼈만 남아 앙상한 나목 같았다. 어찌된 일이냐고 했더니, 동맥경화증 가족력이 있어 살이 좀 찌길래 다이어트를 했는데 아예 식욕을 잃었다고 했다. 다이어트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피골이 상접한 몸이 될 수 있나 믿어지지 않았다.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사람이 기운이 하루하루 없어져 가고, 무엇보다도 이런 몰골로 환자를 치료하는 건 아닌 것 같아 3개월 휴직계를 내고 내일부터 안 나올 거라 했다. 그는 마침 잘 왔다고, 인사를 하고 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푹 쉬면서 치료 잘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병원에 나오세요." 하고 돌아서는데, 그가 짠하고 안돼 보여서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며칠간 편치가 않았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잊고 지내다 병원에 갈 일도 생겼고 그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예약을 위해 전화했더니, "송 원장님 퇴사하셨어요." 하는 짤막한 대답이 왔다 병이 나았으면 한의사를 그만둘 사람은 아닌데 싶어서 어딘가에 개원을 했나 하고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해 봤다. 그의 이름을 본 순간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아니, 놀란 정도가 아니었다. 이럴 수가! 부고 소식이 올라와 있는 것이었다. 휴직계를 내고 한 달쯤 뒤,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두 딸과 젊은 아내를 남겨두고 그는 영원히 눈을 감았다. 보도 환자의 몸을 치료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마음까지 공감하고 살피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서 그렇게 빨리 세상을 떠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남을 치료하는 데 열중하다 보면 바빠서 치료시기를 놓치기도 하고, 자기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일하다가 큰일을 당하는 의사들의 얘기를 들을 때가 있다. 송 원장 또한 환자를 치료하는 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느라 안타깝게도 자기 몸의 병을 치료하지 못한 채, 한창 일할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는 나에게도 그를 찾아온 모든 환자들에게도 특별한 한의사였다. 그의 죽음이 슬펐다.
이옥희 nan-goosle@hanmail.net 매일 쓰지 않으면 작가가 아니라는 전업 작가들의 조언을 마음에 새기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