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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데레사 어록 (1)전기~(13) 마더 데레사의 소명] 마더 데레사 어록 (1) 하느님의 말씀과 완전히 하나됨
사람이 되신 예수께서 하신 일은 당신의 아버지께 대한 완전한 자아포기였습니다. 우리는 거듭거듭 "아버지"라는 낱말을 듣습니다. 설교하실 때나 가르치실 때나 백성들과 함께 하실 때나, 그분은 계속해서 "아버지"라는 낱말을 가르치셨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고 왔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 ", 내 아버지와나는 하나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한다." 당신 말씀 가운데에는 언제나 아버지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그분은 너무나도 아버지께 속하여 왔기 때문에 두 분 사이에는 간격이 없고 분열이 없습니다. 두 분 사이에는 추호의 의혹도 없었습니다. 두 분 사이에는 질문이 전혀 없었습니다. 말씀의 보편 형제회의 형제들이 가져야 할 태도란 그리스도와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 하느님의 말씀과 완전한 하나 됨,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기도 가운데에, 하느님과의 고독 가운데에 그대가 받는 기쁨인 하느님의 말씀, 그 똑같은 말씀을 그대는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마더 데레사 어록 (2) 우리의 마음이 가난해야 함
영적으로 가장 가난한 사람들 안에 있는 예수를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가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 안에 있는 하느님의 모상이 손상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예수의 얼굴을 찾는 우리의 믿음과 신심은 더욱 커질 것이고, 정성을 기울여 그 사람을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가장 가난한 사람 안에 변장하여 감추어진 낙담한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며 그 일을 형제적인 나눔의 정신안에서 충심 어린 감사와 정중한 마음가짐으로 행합니다.
마더 데레사 어록 (3) 활짝 웃으면서 드리십시오
예수님께서 당신의 의견을 묻지 않고 당신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드리십시오.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서 원하시는 것을 취하게 해드립니다. 그러니 그분께서 주시는 것이면 무엇이든 받고, 가져가시는 것이 무엇이든 활짝 웃으면서 드리십시오. 하느님의 선물을 받아들이고 깊이 감사하십시오.
그분께서 당신에게 큰 재산을 주셨다면, 그것을 이용하십시오. 그것을 남들과, 아무것도 갖지 못한 이들과 나누도록 하십시오.
항상 남들과 나누도록 하세요. 당신의 사소한 도움으로 사람들이 고통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갖지 마십시오. 그뿐입니다.
마더 데레사 어록 (4) 사랑할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나요?
나는 노인들을 위한 시설에 늙은 부모들을 맡기고 간 자녀들이 그 부모들에 대해 잊어버리고 있는 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던 것을 언제나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집에 가서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모든 사람들이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노인들 가운데에서 웃음을띠고 있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수녀를 향해 돌아서며 말했습니다. "어쩐 일입니까? 여기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는이 사람들이 어떻게 된 거죠? 어째서 그들 모두가 문 쪽만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어째서 그들은 미소를 잃어버렸습니까?" 나는 우리 집 사람들의 웃음 띤 모습을, 심지어 죽어가는 사람들까지도 미소 짓는 것을 보는 데에 하도 익숙해 있었기에 그런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수녀는 "그런 일은 거의 매일 일어나는 일이랍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아들이나 딸이 자신들을 방문해 주기를 기대하고 희망하고 있는 것랍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들은 잊혀 졌기에 상처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 보세요. 사랑할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할 것을 게을리 했기에 그 빈곤이 우리 가정안으로 바로 들어옵니다. 아마도 우리 집안을 둘러보면 우리는 누군가가 외로움을 느끼고 있거나 병이 나 있거나 걱정에싸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을 모든 사람들이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이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린이들을 맞아들여 보살피고 있습니까?
마더 데레사 어록 (5) 고해성사는 커다란 사랑의 행동
우리에게 필요한 것 한 가지 그것은 고해성사입니다.
고해 성사는 활동 안에서의 겸손일 따름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참회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그것은 사랑의 성사요, 용서의 성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해소는 우리의 어려움들에 대해서 여러 시간 동안 이야기를 늘어 놓는장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고해소는 사이가 벌어지게 하고 파괴하는 모든 것들을 나에게서 가져가시도록 예수께 허락해 드리는 장소입니다.
그리스도와 나 사이에 틈이 있을 때, 나의 사랑이 흩어져 있을 때에 무엇인가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옵니다. 죄를 고백할 때에 우리는 소박하고 어린이 같아야 합니다. "나는 어린이로서 내 아버지께 갑니다."
만일 어린이가 버릇이 잘못 길들여지지 않고 거짓말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그는 모든것을 말씀드릴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어린이와 같아야 한다는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죄를 고백하는 것은 커다란 사랑의 아름다운 행동입니다.
우리는 고해소에 죄를 지은 죄인 들로서 들어가지만 나올 때에는 죄를 용서받은 죄인들로서 나옵니다.
마더 데레사 어록 (6) 가장 좋은 양심 성찰
가장 좋은 양심성찰의 방법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대는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나는 오늘 예수님께 무엇을 했나요?
나는 오늘 예수님을 위해서 무엇을 했나요?"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서 그대의 손을 들여다 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대는 어떻게 예수를 발견할 수 있나요? 그분은 우리가 그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5,12)
만일 우리가 길을 잃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고해성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죄 많은 죄인으로 고해성사를 보러 갑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의 위대하심에 의해 죄를 용서받은 죄인으로 고해소를 나옵니다.
우리는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살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낙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 사랑의 극진하심을 깨닫기만 한다면 그대는 그분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인 것입니다.
