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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성적도[孔子聖跡圖].
공자의 일생을 그린 그림으로 대략 명나라 때 출현하였으며, 채색본, 목판본, 석각본 등 다양하게 존재함.
공자 성적도 (靑島 國學公園) http://cafe.naver.com/acebike/2956
001 先聖小像[선성소상]. 공자 안회와 진 나라를 돌아 봄.
002 尼山致禱[니산치도]. 모 안정재가 니구산에 기도를 드리고 공자를 낳다.
003 麒麟玉書[기린옥서]. 기린이 옥서를 전하다.
004 二龍五老[이룡오로]. 기원 전 551년 팔월 스무이렛날. 공자가 태어나던 날 용 두 마리가 지켜 주었으며 다섯 신선이 내려왔음.
005 鈞天降聖[균천강성]. 하늘이 공자의 탄생을 축복하여 노래를 보내다.
006 俎豆禮容[조두예용]. 5,6세에 제사 지내는 예의를 연습하다.
007 入平仲學[입평중학]. 공자 7세에 안평[晏平] 중반 학교에서 공부하다
008 織司委吏[직사위리]. 공자 20살 때 계손씨의 위리[委吏] 벼슬을 하였는데 무게와 기록이 정확하였다.
009 命名榮贶[명명영황]. 기원전 532년 아들이 태어났을 때 노 소공이 잉어를 하사하여 이름을 리[鯉], 자를 백어[伯魚]라 지음.
010 織司乘田[직사승전]. 기원 전 531년 21세 때 계씨의 승전리라는 벼슬을 맡아 소와 양이 살찌고 수도 늘었다.
011 學琴師襄[학금사양]. 사양에게 거문고를 배움.
012 太廟問禮[태묘문예]. 노태묘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도와 주면서 매사 질문을 하였는데 공자는 “이 것이 바로 예의를 아는 것이다”라고 함.
013 大夫師事[대부사사]. “공자는 성인후세이며, 훌륭한 예의를 갖추었으니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며 몽희자와 남궁경숙이 스승으로 모심.
014 問禮老聃[문예노담]. 노자가 주나라의 예의를 잘 알기 때문에... 남궁경숙과 가서 노자에게 예의에 대하여 물었다.
015 訪樂萇弘[방락장홍]. 장홍이 공자의 품행을 찬양하자 공자는 “나는 단지 예의와 음악을 즐겼을 뿐이다”라고 함.
016 在川觀水[재천관수]. 공자가 강물을 보고 있는데, 자공이 이해하지 못하였다. 공자는 “강물이 쉬임없이 흐름이 마치 도의 유전과 같아서 군자는 이렇게 물을 보면 꼭 한다”라 하였다.
017 觀器論道[관기논도]. 공자는 “만즉복”이라하였다. 즉, 거만하고 자만하면 필경은 실패의 복선을 묻어두는 것이다.
018 獵轎從魯[엽교종노]. 공자가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물품은 모두 먼저 문서로 규정한 것이다. 종래로 강탈해 온 포획물로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019 退休詩書[퇴휴시서]. 계씨가 권력을 독점하여 공자는 벼슬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 시서연구에 전념하며 예의와 음악을 정하여 그에 따라 공부하는 제자들이 더욱 더 많아졌다.
020 韋編三絶[위편삼절]. 공자는 역경을 즐겨 읽었다. 연속이나 죽간을 동여매는 가죽띠가 여러 번 끊어졌다. 공자 이르기를 내가 여러 해 역[易]을 연구했는데... 역경을 많이 읽으면 큰 과실을 지지 않는다. 라 함.
021 晝息鼓琴[주식고금]. 공자가 낮에 거문고를 탔는데 그 소리가 여느 때와 달라 민자건과 증자가 물으니 “너희들이 이 소리의 다른 점을 들어 냈으니 음악을 연구해도 되겠다”라 하였다.
