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95]
-코인 채굴 본업 삼는 주민↑
-러 정치권 "광산 건설하자"
-푸틴, 가상통화 개발 주문
-BRICS 차원 논의도 진행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연설하는 모습. /사진=AP
러시아에서 한 재벌이 가상화폐 채굴을 위해 발전소를 통째로 매입해 화제다. 러시아에서 불고 있는 가상화폐 광풍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가상화폐 채굴을 본업으로 삼는 주민이 늘면서 정치권에서는 '비트코인 광산'을 건설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러시아 유력 경제지 코메르상트는 러시아 페름주의 발전소 2곳이 한 투자가에게 팔렸다고 지난 13일 보도했다. 가상화폐 채굴을 위해 발전소를 사들이는 사례까지 마침내 나타난 것이다. 코메르상트는 "알렉세이 콜레스니크로 알려진 러시아 사업가가 발전소를 매입했다"며 "발전소는 가상화폐 채굴을 위한 전기를 조달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상화폐 채굴에는 수백 대의 고성능 컴퓨터를 동원해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전기가 필요하다. 발전소 매입 가격과 구체적 종류는 알려지지 않았다.
시베리아 지역에서는 비트코인 채굴을 본업으로 삼는 주민도 늘어나고 있다. 발전소가 밀집한 시베리아는 전기료가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관영 러시아투데이(RT)에 따르면 시베리아 이르쿠츠크주의 전기요금은 kwh당 평균 1루블(약 18원)이다. 모스크바 전기료(kwh당 5루블)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디지털 골드러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며 "값싼 전기요금이 시베리아 비트코인 광산의 채산성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RT에 따르면 가상화폐 채굴을 위해 이르쿠츠크로 '귀농'하는 사람도 속출하고 있다. 2014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서방의 경제제재로 러시아 국민의 삶이 팍팍한 상황에서 가상화폐가 유망한 수익원으로 주목받는 것이다. 모스크바에 있던 아파트를 팔고 이르쿠츠크로 이주했다는 블라디미르 세르게예비치는 RT에 "비트코인 채굴은 러시아인들이 현금을 획득할 수 있는 아주 유망한 산업"이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러시아에서는 시베리아에 '비트코인 광산'을 건설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시민들에게 새로운 수익원을 제공하고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대적할 만한 정보기술(IT) 특구를 육성하자는 것이다. 최근 시베리아에 비트코인시티를 건설하자는 방안을 공론화한 러시아 하원 두마의 보리스 체르니쇼프 의원은 RT와 인터뷰하면서 "비트코인 광산은 자본을 끌어들이는 것을 넘어 러시아의 비즈니스 허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가상화폐 이더리움 창시자이자 러시아 출신인 비탈릭 부테린(오른쪽 둘째)이 푸틴 대통령과 가상화폐에 대한 논의를 하는 모습. /사진=유튜브 캡처
이런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일 정부 주도로 가상화폐를 개발하라고 주문했다. 가상화폐 열풍이 도움이 될 조짐을 보이자 '반대'에서 '적극 찬성'으로 돌아선 것이다. 가상화폐의 익명성을 이용해 서방의 대(對)러시아 제재를 피하기 위한 목적이다.
푸틴 대통령의 경제보좌관 세르게이 글라제프는 "이 도구는 민감한 활동에 적합하다"며 "우리는 서방의 제재를 고려하지 않고 전 세계의 누구나와 돈을 교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대러 제재로 서방의 금융기관을 통한 거래가 사실상 차단돼 대체 금융 통로가 절실한 상황이다. 통화의 명칭은 러시아 루블화와 암호화폐(cryptocurrency)의 앞글자를 딴 '크립토루블(cryptorouble)'이다.
국내를 넘어 국제기구 차원에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자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브릭스(BRICS)와 옛 소련권 경제연합체인 유라시아경제연합(EEU)에 회원국 공동의 가상화폐를 도입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올가 스코로보가토바 러시아 중앙은행 부총재는 지난달 28일 "우리는 개별 국가보다 블록 차원에서 가상화폐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며 "이 같은 가상화폐는 전망이 매우 밝다"고 말했다. 러시아 국부펀드인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의 키릴 드미트리예프 대표는 "BRICS 회원국인 브라질,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공동 가상화폐 발행을 논의했다"며 "공동 가상화폐가 현실화하면 미국의 달러를 대체하는 통화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의명 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