그분은 그대를 사랑하시는 데 얼마나 그대를 극진히 사랑하시는지 당신의 손바닥에 그대의 이름을 새겨 넣으셨습니다.
그대도 잘 알다시피 이 말씀은 성서 안에 쓰여진 하느님의 말씀들입니다.
그대의 마음이 불안할 때에, 그대의 마음이 상처를 받을 때에, 그대의 마음이 비탄에 잠길 때에 이 말씀을 상기 하세요.
"나는 그분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이다. 그분은 나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나를 지명하여 부르셨다. 나는 그분의 것이다. 그분은 나를 사랑하신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리고 사랑을 증거하여 보여 주기 위해서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마더 데레사 어록 (7) 마음과 영혼의 침묵
성모님이 "그 모든 일을 당신 마음속에 새기어 곰곰히 생각한" (루가2,19) 것이 마음과 영혼의 침묵입니다.
그녀를 우리의 주님께 더욱 가까이 데려다 주었으므로 그녀는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습니다. 성 요셉과 약혼을 하고 같이 살기 전에는 잉태하 것이 드러나서 남 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으며(마태1,18-19) 괴로워하고 있을 때에 그녀가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세요.
그러니 침묵이야말로 침묵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이보다그녀가 한마디만 했더라도 성 요셉은 그렇게까지 근심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이러한 침묵은 우리의 주님이 몸소 그녀에 대한 누명을 벗겨 주시기 위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더 우리에게 설득력있게 말해 주는 사건은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과 일치하여 가까이하기 위한 길임이 명확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마더 데레사 어록 (8) 교만도 공허도 있으면 안되는 하느님 사업
하느님 사업에 있어서 교만도 있어서는 안 되고 공허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업은 하느님의 사 없이고, 가난은 하느님의 가난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일하십시오. 그러면 예수께서 그대와 함께 일하실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예수께서 그대를 통해서 기도하실 것입니다.
그대가 자기 자신에 대해 잊어버릴수록 예수께 서 그대를 생각해 주실 것입니다. 그대가 자아 로부터 초연할수록 예수께서 그대에게 더욱 애 착 하실 것입니다.
그대 자신을 온전히 예수의 영향 아래 놓음으 로써 그분이 그대의 마음 안에서 생각하시고 그 대의 손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하시도록 해드리 십시오.
왜냐하면 그대에게 힘을 주시는 분인 그분과 함께 그대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게 될 것 이기 때문입니다.
마더 데레사 어록 (9) 마더 데레사를 추억하며
마더 데레사는 20세기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위대한 인물중 한 사람이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거나 비판자들까지도 기꺼이 인정하듯이, 그녀는 우리 시대에, 그리고 가톨릭교회에 있어 탁월한 인물이었으며 무엇보다 매혹적인 여성이었다. 내가 여러 해 동안 그녀 곁에 있었다는 말을 들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마더 데레사에 대해 이야기 해 달라고 간청하곤 했다. 그들의 반짝이는 눈에서, 나는 그녀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왜 21세기의 현대인들이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이 20세기의 성녀에게 관심을 가지는가? 그녀의 신학이 이백 년을 뒤쳐졌다고 비판자들이 쏘아붙일 때, "아니요 이천 년이지요!라고 웃으며 대답하던 이 수녀는 유행을 쫒아 어지럽고도 빠르게 전진하는 이 시대에도 왜 이처럼 커다란 관심과 열광을 불어일으키는가?
여러 해 동안 그녀를 동행한 무수한 여행 중에 나는 그녀의 인격이 지닌 카리스마와 매혹을 어느 정도 체험하게 되었다. 그 어떤 유행이라도 스타를 갈구하는 우리의 미디어 사회에게 그녀는 예외적이고 독특하게 빛나는 '스타'이다. 그러나 그 스타는 부유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 기형아들, 사회에서 버려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강력하면서 현명하고, 카리스마를 지니면서도 겸손한 이 인물은 지배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봉사하고자 했다. 이 혁신적인 기인이 이룬 가장 커다란 가시적 성공은 전셰계의 수만은 젊은 여성들이 그녀의 영향력과 모범으로 인해 기쁜 마음으로 예수의 뒤를 따르게 되었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는 데 있다. 세대를 초월하여 수많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마더 데레사로부터 예수에 대한 사랑이라는 영감을 얻었다. 그녀 자신은 대중의 조명을 원치 않으면서도 선한 일을 위해 이를 아주 효과적으로 이용한 스타인 것이다.
마더 데레사는 결코 스스로 중심에 서고자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로 인해 각광을 받게 되었다.1979년 노벨 평화상 수상 이후 그러한상황은 지속되었다. 그녀는 이 상황을 사람들의 주의를 그녀 자신으로부터 그리스도를 향하게 하는데 이용했다. 마더 데레사가 어디에 속하는가를 둘러싼 다툼이 여러 곳에서 줄곧 벌어졌는데, 이는 가톨릭적이라기보다는 민족적인 동기를 지닌 것이었다. 그녀 자신은 스스로의 뿌리를 부인한 적이 없지만, 이러한 다툼을 결코 원치 않았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마더 데레사의 드문 언급 중 하나는 이러하다.
"나는 출생에 있어서는 알바니아 사람이다. 지금은 인도 국민이다. 그리고 가톨릭의 수녀이기도 하다. 일과 관련해서는 전 세계에 속한다. 그러나 내 가슴은 오로지 그리스도에 속한다."