022 論穆公覇[논목공패]. 경공이 “진목공은 어찌하여 패주로 될 수 있는가?”고 묻자 공자 답하기를 “목공은 원대한 포부에 행위가 단정하고 인재를 중시하니 당연 패주가 될 수 있다”고 이름.
023 觀鄕人射[관향인사]. 공자는 관향인사라 하였다. 감탄하여 말하기를... “지모가 바르지 않으면 목표물을 명중하지 못하고 매 화살이 모두 맞은 사람은 필경 덕행이 좋은 사람이다”라 하였다.
024 拜胙遇途[배조우도]. 공자는 양대를 만나려 하지 않았는데, 길에서 우연히 만나니 그가 벼슬을 하라고 권고하였다.
025 泰山問政[태산문정]. 태산을 지나는데 한 부인이 이르기를 남편과 아들이 범에게 잡아 먹히였다기에 왜 이사를 가지 않느냐? 고 물으니 “이 곳은 과중하고 잡다한 세금이 없다”고 하는 말을 듣고 과정이 범보다 무섭다고 하였다.
026 景公尊讓[경공존양]. 공자가 경공을 만났을 때 예제대로 경공이 먼저 가시라고 이르다.
027 晏婴沮封 [안영저봉].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물어오니 “재력을 아껴야한다”고 하였다. 경공은 땅을 상으로 주자고 하였는데 안영이 반대하였다.
028 知魯廟災[지노묘재]. 공자는 진나라에서 노 나라의 환공을 알았다. 리[釐]의 묘가 재화를 입었을 때 “그들의 공득이 부족하여 유지하기 힘들다”고 하였다.
029 不對田賦[불대전부]. 계손이 전부에 대하여 물었을 때. 공자는 답하지 않았다. 군자는 응당 예의의 기준에 따라 밭세를 징수해야 된다고 하였다.
030 受饩分惠[수희분혜] [餼, 饩 - xì, 음식물 보낼 희]. 계환자가 보내준 식량을 빈곤한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자공이 이해하지 못함. 공자는 “계씨의 예의와 혜택이 저 한 사람에게 미치는 것 보다 몇 백 사람에게 미치는 것이 낫다.”고 이름.
031 射矍相圃[사확상포]. 사확포에서 활을 쏠 때 자로가 주위사람들에게 이르기를... 효와 예에 준하여 맞추지 못한 장수는 들어와 설 수 없다 며 골라내니 절반이 돌아갔다.
032 舞雩從游[무우종유]. 무우대 아래서 번지[樊遲]에게 덕을 숭상하고, 간악함을 닦는 도리를 전하다.
033 饋食欣受[궤식흔수]. 다른 사람이 보낸 도기는 제사품 마냥 보인다고 하였다. 그는 도자기의 우열을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034 觀象知雨[관상지우]. 공자가 하늘을 보니 달이 가려 나갈 때 우산을 가지고 나가야 함을 알았다.
035 步游洙泗[보유수사]. 공자가 자주 사수 물가를 산보할 때 안자는 한 발자국 뒤에 바짝 따라 간다.
036 毖儆孺悲[비경유비]. 유비가 공자에게 회견을 요청하였을 때, 병을 핑계 삼아 미루고, 비파를 선물로 보내 깨닫게 하였다.
037 農山言志[농산언지]. 공자가 농산을 유람하며 제자를 평가 함. 자로는 용감하고 자공은 웅변에 능하며, 안연은 유가문화를 추앙하니 공자가 특별히 칭찬하였다.
038 四子侍坐 [사자시자]. 공자가 제자들에게 무엇을 하고픈가 말하라고 할 때 증석[曾晳]이 기수에서 목욕을 하고 봄 바람을 맞고 싶다고 할 때 찬동하다.
039 過庭詩禮 [과정시예]. 공자가 아들[鯉]에게 가르친다. “시를 배우지 않으면 교제하지 못하고, 예를 배우지 않으면 입신하지 못한다.” 고...
