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 우리말 얼개 그리고 한자 3(살)
<진정한 발견의 항해는 새로운 땅을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데 있다>고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 ( Marcel Proust ; 1871-1922)는 말한다. 주1) 똑같은 사물도 누가 어떻게 무엇을 언제 어디서 왜 보는가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음은 자명하다. 한자(漢字)도 예외일 수는 없다. 아직도 많은 의문들이 남아 있는 글자들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수의 한자어에 대하여 새로운 눈으로 보고자 한다. 먼저 <설문해자>의 풀이부터 살펴본다.
사 ?數也. 象四分之形. 凡四之屬皆?四. 4 古文四如此. ? ?文四. '四'는 음수(?數)이다. 넷으로 나뉜 모양을 상형하였다. 四부에 속하는 한자는 모두 四의 의미를 따른다. '4'는 四의 고문으로 이와 같다. '?'는 四의 주문(?文)이다. - 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 염정삼, 서울대학교출판부, p.692
오 五行也. ?二. ??在天地?交午也. 凡五之屬皆?五. X 古文五如此. '五'는 오행(五行)이다. '二(이)'로 구성되었다. 음양(??)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서로 교차하는 것이다. 五부에 속하는 한자는 모두 五의 의미를 따른다. 'X'는 五의 고문(古文)으로 이와 같다. - 앞 책, p.696-697
육 易之數. ?變於六, 正於八. ?入八. 凡六之屬皆?六. '六'은 역(易)의 수(數)다. 음(?)은 '六'에서 변하고 '八(팔)'에서 올바르게 된다. '入(입)'과 '八(팔)'로 구성되었다. 六부에 속하는 한자는 모두 六의 의미를 따른다. - 앞 책, p.697
칠 ?之正也. ?一. 微?從中?出也. 凡七之屬皆?七. '七'은 양(?)의 바른 위치[正(정)]다. '一(일)'로 구성되었다. 미미한 음(?)이 가운데에서 삐쳐 나오는 것이다. 七부에 속하는 한자는 모두 七의 의미를 따른다. - 앞 책, P.698-699
팔 別也. 象分別相背之形. 凡八之屬皆?八. '八'은 나눈다는 뜻이다. 나뉘어 서로 등진 모양을 상형하였다. 八부에 속하는 한자는 모두 八의 의미를 따른다. - 앞 책, p.44
'九'는 양(?)의 변화[變(변)]다. 끝까지 구부러지는 모양을 상형하였다. 九부에 속하는 한자는 모두 九의 의미를 따른다. - 앞 책, p.699
십 數之具也. 一爲東西, ?爲南北, 則四方中央備矣. 凡十之屬皆?十. '十'은 수(數)가 완비된 것이다. '一'은 동서(東西)이고 '?'은 남북(南北)이니 사방과 중앙이 갖추어져 있다. 十부에 속하는 한자는 모두 十의 의미를 따른다. - 앞 책, p.88
글자의 모양을 설명하거나 역(易)의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일관된 논리가 없이 중구난방이다. 너무 막연하다. 육서(六書)에 의한 한문 제자원리(製字原理) 상 어쩔 수 없는 설명일 수도 있다. 수 자체가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에 나타난 역수(易數)로서 역(易)의 시작을 의미한다지만, 역을 모르는 사람은 너무나 막연하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8과 나눈다는 의미와는 어떤 연관이 있단 말인가? 구부러지는 모양과 9의 관계는? 넷으로 나뉜 모양을 상형했다는 글자는 어떻게 꼭 넷으로만 나뉘어 진 글자라는지 이해가 쉽지 않다. 또한 고문자의 모양은 설명과는 더욱 동떨어져 보인다. 수의 한자어 四 · 六 · 八의 자형을 보면 '八'의 모양이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다. '八'은 나뉘어 서로 등진 모양을 상형한 글자라 한다. 나눈다는 의미로 풀이한다. 똑같은 八자가 들어간 지(只)자의 설문해자 풀이를 보면, '只는 말이 끝났음을 나타내는 어사[?]다. '口(구)'로 구성되었다. 기운이 아래로 끌어 내려지는 모양을 상형하였다.'주2)고 설명하고 있다. 말(口)의 기운이 아래로 끌어 내려지므로 말이 끝났음을 나타낸다는 의미다. 일견 그럴듯하다. 그러나 나눈다는 八의 의미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전혀 다른 글자로 만들어 졌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 八의 모양을 다른 각도로 보고 그 의미를 재해석해 보고자 한다. '八'의 모양은 '두 발로 서있는 모습'의 두 발(다리)만을 상형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 의미로 只를 풀어 보면, '말(口)이 서다(八)'로 말이 끝났음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허신의 설명보다 더욱 분명하게 의미가 전달되지 않은가? <'大'는 '大'의 주문(?文)이다. 고문(古文) 자형을 고친 것이다. 또한 사람의 모양을 상형하였다.>주4) 그리고 또 다른 설명으로, <하늘이 위대하고 땅이 위대하고 사람도 위대하다. 사람의 모양을 상형하였다. '大(대)'의 고문이다.>주5) 등으로 허신은 설명한다. 人보다는 大가 보다 사람 형태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어쨌든 大도 사람을 상형한 글자이고 보면, 八의 모양은 서 있는 두 다리를 상형했음이 보다 분명해 보인다. 사람을 뜻하는 한자어는 人과 ?(인)이다. ?은 人의 고문 기자(奇字)라 한다.주6) 大도 사람을 상형하였으나 '크다'는 의미로 쓰이면서 사람의 뜻은 희박해진 듯하다. 어쨌든 사람을 뜻하는 글자가 여럿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人'은 팔과 다리의 모양을 상형하였다.주7)고 한다. 그렇다면 八도 서있는 두 발을 상형하였으므로 사람을 뜻하는 글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발로 서 있는(서서 다니는) 것은 사람밖에 없지 않은가? 