이를 통해 마더 데레사에 대한 소유권은 명백하게 설명된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한다면 마더 데레사에 대한 책을 쓰는 일은 혹시 그릇된 것이 아닐까? 게다가 이 책은 학술서도 아니고 일반적인 전기라기보다 나의 체험과 기억과 메모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가? 달리말해, 내가 이 책을 쓰는 것에 대해 마더 데레사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녀는 아마도 내가 막 서품을 받은 신부였을 시절 어느 아름다운 가을날 빈에서 내게 했던 것과 같은 대접을 했으리라. 그 이전에 나는 수녀들은 고사하고 그 누구에게도 아직 미사를 집전한 적이 없었다. 마더 데레사가 "신부님, 수녀님들을 위해 미사를 집전해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라고 물어 나는 놀랐다.
나는 영광으로 여기면서도 불안하게, 언제 해드릴지 물었다. 그녀가 말했다.
"내일이요." 나는 더욱 불안해져서 "수녀님, 아직 한 번도 해본적이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하고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마치 속사포처럼 빠르게 대답했다.
"예수님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그밖에 무슨 말씀을 하시겠어요?"
사람들이 그녀의 삶에 대해, 그리고 전기적인 세부 사항에 대해 물을 때면 마더 데레사는 대부분 손사례를 쳤다.
"제 애기하는 것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저에 대해 말하거나 쓸 때 대부분 예수님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 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통해 마더 데레사의 활동과 인격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가 늘 예수를 가리키던 그 손가락에 대해 적절하게 조명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면 이 마더 데레사에 대한 이 책은 결국 무엇보다도 그녀가 언제나 모든 사람을 이끌어 가고자 했던 그분을 향해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이다.
마더 데레사 어록 (10) - 1. 두 번째 만남에 반한 사랑
마더 데레사의 삶, 인류에 미친 파문, 오늘날까지 느껴지는 영향력은 그처럼 예외적이지만, 그녀는 이상할 만큼 평범했다. 마더 데레사는 기존의 모든 규범을 뛰어넘었지만, 동시에 아주 자연스럽고 진정으로 평범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매혹적이다. 나는 곁에 있던 시절 마더 데레사를 관찰하고 연구하고 경탄했다. 처음보는 순간부터 그녀는 우리 할머니를 떠오르게 했다.
마더 데레사와 우리 할머니는 얼굴에 주름살이 많은 것만 닮았을뿐 아니라, 그 세대의 특징들도 공유했다. 마더 데레사는 자신에 대해 엄격하고 규율을 지켰지만,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늘 선했으며 배려하고 보살피고 극단적으로 참고 기다렸다. 마더 데레사는 많은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엄격해 보이는 좁은 입술을 가졌는데, 때로는 마치 뽀로통해 있는 것처럼 입술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럴 때면 고개를 약간 옆으로 기울이면서 약간의심을 가진듯이, 그러면서도 언제나 주의 깊게 방문객의 말을 듣곤 했다.
또 다른 순간에는 다시 입술을 앞으로 내밀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치 소물리에가 햇포도주를 처름 시음할 때처럼, 그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순간에 곧 칼날처럼 단호한 결정이 내려질 것을 예감했다. 그리고 앞으로 내민 입술은 마침내 주름 많은 손과 볼사이로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노동으로 거칠어지고 만성 관절증의 흔적이 역력한 손에 무거워진 머리를 의지한 채 주의 일을 모두 잊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그랬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녀의 인격에 있어 중요한 한 가지 지점에 도달했다. 마더 데레사는 다른 수녀들에게 늘 요구하던 바로 그 모습, 즉 '세상 속의 명상'이었다.
그녀의 모든 활동들, 그리고 겉보기에 완전히 이 세상을 향한다는 주의는 실은 그녀 본질의 가장 큰 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이 부분은 (마치 병실에서처럼) 표면아래 숨겨져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묵상 속에서,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랑과 역사(役事)에 대한 정관에 침잠한 채, 그럴 때 그녀는 우리 모두가 알지 못하는 인격적 비밀. 깊고 신비한 고난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죽음 이후에야 알려진 '영혼의 밤(믿음의 시련을 뜻함-옮긴이)'이었고 하느님에 다가가고자 하는, 충족되지 않는 간절한 소망이었다.
나는 처음 콜카타를 방문했을 때까지만 해도 상당히 비판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마더 데레사의 영성과 신앙이 그녀 자신과 다른 수녀들의 활동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를 아주 정확히 관찰하고자 했다. 그래서 마더 데레사가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관찰하려고, 성당에서 그녀를 잘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그 다음에는 손으로 얼굴을 깊이 누른 채 바닥이나 깔개 위에서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있을 때, 완전히 몰두하는 듯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성전 문 밖에서 사진사 한 사람이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분명 마더 데레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다가가서 그녀를 방해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듯했다. 갑자기 수녀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와서, 마더 데레사에게 가 보라고 눈짓으로 권했다. 사진사는 신발을 벗고 성전에 들어갔다. 그러나 마더 데레사 옆에 무릎을 꿇고 앉기를 잠시 망설였다. 나는 그가 이제 그녀를 방해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그녀가 어떻게 반응할지 호기심이 생겼다. 마더 데사는 사진사가 옆의 바닥에 무릎을 꿇는 것을 듣거나 느꼈을 것이다. 그를 바라보고 활짝 웃으며 맞이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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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녀는 사진사에게 고스란히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자신의 청을 짤막하게 설명했다. 그러고는 그녀가 대답하자 일어서서 성당을 떠났다. 그가 바깥에 나서기도 전에 마더 데레사는 다시 기도에 깊고도 온전히 침잠했다. 이 짧은 장면에서 나를 감명시킨 것은 마더 데레사에게서 불만이나 불쾌감의 낌새를 조금도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도리어 그 반대였다. 사진사가 그녀의 기도를 방해한 것이 마치 선물을 가져온 것처럼느껴질 정도였다. 마더 데레사가 만나는 사람들 안에 예수가 현현하기 때문에, 그녀는 기도로부터, 다시 말해 예수와의 생생한 대화에서 벗어나서 그저 다른 예수에게로 몸을 돌릴 수 있음을 나는 나중에야 이해하게 되었다.