040 命賜存魯[명사존노]. 자공[子貢]이 열국을 돌며 유세하기를 齊나라는 魯나라를 공격하지 말라 이르며 공자의 존노난제[存魯亂齊] 꿈을 실현하였다.
041 化行中都[화행중도]. 공자가 중도를 재상으로 임명하자 여러나라들이 따라하다.
042 敬入公門[경입공문]. 공자가 공문을 들어갈 때 공경하고 조심하다.
043 羵羊辯怪 [분양변괴] [羵 fen 땅 속 괴물 분]. 노 나라에서 우물을 파는데 괴물이 나왔다. 이에 공자는 “세상만물에는 요괴가 있는데 땅속에서 나왔으니 ‘분양[羵羊]’이라 하자”고 말했다.
044 誅少正卯[주소정묘]. 공자 53세. 대사구로 있을 때 난정대부[亂政大夫] 정묘를 주살하였다.
045 夾谷會齊[협곡회제]. 기원전 500년. 노와 제가 협곡에서 만났을 때 노 나라를 도와 외교상 승리를 얻다.
046 歸田謝過[귀전사과]. 제 나라가 침범한 노나라 땅을 돌려 받다.
047 禮墮三都[예타삼도] [堕, 墮. 떨어질 타, duò]. 공자가 노 나라 정공에게 일러 편제에 맞지 않는 비[費], 후[郈], 성[郕] 지방의 성벽을 헐어내다.
048 赦父子訟[사부자송]. 공자가 사구라는 벼슬로 재판을 할 때 부자가 소송을 걸어왔는데 아비가 취소하였다. 이에 사면을 해 주며 그 것이 효에 맞다 고 하였다.
049 侍席魯君[시석노군]. 노 나라 애공[哀公]이 나라 다스리는 법을 묻자 노역과 세금을 줄이고, 죄를 멀리하고 오래 살게 하는 것이라 이르다.
050 儒服儒行[유복유행]. 노 나라 애공이 유복을 공자에게 유복에 대하여 묻자 “군자는 자립[自立], 자수[自守], 근정[近情], 강의[剛毅]... 등 유가의 조행을 준수함이지 옷을 입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함.
051 貴黍賤桃[기서천도]. 공자는 밥을 먹고 복숭아를 먹었다. 밥은 제사상에 올리지만 복숭아는 그렇지 못하다.
052 子貢辭行[자공사행]. 자공[子貢]이 신양에 가서 벼슬을 할 때 공자 이르기를 근면하고, 공평하게 일을 보며 청렴하게 일하라 이르다.
053 子羔仁恕[자고인서]. 자고의 집권은 인자하다. 내란 시기에 처벌 받은 사람을 살려주니 공자가 듣고 칭찬하였다.
054 因膰去魯[인번거노]. 제국의 노공은 많은 제물을 나누어주지 않아 공자는 벼슬을 그만두고 천하를 주유할 수 밖에 없었다.
055 放鯫知德[방추지덕]. 위국에 가니 어부가 뱅어를 잡아 작은 것을 놓아 주었다. 이로 복자천[宓子賤]의 도덕교화가 범상치 않음을 알 수가 있다.
056 儀封仰聖[의봉앙성]. 위나라 관원이 공자를 만나 “공자는 하늘에서 백성을 교화 시키러 왔다”고 말했다.
057 靈公郊迎[영공교영]. 위나라에 갔을 때 영공이 영접을 하였으며 벼슬 할 기회가 있었다.
058 適韋擊磐[적위격반]. 공자가 위 나라로 가는 중에 제자들과 바위를 두드리다. 孔子說 : “好堅決呀! 沒法說服他了.”
059 沐浴請討[목욕청토]. 진환[陳桓]이 제간공을 죽임. 공자가 목욕 뒤에 애공을 만나 출병하여 진환을 치자고 하였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060 丑次同車[축차동차]. 위 영공과 부인이 함께 여행하는 뒷차를 타라 할 때에... 미덕보다 미인을 좋아한다고 하며 이는 위국과 멀어지는 일이라 말했다.