八이 사람을 뜻하는 글자로 보고 四, 六, 八을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보자. 먼저 四의 고문자형은 '四'이다. 一(하늘)이 八(사람)을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하늘(一) + 사람(八) = 하늘 사람'의 형태를 나타낸다. 우리말 넉(4)의 구조와 똑같다. '六'은 六의 고문자형이다. 설문은 八 위의 자형을 入자로 보고 있으나 人자로 못 볼 이유도 없다. 人으로 볼 수 있다면, 人(사람)이 八(사람)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거나 아니면 八(사람)이 人(사람)을 업고 있는 형태로 볼 수도 있다. '사람 + 사람 = 여러 사람 = 여섯'의 우리말 얼개와 똑같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大와 六의 고문자형이 유사할 뿐만 아니라 똑같이 쓰인 것도 있다.주8) 이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大가 사람이라면 人과 구별되는 '큰(大) 사람'이란 뜻이 아닐까? 그래서 점차 人과는 별개로 크다는 뜻으로만 쓰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큰사람과 六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큰사람과 많은(여럿) 사람의 관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람(三)과 구별하여 많은 사람(六)을 큰사람(大)으로 대체하여 썼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리고 또 하나 四와 六의 고문자형은 위에 꼭지가 있고 없는 차이만 빼면 서로 똑같은 모습으로 상형되었다. 위의 꼭지를 사람의 머리로 간주할 수 있다면 머리가 있고 없는 차이이다. 머리는 얼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하여 머리가 없는 四는 얼이 없는 즉 얼이 하늘로 올라간 의미가 아닐까? 하늘로 올라간 얼이 넋이지 않은가? '八'의 고문자형은 사실 두 다리로 서 있는 모습보다는 두 발과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에 더 가깝다. 실제로도 四와 六의 八자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두 팔을 벌려 서로를 나눈다는 의미가, 나뉘어 서로 등진 모습의 의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서로 등진 모습은 나뉘어 진 상태에 가깝고, 두 팔을 벌려 나누는 모습은 나누는 동작의 형태에 보다 가깝다. 그럼 숫자 8과는 어떻게 유추될까? 어린 꼬마들이 '하늘만큼 땅만큼 많~이!'를 표현할 때, 두 팔을 맘껏 벌리면서 말한다. 두 발과 두 팔을 맘껏 벌려 온 누리에 가득 찬 상태를 표현한 것이라면, 우리말의 얼개와 일치한다. '온누리(땅/ 두 발)에 가득 찬 상태(많은 사람/ 두 팔)'에서 여덟의 우리말 의미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서로 등진 모습에서 수 8의 의미를 어떻게 찾을 수 있단 말인가? 五는 五의 고문자형이다. 허신은 음양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서로 교차하는 오행으로 五를 설명한다. 땅(二)에서 사람들(三)이 서로 오가는 것이다고 해도 설문의 설명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섯(땅사람)의 우리말 얼개로 보면 오히려 오행의 설명보다는 그 수의 의미가 보다 분명해 진다. 七의 고문자형은 '七'이다. 一로 구성되며 미미한 음(?)이 가운데에서 삐쳐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허신은 설명한다. 가운데 볼록한 부분이 미미한 음기(陰氣)가 삐쳐 나오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보다 구체적으로 사람(엄마)이 아이를 밴(임신) 모습을 상형한 것이다고 보지 못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엄마(사람)가 아이(사람)을 밴 상태는 사람이 갑절(곱)임을 나타낸 것으로 '일(一/하늘) + 곱(여러 사람) = 일곱'의 우리말 얼개와 일치한다. 우리말 '일다'의 <새로 생기다>는 뜻은 <(아이를) 임신했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하지 않은가? 九의 고문자형은 '九'이다. 구부러진 모양을 상형하였다고 하지만 자형은 사람이 몸을 구부려 양 팔로 아우르는 또는 감싸 안는 모습으로 보다 구체적이다. 이 또한 여러 사람을 한데 아우르는 우리말 아홉의 얼개와도 일치한다. '十'은 十의 고문자형이다. 열매이거나 씨앗을 상형했다고 보여 지며, '十'의 고문자형은 열매가 맺혀 있음을 상형했으리라 생각된다. '一'은 동서(東西)이고 '?'은 남북(南北)이니 사방과 중앙이 갖추어져 있다는 十의 자형은 후대의 모양임을 알 수 있다. 고문자형은 설문의 해석에 의한 완성의 의미보다 훨씬 구체적인 열매이거나 씨앗 등으로 우리말 '열'에 더욱 부합된다.
주1) 자연, 예술, 과학의 수학적 원형, 마이클 슈나이더 지음 · 이충호 옮김, 경문사, p.서론 xxvii에서 재인용 주2) 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 염정삼, 서울대학교출판부, p.83 주3) 앞 책, p.541 주4) 앞 책, p.538 주5) 앞 책, p.523 주6) 앞 책, p.412 주7) 앞 책, p.379 주8) 書道 六體大字典 * 한자의 고문자는 ‘설문해자주’와 ‘書道 六體大字典’(문학박사 藤原楚水 編, 理想社)에서 발췌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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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무울마당 원문보기 글쓴이: 무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