한번은 마더 데레사가 기자들 앞에서 가장 아름답고 진실한 표현으로 스스로를 묘사했다. 기자 한 사람이 말했다.
"수녀님이 하시는 일은 정말 놀랍습니다!"
그녀는 대답했다.
"저는 하느님 손안의 작은 연필에 불과합니다. 바야흐로 하느님은 세상에 연서(戀書)를 쓰시려는 중이예요"
마더 데레사의 이 말으 우리가 연필을 사용하는 식으로 하느님도 우리를 사용하신다는 뜻이다. 우리가 글을 쓸 때 생각과 의견을 종이위에 나타내기 위해 연필을 필요로 하듯이, 하느님도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사람을 사용한다는 점이 바로 그의 위대함이자 겸허함이기도 하다. 우리가 진실로 그에게 속하고 그를 섬기고자 한다면, 그가 선언하려는 그런 방식으로 우리를 사용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자, 그렇지만 여기에서 나는 책의 시작 지점치고는 지나치게 앞질러 결론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이제 다시 한번 처음부터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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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을 다닐 때 이미 마더 데레사를 만났다. 당시 나는 로마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던 슬로바키아의 파볼 흐닐리카 주교의 비서였다. 주교는 당시 '프로 프라트리부스(pro pratribus)'라는 구호단체를 설립하여 동구권의 지하 교회들을 지원했다. 그는 1964년 몸바이에서 열린 성체대회에서 마더 데레사를 만났을 때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를 즉시 알아보았다. 그래서 교황 바오로 6세를 종용하여 마침내 그녀를 로마로 초청할 수 있었다. 또한 흐날리카 주교는 로마 교회의 토르 피스칼레에 수녀회의 첫 분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도왔다. 주교의 비서였던 나는 마더 데레사가 로마를 방문하고 호닐리카 주교가 그녀 수녀회의 로마 분원인 산 그레고리오를 방문했을 때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나는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 있고자 했다. 그녀를 성가시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런 행사들에서는 호날리카 주교 주변에 있던 수많은 체코와 슬로바키아 사람들이 마더 데레사 주위에 구름처럼 모여들었던 것이다.
로마는 흥미로운 저명인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도 이러한 범주에 넣었다. 그렇지만 첫 번째 진정한 만남에서 이미 마더 데레사는 나의 모든 선입견들을 무너뜨렸다. 그녀는 주교 및 다른 방문객들과 같이 앉아서 거창한 대화를 주도하기보다는, 모두를 성당으로 데려가서 성소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머물렀다. 그녀 자신에게나 그녀의 일이 아니라, 바로 그 가장 거룩한 분에게로 우리를 데려가려 한 것이다!
내가 1982년 사제 서품 우 마더 데레사 곁에서 여러 해 동안 여행을 수행할 수 있었던 은혜는 결국 호닐리카 주교가 영어를 못하는 카리스마(성령의 은혜-옮긴이)를 받은 덕분이었다. 물론 호닐리카 주교는 슬로바키아어로, 마더 데레사는 세르비아어로 그럭저럭 의사소통을 할 수도 있었지만, 복잡한 문제에 대화하게 되면 통역이 필요했다. 그럴 때는 내가 끼어들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신임사제로서 통역을 맡은 첫날, 호날리카 주교가 잠깐 밖으로 나가서 나와 마더 데레사만 남게 되었다. 나는 막 신부가 된 사람으로서 러시아 전도를 하겠다는 소망을 품고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속사포처럼 빠르게 대답했다.
"주교 예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해야지요"
나는 그녀가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음을 느꼈기에 변명하듯 이렇게 물었다.
"그렇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주교님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면요?"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면 교황 성하가 말씀하시는 대로 해야지요."
그 말대로 이루어졌다. 결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나에게 간접적으로 지시를 내린 것이다. 마더 데레사와 함께 처음에는 모스크바로 가고 나중에는 아르메니아로 가라는 지시를, 교황청 국무원장 안젤로 소디노 추기경은 교황의 명의로 내게 필요한 전권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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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기질을 지닌 마더 데레사는 그녀의(무수한)우연한 만남들로부터 자신의 사업과 계획들을 위한 도움과 지원을 끌어내는 데 뛰어났다. 그리하여 내가 마더 데레사와 처음으로 오랫동안 만난 그날 그녀와 주교를 위한 통역 임무가 끝나자마자, 그녀는 내가 자동차를 가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곧바로 그녀는 수녀 세 사람을 오후에 공항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나는 일요일인 그날 오후 3시에 로마 산 그레고리오의 수녀관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마더 데레사는 벌써 나와 있었고 내게 세 수녀를 "넘겨 주었다." 세 사람은 모두 뚜껑이 없는 상자를 들고 있었다. 나는 상자를 트렁크에 넣으면서 그 안에 들어 있는 물건들을 보았다. 돌돌 말은 메트리스, 개어 놓은 사리 두 벌, 성경과 기도서 한 권, 그리고 몇 가지 사소한 개인용품들이었다.