061 靈公問陣[영공문진]. 위의 영공이 군사에 대하여 물었으나, 공부하지 않아 대답하지 않았는데... 다음날 담화 때 영공이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고 있어, 공자는 실망하고 위를 떠났다.
062 匡人解圍[광인해위]. 공자가 위국을 떠나 진국에 닿았을 때... 광인지역을 통과하는데 양화[陽貨]인지 알고 5일이나 잡아 두었다가 오해가 풀려 놓아주었다.
063 西河返駕[서하반가]. 공자가 진국으로 가려고 황하에 이르렀을 때 조간자[趙簡子]가 정권을 잡고 어진 대부들을 죽였다는 소리를 듣고 돌아왔다.
064 脫驂館人[탈참관인]. 위나라로 가는 길에 관원이 죽자 곡을 하며 몹시 슬퍼하고 말 한필을 내주며 제사에 쓰게 하였다.
065 宋人伐木[송인벌목]. 조 나라로 가는 길에 송 나라에서 사마 환퇴[桓魋]가 큰 나무를 베어 공자를 해치려고 하자 공자가 “그가 나를 어찌하겠는가”고 말했다.
066 過蒲贊政[과포찬정]. 공자가 포 지방에 닿아 재상으로 있는 자로가 물과 다리를 잘 다스리는 것을 보고 크게 칭찬하였다.
067 忠信濟水[충신제수]. 물이 30길이나 되는 험한 강에 자라와 게도 살지 않는 곳을 한 사람이 헤엄쳐 건넘에 공자가 물으니 “마음 속에 믿음이 있으면 능히 건널 수 있다” 고 하며, “당신들도 강을 믿고 건너기를 원하면 능히 건널 수 있다”고 함.
068 楛矢貫隼[고시관준]. 새 한 마리가 거친 화살대와 돌촉으로 된 화살을 맞고 죽었다. 공자 왈 : “이 화살은 숙신씨[肅慎氏] 것이다” 고 말할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069 微服過宋[미복과송]. 공자가 정 나라로 가는 길에 제자들과 헤어지고 초라한 몰골이 되었을 때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이마가 요임금 같고... 목이 어쩌고 어깨는 저쩌고 성현 같다고 하니 공자 이르기를 상가집의 개와 같다고 답하다.
070 五乘從游[오승종유]. 공숙씨[公叔氏]가 반란을 하여 공자를 못 지나가게 하자 제자 공양유[公良孺]가 차 5대로 호위하여 포를 지나 위 나라로 호송하였다.
071 子路問津[자로문진]. 공자가 채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구에서 밭을 가는 걸익[桀溺]에게 나루터를 물으니 “우리를 따라 난세를 피하는것보다 못하다”고 이르고 계속 밭을 갈았다.
072 陵陽罷役[능양파역]. 공자가 진후[陣侯]에게 이르기를 “문왕은 건축을 하고 백성들은 아들같이 일을 해 주는데 어찌 사람을 죽이는가!”고 하자 그 일을 멈추었다.
073 紫文金簡[자문금간]. 붉은 참새가 빨간 편지를 물고와 양왕전에 내려 놓자 공자가 “이 것은 우증[禹曾]이 차고 있던 보물인데 하늘이 너에게 준 선물이다” 고 하였다.
074 在陳絶糧[재진절량]. 진, 채나라 대신들이 공자일행을 포위하였다. 양식은 다 떨어지고 제자들도 병이 났지만, 공자는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 뒤에 초 나라에서 파병하고 영접하였다.
075 受魚致祭[수어치제]. 공자가 어부에게 물고기를 받아 제사를 지내는데 썼다.
076 題季札墓[제계찰묘]. 계찰[季札]이 아들을 영[嬴]과 박[博] 사이에 묻었다. 이에 공자는 “延陵季子之墓”라 써 넣었다.