나는 가벼운 짐을 가리키면서 "야외로 소풍 가시나 봐요?"라고 다소 도발적으로 물었다.
수녀들은 "아니요, 공항으로 가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어디로 가시는데요?"
십대처럼 보이는 한 수녀가 활짝 웃으며 "아르헨티나요."라고 말했다.
"얼마동안 계시는데요?일주일? 이 주일이요?"
"아니요, 분명 적어도 오 년에서 십 년은 있겠죠!"
그렇게 짐이 적은 이유를 여전히 알고 싶었기에 나는 이 여행에 대해 언제부터 알았느냐고 물었다.
"오늘 오전이요. 우리 서원식이 끝나자 데레사 수녀님이 새 임무를 주셨지요! 우리는 너무 행복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신부로서의 나의 순종과 그녀들의 순종을 비교했다. 나는 그 비교의 결과에 대해 오늘날까지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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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나는 교구 사제에게서보다 수도자에게서 순종이 훨씬 풍부함을 알게 되었다. 상부에서 내린 임무에 이처럼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일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마더 데레사는 어떤 사람에게 어떠한 권위가 진정으로 주어지는지를 정확히 알았다. 전혀 비굴하지 않았지만, 지극히 순종적이었다. 결코 상부에, 주교나 추기경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일을 계획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교의 권한 안에 있는 지시와 그 밖에 있는 지시를 언제나 정확히 구별할 줄 알았다.
마더 데레사는 어느 주교회의 중에 프란츠 쾨니히 추기경을 만난일이 있다. 추기경이 그 많은 주교들 아래에서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추기경 예하, 저는 여기에서 이야히하고 전하는 말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주교님 말을 듣는 것보다는 주교님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때로는 아마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공항으로 데려다 준 젊은 수녀들은 오전에 임무를 부여받으면서 그날 오후에 어디로 가게 될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기쁘게 순종했다. 나중에 나는 종종 이러한 방식의 임무 부여가 사랑의 선교회에서는 통상적임을 알게 되었다.
수녀들이 교회에서 서원을 마치고 서약서를 마더 데레사의 손에 넘겨주고 나면, 매우 감동적인 방식으로 서원의 본질을 분명히 하는 임무 위임이 이루어진다. 그 의미는 가난, 순결, 순명, 그리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성심을 다하는 무보수 봉사"이다. 전례 후에 새로운 수녀들은 성당부속실로 간다. 여기에서 마더 데레사는 위임장에 서명하여 각 수녀들에게 나누어 준다. 위임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사랑하는~~수녀님, 저는 당신을 ~~로 보냅니다."
마더 데레사는 공란에 수녀의 이름과 수녀가 가는 나라 이름을 적어 넣는다. 그리고 그 아래 쓴다.
"주님의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길. 사랑의 선교회 마더 M. 데레사."
나는 세 수녀를 로마의 공항으로 모셔갈 때는 이런 일에 대해 아직몰랐다. 그렇지만 마더 데레사와 그녀의 활동 정신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마더 데레사에게 수녀들이 무사히 출발했음을 보고하려고 했다. 다과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그녀가 몸소 나를 만나러 왔다. 나는 처음에는 그녀가 감사를 표하려 한다고 생각했지만, 곧바로 나의 다음 임무를 받게 되었다.
"신부님, 내일 저를 바티칸까지 태워 주실 수 있으신가요?"
마더 데레사 어록 (11) - 2. 선의의 독재자와 바티칸에 가다
"바티칸까지 태워 달라고요?" 네, 당연히 그래야지요. 기꺼이요!"
마더 데레사의 그 작은 청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불과 몇달 전 서품을 받은 사제로서 바티칸의 담장 안을 한번 들여다보거나 마더 데레사를 기다리는 동안 어쩌면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는 바티칸의 정원들을 조금 걸어 볼 수도 있을 좋은 기회였다.
"네, 기꺼이요. 언제라도요!"
바티칸으로 가기 위해 언제 모시러 올지 물어보면서 마더 데레사와 나의 첫번째 작은 토론이 시작되었다.
"신부님, 우리는 시간을 아주 정확히 지켜야 해요. 그러니까 새벽 4시에 떠나는 게 좋겠습니다! 라는 그녀의 말로 우리의 작은 논쟁이 시작되었다.
"새벽 4시요?"
잠도 푹 자지 못한 채 아직 캄캄할 때 일어나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로마에서는 새벽 1시 전에 잠을 자는 일이 드문 것이다. 특히 학생이라면, 그러니까 진정한 희생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지만 어쩌면 희생 시간을 조금 뒤로 미룰 수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시도했다.
"데레사 수녀님, 교황 성하의 아침 미사에 초대받으셨군요?"
마더 데레사는 입술을 살짝 들썩이면서 인도식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그것이 우리 유럽인에게는 "아니요"를 뜻하지만 인도에서는 "그래요"를 뜻하므로, 내 추측이 맞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유리해짐을 알 수 있었다.
"데레사 수녀님, 교황 성하의 미사는 7시에야 시작합니다!" 이 내부자 정보로 나는 승리를 거두기 일보 직전이었다.
"알아요, 다만 우리는 시간을 아주 정확히 지켜야 해요!"하지만 좋아요. 4시 반에 떠나죠."
조그만 승리를 거두었다. 이제 좀 더 밀어붙일 필요가 있었다.
"아니요, 수녀님 6시 반이라도 충분해요. 그런 새벽 시간에 거리는 텅텅 비어 있으니까요. 아무리 길제 잡아도 산 그레고리오에서 바티칸까지 15분이면 돼요."
"좋아요, 5시요. 신부님! 더 늦게는 안 돼요!"
또 한 번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니까 논리를 대면 그녀가 수긍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럴 때도 조금도 신경질이나 초조함을 보이지 않았다. 그 반대였다. 나는 매혹적이고 친밀한 그녀의 눈 깊은 곳에 숨은 장난꾸러기를 발견했다. 잠시 나는 내가 소돔의 의인들을 둘러싸고 흥정하는 아브라함처럼 느껴졌다. 물론 영혼이 아니라 다음 날 새벽에 잠을 잘수 있는 몇 시간을 둘러싸고 흥정하고 있지만.
그렇지만 또다시 새로운 시도를 했다. 나름대로 중요한 논리를 들이 대면서.
"데레사 수녀님, 그래도 너무 이른 걸요! 바티칸의 문은 6시가 되어야 열리니까요!"
"좋아요 5시 반이요!"
이것만 해도4시 보다는 훨씬 나았다!
마더 데레사 어록 (12) - 3.성인을 주문하는 법 <다미안 신부>
다음해 나는(이제 현대사의 중요한 인물들로 평가받게 된 이 교회의 두 위대한 인물들인)
마더 데레사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로를 얼마나 높이 숭배하고 서로에 대해
얼마나 존경하고 있는지를 목격하게 되었다.
이 일은 다시 한번 교황청 내 성당의 아침 미사에서 일어났는데,
이번에는 나는 미리 참석 신청이 되어 있었다.
그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방식도 각자의 특징에 걸맞았다.
마더 데레사는 인도 식으로 가슴 앞에서 두 손을 포개어 교차시켰고,
요한 바오로 2세는 다정하게 두 팔로 그녀을 안았다.(그 후로도 계속 그랬지만)
이날 내 눈에 뛴 것은 두 사람이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는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현재 중요한 사안과 직접 관련이 없는 어떤 일들에 대해 수다를 떨지 않고,
단도직업적으로 그 사안으로 돌입했다.
서로 친밀한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두 사람 사이에는 사소한 잡담이나
불필요한 에티켓 교환은 없었다.
마더 데레사는 다정하게 인사를 하고 나서 곧바로 그녀의 관심사로 들어갔다.
"교황 성하, 우리 나병 환자들을 위한 성인이 필요합니다!"
교황은 마더 데레사가 이러한 '임무'를 맡은 사람으로 누구를 생각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다미안 드 베스테르 신부(1840~1889)을 언급했다.
1840년 벨기에서 태어난 선교사인 그는 하와이에서 나병 환자들 사이에서 살면서
그들을 돌보았으며 마침내 스스로 나병에 걸려 죽었다.
속명이 ''예프'였던 그는 농부의 일곱 번째 아이로 태어나 처음에는
부모의 농장에서 일하다가 스무 살이 되어 루뱅의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 수도회에 입회하고
다미안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1874년 몰로카이 섬에 가서,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의료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며 살고 있는
나병 환자들을 돌보았다. 1885년 나병 진단을 받고 1889년 세상을 떠났다.
마더 데레사는 "교황 성하, 그분을 아시는지요?" 라고 물었다.
교황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제 마더 데레사는 목표에 이르렀다고 믿었다.
"그러면 무얼 기다리세요? 언제 시성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시성이 이루어지기 전에 한 가지 큰 문제를 풀어야 했다.
다미안 신부는 교회법상 시복이나 시성을 위해 필수적인 기적을 아직 인가받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교황은 이미 마더 데레사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와 오랫동안 토론을 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는 그녀가 이 문제를 교황청의 시성부 장관인 피레트로 팔라치니 추기경과
논의할 것을 친히 위임했다. 마더 데레사는도 더 이상 청하지 않았다.
물론 팔라친 추기경은 더 신속했다. 분명 교황은 그에게도 따로 이야기를 했으리라.
다음 날 새벽 6시 15분에 벌써 팔라치니 추기경이 로마의 산 그레고리오의
사랑의 선교회 마더하우스 문을 두드렸다.
마더 데레사는 로마에 체류할 때 여기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팔라치니 추기경은 마더 데레사처럼 마르고 키가 작았다.
그의 눈은 유머러스한 성품과 신속한 이해력을 지니고 있음을 내비쳤다.
바티칸에서 그는 탁월한 신학 지식과 교회법에 전문성으로 유명하고 이따금 외경을 받기도 했다.
여러 해 전부터 시성부 장관이었고 교황의 탁원한 자문역이었다.
내가 통역한 추기졍의 첫마디는 "데레사 수녀님, 교황 성하께서 저를 보내셨습니다.
제가 무슨 일을 해드릴 수 있나요?" 였다.
"추기경 예하, 우리 나병 환자들을 위해 성인이 필요합니다."
라고 마더 데레사는 교황에게 새로운 성인 시성을 문의할 때 처음 한 말을 되풀이했다.
추기경은 "누가 좋을까요?"라고 물었다.
"다미안 드 베스테르 신부님이시지요. 그분을 아시나요?"
"네, 데레사 수녀님, 하지만 아시겠지만, 약간 문제가 있지요.
아직 그분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셨거든요. 시성을 위해 꼭 필요한데요."
마더 데레사는 "그렇기는 하지요. 하지만 성경에는~~"
그리고 그녀는 놀라는 추기경에게 성경에서 요한복음 15장 13절을 펼쳘서 눈앞에 들이밀고 있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 다미안 신부님이 하신 일이 바로 이것이지요. 이것이 성경에서의 시성이지요.
그러면 대체 무엇을 더 기다려야 하지요?"