077 楚狂接輿[초광접여]. 공자는 초 나라의 광인 접여[接輿]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였으나 그리하지 못하였다.
078 子西阻封[자서조봉]. 초국의 소[昭]왕이 공자에게 서사[書社]벼슬을 주었으나 자서[子西]의 권유로 맡지 않고 위국으로 돌아감.
079 觀周明堂[관주명당]. 공자가 주[周]나라 묘의 높은 문과 담의 위용을 보고 “이 것이 곧 주조의 번창원인이다”고 하였다.
080 金人銘背[금인명배]. 공자가 후직[後稷]묘의 한 동인을 보았는데 입이 봉해지고 등에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조심하라고 경고를 줌. 그 것이 화를 부른다 이름. 또한 입이 일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081 山梁歎雉[산량탄치]. 공자가 산량을 지날 때 마침 꿩이 물을 마시고 모이를 먹는 것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산량의 꿩이 때를 만났다.” 자로[子路]가 두 손을 모아 절하자 그 옆으로 날아갔다.
082 孔子延醫[공자연의]. 공자의 병이 심하여 정도를 실행하기 어렵고 사회 정치가 암울해지고 자신의 일을 추진할 힘도 없다.
083 作猗蘭操[작의란조].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와 의란초[猗蘭草]를 저술하고 유수와 같이 흐르는 세월에 늙음을 을 한탄하다.
084 [武城絃歌[무성현가]. 자유[子游]가 무성관리를 맡았다. 공자가 무성에 닿아 거문고 타며 부르는 노래를 듣고... 군자학도와 소인이 알아듣게 지휘하는 자유의 집정법을 알고 웃으며, “닭을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랴”고 했다.
085 杏壇禮樂[행단예악]. 공자가 노국으로 돌아와 벼슬을 하지 않고 매일 가야금을 타며 제자들과 ‘書’, ‘詩’, ‘樂’, ‘易’ 등을 전수하다.
086 克復傳顔[극복전안]. 안연[安淵]이 인에 대해 묻자 “자신의 말과 행동이 모두 예에 맞는 것”이라 이르니 재차 묻기에 예에 맞지 않는 것은 보지 말며... 예에 부합하지 않는 말은 듣지 말고 말하지 말며, 그런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인[仁]이라 이르다.
087 老經傳曾[노경전증]. 공자가 “효는 처음과 끝이 없다”. “효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며 효경[孝經]을 증자에게 전수하다.
088 琴吟盟壇[금음맹단]. 공자가 노성을 나가 은행나무 아래를 지나가다 머리를 돌려 자공[子貢]에게 “여기가 예전에 장문중이 맹세한 곳이다”고 말하며 시를 읊고 거문고를 탔다. 暑往寒來春復秋 夕陽西下水東流 將軍戰馬今何在 野草閑花滿地愁.
089 讀易有感[독역유감]. 공자가 역경의 損과 益까지 보고 탄식하니 자하[子夏]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줄어들어야 할 것은 늘어나고... 늘어나야 할 것은 줄어들어 그렇다 고 하니... 자하가 공부가 어려워 학문이 늘지 않는가?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그 뜻이 아니고 학문이 높을수록 겸손하여야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진보한다 고 함.
090 望吳門馬[망오문마]. 공자가 안자[顔子]와 태산에 올랐을 때. 오국 도성 멀리 흰 명주 같이 보이는 백말을 알아 보았다. 그와 같이 공자는 신명하다.
091 萍實通謠[평실통요]. 초의 소[昭]왕이 강을 건너 빨간큰 물건을 얻어 공자에게 사람을 보내 물으니 평실[萍 實]로 먹을 수 있으며, 오로지 패업을 달성한 인재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고 하니... 자유[子游]가 어떻게 알았는가 물으매 진 나라에 갔을 때 동요를 들었는데... 크고 빨갛고 꿀 같이 달다 해 알았다 고 이름.
092 商羊知雨[상양지우]. 양들이 제 나라로 모여들어 기괴하여 공자에게 사람을 보내 물으니 장차 큰 비가 올 것이니 둑을 정비하고 치수를 잘하라 이름. 멀지 않아 큰 비가 내려 많은 나라가 수해를 격었지만 제 나라는 면했다.
093 骨辨防風[골변방풍]. 오가 월을 침공하여 큰 뼈를 얻었다. 오왕이 공자에게 사람을 보내 어떤 뼈가 가장 큰가 물으니 방풍[防風氏]것이며 차 한 대가 필요하다 이름.
094 跪受赤虹[궤수적홍]. 공자가 저작을 마치고, 목욕을 한 뒤 북두칠성에 고했다. 홀연히 무지개가 내려와 꽃 무늬가 새겨진 황옥으로 변하여 무릎을 꿇고 하늘이 내린 선물을 받았다.
095 聖門四科[성문사과]. 공자의 제자들 중에 덕성이 뛰어나기로는 안연[顔淵], 민자건[閔子騫], 염백우[冉伯牛], 염중궁[冉仲弓]이 있고, 말을 잘하기로는 자아[子我], 자공[子貢]이 있으며, 정무처리에는 염유[冉有], 계로[季路]가 있고, 고대문헌에 능하기로는 자유[子游], 자하[子夏]가 있다.
096 觀蠟論俗[관랍논속]. 자공이 연말 제를 올리는데, 공자가 이르기를... 자네는 알지! 어찌 백일의 일을 하루에 풀겠는가. 문,무왕도 알 것이다. 즉, 긴장도 있고 풀어주는 것도 있어야만이 천하를 다스리는 도리다 고 일러줌.
097 世業克昌[세업극창]. 공자가 쉬고 있는데 돌연 자사[子思]가 탄식을 하며 아비가 나무를 패는데 아들이 지질 못하면 불효다 하니 공자 웃으며 아이가 어찌 그 심정을 알리요 하며 나는 염려하지 않는다 며 가업은 끊이지 않고 번창할 것이다 함.
098 西狩獲麟[서수획린]. 노 애공 14년 서쪽에서 기린을 한 마리 잡았다. 이에 공자 춘추집필을 멈추었다. 계손씨가 기린을 잡았다. 염유가 울며 공자에게 이르기를... 이 것은 인의의 동물 기린이다. 나의 도[道]가 끝이다.
099 夢尊兩楹[몽존양영]. 공자 병중에 있을 때 자공이 문안을 가니 꿈에 두 기둥 사이에 나무가 있는 것을 보았다 더니 7일 뒤에 공자가 죽었다.
100 三壟植楷[삼용식해]. 공자가 죽은 뒤 제자들이 무덤을 지켰다. 각지에서 나무를 가져와 묘 옆에 심었으며 자공[子貢]이 왼쪽에 심은 나무는 무척 크다.
101 治任別歸[치임별귀]. 공자는 사[泗]하 변에 묻었는데 제자들이 삼년 상복을 입었으며, 자공은 6년을 입고 무덤을 지켰다. 뒤에 무덤 주변에 사는 집이 100여호나 되었다.
102 哀公立廟[애공입묘]. 서기 전 479년 애공이 묘를 짓고 제를 올렸으며, 묘 주위에 백 가구를 지었다.
103 漢高祀魯[한고사노]. 노 나라 사람들이 공자 제사를 지냈다 한 대에는 이미 200년이 되었으며 한 고조 유방이 취푸[曲阜]를 지날 때 소, 양, 돼지를 잡아 제를 올렸다.
104 眞宗祀魯[진종사노]. 송 진종도 공묘에 술을 따라 올려 배알[拜謁]하였으며, 현성 문선왕[玄聖 文宣王]이라 추봉하였다.
칭다오에서 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