그녀는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논리를 사용했고 '전리품'을 거두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하게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다.
팔라치니 추기경은 심호흡을 하고 비장의 카드를 내놓았다.
"데레사 수녀님이 맞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4백 년도 더 전부터 시성을 위해서는
세 가지 기적이 인가되어야 한다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미안 신부님은 이제까지 하나도 없습니다!"
그녀는 아주 열성적으로 대답했다.
"그래요, 그럼 이제 그 전통을 바꿀 아주 좋은 기회내요."
또다시 정통으로 명중했다. 이제 성공이 눈앞으로 다가온 듯했다.
그녀는 토론을 끝내기 위해 "성경은 교회법보다 우선하지요."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추기경은 선량하면서도 영리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데레사 수녀님, 그 말씀은 정말 옳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4백 년의 전통을 바꾸는 것보다 주님께 기적을 청하는 것이 훨씬
간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그렇다 마더 데레사가 말문을 잃고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잠시 후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좋아요, 그럼 기도하죠!"
이 영리한 이탈리아 추기경이 승리를 거두었다.
이제 마더 데레사를 완전히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그리고 시성을 위해 필요한 사전 작업들이 엄청나게 까다롭고 아주 중요하며
이미 여러 해 전에 끝났음을 보여 주기 위해, 추기경은 그녀를 시성부 문서보관소에 초대했다.
거기에서 그녀에게 다미안 신부의 시복을 위해 수집한 산더미 같은 문서들을 보여 주었다.
"다미안 신부님의 시복을 위해 제일 중요한 자료가 어떤 거지요?"
마더 데레사는 수백 권의 두꺼운 책들에 커다란 관심을 보이면서 벌써 세 번째로 물었다.
시성부 직원들은 마더 데레사가 왔다는 말을 들고 모두 모여들었다. 추기경은 참을성있게,
그리고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않으면서 그 드문 손님에게 문서보관소의 길고 긴
서적과 문서 목록들을 설명하고 시성 절차의 복잡성을 설명했다.
마더 데레사는 다미안 신부의 시복이나 시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자료가 무엇이냐고
제차 대답을 재촉했다. 그래서 마침내 팔라치나 추기경은 직원을 시켜 그 자료를 가져오게 했다.
직원은 사다리를 올라가 책 한 권을 가져왔다. 그가 커다란 떡갈나무 책상 위에 그것을 놓자,
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오르면서 이 책이 지닌 의미를 과시했다.
"그러니까 이것이 정말 다미안 신부님이 시성을 위해서 제일 중요한 자료라는 말씀이지요?"
마더 데레사는 또 한 번 확인했다.
"네, 데레사 수녀님, 왜냐하면 이 책에는~~~~"
추기경은 찬찬히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나 첫 문장을 마치기도 전데 마더 데레사는 자기의 청회색 가방을 뒤적여서
작은 기적의 메달과 테이프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테이프로 그 무거운 책의 겉장에 메달을 붙였다.
추기경의 설명을 가로막으면서 그녀는 말했다.
"자, 이제 제일 중요한 일을 했어요. 이제 가겠어요!"
그 후엔 놀란 추기경과 직원들만 남았다.
이제 누가 마지막에 '승리'를 했는가?
하느님의 선의는 이 두 위대한 인물이 모두 승리하게 했다.
마더 데레사가 청한 기적은 얼마 후 일어났다.
이와 동시에 시복 절차의 새 규정은 거기 필요한 기적의 수를 세 번에서 한 번으로 줄었다.
나병 환자들이 있는 몰로카이 섬에서 활동하고 4년간 나병으로 고통받다가
세상을 떠난 다미안 드 베스테르 신부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95년 6월 4일
마더 데레사가 참관한 가운데 시복되었다.
그녀는 나병 환자들을 위한 성인을 얻게된 것에 진심으로 기뻐했다.
게다가 그 성인은 자신이 나병 환자였다.
이제 나병 환자들은 고통 속에서도 충만한 믿음으로 그 성인을 향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벨기에 선교사의 시성은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2009년 10월 11일
로마의 베드로 광장에서 이루어졌다.
마더 데레사가 나병 환자들의 성인을 그렇게 간절히 원했는지는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고대 사회에서부터 나병 환자들은 사회로부터, 아니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지들로부터도 소외되었다.
그들은 추방되었고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아야 했다.
나병이 전염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성 프란치스코가 나병 환자를 포옹했던 것처럼.
마더 데레사도 이 가련한 사람들에게 애정과 친밀함을 주고자 했다.
게다가 나병 환자가 가장 많은 곳이 바로 인도였다.
1957년 마더 데레사는 처음으로 나병 환자들을 받아들였다.
같은 해에 처음으로 나병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수녀들을 교육시켰다.
그녀는 나병 환자들을 '주님이 특별히 사랑하시는 자녀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고통 속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더 데레사는 나병 환자를 돌보고 치료하기 위한
이동 진료소를 설치했고 또한 중환자들이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나병 센터들도 설립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뭄바이에서 열린 성체대회에서 사용한 교황 전용 자동차를
행사 후에 마더 데레사에게 선물했는데,
그녀는 이 차를 경매로 팔아서 나병촌 한 군대를 위해 썼다.
1959년 그녀는 나병 환자를 위한 대규모 센터를 설립했고 나중에는
콜카타에서 300키로미터 떨어진 곳에 나병촌을 세웠다.
여기에서 나병 환자들은 사랑의 선교회가 돌보는 가운데 작업장에서 일하고
닭은 키우고 스스로 관리를 맡았다.
마데 데레사는 이곳을 "산티 나가르" 즉 평화의 마을이라고 불렀다.
마더 데레사 어록 (13) - 4. 마더 데레사의 소명
극빈자들에 대한 마더 데레사의 매우 특별한 헌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핵심적인 소명 체험을 알아야 할 것이다.
1928년 인도 선교를 위해 더블린의 로레토 수녀회에 입회했다.
1929년 초 인도 북부 다르질링에서 수련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 도시는 해발 2천 미터의 히말라야 산기슭에 있다.
마더 데레사는 1931년 유기서원을, 1937년에 종신서원을 했다.
그러니까 1946년 당시 이미 15년 동아 수녀로서 거룩한 삶을 추구했으며
이를 위해 모든 일을 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1946년 9월 10일 매해 받는 교육을 위해 기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결정적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일은 이렇게 일어났다.
마더 데레사는 수련 과정을 마쳤던 뱅골 서부의 다르질링을 향해 다시 길을 가고 있었다.
콜카타 역으로 가는 길에 벌써 수많은 빈자들을 보았다.
최근 반란 이후로 주민들들 대부분이 형언할 수 없이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사람들이 미어질 듯 가득한 기차가 서는 역마다 그 봉기의 결과를,
그러니까 참상에 처해 있는 군중들을 볼 수 있었다.
오랜 기차 여행 동안 그녀는 심장 안에서 아주 분명하게 예수의 말씀을 들었다.
"목 마르다(I thirst)"
이 말을 아주 강렬하게 들었고, 가슴 속에서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압도적인 사랑을 느꼈다.
나중에 그녀는 이렇게 썼다.
"처음으로 예수님의 갈증이 특별히 고지된 것이다."
"목 마르다"라는 이 말은 요한 복음에서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 했던
말씀 중 두 번째 말이다. "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 19장 28절)
마더 데레사는 1946년 9월 10일 다르질링으로 가는 이 기차 여행 중
그저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사실뿐 아니라,
"목마르다"라는 이 말이 주의 사랑에 대한 피조물에 대한 사랑과
그들의 영혼의 구원에 대한 갈망에 대한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표현이라는 사실을
가슴을 뒤흔드는 깊은 체험 속에서 인식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이 말씀을 했다. 십자가에 못박히심은 죽음을 넘어서며
한계가 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확신시키고자 했던 예수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제 마더 데레사는 자신의 소명의 본래적 핵심을 인식했다.
다르질링에서 열흘간의 수련을 활용해 이 깨달음에 대해,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에게서 받은 메시지에 대해 묵상했다.
콜카타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자신의 삶을 이제 바꿔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또 어떻게 바꿔야 할지 확신하게 되었다.
마더 데레사는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를 모시겠노라고 결심했다.
그리고 극단적 빈곤 속에서 살아가며 자신을 예수를 모시겠노라고 결심했다.
그리고 극단적인 빈곤 속에서 살아가며 자신을 예수에게 합치하고자 했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스스로 가난한 삶을 살아가기로,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기로, 그리고 하느님의 섭리와 인도를 완전히 신뢰하기로 결심했다.
18년 동안 함께한 로레토 교단의 수녀들을 떠나는 것은 마더 데레사에게 힘든 결정이었다.
그녀는 예수의 뜻이라고 생각한 이 행동을 교회 당국에 맞서서,
혹은 교회 당국의 허락 없이 강행하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수녀원장에게 청원했고, 콜카타의 페리에 대주교와 여러 번 오랜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예수님으로부터 들은 명령을 따르겠다는 소망을 더블린의 총원장 수녀에게
서한으로 전달했다.
1948년 4월2일 교황 비오 12세는 페리에 대주교의 청에 응답하여
마더 데레사에게 수도원 밖에서 수도회 수녀로서 살아도 좋다는 허가를 내렸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대주교에게 순종하고 교단의 규칙을 준수하라는 의무를 부여했다.
1948년 8월 16일 그녀는 로레토 수녀회의 수녀복을 벗고 수도원을 떠났다.
그녀가 가르치던 학생들은 작별 노래를 연습했다.
트렁크와 가방을 든 마더 데레사는 대문 앞에서 수백 명의 학생들 사이에 서 있었다.
소녀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으나 한 사람이 훌쩍이며 울기 시작하자
또 다른 사람이 울기 시작했다. 몇 분 후 많은 소녀들이 엉엉 울기 시작해서 노래가 중단되었다.
마더 데레사는 몸을 굽혀 짐을 들고 떠났다.
대문을 나서 곧바로 그 옆의 빈민굴로 더 이상 돌아보지 않았고 등뒤의 수도원 문을 영영 닫았다.
극빈자들을 위한 소명대로 살기 위하여, 이날은 성모승천대축일 바로 다음 날이었다.
마더 데레사 수녀의 기도
사랑하는 주님, 제가 가는 곳마다 당신의 향기를 뿌릴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내 영혼을 당신의 정신과 생명으로 흘러 넘치게 해주소서. 내게 온전히 침투하고 차지하시어 내 삶이 당신을 비추게 해주소서. 나를 통하여 빛나시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내 영혼에 당신이 사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소서. 나를 보되 나를 보지 않고 오직 당신만을 보게 하소서. 오 주님! 나와 함께 머무소서. 그러면 당신이 빛나듯이 나도 빛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빛이 될 것입니다. 오 주님! 그 빛은 나를 통해서 비추는 당신입니다. 모두 당신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방법으로 당신을 찬미하게 하소서. 당신을 설교하지 않고,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내가 하는 일에 공감하는 영향력으로, 당신을 향한 충만한 사랑으로 당신을 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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